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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종류의 기쁨 (눅 10: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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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기태 목사 (창원침례교회)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사람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요? 옛 말에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실제로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옛속성이 남아 있어서 변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몸부림치면서도 죄의 유혹앞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가 하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변화가 되어야 하는데 변화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분명히 거듭나서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새생명을 얻은 새사람이 되었는데 아직도 술의 유혹앞에 넘어지고 사단의 충동앞에 나약하게 주저앉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쓴뿌리를 마음에서 캐내지 못하고 괴로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새생활이 없는 것입니다. 분명 있어야 할 새생활이 따라주지 않기에 사람들은 좌절합니다.

분명히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남으로 사울같은 악명높은 핍박자가 변하여 전도자가 되고 요한같이 성격이 불같이 급한 사람이 사랑의 사도가 되며 삭개오같이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재산을 반절이나 내 놓는 자비로운 사람으로 바뀌는데 왜 그런 변화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사로잡으시면 순간적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먼저 가치를 바꾸십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가치를 세상의 가치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바꾸십니다. 자기 중심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중심의 가치로 바꾸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가치를 바꾸시려고 만지실 때 거부하지말고 순순히 굴복해야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 같아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진정으로 변화되려면 세상적인 가치관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헌신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믿기전의 가치기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 가치관으로 바꾸어야 마음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고, 일터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여러분 몽땅 다 바꾸어야 삽니다. 예전에 붙잡고 살던것 내려 놓으세요. 그리고 예수를 확실하게 붙잡으세요. 예전에는 돈을 의지하다못해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예전에는 자신을 의지하고 신뢰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내려놓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물이 없어서 약 30분 정도 산을 내려가야 물을 얻을 수 있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 우물이 꼭 하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가 와서 우물을 파 줄 것을 약속하고 장비를 가져다가 그 산동네 한복판쯤 되는 곳에다 파이프를 박고 시추를 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옆에다 다시 뚫었습니다. 그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3번째는 전혀 생각지 않던 계곡 쪽으로 가서 뚫었습니다. 이때 드디어 물이 펑펑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온 산동네 주민들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수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물줄기를 찾아서 파이프를 정확하게 뚫어야 하듯이 기쁨의 샘도 그 줄기가 있어서 반드시 기쁨의 물줄기에다 내 마음의 파이프를 대어야 합니다. 연결되기만 하면 그 즉시 내 마음속에서 기쁨은 펑펑 쏟아져 나옵니다.
이 기쁨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이 말라 방황합니다. 기쁨의 물을 갈구하던 어떤 사람은 돈 줄기에다 마음의 파이프를 연결하여 기쁨을 얻을까 해서 열심입니다. 어떤 사람은 음악 소리 요란하고 조명이 돌아가는 춤판에, 어떤 사람은 먹고 마시는 쾌락의 구멍에 파이프를 연결하려고 합니다. 또는 세상 지식과 학문에 구멍을 깊이 뚫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물들은 기쁨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곧 다시 갈증이 일어나게 합니다. 오래가지 않아 그 샘에서 나오는 기쁨이 매마르고 맙니다.
보다 본질적이고 영원하며 참된 기쁨을 우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70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보냄을 받아 순종하여 각 동 각처로 둘씩 둘씩 나갔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온갖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만나 치유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돌아와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모두가 기쁨이 충만하여 돌아와 신이 나서 보고를 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였습니다." 신이 날만하지 않습니까? 기쁨이 넘쳐날만하지 않습니까? "야, 귀신이 나를 알아보는구나!" "야, 나에게도 주님이 특별한 능력을 주셨구나!" "야, 내가 귀신에게 고통받는 사람을 구해주었다!" 모두가 쓰임받은 자부심과 자신들을 통해 일어난 신기한 영적 사건들을 자랑하며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래, 나도 안다. 내가 너희에게 준 권세를 잘 사용하여 사단이 하늘에서 번갯불이 떨어지듯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아라.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가지고 기뻐해라." 하셨습니다.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기뻐하는 이유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 기뻐하지만 진정으로 기뻐하여야 할 바른 시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기뻐할 이유를 잘못 짚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되면 우리의 기븜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유익이 충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기뻐하는 것과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기뻐해야 합니까? 우리가 기뻐할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1. 소유를 인해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정을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유를 의지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많이 쌓아놓아야 안심이 됩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남보다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무언가 손에 쥐고는 좋아하다가도 남과 가진 것을 비교하고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때부터 불행해집니다.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안달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 그런 가치관을 갖고는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도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재주가 되었든 다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병고치는 능력, 귀신을 내쫓는 능력을 주어서 두사람 두사람씩 파송하여 가서 복음을 전하라, 70명을 보냈습니다.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고 병자는 고치고 귀신은 내쫓고 능력을 나타내면서 역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병든 사람을 만나면 손을 얹고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씻은듯이 깨끗이 낫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 귀신보고 "나가라!" 그러니까 다 나가주는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자기들도 깜짝 놀랐을 겁니다. 이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자기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자기들을 통해서 능력이 나타나고 병자가 일어나고 귀신이 쫒겨나고 희한한 일들을 많이 경험하고 돌아와서 지금 보고대회하는 것입니다. 그 성과를 놓고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희한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 자기가 가진 능력이 크다고 자랑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보시면서 "그거 별로 기뻐할거 없네. 참으로 기뻐할 것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라." 그 외에는 그리 기뻐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신이 나고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아닙니까? 여러분같으면 어떻겠습니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지 않겠습니까? '야, 나에게 굉장한 능력이 있다. 어디 고쳐줄 병자가 또 없나?'하지 않겠습니까? 내게도 이젠 예수님처럼 신유의 은사, 병고치는 능력이 있다. 이런 굉장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이 이제는 다 나를 존경할꺼야...' 하고 으쓱거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것 가지고 기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기뻐해야 할 이유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그것만을 생각하고 기뻐하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세상 가치기준으로 보면 구원받은 것보다 능력받은 것이 더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가치 기준으로 보면 그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여러분이 많은 것을 가져보십시오. 모두가 시기하고 뒤에서 미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 소유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생명록에 이름이 기록되어 지워지지 않게 된 것이 더 신나고 기쁜 일입니다.

