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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를 참으사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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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오늘 본문은 성찬을 앞두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인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합니다. 신앙은 벗어 버릴 것을 벗어 버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모세는 애굽의 금은보화와 왕의 보좌를 벗어버렸습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면서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바라보라 하십니다.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예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은 십자가를 생각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영광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십자가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눈을 어디로 향해도 교회종탑의 십자가, 장식용 십자가, 목걸이, 귀걸이 등등 십자가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기독교의 상징이 됩니다. 은혜를 알고 입은 자라면 십자가 안에서 용서를 보며 자유를 만끽하며 사랑을 확인하며 희망의 부활등을 봅니다. 그러나 이런 십자가가 사형의 도구였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절하던 십자가가가 왠일인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십자가가 희망을 주는 십자가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출세를 하였어도 십자가의 능력 사랑 축복을 모른다면 단지 초라한 기독교인일 뿐입니다.
갈6:14절을 통해 사도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합니다.

왜 바울은 십자가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그랬을까요? 바울 개인적으로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가말리엘의 학파의 수제자였으며 출신배경 자랑 할 것이 많았습니다. 모세오경을 이야기 할 수 있고 창조의 이야기 할 수 있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고 있는데 천상의 음악처럼 산상보훈을 오병이어를 기적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했는데 그런데 왜 바울은 당시 사람들이 혐오하던 십자가 만 자랑하는 자가 되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여긴 십자가가 최고의 자랑이 되었을까요? 십자가는 성도의 삶에 있어 언제나 최고의 자랑이어야 하고 내 삶에 절대 중심이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모른다면 가장 귀한 것을 잃어버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1:18에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 들에게는 미련 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고 2:2절에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모세오경의 서신서의 기독교의 대 주제도 빨래를 하여 빨래를 하듯 성경을 비틀어 짜보면 거기에는 예수님의 피가 뚝뚝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십자가의 은혜와 축복아래 살아왔습니다. 눈물로 십자가의 길을 갔던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나 출세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엄청난 핍박이나 불같은 시험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을 정도로 십자가는 감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쏟아지는 단비를 맞을 수 있을까요 십자가의 은혜를 이해 하고자 한다면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씀합니다. 죄라는 것은 제 길로 가는 것이요 내 삶에 내가 주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변합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냐고? 몸도 내 것이고 그런데 내 삶 왜 내 맘대로 못하느냐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저들의 짜증은 항상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렇게 자신 있습니까? 세상이 여러분들의 맘대로 되어진다면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제 같이 비가 오는 날이었으면 비가 그만 왔으면 할 것이고 더우면 덥다 그러니 시원하면 좋겠다 하며 저 옆집에는 왜 돈이 많노 하며 저 돈이 내 안방에 왔으면 해서 온다면...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데로 세상이 움직인다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롬5:12절에 이러므로 한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었다면 아담의 죄의 받은 모든 인류는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는 신분에서 절대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죄의 결과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요 영광에 이르지 못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돈이나 건강 환경의 문제도 아닙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뿌리로 하고 있는 죄의 문제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는 절단 나고 욕심이 인도하는 데로 살게 되어 필경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죄에서 용서를 지옥에서 천국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사는 것을 줍니다.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는 죄의 뿌리에 있습니다. 죄가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는 자라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가 없다고 해고 사과나무입니다. 백 개를 천개를 한 개의 사과를 맺었다 해도 사과나무는 사과나무입니다. 뿌리가 죄인이기에 지금까지 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죄인입니다. 개는 개이기 때문에 짖는 것입니다. 짖기 때문에 개가 아닙니다.
하루에 수없이 언어폭력, 운전을 하다가도 한바탕해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배우자들에게 한바탕 해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라가라 바보라 하면 지옥에 간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작은 죄인이든 큰 죄인이든 죄는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사람들은 죄 짓고 그냥 끝나는 것이라 여깁니다. 아닙니다. 영원한 죽음 심판을 선물하는 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생각에는 “그래도 나 나름대로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어!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 생각이 여러분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전도폭발 공부과정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약에 하루에 세 번식만 죄를 짓는다면 남을 미워하고 눈을 흘기고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욕하고 이렇게 하루에 세 번 죄를 짓는 사람은 그 사람은 걸어 다니는 천사라고 이야기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하루에 세 번 죄를 지으면 한 달에 90번 1년에 천 번 10년 만 번 60년을 산 사람은 육만 번 죄를 짓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육만 번 죄를 지었다 한다면 사형 아닙니까? 모든 사람은 죄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내가 먼저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인정하는 사람은 이미 은혜가 임한 사람입니다. 눈물로 죄에 대하여 해결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양심적인 사람은 여기에서 갈등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선한 일을 해야 하는데 합니다. 그래서 길가다가 불쌍한 사람에게 돈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불교가 그러고 다른 종교가 그렇습니다. 동쪽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도 서쪽에서 선한 일을 한다면 용서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있는 종교를 의지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해 볼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해성사를 해서 용서를 받는다 합니다. 적당히 제사도 드리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웁니다. 사람이 하는 것 다 합니다. 하나님이 안계시고 그렇다면 사람에게 가장 적당한 종교는 아마도 천주교 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천주교의 기질을 모두 다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죄는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온 인류가 불치병을 안고 있는 죄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속죄의 제물로 달리신 우리 주 예수 외에는 해결의 방법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절대 장식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꼭 예수여야 하냐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것은 안 되냐고 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독선이라 하지만 다른 어떤 종교도 죄를 완전히 해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그 누구도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부처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살았지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살았습니까?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다 가셨지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살다 가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이셨던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분이 사람의 삶을 사셨습니다. 왜!  나를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왜 바로 저와 여러분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엡1: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달리셨습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하늘의 열두 영을 부리실수 있었던 분이 나의 연약한 모습처럼 그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죄의 특권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정하든 안하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부자, 출세만을 생각하다가 십자가를 잊고 사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죄의 문제로 십자가 앞으로 오지 않은 분도 훨씬 불쌍한 분입니다.

아멘 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죄인임을 압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점심을 먹고 밥풀을 음식을 입주위에 붙혀 다니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알려줍니다. 아저씨! 아저씨! 입가에 밥풀이 묻었어요. 그런데 알려 주었는데도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알려 주었는데 헤 웃고 그냥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죄인임을 알려 주었는데도 괜찮다고 그리고 오히려 화를 내며 그냥 산다면 문제 아닙니까? 십자가 앞에 오십시오. 여러분 산에 가도, 들에 가든 어디를 가든 안 됩니다. 주님 앞에 오면 우리들의 죄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우리 주님은 양털같이 죄를 해결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옥을 알고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하다면 죄의 문제가 해결 된 사람입니다. 함께 어우러져 주의 만찬에 초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구원의 백성으로  함께 떡을 받고 함께 잔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또 잔을 가지고 이것은 너희를 위한 새 언약이라 합니다. 안타깝게도 처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받는 사람은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그 살과 피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해하든 못하든 예수님은 이 예식을 통하여 십자가를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천년이 지나도 우리는 이 언약의 예식에 이 의미를 묻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구속을 믿습니까? 감사와 감격 눈물로 떡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일 아니 오신 분들도 오늘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따라서 해 봅시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주님을 구주로 영접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 말을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구원에 영광이 참여할 수 있고 오늘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십자가의 은혜아래서 구원을 확신하며 세례를 받는 축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2부 예배에 19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예배에도 또 세례를 받을 것입니다. 세례야 말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요 참으로 소중한 일 아닙니까? 그리고 성찬을 받을 때 머리와 발끝까지 이 구원의 감격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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