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연변 방문) (눅 10:25-37)

  • 잡초 잡초
  • 198
  • 0

첨부 1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오늘 아침에는 선교여행보고를 주로 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중국 연변 지역을 함께 방문한 14명 중 네 사람의 방문 소감을 듣겠습니다. 권명숙 권사님과 최타숙 사모님과 나명희 전도사님과 이용환 집사님의 방문 소감을 듣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권명숙 권사) 아무 공로 없이 거저 하나님의 은혜로 4박5일 동안 가는 곳마다 VIP대우를 받으며 목사님, 교역자님, 사모님들,  동혁이와 함께 조선족이 사는 연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끼고, 사랑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현장을 가서 보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 서로 섬기는 모습, 우리 동포들이 어려움 가운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진정한 행복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음에 감사 드립니다. 김명혁 목사님께서 연변사범대학분원 학생들에게 조학금을 전달하시며 행복은 만나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고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 우리 민족이 어디 가든지 봉사하고 섬기는 민족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지신교회 수요예배 때 하나님은 나그네를 사랑하시고 병든 자, 가난한 자,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 고 하신 말씀, '기독교는 착함의 종교다' 고 하신 말씀을 감명 깊게 기억합니다. 연변지역의 우리 동포들을 돌아보며 격려하고 위로하시며 가는 곳마다 기도와 격려금까지 주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서 불평, 불만이 많은 나의 모습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뜻 깊었던 여행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최타숙 사모) 김 목사님의 사랑을 받으며 강변의 식구들과 함께 한 4박 5일간의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고 은혜로웠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즐기며,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사랑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약한 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이 전해질 때면 사랑이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보다 더 큰 능력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평소 많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둘째, 천국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허름한 지신교회 예배 처소를 보며 지난날 시골에서 목회하던 때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기도 하였습니다. 저들의 간증을 듣고, 저들의 정성이 담긴 저녁상을 받으면서, 그리고 함께 교제하고 예배를 드리며 비록 그곳이 초라하고 약하고 작은 자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작은 천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셋째, 곳곳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연변 과기대에서, 용정에서, 지신교회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헌신하고 있음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넷째, 매 시간 귀빈대접을 받았습니다. 백두산을 비롯하여 가는 곳마다 멋지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고, 색다르면서도 맛있고 융성한 음식을 먹으면서 분에 넘칠 정도로 귀빈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함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동혁이를 통해서도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끝까지 짜증 한번 내지 않았고 개다리 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어서 이번 여행은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항상 그랬지만 금번에 귀한 기회를 주신 목사님과 김봉화 사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중국 선교여행을 다녀와서...” (나명희 전도사) 중국 연길에는 200만의 조선족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내주는 후원금은 부모를 잃고 삶의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고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주고 가난한 농가에 토끼와 돼지를 사육할 수 있는 자금을 대출해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감명 깊게 느낀 것은 우리가 보내주는 후원금이 그들에게는 단지 돈이 아닌 삶의 새로운 소망이요 멀고 먼 한국 땅에서 같은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전달되어 오는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작은 정성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진심어린 고마움의 눈빛들 속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도록 우리 나라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저는 이번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중국 연길에 살고 있는 200만의 조선족이 하나님께서 북한선교를 위해 예비하신 기드온의 300용사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후원으로 자살직전까지 갔다 새로운 삶의 소망을 얻은 한 아주머니는 북한에 친척이 많아 일년에 10번도 넘게 북한에 다녀오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갈 수 없지만 조선족은 북한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면 그들은 우리의 사랑 가운데 예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에게 받은 사랑으로 북한을 오고 가며 그들보다 더 어려운 북한을 도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북한에도 흘러 흘러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북한선교라는 큰 일은 작은 우리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을 것입니다.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서 저는 조선족과 북한에 있는 우리 민족을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교여행을 허락하신 사랑하는 하나님과 닮고 싶은 김명혁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연변 지역 조선족 동포를 만나고 와서...” (이용환 집사) 항상 그렇지만 목사님과 동행하는 여행은 즐겁습니다. 여러 가지 유익이 있었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은혜를 받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오고자 했던 말을 잠시 동안 참고 있다가 보면, 새로운 생각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곤 합니다. 내게 비친 남들의 행동거지.. 말 씀씀이에서 남을 판단하곤 합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아는 조그만 지식 가지고 남을 판단하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곤 합니다. 이번 기회에는 내가 판단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눈으로 상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 나의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하지 않기로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조선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듯이 조선족 동포들도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기대만을 가지고 맞아들이지 만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로의 사이에 깊은 골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안타까운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조선족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시기 피해를 당한 경우에는 살아갈 소망이 없이 암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겪는 과정 중에서도 고아, 장애인,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관심 밖에 있었고 ‘조선족 사기피해 대책위’와 ‘동북아 평화연대’에 속한 이들이 그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서로의 지혜를 모아서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는 여러 사업들에 대해 연구하는 모습들은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번에 우리들은 연변지역 (연길 도문 훈춘 용정 등지)를 두루 다니며 연변대학 사범분원 소속의 생활이 곤란한 예비 교사들과 도문 훈춘 용정 등지의 고아 빈곤층 소년 소녀와 재활경제 활동 등 (토끼 치기, 양돈 가정, 무공해 유기농 재배 농가 등) 의 형편들을 듣고 돌아보며 또 작은 격려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연변 등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이  그들이 익숙한 곳에서 우리의 조그마한 도움을 받아 자립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한층 더 바람직한 결과가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 땅에서 벌어지는 이런 실험 등이 멀지 않은 장래에 맞게 될지도 모르는 남북통일의 과정 중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한 가지 모델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에 비교적 넓은 지역과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려는 노력 때문에 일정이 다소 빡빡한 편이었지만, 같이 동행한 동혁이의 개구쟁이 짓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쾌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에 또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더 많은 참여하게 되어서 많은 감동과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 연변 지역 방문 소감을 간단 간단하게 들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보고와 소감을 좀더 소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월요일 오후 우리는 연길에 도착한 후 연변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직행했습니다. 사범대학은 2년 제 전문 대학인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사범 대학의 학장과 부학장 그리고 백 여명의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우리가 금년부터 매달 학비를 조금씩 지원하고 있는 극빈 학생 20명에게 장학금(조학금)을 전달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학용품도 함께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간단한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Happiness is meeting, happiness is sharing, happiness is serving 이라고 영어로 말한 후 행복은 만남과 나눔과 봉사라고 간단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 다음 장학금을 전달 받은 학생 두 명이 20 명을 대신해서 감사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저 입으로 읽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가슴과 눈물로 읽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는 고통과 아픔이 배어 있었고 동시에 감사와 희망이 서려 있었습니다. 리예란 이라는 학생은 감사의 글을 읽고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아서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이었습니다.

