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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마음은 전쟁이라! (시 5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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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동광교회)

# 1

지금도 6월이면 이 땅 모든 백성들의 마음속에 메아리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배웠을 때, 저와 우리 반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나중에 커서 꼭 그렇게 하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이 노래를 부르며 울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배운 이 노래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평화 대신 전쟁을 심어놓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쫓고 쫓기는 원수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쳐서 무찔러,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의 전의를 불태우곤 했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를 한번 읽어 드립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했던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도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 내리 내나라 내 겨레“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발발한지 54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의 상처는 다 아물지 못했습니다. 내나라 내 겨레는 여전히 둘로 동강이 난 채이며, 그란 만큼 여기 남쪽에 사는 백성들의 마음도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 쪽에선 이제야말로 원수를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여전히 소리 높여 외치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선 이젠 원수가 아니라 동족이니만큼 공생 공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그나마 반쪽이 또 둘로 나누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안타깝고 초라하게 만드는 사실은, 내 나라 내 겨레의 문제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해결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우리는 우리의 문제, 곧 이 땅의 평화와 안정의 문제를 우리 손으로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6자 회담에 의지해야 합니다. 슬퍼도 할 수 없고, 울분을 터뜨린다 해도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그런 현실입니다. 물론 작금의 6자 회담은 무척 중요합니다. 필요에 의해선 우리가 6자 회담을 소집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회담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그런 회담이 되도록 전심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과 상처들입니다. 특히 우리 민족의 마음에 새겨진 전쟁의 상처들은 아직 다 아물지 못했습니다. 하여 우리의 마음속은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이 땅엔 아직도 천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들이 눈물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살아 있는 가족을 지척에 두고, 생사도 모른 채 50년을 살아야 하는 저들의 마음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또한 상기하자 6.25를 외치며 시청 앞에서 북한 인공기를 불태우는 성난 무리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군사법상 정전 상태이어서만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마음에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은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우리나라의 모 일간지는 6.25전쟁 54돌을 맞아 흥미 있는 여론 조사를 하였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우리나라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20, 30대 소위 디지털 세대의 41%가, 역시 북한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상대라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목되는 점은 북한 다음으로 위협이 된다고 지목된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입니다. 디지털 세대의 무려 32%가 북한 보다 오히려 미국이 우리나라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대라고 지목한 것입니다.

물론 저들 젊은 세대의 생각은 50대 이상의 6.25 세대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50대 이상의 6.25세대는, 67%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로 먼저 북한을 지목한 반면, 단 8%만이 미국을 위협이 되는 나라라고 답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조사 결과를 놓고서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그 중간 세대인 광주항쟁 세대, 곧 40대가 가운데서 전체적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40대는 51%가 북한을, 20%가 미국을 안보 위협 국가로 지목했기 때문입니다.

더욱 감사한 일은 이러한 차이가 세대간 갈등이나 전쟁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자체 전망치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같은 조사 결과에서 50대의 57%는 광주항쟁 세대인 40대의 역사적 기여를 인정한다고 답변했는가 하면, 나머지 20, 30, 40대 젊은 세대의 5분의 4 이상이 6.25 세대의 고생을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답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2-30대의 67%, 40대의 54%, 50대의 47%가 세대간 갈등은 해소될 수 있다고 답변했기 때문입니다.

# 2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본문, 시편 55편은 다윗의 탄식 시입니다. 평생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던 다윗인데, 어인 일인지, 왕 중의 왕 다윗이, 지금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식하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55장 1절을 보니, 다윗이 도무지 다윗답지 않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제발 숨지 말아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 이 탄식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압살롬의 쿠데타입니다. 믿었던 아들이 아버지 다윗의 왕권을 노리고 칼을 빼어 들었던 것입니다. 칼을 들고 덤비던 아들의 얼굴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아예 몸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입에선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거기에 다윗을 거꾸러뜨렸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그와 평생을 동고동락하였던 친구인 아히도벨 마저 아들의 반역에 가담한 것입니다. 아들과 친구의 배신,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조여 오는 죽음의 그림자, 하여 지금 천하의 다윗이 하나님을 향하여 절규하며 탄식을 토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4절에 보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한다고 고백합니다. 내 속의 마음까지 심히 아픈 현실 속에서, 5절에 보니,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황공함, 곧 크나큰 공포가 나를 덮었다고 고백합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 대목을, “사시나무 떨 듯이 부들부들 떨립니다!”라고 풀어줍니다. 사망의 공포 앞에 떨고 있는 다윗의 모습이 정말 초라합니다.

하여 비탄에 빠진 다윗, 이렇게 자기 마음을 토로합니다. / 55:13-14 / (읽기) / 다윗의 말입니다. 아니, 그가 곧 너였니? 나를 죽이려고 덤비는 원수가 바로 너였단 말이냐? 넌 나의 동무잖아, 우린 친구잖아, 우리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였잖아, 하나님의 집에서 같이 예배드렸잖아, 그런데, 그가 곧 너였단 말이지? 나의 동무, 나의 가까운 친우가 지금 나를 죽이려 한단 말이지? 그가 곧 너로구나!

