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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교회시리즈5 : 생각하고 회개하라 - 사데교회 (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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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2004년7월4일 말씀   

계속 이어지는 일곱 교회 시리즈의 말씀이다. 오늘은 사데 교회에 보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한다. 사데 교회의 상황은 금화를 만들에서 이웃 도시 국가에 보급하였다. 부자 도시로 명성이 높은 도시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형성되었다.

이 사데교회는 소문난 교회이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즉 주변의 사람들에게 교회 이름의 소문은 났으나 실제로 죽은 교회라.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소문나는 교회보다는 생명력있는 교회가 더욱 소중하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소문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생명력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거룩한 사람으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같은 이라고 책망하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흰색 회로 칠 해 놓았기에 그럴 듯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죽은 시신이 썩고 있는 무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속에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이다.
사데 교회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한 교회로서 소문은 나있었지만 그 속은 죽은 교회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렇게 사데 교회에 생명력을 잃게 했는가? 그것은 아마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낳은 결과가 아닌가? 사데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 풍요로우면 자칫하면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기 쉽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간곡히 부탁한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그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하나님을 떠나 이름만 하나님의 백성이요, 속은 죽은 믿음의 사람이 된다.

영국 선교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하면 개신교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준 나라인가? 특히 감리교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미국과 영국이 연합하여 이라크를 공격하였다. 미국은 저항 세력에 의해서 테러의 위협이 있고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영국은 어떤가? 영국에는 직접 폭탄테러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영국에 너무나 많은 이슬람 교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지도부가 영국에 위치하고 있다. 기껏 영국 사람들을 겨냥한 테러가 영국의 바깥인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영국 대사관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영국은 개신교 역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소문은 있지만 생명력을 상실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영국에 있는 교회들이 한국에서 선교사를 보내 달라고 애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경계해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때문에 사데 교회가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다.

캔자스에는 미국 다른 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인디언 대학이 있다. 이 대학에는 인디언의 피가 8분의 1만 섞여있으면 누구나 국비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백인들이 아메리카 땅을 차지하고 난 뒤 이 땅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에게서 땅을 뺏은 대가로 인디언 후손들에게 학비와 의료비를 국비로 지원해주고 또 인디언이 20세가 되면 2만 달러씩 주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비나 의료비 걱정이 없어도 되고 20세가 되면 저절로 2만 달러를 가질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인 것 같지만 이러한 혜택의 결과는 너무나 의외였다. 지금 미국 땅에 있는 인디언들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으로 무너져가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는 인디언 지도자들은 이런 미국 정책이 인디언을 말살하는 제도라며 혜택을 거절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번 돈 맛을 본 그들은 지금 당장 달콤한 사탕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탕자를 보라. 그는 아버지로부터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챙겼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되었다. 그 결과 아버지를 떠나 방황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풍요로울수록 내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여유가 있을수록 우리의 믿음 생활을 더욱 열심을 내야 한다. 주5일제가 이번 달부터 좀더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여유가 있을수록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힘써야 한다.

이같이 사데 교회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때문에 소문만 남고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다. 또한 여기에서 생명력을 잃은 이유는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사람들 앞에는 온전해 보이고, 사람들 앞에는 그럴 듯 해 보였지만 하나님 앞에는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사데 교회는 주변에 소문이 났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온전하지 못했다.
사데교회는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소문이 났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공로를 자랑한다.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면 사람들 사이에 소문은 날지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잔치가 벌어진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형이 잔치가 벌어지는 것을 볼 때에 화가 났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이 가정에 평화가 깨어진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하지 못하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다. 탕자를 보라. 탕자는 아버지에게로 돌아올 때에 종으로만 받아 줘도 감사한데 아버지가 나를 아들로 다시 인정해 주시고 이렇게 잔치까지 벌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형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동생 탕자는 베푸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 좋아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훨씬 온전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지는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합당치 않다. 그러나 베푸신 은혜를 앞세우면 하나님에게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는 사람은 늘 불평하게 되어 있다. 탕자의 형을 보라. 자신의 공로를 앞 세우다가 보니 아버지에게 불평을 털어 놓는다. 포도원 일꾼의 비유를 보라. 새벽 6시, 9시, 12시, 3시, 5시에 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임금은 똑같이 준다. 5시에 와서 일한 사람은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새벽 6시부터 와서 일한 사람은 자신의 공로를 앞 세우다가 보니 불평이 입에 가득할 수 밖에 없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불평하지 말라. 불평하는 그 입술을 통하여 악한 영이 우리를 지배한다. 계획한 데로 일이 되지 않았다고 하여 불평하지 말라. 그 입술을 통하여 악한 영이 우리를 지배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어떤 부인이 [차에 휘발유가 떨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부인은 덧붙였다. [차에 휘발유가 거의 떨어졌을 때 저는 투덜거렸죠. 왜 이 근방엔 주유소가 없을까하고 말이죠]의아하게 생각한 주위 사람들이 [그런데 어떻게 감사한일이 생겼죠?] 라고 물었고 이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젯밤 우리는 차를 도둑 맞았었요. 그런데 휘발유가 바닥나 있었기에 이 도둑은 30M쯤 끌고 가다 차를 그냥 두고 가버렸지요. 만일 휘발유가 많았어봐요. 차를 어떻게 찾았었겠어요] 우리에게 건강이나 행복, 평안이나 인간교제가 바닥날 때가 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자.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감사하면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하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모습을 갖게 되고, 감사하면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생명력을 가져온다.
열명의 한센병 환자가 병 고침을 받았다. 한 사람만 예수님에게 돌아와서 감사하다고 전한다. 아홉은 어디에 갔느냐고 찾으신다. 예수님에게 찾아온 그 감사한 사람은 병고침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구원도 받았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신다. 그리고 주님 앞에 온전한 모습을 갖게 되고, 감사할 때에 영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사데 교회를 보라. 이 교회는 물질적인 풍요로움 때문에 그들은 믿음이 떨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들의 공로를 자랑하였다.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게 된다. 생명력있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
사데 교회는 이름뿐 죽은 교회라고 책망하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믿음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유명해 지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들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 본문의 말씀에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연고라.”
흰옷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성경에서 흰색은 승리의 색깔이다. 우리 나라는 백기 하면 항복을 의미하지만 흰색은 곧 승리를 의미한다. 부활의 승리와 기쁨을 나누는 색이 바로 흰색이다. 이같이 믿음을 통해서 생명력을 지닌 자가 최후의 승리자요. 인생에서최후의 행복한 사람이 된다.

사데에서 일어난 일이다. 금화로 갑부가 된 크로에수스는 어느 날 법률학자 솔론을 불러 놓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지혜로운 솔론은 “각하!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인간의 행복은 죽을 때에야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기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는지 살지 못했는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에 행복하려면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불평한다. 그러나 은혜에 감사한 사람은 마지막에 행복하다. 사랑하는 성도여!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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