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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가르쳐 주겠습니다 (행 17: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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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교회 (대구문화교회)

바울은 지칠 줄 모르는 전도자였습니다. 닥치는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슴이 뜨거운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아가야루의 두 도시 아덴과 고린도에 전도했습니다. 아덴(지금의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은 그리스의 수도였습니다.(고전 1:18-2:16) 예전에도 과학, 철학, 예술, 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와 실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보니 그 도시에 우상이 득실거렸습니다. 바울은 뵈레아에서 떠나 배를 타고 남쪽으로 300마일이나 되는 아덴에 왔습니다. 당시 종교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철학은 아덴이었습니다. 정치는 로마였습니다. 바울은 아덴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세계의 3대 도시였습니다. 그러니 문화의 도시였습니다. 당신 아덴을 “헬라의 눈” “예술과 웅변의 어머니” “모든 지혜의 고향”이라 했습니다. 이곳은 서양 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세계문명의 모태였습니다. 또 민주주의의 고장이기도 했습니다. 아덴의 권력이 최고조 일 때는 국전 478-431년 페르샤의 침략군을 물리칠 때였습니다.

그 후 스파르타에게 패합니다.(국전 431-404) 그 다음 빌립과(B. C 338) 로마에 정복됩니다.(B. C 146) 그러나 정권은 로마가 잡았습니다. 그러나 문화는 역시 아덴이었습니다. 아덴은 신전의 도시입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 곧 언덕위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유명한 파르테논(Parthenon, 처녀라는 뜻)신전이 있습니다. 지금도 뼈대가 남아 있어 세계의 관광객이 찾는 곳입니다. 바울은 아덴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와 실라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온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격분했습니다. 아덴에도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모이는 회당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름 그대로 짖지 못하는 개와 같았습니다. 불 꺼진 등이었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었습니다. 아덴은 영적 암흑도시였습니다. 어떤 이는 “아덴에서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신을 만나기가 쉽다.”고 했습니다. 당시 아덴은 우상의 숫자가 사람 수 보다 많았습니다. 한 사람이 한 신만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필요에 따라 여러 신을 섬겼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에도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구약을 보면 나라의 패망을 곧 우상 때문 이었습니다. 우상숭배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우상숭배는 패망의 길입니다. 우상숭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오늘 “내가 가르쳐 주겠습니다.”라는 말씀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Ⅰ. 우상숭배는 무서운 죄입니다.

우상숭배 그 자체도 큰 죄입니다. 우상숭배는 음란이 가득합니다. 바울은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문학, 예술, 철학의 도시가 이럴 수 있는가? 그 많은 학자들이 무엇을 배웠나? 그 많은 학자들이 무엇을 가르쳤기에 이런가? 유대의 종교는 타락했습니다. 헬라의 문화는 부패했습니다. 로마의 정치도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판단했습니다. 이들이 사는 길은 단 하나였습니다. 복음 뿐 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의 난관이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지금 첫 관문이 헬라의 우상문화였습니다. 그는 회상에서 변론했습니다. 최고의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헬라의 철학자들과 변론을 합니다. 날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바울의 변론을 듣기위해 모여 들었습니다. 거기는 유럽학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잘 아는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자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정도는 쉽게 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소에서 헬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몇 몇 에피큐러스(Epicurus 342-270 B. C)가 창설한 학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에피큐러스 학파는 쾌락주의자입니다. 그들은 신의 존재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초자연적이거나 섭리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과학으로 증명 되는 것만 믿는다는 주장입니다. 그들은 즐기자. 맘껏 즐기자는 주장입니다. 극단의 쾌락주의자 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윤리와 도덕이 타락했습니다.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영혼과 육체가 함께 소멸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향락이 지상목표입니다. 에피큐러스의 향락이란 육적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모든 고통, 육적, 미신적 공포에서 벗어난 심적 안정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애에 와서는 육욕주의로 타락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주전 300년 경 제노(Zeno 340-265 B. C)가 스토아, 포이기레에서 제자들을 교육했기 때문에 스토익(Stoic)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학파는 범신론자들입니다. 영혼의 불멸을 부정했습니다. 세계와 신을 동일시합니다. 사람은 소아(小我)를 버리고 우주의 정신과 합일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운명이 지배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에피큐러스 학파와는 대립입니다. 향락을 부정합니다. 도덕주의를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뛰어난 철학자입니다. 이런 철학자와 당당히 맞섰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의 이론을 압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바울을 말장이라 했습니다. 말장이란 뜻은 새가 곡식을 쪼아 먹듯이 지식을 단편적으로 끌어 모으는 자란 뜻입니다. 바울은 말장이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트집을 잡았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나라 신을 선전한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아덴은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곳곳마다 우상이 가득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복음만 전했습니다. 아덴은 우상천지였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온갖 트집을 잡았습니다. 복음이 가는 데는 이런 방해꾼이 많습니다. 많은 저항을 받게 됩니다. 저항 세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 복음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우상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소개합니다. 아레오바고가 설교합니다. 아레오바고는 아레스(Ares)즉 마스(Mars 화성)의 언덕이란 뜻입니다. 마스는 로마의 군대신입니다. 나중에는 아레오바고는 법정이란 뜻으로 쓰 여 졌습니다. 자연석으로 16계단이 있었습니다. 그 위는 평평한 바위가 있었답니다. 당시 민주정치는 아레오바고 최고회의에서 결정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설교했습니다. 바울은 철학자, 재판관, 귀부인들이 모인 헬라의 초고봉인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설교했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은 떨립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Ⅱ. 알지 못하는 신을 가르쳐 주겠소.

