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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목은 아름답다 (시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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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은 아름답다
(시133:1-3)

이 시간에 저는 “화목은 아름답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감탄문이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신앙 안에서 서로 화목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화목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화목이 귀하시면 죽으시기까지 하셨을까요? 하나님 나라를 가정으로 본다면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이 화목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화목해야 합니까?

1. 화평한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화목하지 못하면 절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루에 기도를 열 시간하고 말씀과 봉사를 그만큼 한다 해도 화목이 없으면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화목한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투고 있는 집에 가서 있고 싶은 사람 있을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끼리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과도 막힙니다.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화평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예물도 열납하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화평이 없는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기는 커녕 큰 마귀의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모두 잘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으로 잘 되기를 바라시면 사람에게도 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은 저절로 임하게 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이 영의 법칙입니다.

2. 예수 안에서 성도는 본래 하나이기 때문에 화목해야 합니다.

엡4:3-5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했습니다. 고전12:13에도 “우리가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한 식구 정도가 아니라 한 몸입니다. 영적으로 한 성령이 임한 한 몸입니다. 그래서 영이 통하고 마음이 통합니다. 그래서 한 지체가 즐거우면 함께 즐겁고 한 지체가 고통하면 함께 고통스럽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곤충이 있는데 그 곤충은 불독개미라고 합니다. 불독개미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싸우느라 한 순간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기 몸인데도 자기 머리와 꼬리가 서로 싸웁니다. 이 곤충은 몸을 갈라놓아도 머리와 꼬리가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꼬리는 머리를 휘감고 머리는 꼬리를 뭅니다. 그래서 결국 몸과 꼬리는 서로의 공격을 받아 곧 죽고 맙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곤충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곤충을 만드신 것은 그것을 보고 교훈을 얻으라고 그러십니다. 그래서 잠6:6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한 몸인 성도들이 서로 다투는 것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비정상입니다. 정상적인 영적 상태라고 한다면 결코 불목할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기도하고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특히 큰일을 하다보면 서로의 모든 것이 다 노출됩니다. 믿음이 노출되고 성격이 노출되고 장점도 단점도 다 노출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큰일을 한 다음에 그 일을 통해서 얻은 것보다 잃을 때가 더 많습니다. 정말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물은 멋있게 섰는데 성도들의 마음은 갈기갈기 다 찢어지고 수고는 많이 했는데 서로 원수가 되고 맙니다. 교역자도 일을 해놓고도 더 이상 시무를 할 수 없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도 좋지만 화목으로 나가고 사랑으로 나가야 합니다.

집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 됩니다. 홀어머니를 모신 내외가 있었는데 날마다 고부간에 싸워서 가정의 평화라고는 없었습니다. 어머니 편을 들 수도 없고, 아내 편을 들 수도 없고 중간에 끼어서 고생하는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좋은 꾀를 내어 밤 한 말을 사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여보, 당신과 어머님과 싸우는 걸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료, 당신이 죽든지 어머니가 돌아가시든지 해야지 안 되겠소. 그러나 젊은 당신이 죽어서야 되겠소? 그래서 감쪽같이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는 좋은 약을 사왔으니 내 말대로 해야 하오." 그러면서 밤을 주었습니다. "이걸 삶아서 매일 잡숫게 하면 어머니는 뚱뚱하게 살이 쪄서 쉽게 죽는 다오. 그러니 돌아가실 분에게 공손히 잘 대하시오" 며느리는 좋아라고 밤을 삶아서 이른 아침에 가지고 전에 없이 공손한 말씨로 대접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뜻밖의 일이라 아무 말 않고 받아먹었습니다.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매일 매일 공손한 모습으로 공양하는 시어머니 마음에 후회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착한 며느리를 괜히 내가 심히 굴었지!’ 이렇게 생각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그칠 줄 모르던 이 집안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인제 저 밤 내다 버릴 테야요." "아니 왜?" "어머님이 돌아가실 까 겁이나요! 그렇게 인자하신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내가 잘못이었어요!" 그러면서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은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잠15:17에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고, 잠17:1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으며, 잠21:9에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했습니다.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입니다. 하나 되지 않는다면 기도 부족입니다.

3. 우리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17:11에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가 언제 한 기도입니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아버지 앞에 피와 땀을 흘려 가시며 기도한 기도가 아닙니까? 이만큼 우리 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원수 사단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반목하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 중에 네 마리의 황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도 함께 가고 함께 풀을 뜯고 함께 누우며 쉬는 친한 황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힘을 합하여 대처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소를 잡아먹으려는 사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자는 황소와 일대 일 대결은 자신 있었지만 한 번에 네 마리는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기회를 엿보다가 그 중 약간 뒤쳐진 황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다른 소들이 그의 흉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자는 또 다른 소에게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소들은 서로를 불신하다가 마침내 그들 사이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사자는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다 잡아 먹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교훈합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그리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마7:12).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황금 율법입니다.

4. 화목하는 직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후5:18-19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러므로 화목은 우리의 책임이며 하나님은 화목 잘하는 사람을 천국의 큰 일꾼으로 쓰십니다. 그리고 화목을 잘해야 복을 받습니다. 욥기 22:21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주님을 본 받아 사랑해야 합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화목하려면 관용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 좋은 환경을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이삭도 평화를 위해 블레셋 사람에게 우물을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당나라 장공예의 집안은 9대를 내려오며 자손들이 한 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언제나 가족끼리 위하고 화평하여 당나라 고종 황제에까지 소문이 들어갔습니다. 고종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 집에 행차하여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그때 고종은 장공예에게 9대를 내려오면서 수백 명이 다투지 않고 화목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장 공예는 종이와 붓을 가져다 놓더니 참을 인(忍)자를 백 개나 꽉 차게 써넣었습니다. 이처럼 화목을 위해서 인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하셨습니다. 이 화평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많은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화평할 수 없는 일이 많기에 하나님께서는 화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람 앞에 화평하여 형제가 연합하여 함께 사는 가장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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