예수믿으면서도 공연히 남과 무언가 가진 것 가지고 비교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교회안에서 능력이나 직분이나 은사가지고도 비교하지 마십시오. 천국가서는 다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오로지 구원받은 것만 영원한 것입니다.


2. 성취를 인해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쁨을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아주 일류대학을 나온 분이 고등고시 시험을 보다가 몇번 보고도 잘안되서 국민학교 선생을 했어요. 그렇게 지내는 분이 있어요. 아이가 둘 있는데 국민학교 지금 1학년, 3학년인데 아 전부 100점 맞아야 되요. 99점만 맞아도 회초리를 들고 때리는 거예요. "그것도 틀렸냐!" 또 때려요. 그리고 하는 그 다음 말은 "나는 너희 때 100점만 맞았다" 이러고서 때렸다구요. 어머니가 말리면은 "당신은 삼류대학을 나와가지고 워낙 무식하니까. 난 어디가서 당신 내 아내가 대학 나왔다는 말도 못해요 챙피해서." 아, 이러고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어머니가 아무말도 못하지. 또 어느날도 또 90점 맞았다고 때리는거야. 그러니까 애가 "다음에는 꼭 100점 맞을께요" 하고 우는 겁니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어머니가 그만 이성을 잃었어요. 벌떡 나와가지고 문을 확 열고 "그래 100점 맞은 네가 잘된 게 뭐냐?" 한바탕 내 쐈는데요 벌벌벌벌 떨더랍니다. 새파랗게 돼서 말도 못하고 엉엉 울더랍니다, 남편이. 그 다음부터 안 때린답니다. 여러분 다시 물어보세요. 뭘 했다는 얘기요? 그래 똑똑해서 뭘 한거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하세요.

70문도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대단한 성취를 할 줄 몰랐어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고쳐주고 귀신까지 내쫓고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러다가 순종하였더니 대단한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고를 하면서 돌아보니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돌아보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이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저거가지고 기뻐하다보면 자칫 교만해질텐데.. 저거 자랑하느라고 열을 올리면 위험한데,' 하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해서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70문도들이 조금만 더 성숙했다면 조용히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순종하여 복음전한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믿음으로 사역한 것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고 묵상하며 기쁨으로 감사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상주심을 미리 내다보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며 세상의 성공을 할 때가 더 기쁨니까? 하늘에서 상받을 것 생각하며 더 기뻐합니까? 솔직히 저도 목사지만 내가 일생을 바쳐 목회했으니 하나님이 크게 상주실꺼야! 하고 묵상하며 기뻐하기보다는 자식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듣고 더 크게 기뻐한 것 같아요. 하나님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며 '아들아, 충성한 것 내가 안다. 조금만 더 수고해라. 내가 좋은 상을 가지고 너를 맞으마.' 이런 음성듣고 만족하려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칭찬하는 말에 더 흐뭇해했던 것 같아요.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안에서 성취한 것 가지고도 뽐내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생각하며 기뻐하라는 말슴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기쁨이 오래가는 기쁨입니다. 그런 기쁨이 교만하게 만들지않으며 참만족을 주는 기쁨입니다.


