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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열매를 맺으십시오 (요 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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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수 목사 (강동교회)

우리에게 애송되는 시중에 서정주님의 국화옆에서 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 중에 “한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고 합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니 겨울부터 필요합니다. 단 며칠을 피다 지는 꽃도 그냥 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고 결과를 나타내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후에 많은 땀과 숨이 있어야 합니다.

상반기를 마감지으면서 과연 나에게는 어떤 열매가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나에게 열매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열매맺는 데도 원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우리에게 나타내실 때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게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쉽게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비유가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비유들은 대개 우리들의 삶의 주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열매맺는 원리를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농사를 많이 짓습니다. 포도나무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를 통한 비유의 말씀이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소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포도나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포도나무는 열매외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꽃의 아름다움이 용도가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땔감으로 쓰이는 나무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재목으로 쓰이는 용도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그 포도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나무입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포도열매를 맺을때 의미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포도나무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렘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라고 합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맺듯이 열매맺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매맺지 못했습니다.
이제 신약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포도나무의 본체가 되어주시고 우리가 그 의 가지가 되어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그리고 우리가 그 주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 열매를 저와 여러분이 맺어야 합니다. 이것은 맺어도 그만 안맺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은 열매입니다. 포도나무에서는 포도열매가 맺어집니다. 때가 되면 살아있는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건강한 포도나무는 더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단지 나무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갖고 있는 유기체들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그래서 때가 되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첫째 가지치기의 고통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2절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하시느니라
여기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서 가지치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 가지치기를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농부입니다. 포도나무를 경작하는 농부는 그 나무가 더욱 과일을 맺기 위해서 반드시 가지치기를 합니다. 가지치기를 하면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면 더 생명이 역사합니다.

오늘 우리의 농부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열매를 기대하시면서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의 가지치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바로 시련의 징계를 이용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를 사랑만 하시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시는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징계의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시련의 고난입니다. 그 시련은 당시에는 힘들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왜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열매 때문입니다.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할 자에게는 의와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합니다.
한해의 상반기를 지나면서 여러분에게 있는 고난은 어떤 것입니까? 때로는 물질적인 고난을 당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인간관계의 고난을 경험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질병의 고난을 경험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농부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 아십니다.우리에게 필요해서 고난의 가지치기를 하시면서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가지치기가 심할 수록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가지치기의 칼을 깊이 댈수록 더 생명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들 때는 탄소라고 하는 숯을 1700도의 고열 로 가열한 뒤에 5만기압의 무게로 압축시킵니다. 5만 기압이라고 하면 도토리만한 물질을 집채만한 쇳덩어리로누르는 것과 같습니 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 다이아몬드가 생겨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이당하는 믿음의 고난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고난의 극한 상황 에서 믿음으로 견디면 다이아몬드 보다 더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고난을 피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 고난을 어떻게 맞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만약에 포도나무 가지가 농부가 가지치기를 할때 그것을 피하거나 거부한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하나님의 징계를 받을때 우리가 꼭 반응해야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솔직하고 분명한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으로 그를 치십니다.사랑하지 않으면 무관심합니다. 때로 우리는 이 세상 악한 불신자들이 잘 되는데도 아무런 징계를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왜 하나님은 저런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실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관심한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없이 스스로 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실때에 당신은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소홀히 여기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면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의 변화의 열매입니다.