그랬습니다. 차라리 원수이기를 바랐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칼을 빼든 상대가 정말 원수였다면, 12절에서 고백한 대로, 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피하여 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아들이요 친구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정말 죽기 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한 다윗입니다. 결국 무엇보다 다윗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해서 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 55:21 / (읽기) / 거기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전쟁이요, 실상은 뽑힌 칼이라! 그동안 우유 기름 바른 듯 입에 발린 소리만 하던 너희들, 기름을 칠한 듯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던 너희들, 알고 보니 마음은 전쟁이요 살상은 뽑힌 칼이었구나, 이런 나쁜 사람들, 하지만 이미 때늦은 탄식입니다.

그랬습니다.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아들과 친구의 마음에 전쟁만 가득하니, 결국 아비와 친구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던 것입니다. 아니, 마음이 전쟁인 인생, 그 자체로 뽑힌 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전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이 전쟁인 사람, 옆 사람에게 상처만 줍니다. 내 마음이 전쟁이니, 누굴 만나도 싸움만 겁니다. 내 마음이 전쟁이니, 그의 모든 언행이 비수가 되어 옆 사람을 찌릅니다. 그런 사람이 머무는 가정, 날마다 3차 세계대전 중입니다. 왜? 요만한 시비 거리만 보여도 전쟁을 선포하고 싸우려 덤비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무릇 지킬 만한 것 가운데 먼저 마음을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신 것입니다. 일단 마음이 전쟁이면, 그 인생 전체가 뽑힌 칼이 되기 때문입니다.

# 3

그렇습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육체들만의 전쟁이 아니라 마음들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의 목숨이 소중합니다.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해서 이미 십계명을 주시면서, 살인하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인은 어떤 명목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한 사람의 목숨을 천하 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죽는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그로 인하여 수많은 백성들의 마음이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백성의 마음이 전쟁에 휘말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앞에서 보았듯이, 그 마음이 전쟁인 사람, 결국 전쟁만 일으킨다는 데 있습니다. 전쟁으로 가득한 마음, 전쟁 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지금 상대가 자기 아들이요 친구인데, 그의 마음이 일단 전쟁에 휘말리자, 그 역시 상대를 향하여 저주를 퍼붓기 시작합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봅니다. / 55:15 / (읽기) / 무슨 뜻입니까? 저들을 산 채로 잡아가 달라는 겁니다. 저들을 산 채로 잡아가 주시되 음부로 데려가 달라는 겁니다. 음부가 어떤 곳입니까? 영원히 꺼지지 않은 불 속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정상적인 아비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아들 만큼은 음부로 데려가지 마시라고 애원해야 하련만, 친구 요나단의 우정을 기억하는 다윗이라면, 또 다른 내 친구만은 건져 달라고 애원해야 마땅하련만, 그러나 지금 다윗은 바로 자기 아들과 친구를 음부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산 채로 말입니다. 다윗의 기도 맞습니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의 마음이 전쟁 중이기 때문입니다.

한 구절만 더 보실까요? / 55:23 / (읽기) / 파멸의 웅덩이에 쳐 넣어 주세요, 주님! 저 나쁜 놈들이 피를 흘리게 해 주세요 주님! 저 가증한 것들, 천수의 절반도 살지 못하게 해 주세요. 지금 빨리 죽게 해 주세요, 주님! 아니 이것이 아들을 향한 아비의 기도 맞습니까? 친구를 향한 친구의 기도 맞습니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의 마음도 지금 전쟁 중이기 때문입니다.

꼭 우리 남과 북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남과 북은, 전대미문의 동족상잔, 곧 6.25 전쟁을 치른 이후, 아비와 친구가 원수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어제의 가족이 오늘의 원수가 되었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원수 된 채로 살아온 지난 54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마음속은 계속 전쟁 중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언사로 서로를 비난했었습니다. 우린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악질적인 언사로 서로를 저주했었습니다. 산 채로 음부로 데려가 달라는 다윗의 탄원이 바로 우리의 탄원이었습니다. 저들을 파멸의 웅덩이에 쳐 넣어주시고, 우리가 아닌 저들이 피를 보게 해 주시고, 저들은 절반도 살지 못하고 죽게 만들어 달라고 저주에 저주를 더하며 살아온 세월입니다. 그랬습니다. 우리 민족의 마음은 전쟁 중이었습니다. 아니, 슬프게도 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원죄요 비극입니다.