  리예란 이라는 학생이 쓴 글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한국복음주의협의의 김명혁 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오늘 매우 격동된 심정을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완미한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아가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저에게 큰 재난이 밀려올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집까지 팔아 치료하였건만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집 기둥이 무너지자 어머니와 저는 조그만 단칸 방에서 셋방살이를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방방 곳곳에서 돈을 꿔서 저의 학비를 마련해줬습니다. 그러나 고생할 대로 고생하신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또 암이라는 진단을 받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때 어머니조차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갖은 정성을 다하여 병 시중을 해 드리고, 돈을 조금이라도 벌어 엄마의 병 치료에 보태야 되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 가정교사, 세 곳의 일을 도맡아 하고 친척들도 찾아 다니며 모은 돈으로 18살 어린 나이에 혼자 장춘의 전문 암 치료를 잘 한다는 의사를 찾아 떠났습니다. 장춘으로 갔다 오는 과정에서 저는 경제난으로 세 끼를 만두 하나로 에웠고 난생 처음 역전에서 홀로 밤을 새면서 한 고생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허나 저의 이런 정성은 무효로 되었고 하늘은 무정하게도 저의 곁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이미 엄마의 병 치료에 빚을 질대로 진 저는 부득불 학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때 저의 정황을 리해한 저의 담임 선생님과 학생처장과 학교 령도 선생님들은 저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크나큰 도움을 주어 지금까지 학업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또한 그런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또 한 나라 인민도 아니고 머나먼 외국에서 단지 한 개 조선 민족이라는 것으로 저에게 사랑의 손길을 주고 더욱이 정신상에서 도움을 주니 저의 마음은 그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이 격동됩니다. 이런 사랑 속에서 저는 더욱 강하게 과감히 운명에 도전하면서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저는 이 민족 사랑을 용기와 힘으로 바꾸어 나라의 기둥감으로, 나아가서는 조선 민족의 기둥감으로 자라나 우리 조선 민족 교육에 정성을 다하여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훌륭한 인재로, 더욱 우수한 조선족 교원[교사]으로 되어 앞으로 저도 조선민족을 위하여 헌신하는 뜻 있는 사람으로 되기에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신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감사의 글을 읽은 두 학생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다시 사랑의 선물을 손에 쥐어주며 격려했습니다. 사범대학에는 1200여명의 학생이 있는데 그 중 400여명이 한족 학생들이고 800여명이 조선족 학생들인데 조선족 학생들 중 상당 수의 학생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극빈 학생 10 가정을 더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둘째 날인 화요일에는 훈춘에 들려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토끼 사육을 하며 자활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몇몇 농촌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두 가정이 힘을 합해서 토끼 사육장 하나를 새로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로 짓고 있는 토끼 사육장을 방문하고 약간의 후원금을 전달하고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도움에 깊이 감사하며 계속해서 도움의 손길을 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도문 시청 건물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는 도문 시장과 함께 29명의 고아 학생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금년부터 매달 학비를 조금씩 지원하고 있는 29명의 고아 학생들에게 장학금(조학금)을 전달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학용품도 함께 전달했습니다.저는 저 자신이 11살 때부터  고향과 부모를 떠난 고아의 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한 평생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며 고아 학생들을 격려했습니다. 29명의 학생들 중에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명의 학생이 감사의 글을 읽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읽은 감사의 글은 너무나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렴춘희 라는 학생이 쓴 글에 나타난 그 학생의 생각과 마음 가짐과 삶의 자세가 너무나 훌륭하고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줄일 수가 없어서 그 글을 거의 그대로 다 소개합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회장님과 여러 후원자님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숭고한 경례를 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울고 싶을 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절대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너무 행복해서 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이들은 많은 것을 얻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평범한 것마저 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눈물 삼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언젠가는 나에게도 잃은 만큼 큰 선물이 떨어질 것이라고 믿고 또한 기다리는 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겐 과연 큰 선물이 하늘에서 이 지상에 떨어지군 합니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이 선물은 아마 내가 이제껏 잃은 대가로 나한테 내려보낸 크나큰 사랑으로 감싼 후한 마음일 것입니다. 이 선물은 이렇게 불시에 나타나서 사랑을 감촉하게 하고 행복한 눈물을 삼키게 하는 후원자 선생님들입니다.