김익두 목사는 술을 많이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30잔은 거뜬히 마실 수 있는 술꾼이었습니다. 술이 취하면 특히 예수쟁이를 괴롭히는 것이 특기였습니다. 평양의 사람들도 김익두라하면 머리를 흔들 지경입니다. 1900년 선교사 스왈른 목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는 말 못하고 슬금 슬금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두 달 동안 입에 술을 대지 않았습니다. 옛날 친구들과 길가던 중 친구들이 술을 권했습니다. 약을 먹는 중이라 술을 못먹는 다고 했습니다. 천하의 술꾼이 술을 못먹겠다니 중병이 걸린줄 알고 물었습니다. 무슨 병에 무슨 약을 먹고 있느냐고 물었지요. 신약과 구약을 먹는다고 김익두가 대답을 했습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은 변화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그 사랑의 징계를 잘 받으시고 나의 삶을 회개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환난을 통해서 더욱 주님 앞에 인격이 연단되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의 징계를 통해서 더 성숙한 사람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속에 어떤 주님의 가지치기의 고난도 잘 믿음으로 이기시고 열매맺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께 먼저 붙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본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는 본체되신 주님께 붙어야 합니다. 가지가 본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이 전달되듯이 우리가 주님 안에 들어갈 때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내가 주님 안에 들어가 마치 가지가 본체에 붙어있듯이 하나되는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먼저 100%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선택으로 우리는 주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니라“
구약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들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오신 주님도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선택하여 자기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선택하여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선택할 때 어떻게 선택할까요?
전적으로 은혜로 선택하십니다. 어떤 능력을 보지 않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 선행을 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자기 사람들을 선택하십니다. 왜 그렇게 무조건적인 은혜로 선택할까요? 우리로 구원받은 후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못한 일이 아닌가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서 이 부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때 선택의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토기는 밥그릇으로 만듭니다. 어떤 것은 물그릇으로 만듭니다. 어떤 것은 꽃병으로 만듭니다.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이런 저런 용도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토기의 입장에서는 어떤 용도로 만들어지기를 원할까요?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고 사랑하는 꽃병으로 만들어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리는 오직 토기장이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빚어가시는 주인이십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과연 누가 선택받은 백성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선택받은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가 되면 그 마음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나의 입술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면서 그분을 인격적으로 믿고 경배합니다. 이시간 저와 여러분이 내가 선택받은 주님의 백성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오지 믿음으로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구원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해보십시오. “예수님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영접합니다”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자마다 선택받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음으로 고백하였지만 우리에게 때때로 의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지,천국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내 마음에서 확신이 일어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3년씩이나 훈련받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연약한 인격과 부족한 믿음의 불완전성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과정은 누구나 겪습니다. 그 의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어떤 감동이 없을때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람들이 초신자들입니다. 어떻게 마음에 구원의 확신을 갖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마음에 믿음의 확신에 서 있을 수 있습니까? 저의 경험으로는 중요한 것이 주님의 약속을 강하게 붙드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고 내가 선택받은 약속을 주는 말씀을 마음에 붙들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살고있는 집이 내 집인 증거는 집문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차가 내것인 이유는 차등록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지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성자라로 불리우는 어거스틴이 있습니다. 그가 처음 믿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행위에 있어서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하게 살려고 했지만 죄짓고, 깨끗하게 살려고 했지만 더러워지는 갈등과 고민에 빠졌습니다. "주여 언제까지 입니까? 이 모순과 갈등의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오늘 입니까? 내일입니까? 언제부터 바르게 살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깨끗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나는 구제불능입니까?어느날, 그는 정원을 거닐면서도 계속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린아이의 음성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Take and Read' --'취하여 읽으라' 그는 당장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성경을 폈는데, 그곳이 바로 로마서13장 11절 이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본문을 읽고, 또 읽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는 가운데서 엄청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게 됩니다."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아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 말씀이 확실하게 그 가슴을 때렸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큰 은혜를 받고, 옛날의 방탕했던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따르고, 이 말씀의 능력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성 어거스틴이라고 불렀습니다. 방탕아였던 그가 성자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그리스도 예수님은 나의 구주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당신은 이런 신앙고백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확신하십시오. 여러분 속에 확신할 때 주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 안에 지속적으로 거해야 합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 포도나무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도나무 본체에 거해야 합니다.만일 가지가 본체에서 짤리어 나가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는 본체와 함께 동거해야 합니다. 여기 “거한다”는 말이 15장에 11번이나 소개되고 있습니다.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지속적으로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나를 둘러싼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이 신앙을 지속하는 것 이 신앙을 지켜나가는 것이 바로 거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거하다라는 의미를 가정 속에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가정 속에서 동거합니다. 지속적으로 서로 교제하고 나누면서 서로 동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집에서 삶은 사는데 서로 교제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저녁 잘때에 그냥 얼굴 한번 보고 합니다. 서로 대화가 없고 서로 교제가 없이 그냥 산다고 할때 이런 부부는 어떻게 될까요? 이것을 우리는 정서적인 이혼이라고 합니다. 법적으로는 부부이지만 더 이상 부부가 아닙니다. 거하다라는 말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함께 거하는 곳에는 사로 교제하면서 서로 순종하면서 서로 나누면서 꿈틀대는 생명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 속에 왜 믿음의 열매가 없습니까?
구원받았고 분명히 나름대로 믿음 생활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인격 속에 삶 속에 나는 변화가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 문제가 바로 바로 이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마음에 영접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마음에 나의 삶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면서 살 때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철저하게 자기를 주님께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고난도 순종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죽음도 순종했습니다. 한번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한번 순종하여서 맺지 못합니다. 지속적으로 순종하셔야 합니다.

