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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뜻에 이끌리는 삶 (마 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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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이런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정을 따라 사는 이들입니다.  인정에 의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동정합니다.  약자 동정이라는 말이 통합니다.  정의 사람들은 쉽게 좋아하고 쉽게 미워합니다.  또 쉽게 화를 냅니다.  오해를 잘합니다.  일방적입니다.  큰일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는 것 때문에 다투고 싸웁니다.  바로 가인 같은 사람입니다.  동생이 잘되는 일이기에 좋아했어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동생 때문에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분노하였고 이후에 동생을 죽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감정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도 상처를 입고 다른 이들에게도 상처를 입힙니다.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적도 많습니다.  감정을 따라 사는 이들이 이후에는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04년 3월 12일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결의한 게 감정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유도하기도 하였구요.  사과하였으면 안 했을 것인데 사과하지 아니하여 탄핵안을 소추했다.  이것이 감정입니다.  사과와 관계없이 일을 했어야 했습니다.)  감정에 의한 삶은 위험합니다.

둘째, 이(이권)에 의하여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아니합니다.  이들은 속된 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입니다.  힘들면 피하고 자기에게 덕이 되면 머리를 듭니다.  작은 일도 자기 공로라고 내세웁니다.  항상 자기 의무는 생각하지 않고 권리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권에 끌려 사는 사람, 두 사람 이상 같이 있으면 문제가 계속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항상 자기가 먼저 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나 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됩니다. 남을 위하여는 배려 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이 대접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노사갈등이 무엇입니까? 사는 대로 손해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노는 우리는 피해자다.  우리도 이익을 얻자라는 주장입니다.  서로가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계속 분쟁입니다.

셋째, 의를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권을 포기하고 의를 위해 삽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항상 정당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 융합하거나 적당하게 살지 아니 합니다.  공자의 말대로 사람들이 의를 모르고 이만 생각하면 사회는 위험에 빠집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이만 챙기려고 합니다.  지도자도 그러합니다.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의를 따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의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도리입니다.  대의 명분이며 남에 대하여 배려함입니다.  사람에 대하여 원만하고 모든 이들에게 희망입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문제가 아닙니다.  의를 따라 사는 이가 적다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의가 없는 나라 의가 없는 지도자가 사는데 무슨 희망이냐는 것입니다.  의를 이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의를 따라 산다는 것이 귀한 일입니다.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을 인물이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따라 살아야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축복하시기 전에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변화입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기 전에 이름을 바꿔 주셨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신다음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큰아버지가 열국의 아버지가 된 이후에 아버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울이라는 한 시대에 주께서 귀하게 사용하셨던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원래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뜻은 큰 자라는 말입니다.  큰 자를 사용하시는 게 아니라 바울 적은 자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은행의 이미지 광고 문구에서 “변화가 희망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제 화려하였던 지식이 오늘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하고 순간 순간 업그레이드할 준비를 하지 못하면 살아 남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바움이라는 이가 쓴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960년대까지 스위스 시계가 세계 시계시장의 90% 까지 지배했답니다.  무명의 두 사람의 시계 기술자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시계를 발명해 냈습니다.  신기술을 보급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건의했으나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좌절을 거듭한 이들은 자신들의 신기술을 미국의 민스트 룸먼트와 일본의 세이코사에 팔았습니다.  20년이 지난 이후 그 유명한 스위스시계는 세계 시장에서 불과 8%만을 점유하게 되었고 82%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무시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나요? 먼저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아무리 겉모양을 바꾸고 거룩한 것 같이 해도 가치관이 달라지지 아니하니까 세상 사람과 똑 같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울이 바울 된 것 이름만 바뀐 게 아닙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명예도 물질도 분토같이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자랑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뿐이었습니다.  변하지 아니하면 죽는다는 말을 합니다.  교회의 가치관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을 흔히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멋있게 보이는데 삶의 스타일이 달라지면 매력적이고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스타일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삽시다.

본문 마태복음 7:21-23절을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1)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여 주여는 무엇입니까?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교회 안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2)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미래를 말하고 성경을 교훈 하는 사람입니다.
3)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4)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받다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내게서 떠나가라 하십니다.  왜 주의 뜻대로 살지 않아서 그럽니다.  신앙인이라면 우선적으로 실천하고 살아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주의 뜻을 따라 살자.  주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면 그것이 불법입니다.  주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으로 사는 게 주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명예로 삽니다.  명예에 오점을 남기게 되면 참지 못합니다.  자살도 불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믿음이란 교회에 잘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이 나의 삶 속에 주님이 되어 내 안에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나 라고 하는 집이 마음입니다.  그 집에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집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분이 삶의 주인입니다.  그분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고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 것을 그분이 책임져 주십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분에게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믿기에 맡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다는 이들이 예수에게 맡기지 못하는 것은 잘못 믿는 것입니다.  100% 온전히 맡길 수 있다면 이는 믿음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이들은 자신을 남에게 노출시키려 하지 아니 합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도 입원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약점도 아닙니다.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알고 보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약점이 많고요, 외롭습니다.  믿음의 사람일수록 진실합니다.  속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잘 부탁을 할 줄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하고 예수님께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맡겼기에 조금도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 하박국서를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님 왜 악인이 잘됩니까? 왜 의인에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때 하나님의 대답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잠깐이다.  악인이 잘되는 것도 잠깐이고 의인이 고난 당하는 것도 잠깐이다.  기다려라 그리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답입니다.(합 2:1~4)