  유년시절 부모를 잃고 어둡고 막막하게 살아왔습니다. 버림 받은 령혼이었고 고달픈 세상살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허적허적 살며 아무에게나 기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막막하고 두렵고 억울해 하면서도 아무에게나 자신의 마음을 열고는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 세상이 겁났구 이 세상 모든 것이 거짓되 보였고 하나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항상 희망을 상승시키군 했습니다. 허적거리는 인간을 절망 속에서 건져준 건 후원자 선생님들이였구 희망을 갖게 한 것두 후원자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나는 후원자 선생님들한테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내 이 몸 속에서도 피가 흐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후원자 선생님들의 사랑이 어둡고 막막한 고달픈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운명을 개변하려고 마음 먹게 하였습니다.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으면서 웃으면서 꿈을 가지고 살기로 했습니다. 나는 여직껏 후원자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고중을 필업했고 지금은 대학시험을 추리고 통지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는 통지서의 의미는 기쁨이겠지만 나한테 있어서도 기쁨이 될 수 있을지? 시험을 추린 후부터 나는 통지서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통지서가 진정 나를 웃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또 한번의 상처를 남길지. 경제 곤난이 다시금 나를 괴롭힐 순간 후원자 선생님께서 나한테 광명을 주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 나는 다시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최종 목적은 바로“내”가 아닌 “너와 우리”를 위함 되어야 한다는 걸.

  후원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고아들의 행복한 웨침을 나 한 입으로 전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들의 굳은 결심을 선생님한테 전해줄 수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모두는 선생님의 사랑을 동기로 삼고 이후 학업에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남보다 더욱 강하게, 남들을 사랑해주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만질 수 없다고 해서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후원자 선생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베풀어주고 있는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낯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는 후원자 선생님께 다시금 감사하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렴춘희 학생의 귀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있는 감사의 글을 들으면서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고난과 아픔과 슬픔 속에서 닦여진 보석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렴춘희 학생이 대학에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렴춘희 학생과 감사의 글을 읽은 다른 학생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다시 사랑의 선물을 손에 쥐어주며 격려했습니다. 

