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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을 끼치는 자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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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상복목사 (할렐루야교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여러 해 전, 제가 41살이었을 때 70이 넘으신 분을 뵙고 ‘야, 연세가 많으시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 어느 수요일 저녁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는데 낯선 노부부가 들어와 앉으셨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신 두 분이 함께 성경공부를 하시는 모습이 자꾸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 분들이 참 멋있었습니다. 연세는 많이 드셨는데, 그 분들의 표정이나, 옷매무새나, 머리 모양이나, 그 분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air)가 너무 멋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그 풍기는 무엇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자신은 몰라도 각자 풍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저는 그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자꾸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멋있다. 내가 저 분들 나이가 되면 나도 저렇게 멋지게 보일 수 있을까? 저 분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을까? 70세 생일을 맞이하여 이제부터 멋지게, 아름답게 보여야 되겠다고 결심해서 그렇게 됐을까? 아니야. 틀림없이 젊었을 때부터 그런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성장을 도모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저는 그 때 결심했습니다. ‘내가 지금 마흔 한 살이니까 저 분들 나이에 저렇게 되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되겠구나. 한 삼십년 동안 저 분들처럼 나도 내 마음과 삶을 잘 정돈해 나간다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그런데 한번은 LA에 갔다가 워싱턴으로 돌아오려고 공항에 갔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제 바로 앞에는 젊은 엄마가 어린 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채로 서있었고 제 뒤로 계속 줄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제 몇 번째 뒤에 서 있던 미국 할머니가 “난 못 기다려. 배가 고픈데 어떻게 기다려. 난 빨리 먹어야 돼!” 하더니 앞 사람들을 제치고, 어린아이도 제치고는 접시를 갖고 막 앞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째려보며 “뭐 저런 할머니가 다 있어?” 하고 있는데, 제 앞에 있던 젊은 엄마가 “우리 애도 배고파요!” 라고 하더군요.

이처럼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는 ‘나도 저 사람처럼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축복된 노인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일으키고 자기 자신에게 창피를 주며 도무지 덕도 안 되고 본도 못 되는 일그러진 모습의 노인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50이나 60, 또는 70이나 80세가 되었을 때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미리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 속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나타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아내와 함께 우리 삶의 인격적 목표를 잘 세우고 살자는 대화를 한 동안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제 마음에 이런 소원이 있습니다. 설령 제가 나이가 들고 육체는 연약해지고 머리는 희어질지라도 최소한 저의 인격은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마음의 소원과 기도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사십니까? 아니면 그저 밥 먹었으니까 또 하루 살고, 잤으니까 또 일어나고, 일어났으니까 또 일하고, 일했으니까 월급 받고, 월급 받았으니까 또 먹고... 이렇게 그저 삶의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까?

삶의 목표가 없다면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없는 목표를 어떻게 성취합니까? 여러분이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속의 그림이 없다면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겨냥하지 않고 쏘는데 어떻게 맞힐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나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직장을 위해서, 내가 은퇴하고 나이 70, 80이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까? 마음속에 그리는 그림이 있습니까?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없이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고맙게도 저는 마흔 한 살에 그 노부부를 보고서 ‘저 분들처럼 보이게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의 소원이라도 가져보았습니다. 제가 그 예배를 마치고 나서 제일 먼저 누구에게 갔겠습니까? 그 분들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고 조금 대화를 해 보니 은퇴한 지 3년 되신 목사님과 사모님이셨습니다. 할렐루야! “목사님, 언제부터 목회를 하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열여덟 살에 시작하셨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에서 주로 살아온 저만 모르고 있었지 한국 목사님들은 다 아시는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미국에 일찍 와서 한국의 교계를 몰라 그 목사님을 몰라본 것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 교회 여 집사님의 부모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아, 그러면 그렇지! 열여덟 살 때부터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한 평생을 사셨으니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그 분들의 모습은 인물이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같이 서보니 그 목사님은 저보다 키가 작았고, 하얗게 센 머리도 상고머리로 삐죽하게 깎으셨고, 또 특별히 이마에 주름살이 좀 많았는데 그 주름살 하나하나가 얼마나 멋이 있던지... 저는 주름살이 멋있게 보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평생 삶의 목적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 가지 사건이 나타납니다.

첫째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하나님을 만나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아무리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죄성을 가진 죄인입니다. 그 죄성 때문에 우리에게는 잘못이 있고, 실수가 있고,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때로는 우리 조상의 죄와 잘못된 습관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도 조상의 죄가 3-4대까지 내려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 그분 앞에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200여 년 전에 뉴욕에 악명 높은 강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강도의 후손을 200년 동안 추적해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도둑질, 강도, 마약거래, 매춘 등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등 그 조상의 전철을 밟았습니다. 반면에 같은 시대에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목사님은 예일 대학교 총장을 지내셨는데, 그 분의 후손들 중에는 국회의원, 판사, 의사, 신문 편집장, 대학총장 등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한 사람이 내 가문과 후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아브람이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을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민족은 금은목석을 섬기며 냉수를 떠놓고 하늘의 달에게 복달라고 빌던 백성이었습니다. 우리는 귀신을 무서워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귀신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쓰던 민족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민족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대단한 정신적, 영적 변화입니다. 귀신을 향해 가던 민족이 하나님을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왼쪽으로 가던 사람이 U-턴하여 오른쪽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전환입니다. 아브람의 축복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복되려면 영원한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의 시민권을 받아 진정한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은 축복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아브람도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하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전에 살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평범해도 아무렇게나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축복하십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2절). 당시에 자식이 없던 아브람이 이런 축복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자식이 없어도, 지금은 가진 것이 없어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하나님을 만나면 하늘의 큰 민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의 약속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리라”(2절)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요,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큰 민족을 저 하늘에 이루기 원하실 정도로 중요한 존재요, 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오늘 이 아침에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믿었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2절) 하신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고, 믿음으로 그 축복을 자손만대에 이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축복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사귀며 찬양과 예배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축복의 음성을 꼭 들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이 들었습니다.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들었고 모세가 들었습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들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삼십 세 되던 해에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서 올라오시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 음성을 여러분이 꼭 들으시길 바랍니다. 나 자신이 누군지를 알고 믿으면 내가 결국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를 좋아하신다는 음성을 들으셨기 때문에 그 생애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는 대상인 것을 마음으로 분명히 듣고 감사하십시다. ‘제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군요. 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이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3절). 우리는 위험에 닥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원수들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우리에게도 하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겠다. 만약에 너를 저주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그를 저주하겠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보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구에게 어떤 저주를 받는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처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삶을 결정적으로 살아가는 축복들이 있길 바랍니다.

혹시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셨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의 음성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언제든지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두십시오. 귀와 눈을 뜨고 계십시오. 아브람은 7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늦었습니다. “같은 값이면 열 살에 들었다면 좋았으련만! 스무 살이나 마흔 살도 아니고 일흔다섯 살이라니...” 여러분, 상관없습니다. 어느 나이든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그 음성을 듣는 날부터 여러분은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가운데 어느 한 분이라도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없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 들이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는 축복이 꼭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제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축복과 보호의 음성을 한마디씩 들으면서, 그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끼치며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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