근자에 너무 힘들다고 말합니다.  쓰는 용어가 IMF 때보다 더 어렵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에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힘들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 많기에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확신이 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치우치지 아니합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주관이 분명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있고 잘못된 것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고 좋은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사수합니다.  이런 이들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둘째, 주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거룩한 삶을 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근자에 개혁을 말하는 이들이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느헤미야서를 보면 느헤미야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이후에 유다를 변화시킨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조국을 위기에서 일으킨 운동은 네 가지 ‘R’ 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에 이 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 R’ 은 'Rebuilding'입니다.  무너진 성을 재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도덕성과 정직성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2 R’은 ‘Restoration’ 와해되어 가는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역갈등보다 더 무서운게 이념갈등, 세대갈등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입니다.  한민족으로 시련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우리 민족입니다.
‘3 R’ 은 ‘Revival’입니다.  꺼져 가는 신앙심을 다시 일으키는 영적 부흥운동입니다.
‘4 R’은 Reform입니다.  개혁입니다.  조직이나 코드를 찾는 개혁이 아닙니다.  근본 마음에서부터 새로워지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이 아닙니다.  사람이 달라져야 개혁입니다.  부흥도, 개혁도, 회복도 한 마디로 말하면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구별이 거룩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레 11:44)  너 성결키 위해 늘 기도하며 주안에 있어 늘 성경보고 기도하고 성경 보면서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의 거룩한 뜻입니다.  구별입니다.  날짜를 구별하고 삽니다.  일주일에 5일을 일합니다.  본래는 6일을 일하고 하루는 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5일은 일하고 하루는 쉬고 하루는 거룩하게 지켜라 그러십니다.  날짜를 구분하고 살아야 합니다.  물질도 구별되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수입을 다 내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구별되게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다.  물질생활에 거룩입니다.

세상과도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습관대로 살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풍속대로 살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별되게 살아가라고 출애굽 시킨 것입니다.  삶에 목적지가 다릅니다.  가나안입니다.  우리는 천국이 목표입니다.
거룩한 삶을 위하여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속죄함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면서 구별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고 다짐 또 다짐하셔야 합니다.


셋째,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니라” 하였습니다.  주의 뜻대로 산다는 게 어렵고 경건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기뻐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한 말입니다.  사람이 좋은 환경과 평안한 가운데서도 원망하고 괴롭게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좋아할 만한 조건이 없어도 기뻐하면서 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항상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기뻐하는 시간이 있으신가요? 그렇지 못하다면 주의 뜻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기쁨의 삶을 살고 있다면 기뻐할 만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죄악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너희가 귀신이 물러가고 병 고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 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백성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미래가 분명하게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우리는 순간마다 주께서 도와주십니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해보면 모든 게 주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됩니다.  앞날도 지켜주실 겁니다.  그러니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기쁨이 있으면 다른 이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언제 기뻐할 수 있습니까? 감사할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기쁨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되어진 사건이 좋게 되었을 때 감사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일이 있어도 결과는 더 좋게 하신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세요.  그러면 기쁨이 생깁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렵다 힘들다 라고 말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래도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에너지입니다.  힘입니다.  사람에게 힘이 없으면 설 수 없습니다.  걷지도 못합니다.  기쁨이 힘입니다.  느헤미야 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힘, 무슨 힘입니까? 환란과 핍박을 이기는 힘이 기쁨입니다.  고난을 이기는 힘입니다.  시련을 극복하게 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기뻐합시다.  항상 기뻐합시다.  기쁨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슬프고 낙심하면서 삽니까? 기쁘게 삽시다.  기뻐하면서 살려면 순간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사랑과 희락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기뻐하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에서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남편을 맞는 아내가 기쁘게 맞이하고 아내를 대하는 남편이 기쁨으로 대해 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집안이 천국입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간에 기쁨으로 대합시다.  웃으면서 만납니다.  교회가 천국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릅니다.  기분에 의하여 사는 게 아닙니다.  감정대로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사는 복된 성도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주님 뜻입니다.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 모두가 믿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기뻐하면서 삽시다.  얼마나 긴 세월을 산다고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맙시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기쁘고 기쁘도다.  노래하면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귀하신 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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