3. 기적을 인해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말씀하십니다. 귀신이 나갔다고 병자를 고쳤다고 자랑할 거 없다. 왜요? 그 후속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마는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이 있어요. 그 속에는 예수님께서 병고친 사람들이 장차 어떻게 됐을까? 뭐 그것에 대한 그저 생각으로 만든 좀 우스꽝스러운 소설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보니까 알콜 중독자가 있더래요. 술이 만취돼가지고 돌아다녀요. "너는 왜 어떻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알콜중독자가 됬냐" 그러니깐 "내가 본래 절름발이였는데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절름발이 때 내가 거지로 살았는데 하도 오랫동안 거지생활을 해서 뭘 할수 있는 일이 있어야지요. 기술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직업이 없어서 내가 그만 자포자기 해서 알콜중독자가 됬습니다." 또 가다보니까 창녀가 하나 있더래요. "너는 어떻게 창녀가 됬냐?" 그랬더니 "예수님이 나를 귀신 내쫓아서 맑은 정신을 만들어준 건 사실인데 귀신들렸던 사람이라고 누가 거들떠 보질 않아서 아 그만 먹고 살아야겠으니까 창녀가 됬습니다." 아 그거 말이 되더라고요. 또 그런가 하면요 또 한사람은 조폭이 됐어요. 그리고 "넌 어떻게 조폭이 됬냐?"하고 물었더니 "저는 본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주님께서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건 좋았는데 눈감을 때는 몰랐는데 뜨고 보니까 보기 싫은게 너무 많아요. 세상에 못볼 게 많더라고요. 그래 화가 나서 조폭이 됬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말이 되잖아요.

기적이 일어난 것 대단한 일입니다. 치유된 것 굉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을 고치고 귀신들을 떼로 쫓아냈지만 그런것에 마음 두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렇다고 사람이 다 변화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를 입었다고 진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때 그 사람들 다 어디 있었습니까? 아무도 곁에 없었어요. 심지어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주었는데 그중에 돌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사람이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아신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는 한 방법에 불과합니다. 깨닫고 온전히 돌아오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순간 깨닫고 그때뿐이고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순간은 무지무지하게 좋겠지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참 기븜이 되게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려는 뜻이 있구나. 나를 제자로 부르시려는 뜻이 있구나! 나를 통해 의의 도구로 쓰실 계획이 있구나! 하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기뻐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기도의 응답이 일어나는 것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큰 축복을 경험하는 것 좋은 일입니다.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을 받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좋아하다 끝나면 안됩니다. 더 성숙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기뻐할 때 기쁨이 오래갑니다. 기쁨이 가치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에 결혼을 하려면 남자가 지참금을 내고 여자를 데려와야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지참금은 소였는데 젊고 예쁠수록 여러마리의 소를 지참금으로 내고 아내를 데려와야 했습니다. 그 마을에 노처녀가 한 명 있었는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추장 아들이 그 처녀에게 반하여 청혼을 하였습니다. 젊고 예쁜 여자를 제쳐놓고 못생기고 나이많은 노처녀를 선택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지참금으로 소를 일곱마리나 가져왔습니다. 지금까지 소 세 마리가 가장 비싼 지참금이었는데 못생기고 나이 많은 처녀에게 그처럼 비싼 값을 지불하고 결혼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첫날밤에 신부가 물었습니다. "왜 나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소를 일곱마리나 보내었어요?" 신랑은 대답하기를 "당신은 나에게 있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여자입니다. 만약 내게 소가 더 많이 있었으면 다 보내었을 겁니다." 신부의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이 여인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씨, 맵씨, 솜씨는 물론 걸음걸이 표정등 모든 것이 달리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고귀한 여인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얼마후에 추장 아들이 추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름답게 변한 부인의 내조로 그는 부족을 훌륭하게 이끌었습니다. 그가 부여해준 가치가 한 여인의 인생을 이렇게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소 일곱마리가 아니라 외아들을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변화를 기대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부로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온전한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변화는 우리의 가치가 달라짐을 깨달을 때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거기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고 오래갑니다. 영원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줍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놀라운 기쁨이 샘솟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지불하신 가치를 기억하고 참 기쁨을 맛보며 온전한 변화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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