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도 축복이다 (벧전 1:6~7)

  • 잡초 잡초
  • 505
  • 0

첨부 1


- 설교 : 정필도 목사 (수영로교회)

시각장애자들 중에는 안마사로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각장애인 처녀와 총각이 결혼을 했습니다. 남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여자는 조금 보이지만 둘은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이 길을 가고 안마하러 가는 것도 둘이서 같이 갔고 했습니다. 비록 시각 장애가 있었지만 너무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안마를 하러 다닐 때 이상하게 사람들이 남자에게만 안마를 해달라고 하고 여자는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이유를 몰랐는데 그 이유는 부부 안마사가 같이 다닐 때 남편은 미남인데 여자는 얼굴이 상처로 엉망이어서 사람들이 그 여자는 안마를 받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돈을 잘 벌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의 행복이 깨지던 날이 왔습니다. 남편의 개안수술을 받은 날, 성공해서 안 보이던 눈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실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보기도 싫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주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편은 눈을 뜨면서 여자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안 수술을 받은 후에 못 보던 사람이 보게 되면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부부사이에 금이 가면서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건강하면 행복합니까? 이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불행한 사람들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이 것들을 가지면 좋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가 높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권력이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던지 안 하던지 행복해지는 것 아닙니다. 두 눈을 다 가진다고 행복한 것 아닙니다. 아까 이야기처럼 두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죄를 범하고 고민과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이나 환경,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 만족, 기쁨, 감사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내 마음속에 있을 때 내 마음 상태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심보가 고약하면 돈이 많아도 권세가 명예가 많아도 항상 그 사람은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심보가 고약하고 교만하고 악하고 음란한 인간들에게는 돈, 명예, 권세들이 행복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항상 원망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조건이 있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불행하게 삽니다.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할 것 같은데 불행한 사람들이 있고 불행할 것 같은데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니까 행복할 것 같지만 본인은 전혀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집, 지식, 학벌,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마음 상태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눈을 가리고 당장 실험해보십시오. 그러나 아까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시각장애가 있어도 자신들은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개안수술 성공 후에 더욱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행해졌습니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기뻐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개안 수술 이후에 그 마음이 깨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을 만나십니다. 이 세상을 전혀 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수십년 살아오면서 많은 멸시와 천대와 욕을 먹고 남을 귀찮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이 소경을 보면서 무슨 죄가 많아서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됐냐고 생각했습니다. 불행 중이나 고통 중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무슨 죄가 많아서 그럴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왜 고난은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또 고난의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앞길이 캄캄하고 미래가 없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고민하는 만큼 그만큼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너무 좋으십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능력이 지식이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완전한 사랑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입니다. 또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복을 다 가지고 계시고 나누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고난을 지시고 돌아가실 정도이면서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고난은 괴롭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저주는 아닙니다. 축복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질병이라는 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죄에 대한 징계로 병이 오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순종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면 병을 벌로 주신다고 말하십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요한복음 5:14) 38년 동안 병으로 시달리고 예수님이 그를 고쳐주시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죄로 말미암아 병이 올 수 있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범죄한 인간에게 육체의 고난이 있다는 것은 우선 그 고난이 죄를 끝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육체의 고난으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음란한 사람들에게 성병, 에이즈나 임질 등이 생기는 것은 벌인 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운 병이 생기는 것 자체가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는 죄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잘 아셨으므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2장 3절에도 하나님은 같은 말을 하십니다. 그래서 2장 5절에 보면 뼈를 치고 7절에 악창이 나서 온 몸이 아프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기 위해서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죄 없이 고난당하는 모든 성도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욥에게 이 시험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욥의 마지막이 어떤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너무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데 고난이 온다면 욥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욥을 통해서 그 교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먼저 혹시나 범죄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범죄했을 때 당하는 고난은 징계입니다.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그 외의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온전케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인 것입니다.『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2~4) 마치 금덩어리를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서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1:6~7)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낙심하고 헤매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자연히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큰 변화가 일어나고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집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야고보서 1: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욥과 같은 시험을 허락하실 때도 있는데 이유는 인정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상급과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다고 인정받은 것이 창세기 22장에 시험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께서 ‘과연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겠노라‘라고 말씀하시며 인정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좋은지 인정하시고 그 후에 엄청난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험 후에 갑절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가는 엄청난 시험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지 드러나는 그런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니엘을 더 축복하시고 크게 들어 쓰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한복음 9:39)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심판의 목적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 심판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기 위해서 하시는 심판입니다. 택자와 불택자를 나누기 위해서 하는 심판입니다. 양과 같은 택함 받은 백성은 반드시 예수 믿어서 구원받습니다.『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사도행전 13:48)

