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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물과 샘 (요 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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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 맥추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오늘은 맥추감사절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일년에 두번 감사절이 있습니다. 한번은 상반기를 보내면서 드리는 맥추 감사절이고, 또 한번은 일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드리는 추수 감사절이 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 농사지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실절이라고 합니다. 그 때가 시기적으로 이스라엘은 유월절 후 50일 쯤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태양력으로 하면 약 6월경이 됩니다.

그런데 그 오순절에 주님이 약속하셨던 성령강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5월 30일에 우리가 드린 성령강림절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성령 강림”에 더욱 큰 의미를 두고 지키려고 오순절과 맥추감사절을 따로 분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맥추 감사절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지킨 그 근본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즉 모든 수고의 떡을 먹을 때 그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봉헌 신앙입니다. 이 한 해의 초반부를 지내오면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상기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460장입니다.

1절)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절)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쟎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2.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1) 어찌하여 나에게 달라하나이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읽으면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실 때 그 여인의 심정이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를 확인하면서 예수님의 부탁을 거절하려는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아마도 그런 사회적 차이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자기의 실존적 인식에서 불평을 뱉어내는 의미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자기는 사마리아 여인이고 더구나 남들과 어울릴 수 없는 힘든 처지의 여인인데 ‘이런 나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냐?’ 하는 그런 투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여인은 오직 자기 처지만을 강변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도와주지 못할 망정 ‘나 같은 사람에게 얻어먹으려고 하냐?’는 욕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 요즘 자기 처지만 강변하며 항상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받기만 하고 줄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을 돌아보며 비록 어려워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런 태도를 지니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어려움에 빠질지라도 그럴 때 비굴해지거나 추해지지 맙시다. ‘나도 당당히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집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거룩한 습관을 지닙시다. 

사마리아 여인은 비록 소외 받은 처지에 살고 있으나 예수님에게 물을 한 그릇 줄 수 있는 우물가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돌아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는 우물이 나 자신에게도 있지 않은가를! 그래서 주님이 달라하시는 그것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2) 도리어 주시는 주님

예수님께서 불평하며 속으로 욕하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달라고 하시는 분이란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드리면 하나님은 좋아하시고 우리에게 갚아주신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한국인의 종교 심성에 깊이 내재해 있습니다. 전통 미신행위 대부분이 그런 것입니다. 지성을 쌓고, 음식을 준비해서 바다에 띄우고, 길에 뿌리고, 바위나 고목 앞에서 제사상을 차려 올리는 행위들입니다. 소위 귀신을 달래려는 종교행위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곳곳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집이나 도로를 내기 앞서서, 영화를 제작하기 앞서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사를 드립니다. 이런 것이 은연중에 교인들에게도 믿음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의 것을 달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드리면 좋아서 우리에게 임할 재앙을 막아주고 그렇지 않으면 괘씸하게 여겨서 벌을 주는 그런 하나님은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 처음에는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시며 희생을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주실 기회로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날아온 글입니다.

      신의 선물

신은 당신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그 선물을 문제라는 포장지로 싸서 보낸다.
선물이 클수록 문제도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자연히 당신에게 평화, 즐거움, 행복을 안겨주려면
그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제 당신은 달라져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 속에
감추어진 선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선물이 없는 고난은 없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중에서 -
 
사도 요한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3) 우리는 물을 드리나 주님은 샘을 주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님은 달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드리십시오. 대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려주시는데 물을 받으신 주님은 그에게 물이 아니라 샘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절)

첫째로 주님이 주시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헌물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것은 썩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헌물이 한 그릇의 물이라면 주님이 주시는 것은 물의 근원인 샘입니다. 마치 우리가 금반지를 한 개 드렸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금광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밥한 그릇을 드렸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벼를 추수할 수 있는 논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작사자인 레흐만(F. M. Lehman)은 이렇게 노래 말을 지었습니다(찬송가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 . . (1절)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4절)


3. 마무리하며

오늘 맥추 감사 주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한 번 더 세겨봅시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힘든 고비들이 많았고, 사회적으로 위기를 넘긴 적도 많았지만, 그 모든 순간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음을 인정하며 감사합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남아 있지만 원망과 시비로 대처하기 보다 감사와 믿음으로 받아들여 승리합시다.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남은 이 한 해의 시간들을 성령 안에서 더욱 행복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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