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랑함이 많은여인 (눅 7:36-50)

  • 잡초 잡초
  • 317
  • 0

첨부 1


- 김영태 목사 (청북교회)

2004. 06.27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사랑을 말합니다. 에로스라는 남녀간의 사랑이 있습니다.  필레오라는 친구간의 사랑도 있습니다. 스톨게라는 부모와 자녀간의사랑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가페라는 하나님의 사랑도 있습니다. 이 아가페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건이 없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외에는 모두가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조건이 있다는 이야기는 적게 사랑할 수도 있고 많이 사랑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고 항상 사랑 속에는 계산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이 그러하지요. 결혼한다는 사람들을 보세요, 조건 없이 결혼하는 사람들이 100명 가운데 몇 사람이나 될까요. 하나도 없다 아마 그렇치는 않을 것입니다. 더러 한 두 사람 정말 조건 없이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왜 없겠어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조건을 가지고 결혼합니다. 조건을 가지고 결혼하기 살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사네 못사네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해줄 수 있느냐 에 다라 내 사랑의 척도가 올라갑니다. 100이 기준이라면 열만큼 사랑하기도 하고 50만큼 사람하기도 하고 80만큼 사랑하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상대가 나에게 별 볼일이 없어지면 그 척도 가 내려갑니다. 80이던 사랑의 지수가 70으로 50으로 20으로 그러다가 0이 되면 이혼하는 것이지요. 친구사이라면 갈라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아낌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내 조건이 올라가던 내려가던 항상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기에 때로 인간들이 건방지고 방자해지기도 하고 교만하다가 넘어지기도 합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방안에서 잠을 자고 있어요. 그 집 세살꼬마가  잠자는 강아지를 못살게 굽니다. 귀를 잡아당기다가 목을 비틀다가 그래도 강아지가 눈을 떳다가 꼬랑지를 몇 번 흔들어 주고 또 자는 거예요 그러면 또 건들고 또 건들고 강아지가 귀찮으니까 피해서 다른 곳에 가서 또 잠을 잡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거기를 좇아가서 또 못살게 구는 거예요. 강아지가 참다 참다 못하니까? 앙하고 물어 버리드라구요. 참아줄 때 까불지 말아야 됩니다.

오늘 성경에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사랑이 많음이라고 표현을 해 주셨습니다. 사랑함이 많은 여인, 주님을 사랑함이 많은 여인. 이 여인은 복 받은 여인이요. 은혜 받은 여인이요. 사랑받는 여인입니다. 여러분이 복 받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사랑함이 많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함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이 복을 받은 것의 기초는 그녀의 믿음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입니다. 구원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타고 일부러 죄인이 될 생각은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죄인된 것으로 족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 합니다. 그러나 죄인이면서 죄인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할 때만 구원해 주십니다.

주님이 말씀 하셨지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의인은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타면 여러분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멘 그러면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아직까지 구원을 받지 못하였습니까?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죄인인데 죄인인줄 모르고 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여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1.그녀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철저한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학자들은 이 여인을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합니다. 창녀였다. 간음하다 현장에 붙들려 예수님에게 끌려온 여인이었다. 어쨌든 동네가 다 아는 죄인입니다. 지나가면 사람들이 돌멩이질을 하고 가다가 마주치면 피해가는 죄인입니다. 동네사람도 알고 오늘 성경의 시몬도 압니다.  그래서 시몬이 의심하잖아요. 이 여인이 죄인인 것을 동네가 다 아는데 왜 예수님이 모르는가? 입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도 압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그러니 그 신세가 죽지 못해 삽니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여인을 예수님만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그치지 않는 감격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여인은 그렇게 예수님의발아래서 우는 것입니다.

2.그녀는 용서 받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용서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회계하고 용서 받으려 하여도 회계할 곳이 없고 용서 받을 곳이 없다면 이것은 미치는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용서 받을 곳이 없다 감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것이 감옥,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그녀의 죄가 그녀의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언제나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덮고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고백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언제 하나님이 무어라 했습니까? 그러나 두렵습니다. 죄를 지으면 사랑의 대상이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두렵습니까?  그러나 두렵습니다. 부모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없지만 죄를 지으면 부모가 두렵습니다. 남편처럼 든든한 사람이 없지만 조를 지으면 남편이 두렵습니다. 경찰서는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 주는 곳이지만 죄를 지으면 그곳이 두렵습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으면 불행 한 것입니다. 불행하기에 용서가 필요 합니다. 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인은 용서 가 필요한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3.그녀는 용서 하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여인이 만약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라면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여인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처음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현장에서 잡힌 그 죄를 용서 받았을 뿐입니다. 그의 가슴속에 뿌리 깊이 내려 박힌 그 많은 죄의 뿌리들이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어디 가서도 용서를 받지 못한 죄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압니다. 자기가 용서 받을 곳이 어디인지를 압니다.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 받을 곳은 예수님인 것을 압니다. 이것이 그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 합니까?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눈물뿐입니다. 눈물로 회계하는 것입니다. 용서해 주시는 주님이기에 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를 용서하는 주님. 아니 이미 용서 하신 주님. 향유를 붙고 머리털로 발을 씻습니다. 너무 너무 귀하신분 용서를 알게 하신 분. 그녀의 모든 사랑을 다 쏱습니다. 주님이 그녀에게 말씀 합니다. 47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 그녀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초대 한 것은 이 여인이 아닙니다. 시몬이란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 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축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돈이 있다고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몬이 바라본 예수님은 그저 자기 마을에 온 손님이요. 훌륭한 선생님일 뿐입니다. 그런 선생님이 자기 마을에 왔으니 자기마을의 유지인 자기가 당연히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귀한 손님을 모셨으니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하고 은근히 예수님 앞에서 과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자신은 철저한 의인입니다. 용서가 필요 없습니다. 용서가 필요 없기에 은혜도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철저하게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100퍼센트 죄인입니다. 100퍼센트 은혜가 필요한 여인입니다. 어떤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저의 고향에  어렸을 때부터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집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재산은 없고, 멸시 천대받고, 공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집이 망한 집은 아닙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도록 가르치고. 예의와 도덕을 어려서부터 잘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좋은 성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녀들이 다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복  받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 받고, 사람들에게는 존경받는 잘 된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에 제일 잘 살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많고, 재산을 마당과 방안에도 쌓아 놓고,  지역 유지로 온갖 영광을 누린 집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동네에서 모이면 그 집 이야기를  수군거리고, 말하였습니다. 그 집 아이들은 성실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망한 집은 그  잘 사는 집입니다. 가난한 집은 일어난 집이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멀쩡해도 병든 집이 있고,  겉으로 보아서는 온 몸과 생활이 상처를 받아도 건강한 집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는 집이 있습니다. 다 잃어  버려도 안에 갖고 있는 집이 있고, 다 가져도 안이 텅 빈집이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합니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결혼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마음은 늘 비어 있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다 누렸고 몇 억불의 재산도 있었습니다. 명예와 인기와 아름다움과 건강도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허전했습니다. 자기가 찾는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에 "나의 일생에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은혜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 합니까? 주님을 사랑함이 많아져야 합니다. 10원짜리 사랑도 있습니다. 100원짜리 사랑도 있습니다. 1000원짜리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 여인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커지고 주님의 은혜가 커지고 모두가 복 받는 사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