당시 헬라에는 많은 신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것이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을 섬겼습니다. 그 당시 신들이 하도 많아서 알지 못하는 신도 있었습니다. 또 이름도, 성격도 모르는 알지 못하는 신들은 위한 제단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했습니다. 새로운 신을 동경했습니다. 새로운 신이 있으면 그 신을 섬기려고 경쟁을 했습니다. 때에 바울은 “내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을 가르쳐 주마. 그는 바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이미 말씀 드렸지만 당시 스토아철학이 그리스를 지배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범신론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 에피큐러스 파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성을 거부했습니다. 그저 즐기자. 맘껏 즐기자. 쾌락주의자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바울은 지혜가 대단했습니다. 처음부터 전도하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방법이 대단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어떤 변론도 가능한 학자며 철학자 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총 동원했습니다. 바울이란 거물을 선교사로 부르신 뜻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예수는 무식쟁이가 믿는다. 병자들이 믿는다. 약골이가 믿는다. 했을 것입니다. 당시 철학자들이 바울의 학식에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유식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가? 했습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상당히 교만했습니다. 무식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만 예수 믿는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을 만나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습니다. 당시 종교국가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도 있구나. 바울을 만나본 그들은 감탄했습니다. 정말 기막힌 전도방법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무시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랍비나 귀족출신이 아니란 것도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천대받는 어부출신이란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떠돌이였습니다. 유대인, 귀족들은 예수님 무리를 일종의 장돌뱅이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우리가 저를 잘 아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에 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허풍쟁이가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상식을 벗어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신인가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각 사람과 가까이 계시다(27-29)고 합니다. 철학적 신은 관념 속에만 머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Living God)살아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러니 희랍 사람은 신을 금이나 은, 나무, 쇠붙이로 만든 생명 없는 신이었습니다. 이런 신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역사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심판주이십니다.(30-31) 사람은 죽음 다음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가 갑니다. 죽음 다음은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덴의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주이십니다.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맺는 말 :

바울이 아덴에 갔습니다. 그 곳은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 곳은 국민들의 수 보다 우상의 수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스토아 철학과 에피큐러스라는 이상한 철학사상이 사람들을 흐리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일등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에 철학적 지식이 대단한 바울사도가 토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이런 유식한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했습니다. 때에 바울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이라 이야기 했지? 그 알지 못하는 신을 내가 가르쳐주마! 그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다. 그는 우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비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정말 그럴까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 다마리라는 부인) 그 밖에 다른 귀족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우리도 늘 주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4.6.27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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