이 지속적인 신앙의 순종이 지금 당신에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아마도 많은 경우에 순종의 어려움을 경험하실 것입니다.순종해야 한다는 것 다 압니다.그런데 10% 순종하고 마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면 50% 순종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100%의 순종을 원하십니다.
샘 슈메이커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께 10퍼 센트 순종하면 10퍼센트의 행복을, 50퍼센트 순종하면 50퍼센트의 행 복을, 100퍼센트 순종하면 100퍼센 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우 리에게 불리하거나 손해가 될성싶 으면 순종하지 않고 유리하면 순종 하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 다. 이런 변명, 저런 변명을 늘어놓 으면서 자꾸순종하기를 지체하면 그것도 순종이 아닙니다. 이런 멋 진 말이 있습니다. "지연된 순종은 불순종의 동생이다."우리가 이런 말을 많이 듣지 않습니까? 순종이 라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번역 선교사 타우센트라는 분의 전기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타우센트가 남미에서 전도를 하면서 한 원주민 젊은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그 젊은이는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 젊은이가 결국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사역을 하던 이 전도자 청년이 어느날 갑자기 타우센트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전 사표를 내겠습니다.여기 전도자 사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수년간 선교 열매였는데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타우센트 선교사님이 물었습니다. “왜 사표를 내려고 하는가?”
“전도하기가 너무 너무 힘들어서요.저는 전도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이제 사람들의 욕설과 고함소리와 비난과 비웃음들을 모든 것을 더 이상 견딜수가 없어요.그리고 사실 제가 아쉬운 것이 뭐가 있어요?”
타투센트 선교나님은 이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자네 예수님을 영접하고나서 얼마후에 나에게 찾아와 ‘주님이 복음을 전하도록 저를 부르십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표를 받을 수 없네.그 사표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라네.자네는 지금 내게 말한 그대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 사표를 내게”
그러자 이 청년은 선교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주님께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안받으실 것같은데요”
그러자 선교사님이 고함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사표를 받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아직도 자네를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젊은이는 눈빛이 빛나면서 말을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맞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복음 전도의 길을 순종하면서 걸어갔다고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열매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지난 6월한달동안 열매를 맺는 우리의 삶을 방해하는 몇가지 요인들을 보았습니다.무엇이 우리의 순종을 가로막습니까? 강퍅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낙심을 버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분노를 버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 마음의 순종부터 우리가 해야 합니다.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향하여 순종하여 갈 때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삶 속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당신이 지금 주님 안에 거하시면서 주님의 뜻을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순종의 결과 우리에게 맺어지는 열매가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사랑의 열매입니다. 평안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기쁨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 속에서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가는 삶이 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나가는 말) 우리 주님처럼 사랑의 삶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한해의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지금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나의 열매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열매맺는 사람이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됩니다.열매를 맺으시는 삶으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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