  도문 지역의 고아들을 담당하고 있는 김덕자씨는 고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 하나가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가 쓴 예쁜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편지는 너무 예쁘게 쓰여진 편지인데 슬픈 사연이 적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안예화라는 어린이가 쓴 편지였습니다. “친애하는 후원님께: 저는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네 살적부터 저는 부모를 잃고 고모 집에서 자라며 학교 입할 할 때까지 아버지 어머니 이름 불러 본 적 없이 가엾이 자랐습니다.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아버지 어머니 손 잡고 다니는 아이들만 보면 참말 부러웠습니다. 저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고모 집에서 불쌍하다고 어루만지며 저를 고와해 주신 고모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랑의 손길을 구원해주신 후원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이후에 열심히 공부하여 저를 기대해주신 모든 분들게 꼭 보답하렵니다. 석현제2소학교 2학년1반 안예화” 저는 몇몇 어린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무엇인가를 조금씩 이라도 더 주고 싶은데 어쩔 줄을 모르고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도문 지역의 고아 가정 열 가정을 더 돕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자리를 아쉽게 떠났습니다.

  셋째 날인 수요일에는 용정을 방문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고 강원용 목사등 많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민족 혼이 깃들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대성중학교와 윤동주 생가를 방문한 후 육체의 장애 등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수로 공예품을 만들며 자활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  후원금 얼마를 전달하며 위로와 격려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돼지 사육을 하는 자활 가정을 방문했고 저녁에는 지신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요일에는 민족의 산 백두산을 방문했습니다. 한 주간 동안 날이 흐려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우리들이 백두산 천지에 올라갔을 때는 구름과 안개가 걷혀 40여분동안 웅장하고 신비로운 백두산 천지를 너무 잘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다녔던 연변 상조회 이영숙 회장은 일기가 좋지 않아서 천지를 볼 수 없을 거라는 걱정으로 며칠 동안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데 천지를 불 수 있게 되자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말하며 거듭거듭 감탄을 발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같은 민족인 조선족 동포들과 특히 극빈 학생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면서 피차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소박한 행동이 우리들과 동행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떠나기 전날 이영숙 회장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자기도 연길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믿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와 동행했던 동북아평화연대의 김순한 간사는 마지막 날 “신 인류를 발견했다”는 엄청난 고백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날라리 신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번에 만난 신자들은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소감과 보고는 이것으로 마치고 설교는 4분 이내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나 쓸어져 있는 어떤 사람을 보고 가까이 가서 사랑의 손길을 편 어떤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나 쓸어져 있는 어떤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준” 이야기를 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지금 이 세상에는 강도 만나 쓸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에 사기 피해를 당한 조선족을 비롯해서 재난의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픔과 슬픔 중에 있는 우리의 고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느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손에 있는 것을 꺼내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갈 수 있는 발이 복된 발입니다. 볼 수 있는 눈이 복된 눈입니다. 느낄 수 있는 가슴이 복된 가슴입니다. 도울 수 있는 손이 복된 손입니다. 우리는 이번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이 저의 손에 쥐어준 사랑의 헌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보았습니다. 느꼈습니다. 그리고 손에 쥐어준 사랑의 선물을 전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뿐입니다. 우리들이 수행하여야 할 착한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고 분부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지막 편지에서 교회의 직분자들은 무엇보다 “선한 일을 사모" 해야 하고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해야 하고 “모든 선한 일을 좇아야" 한다고 분부했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도 마지막 편지에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선행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우리가 행한 선한 일이 천국에 까지 따르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14:13).

선지자 이사야는 주린자에게 식물을 나눠주고 빈민을 돌보고 벗은 자를 입히는 선행은 “빛이 아침 같이 비치고 치료가 급속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고 예언했습니다(사58:7,8). 선한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윤리적인 항목이 아닙니다. 천국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영적 항복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9). 선행은 윤리가 아니라 영생을 취하는 영적인 조건입니다. 저는 앞으로 수년 동안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강도 만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성도들을 대신해서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한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동족들과 우리의 자녀들을 살리는 선한 일을 많이 하십시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많이 하십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