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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칭찬 받지 맙시다 (눅 6: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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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준 목사 (효자교회)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라?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든지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저 사람 참 정직한 사람이야, 저 사람 참 성실한 사람이야, 참 성격도 좋고 상냥해.’ 하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칭찬 못 받는 그리스도인이 참 많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 성실하지 못한 사람, 성격 안 좋은 사람이라고 욕먹는다면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는 우리가 늘 교회에서 듣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요.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중에서 26절에 보면 우리의 이런 상식을 뒤집어 놓는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가령 여기 ‘갑’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치지요.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인데 주변 사람들 중에 아무에게도 욕을 안 먹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한 두면 있을 법 한데 이 사람은 아무에게도 욕을 먹지 않습니다. 이 사람 보고 나쁘다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갑’과 같은 사람을 보고 우리는 참 성격 좋은 사람이다, 인간관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말하면 자기주장이 전혀 없고 줏대가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내 몸을 내맡기고 편한 길만 찾아가는 낙관주의자, 혹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처신을 바꾸는 기회주의자일 수도 있습니다.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칭찬받지 말아라!

다시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예수님이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앞의 20절부터 나오는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절부터 우리는 마태복음 5장 산상보훈에 나오는 그 유명한 팔복을 누가복음 버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두 본문은 상당히 다릅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마태복음의 8복과 누가복음 본문을 비교해가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복 선언은 상당히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에 비해 누가복음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고 핍박당하는 사람이 복 받는 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20절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가난도 감수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21절에 주린 자와 우는 자라는 말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배고픈 것이나 눈물 흘리는 일도 감수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22절에 본격적으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인자(예수님)를 위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23절을 보세요.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세상에서는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고 핍박당하지만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정말 주님을 위해 신실하게 살면 반드시 고난당하고 핍박도 당하고 가난해지기도 하고 배도 고파지고 울 일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며 살면 반드시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면 그것은 내가 정말 주님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주관을 뚜렷하게 세우면 세울수록 부딪치는 일도 많고 욕도 만이 먹게 됩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등 사방에 적이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이를 갈며 어떻게든 죽이려고 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는 구절을 떠올립니다. 아니, 성경이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이냐? 하지만 이 구절은 어디까지나 minority였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 쓸데없는 충돌이나 원수 만드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괜한 충돌을 사서 일으킬 필요는 없습니다. 가능한 한 주변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과 평화롭고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쓸데없이 문제와 불화만 일으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지요. 안 믿는 남편이나 형제, 또 이웃이나 친구들과 가능하다면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해서 필요 없이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전도의 문이 막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두 내용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고 해서 절대 양보하지 말아야 할 본질 부분까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욕먹는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한 번도 사람들에게 욕을 먹거나, 잔소리를 듣거나,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습니까? 한번도 따돌림 당하거나 어려움 당한 일 없습니까? 다 알면서도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속아주거나, 손해 보거나, 어려움 당한 적이 없습니까? 그래서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원만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좋아하고 다 나를 칭찬합니까?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해서, 그러다보니 절대 양보하지 말고 지켜야할 복음의 진리와 신앙의 정절마저도 포기하고 양보한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세상이 험해지고 악해질수록 어떻게든 주님을 위해 신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힘든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런 유혹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야, 이하준, 좀 적당히 믿어! 너무 티내지 말고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말고 그저 힘들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주변 환경도 좀 잘 살펴보고 그럭저럭 살아가라구.” 하지만 우리가 이 마귀의 음성에 솔깃하여 넘어가는 그 날 우리는 더 이상 참된 그리스도인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던지는 도전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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