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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기도 (눅 3: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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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표 목사 (한신교회)

기도는 운명을 결정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기도를 안했으면 안한 대로 되고, 기도 했으면 기도한 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우리 모든 삶의 표본이 되는 것은 삶의 표본이 되는 기도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소리 있어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늘이 열리는 기도였습니다. 보통 기도는 땅이 열립니다. 대학문이 열리고, 사업의 문이 열리고, 직장 문이 열리고, 가정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는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 현전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삼위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함께 어우러지는 기도, 이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였으며 요단강에서 이루어진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삼위일체적 사건이 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동시에 만나는 사건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그 기도의 내용을 밝혀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소서. 세례 요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는데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이렇게 부탁할 때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9-13)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 이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기도지만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주님과 일체를 이루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운명을 바꾸게 됩니다.
마커스 다드 교수는 “주기도는 어머니 무릎에서 배우는 기도요, 시작한 기도지만 이 기도의 응답은 일생이 걸리며 천국에 가서 응답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터툴리안은 “주기도는 복음 전체의 내용을 담은 가장 복음적인 핵심을 담아놓은 기도다.”라고 했습니다.
박스터는 “우리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세 가지는 중요하다. 십계명과, 주기도와, 사도신경이다. 십계명은 구약 계명의 중심이며, 주기도는 제자들의 신앙 중심이며, 사도신경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신앙의 핵심을 가르쳐주는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주기도는 주님의 인격을 담아놓은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효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도

아무나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자녀만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 됨의 권리이며, 권세입니다.  자녀가 요구할 때 부모는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비슷한 두 낱말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아버지와 비슷한 어른이지만 아저씨는 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반드시 그 자녀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 가운데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이요,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저씨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저씨로 믿는 사람은 아저씨처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면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확증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뭡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보호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운명을 이미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구원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를 우선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지 안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도의 마땅한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요, 자녀로서 하나님께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이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가장 행복한 때는 어린 아이를 길러갈 때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를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어머니보다 더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머니를 최고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기를 때  어머니다운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가 차츰차츰 나이가 들면 어머니가 아주머니로 바꾸어집니다. 어머니보다 더 좋은 것이 생깁니다. 이때는 어머니가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베풀 때 하나님 같으신 어머니로서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이 되는 말인데 이것은 전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모시기 때문에 당신도 나의 형제라는 것입니다. 너와 나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넓은 마음, 넓은 세계, 모두 형제의식을 갖는 기도기 때문에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기도

예수님은 주님 가르쳐준 기도대로 그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칠 때는 비전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 기도를 드리면 나와 같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도 가운데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는 어디에서 이루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 심정으로 그의 생을 마지막 희생의 제물로 드립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할 때 이 기도가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주님은 당신의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면서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3-54)

예수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의 양식으로 십자가상에서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상에서 용서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모든 악을 이길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의 인격을 닮게 됩니다.

이 기도를 가리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고, 성령이 임재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가르쳐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나라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으며,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사함으로 받으며,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모든 악과 시험에서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에 주님 가르친 기도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나게 되는데 일용할 양식은 현재 받는 것이요, 모든 죄는 과거로부터 살아오면서 내가 지은 죄의 용서요, 악과 시험은 미래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가르친 기도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요, 과거, 현재, 미래, 곧 영원한 삶의 기도이며,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만나는 기도입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것은 인간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을 위해서 동시에 고백되는 기도가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인격의 표현입니다.
이 기도는 세상을 살리는 기도입니다. 행복한 삶을 이루는 기도입니다. 거룩한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면 우리 마음속에 평화가 있습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밥만 먹으면 배를 채우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밥을 먹으면서 은혜를 받으면 영생을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탁에 앉아서 생선을 먹고, 고기를 먹고, 채소를 먹을 때 그 고기와 식물이  다 죽어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밥을 먹으면서 ‘내가 죽어 나도 살고 세상을 살려야 되겠다.’ 그 마음을 가지면 밥이 하늘의 양식이 됩니다. 그러나 밥을 먹고 배만 채우면 동물적 존재로 전락해버립니다.

지금 이 나라에 온통 들끓는 분노가 뭡니까? 쓰레기 만두 사건 아닙니까 쓰레기로 만두소를 만들어서 팔았다고 분노하는데 분노할 것 없습니다. 우리 속에 다 만두가 들어있습니다. 만두를 먹어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썩은 양심이 우리 속에 만두처럼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국민 전체가 다 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상한 심령들입니다. 양심이 병들었습니다.

일본의 한 기업가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한국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이런 책을 썼습니다.「한국이 일본을 못따라 잡는 18가지 이유」저자는 이 책에서 두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한국 국민은 절대로 일본을 못따라 잡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업가들이 애국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정신과 어린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 이것은 수입하면 안된다’ 할 때는 일본은 절대로 수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돈버는 일이라면 민족의 양심이 병들든 이것을 먹고 죽든 상관이 없습니다. 둘째, 회사가 부도날 때 일본 사람들은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부도를 막으려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기 살 궁리 다 해놓고 손든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한국은 일본을 죽어도 못따라 간다고 말했습니다. 창피한 얘기입니다.

쓰레기로 만두를 왜 만듭니까 그것을 먹고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병들든 말든 돈만 벌면 된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 양심이 유치원에서부터 들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늘 자기 정체성을 주님 가르친 기도를 통해서 성취해 가야 합니다. 기도한 대로 됩니다. 기도는 운명을 바꿉니다.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는 기도

제가 오래전에 수요예배를 드리고 주님 가르친 기도로 예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기도를 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종의 마음에 감동 하셨습니다. “이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하느냐” 기도는 응답받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응답을 받지 못하면 이것은 기도가 아니고 주문에 불과합니다. “응답받기를 원하느냐” 그래서 “예, 응답받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더니 “이 기도가 응답되면 너는 죽는다.” 그러셔요. 그 얘기를 듣고 제가 어떻게 강대상을 내려 가겠습니까 살아야지요. 그래서 한쪽으로 가서 엎드렸습니다. “주여, 이 종을 살려주시옵소서. 아직 죽을 때가 안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감동이 오기를 “이 기도가 응답되면 너는 죽고 예수로 살게 된다.” 그래요.

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니까 내가 살고, 내 혈기가 살고, 내 감정이 살고, 내 교만이 살고, 주님의 뜻은 온데 간데 없고 내 뜻이 살아서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가 지금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가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는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가 응답되면 너는 죽고 예수로 살게 된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은 주님의 제자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생명으로 승리해서 우리를 살려준 것처럼 자기를 죽여서 이 기도가 응답될 때 가정을 살리고, 회사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운명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효자가 되고, 예수의 인격을 닮는 사람이 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려놓는 사람이 됩니다. 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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