『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한복음 10:3~5) 불택자는 바리새인처럼 눈은 떴으나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이들은 지옥 갈 사람들인 것입니다. 심판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10:25~26)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는도다.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10:27~29)『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복음 3:17~18)

심판 중에 제일 무서운 심판이 예수를 믿지 않는 심판입니다. 염소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믿지 않는 것이 심판받은 증거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가 믿어집니까? 믿어지시면 하나님의 자녀이고 양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중에 한 분이 너무 얌전하시고 살림도 잘 하시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무척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 남편이 부인을 얼마나 때리고 못 살게 하는지 아이들이 눈 뜨고 못 볼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부인은 끝까지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택한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경상도 분이어서 아주 못 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중한 병을 주셔서 몇 년을 고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낫지 않으니깐 결국 그 분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아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악이라는 것은 눈곱만큼도 없게 선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죽는 그 날까지 정말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 분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천국에 갔지만 그 병은 그 분에게 축복인 것입니다. 병 때문에 주님을 믿고 사람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질병이 조금도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고난이 와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더 악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이 와도 예수를 믿지 않고 겸손해거나 거룩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 우편 강도같이 끝까지 예수님을 저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저주입니다. 불택자들이 고난을 말미암아 약해지고 망하는 것은 택자에게는 축복입니다. 반대로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불택자들이 흥왕해서 더 악해지고 나쁜 짓을 많이 하게 된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이 괴로움을 당하겠습니까! 요즘 우리 나라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더 높아지고 우러러 보는 성도들이 되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크고 작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이 고난이 축복이 되게 하고 있는지 고난이 되게 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고난을 많이 당했을 텐데 그 동안 지나고 보니까 나에게 그것이 저주가 되었는지 축복이 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저 역시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특히 가난으로 물질로 고생을 많이 당했습니다. 너무 고생이 심해서 빨리 죽어서 천국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의 시절을 다 보내고 지금의 내가 옛날을 돌이켜 볼 때 그 고난이 얼마나 내게 축복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그 고난을 통해서 나로 하여금 항상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론 문제가 너무 크면 학교를 가야 하는데도 교회에서 철야기도하고 산에서 한밤중에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헛되게 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 믿음이 더 견고케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더 견고케 해주셨습니다. 이 고난이 축복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를 지나 대학교를 다니면서 더 어려웠습니다. 저는 제가 대학교 때 가정교사하면서 제가 돈을 다 벌었습니다. 돈을 벌어서 쌀을 한 가마니사면 벌레가 먹어서 벌레 먹은 쌀만 먹었습니다. 대학 4년에는 대학생들 얼마나 잘 놀겠습니까! 서울대학생들이니까 인기도 아주 많았습니다. 저는 4년 동안 틈도 없이 아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계속 아이들을 가리키면서 대학4년을 보냈습니다. 대학 동안에 늘 5시간 이하로 잤습니다. 제가 아주 체격이 좋았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축구를 하는데 다른 사람이랑 부딪히면 저만 나가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제 몸을 알고 축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419때든지 데모할 때 저는 무조건 공부했습니다. 다른 공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공부할 때 다 기도하면서 예수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졸업식을 하고 나서 교회에 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지나간 4년을 뒤돌아보니까 잠도 못 자고 죽어라 일하고 공부만 했던 것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서 왜 나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시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니가 주의 종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하게 하셔서 다른 것을 할 수 없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그렇게 묶어 놓지 않으면 주의 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친구들은 4년 동안 밤낮 그렇게 놀다가 주의 종이 됐을 때 맥을 못 추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만나면 그 때 시절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를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그 고난을 축복 받는 기회로 만드시고 영광 돌리는 기회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도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