# 4

사랑하는 여러분, 일단 내 마음이 전쟁에 휘말리면 제일 먼저 생기는 현상이 그 곳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던 아들과 친구의 배신으로 인하여 전쟁에 휘말리게 되면, 정말 모든 것이 싫어집니다. 벗어나고만 싶습니다. 하루 살기가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의 호소를 들어봅니다. / 55:6-7 / (읽기) / 지금 다윗이 비둘기 날개라도 달아달라고 애원합니다. 다윗이라면 독수리 날개쯤은 되어야지, 겨우 비둘기 날개라니요, 그러나 그만큼 그가 간절하고 다급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요, 더욱 놀라운 점은 지금 다윗이 비둘기 날개라도 달고 가고 싶은 곳이 광야라는 점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굶주린 맹수들이 있고, 독초가 무성하며, 전갈과 독사가 우글거리는 곳, 낮에는 태양과 싸워야 하고, 밤에는 달빛과 싸워야 하는 곳, 해서 모두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날개만 있다면 저 멀리 광야로 날아가서 거기서 편히 쉬겠다고 합니다. 분명 거기서 편히 쉬겠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기를 배신한 사람들과 사느니 광야에서 전갈과 독사를 벗 삼아 사는 쪽이 낫다는 뜻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전쟁에 휘말린 채로 이렇게 탄식하고 저주만을 퍼부으며 사느니, 너른 광야에서 태양과 달을 벗 삼아 사는 쪽을 택하겠다는 겁니다. 사악하고 가증스러운 이 악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사는 것 보다야 광야에서 사는 쪽이 훨씬 편하겠다는 것입니다.

9절에 보니, 예루살렘 성에 강포와 분쟁만이 넘실거린다고 합니다. 11절에 보니, 예루살렘 성 거리엔 악독과 압박과 궤사가 떠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가 어딘데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인데요, 그런데 강포와 분쟁과 악독과 압박과 궤사만이 판을 치다니, 해서 이제 더 이상 여기서 살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도 아들과 친구가 나를 죽이려 하는 판에 이제 신물이 난다는 겁니다. 그러니 비둘기 날개라도 달아달라는 겁니다. 저기 광야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겁니다.

# 5

그러나 역시 다윗은 다윗이었습니다. 한바탕 전쟁이 휘몰고 지나간 다음, 그는 다시 마음을 진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의 마지막 기도를 셋으로 나누어 들으며 오늘의 말씀 마당을 닫도록 하겠습니다.

1) 55:16 / (읽기) /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겠다고 고백합니다. 23절의 맨 마지막 고백도 마찬가지, 나는 주를 의지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랬습니다. 다윗은 부르짖어 간구하면 나를 그 어떤 역경과 고난에서도 구원하여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저주 대신 기도하시고, 탄식 대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나를 반드시 구원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여 꼭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2) 55:17-18 / (읽기) / 거기 근심하며 탄식한다는 표현, 나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토해 내고 기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한다고 하는군요. 저들의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고백은 18절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전쟁 중에서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해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하루에 세 번 시간을 정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일이 쉽지 않지요. 제가 좋은 길을 알려 드립니다. 하루에 단 한 번, 새벽에 제단에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반드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전쟁 중에 구속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18절 맨 끝을 보니, 구속하사 평안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평안 동그라미, 별표 다섯 개, 여러분, 평안의 복이 복 중의 복입니다. 세상을 다 가져도 평안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가 왕이었지만, 마음에 평안 대신 전쟁이 가득하자, 그 날로 지옥이었습니다. 기도하시어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만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내 마음에 가득한 평안으로 내 가정을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가득한 평안으로 대한민국을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평안이 충만한 가정되시기 바랍니다.>

3) 55:22 / (읽기) / 너의 짐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 하십니다. 매우 중요한 고백입니다. 사실, 이 고백은 다윗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보게 다윗, 모든 문제를 왜 자네가 해결하려고 하는가? 여호와 하나님께 모두 맡겨 버리게나,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그렇게 하게나!”

여러분, 비둘기 날개가 문제가 아닙니다. 비둘기 날개 달고 날고 또 날아가 보아야 광야일 뿐입니다. 광야는 광야입니다. 광야는 복지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광야에서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가나안 복지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광야로 도망가려는 다윗을 돌려 세워,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려보내신 것입니다. 여기 예루살렘을 다시 천국으로 바꾸어 내라는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땅, 이 민족, 이 역사를 우리 성도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이제 이 민족의 마음속에 하늘의 평안이 넘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하며, 우리가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여호와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맡기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 의인의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 하셨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내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마음을 전쟁터로 내어 주시면 아니 됩니다. 내 마음이 전쟁이면 우리 가정이 전쟁터가 됩니다. 가정이 전쟁터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전쟁터가 됩니다. 아니요, 먼저 내 마음에 천국을, 내 가정에 천국을, 하여 우리 삼천리금수강산에 천국을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출발점에 내 마음이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 주시는 평안으로 늘 충만한 마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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