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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땅히 해야할 일 (요일 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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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휘근 목사 (신시내티교회)

흔히 요한복은 17장을 가리켜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합니다. 이제 십자가를 목전에 두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오고오는 시대의 교회를 위해여 기도하신 기도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1절)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되지 못하고 다투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고 감싸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마가복음 3장 17절을 보면 주님의 제자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에게는 '보아너게'라는 별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아너게'라는 말의 뜻은 우뢰의 아들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주님의 제자 공동체 안에서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급한 성격, 직선적인 성격때문에 적지 아니한 문제가 있엇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요한이 그 누구보다도 사랑의 교훈을 많이 말씀한 것을 볼때, 그는 날이 갈수록 급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다 버리고 마침내 사랑의 사도가 되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요한 1서는 어느 서신보다도 사랑을 강조한 책입니다. 이 서신의 제자인 사도 요한은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을 실천했으며,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그는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라는 말씀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말세에는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날이 갈수록 진정한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볼 수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물론, 교회 안에서도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분쟁에 휘말린 교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되기를 원하시며,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다툼을 일삼는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근심하시겠습니까?

이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일, 곧 서로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이 메마른 이 세상속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있어야 하겠습니다.

I.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0-11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였습니다.

'마땅하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함은 하나님꼐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빚진 사람이 빚을 갚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갚아도 되고, 안갚아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꼐로부터 큰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에 반드시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꼐 진 빚은 일만 달란트나 되고, 우리 형제나 자매가 우리에게 진 빚은 일백 데나리온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나 자매가 우리에게 진 빚은 그게 무엇이든지간에 일백 데나리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생각하면 형제나 자매가 우리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작고 가벼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고 있는 사랑의 빚은 생각지 아니하고, 형제나 자매가 내게 진 빚만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형제나 자매를 사랑치 못하고, 그들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이러하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면 좋지만, 실천하지 못해도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같은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은 남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어린 소년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살고 있는 곳까지 가려면 긴 여행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 소년은 초콜릿과 음료수를 챙겨서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났습니다. 사거리 길을 세개쯤 지났을 때 소년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비둘기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소년은 잠시 쉬어갈 마음으로 그 할머니 곁에 앉았습니다. 배낭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려다 말고 할머니가 배고파 보였기 때문에 초콜릿을 꺼내서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초콜릿을 받아든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소년은 다시 음료수도 드렸습니다.그랬더니 할머니는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소년은 날이 저물기까지 계속 벤치에 앉아서 할머니와 미소를 주고 받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배낭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던 소년은 문득 머물러 서서 할머니에게로 달려와서 할머니를 꼭 껴안아 주고 갔습니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소년이 집에 돌아오자 소년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을 본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좋아보이니?'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 엄마도 아세요?  하나님은 내가 지금까지 본 분중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가졌다고요.'  한편 그 할머니도 아주 행복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 어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도 행복한 얼굴로 오신 거에요? '  그러자 할머니는 ' 얘야 난 오늘 공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초콜릿을 먹었단다.'  그 할머니에게 초콜릿과 음료수를 드린 소년은 소년대로 행복했고,  소년의 사랑을 받은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행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을 실천함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진 사랑의 큰 빚을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남이 알 수 없는 큰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7-8절을 보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다.' 하셨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있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알 수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뿐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사랑 대신 미움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할 뿐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도 없습니다.

흔히 자식을 낳아서 길러 보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 수없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자기 자식을 낳아서 길러 보아야 '우리 부모님도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느라 이처럼 큰 고생을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을 바로 알 뿐아니라,  부모님을 온전히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 마음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면 바로 들려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마음에 사랑이 가득차 있을 때 비로소 바로 들려오게 됩니다. 꼭같은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은혜받는 사람과 은혜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서 미움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드린 제물은 열납하셨습니다만, 가인이 드린 것은 열납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안색이 변할 정도로 아벨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하고 책망하시면서, '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크게 미워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마침내 동생 아벨을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마음속에 동생을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차니 하나님께서 친히 경고하셨음에도 불고하고 그 말씀을 바로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차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바로 하고자 하면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몰아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쳐는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일을 할 수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보상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그의 마음에는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생애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를 바로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은혜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하나님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은 보면 '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운데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함께 계시면서 사랑을 실천할 수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요한 1서 4장 16절을 보면  '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먼저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43-47절을 보면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을 볼 수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볼 수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서로 사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형제를 도왔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애찬을 나누면서 서로를 돌아보았습니다.

이같이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역사하셨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섰고, 각색 병자가 예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서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계시면서 큰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의 교회안에 계시면서 역사하시고, 서로 사랑하는 이들의 가정에 거하시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서로 싸우고 다투는 곳에는 함께 하지 아니하ㅏ시고, 그 은혜도 떠나게 됩니다.

율법의 해석서격인 미드라쉬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모세가 구제에 관하여 교훈한 후에 말씀을 듣던 사람들과 일문일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 구제할 사람은 많고 돈은 한정되어 있다면 누구부터 구제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먼저 가족, 그리고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 순서로 해야한다'  고 대답했습니다.    또 묻기를 ' 가난한 사람이 다시와도 구제해야 합니까'  하자,  '언제라도 오는 사람에게 도와주기를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묻기를  '내 소득 중에서 얼마를 내놓아야 적당합니까'  하자, '10분의 1이 적당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묻기를  ' 만일 구제할 비용을 다 썼는데 또 오면 빈손으로 돌려보내도 됩니까' 하자,  '돈이 없으면 친절을 주어야 합니다. 사실 친절은 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화목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없음이 문제입니다.  그같은 마음만 있다면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하였습니다.(엡 5:2)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계시면서 은혜주시고,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하나님꼐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는 모두 사랑의 큰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하나님은 사랑을 행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오직 ㅅ하랑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큰 은혜와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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