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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을 선포합시다 (렘 51: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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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오늘 예레미야 51장 5절에서 10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선포합시다』란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10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는 본문 그대로 제목을 정했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네 백성에게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말을 그대로 선포하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시다"하라 하셨습니다. 선포하는 일은 네가 할 일이요 듣고 안 듣는 것은 네 백성이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가령 악한 사람이 있을 때 네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시다 하고 그 사람을 깨우쳐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돌이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 악에 대한 책임을 지고 망하겠지만 그 사람의 멸망과 죽음은 너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악인에게 네게 가서 내 말로 깨우치라 했는데도 깨우쳐 주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그 악으로 인해서 자기는 망하지만 그 망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깨우쳐 주라고 했는데 안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고 가서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요,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너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시는 분이다. 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다. 혹은 하나님은 곧 이러한 분이다. 이렇게 우리가 나가서 선포해야만 합니다.

I.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일(5절)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이 사실을 체험하고 믿고 나가 선포하자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야곱에게 아내 넷이 있었는데 아내 넷 중에 라헬이라고 하는 여인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을 다른 열 아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사랑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너무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도단에 가서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어린 요셉이 땀을 흘리면서 떡을 한 짐 지고 찾아왔지만 형들은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미운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옷을 완전히 벗겨 갈기갈기 찢어 양의 피를 발라 아버지에게 보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옷이 아닙니까? 우리가 다니다가 발견했는데 악한 짐승이 찢어 먹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을 이스마엘 사람 장사꾼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갈 때 옷 한 벌을 못 입고 팔려갔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요셉의 나일 열 일곱 살, 우리 나라 나이로 열 여덟 살인데 얼마나 형님들에게 울면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사정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우리 알바 아니요, 죽든지 살든지 우리는 모른다는 태도였습니다. 가장 아껴 주어야 될 형님들, 가장 사랑해 주어될 형님들에게서 여지없이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손톱끝 만한 인정도 없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그의 눈에서 눈물은 말할 것도 없고 피가 났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아껴 주어야 할 사람에게 이런 일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이렇게 기가 막히는 일 말입니다. 끔찍이 아끼고 사랑해 줘야 될 남편에게서 버림받는 여자도 있을 수 있고 노년이 되기까지 아들 딸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다했는데도 아들 며느리에게 버림받는 부모들이 있을 수도 있고, 아낌 받아야 할 부모에게서 억울하게 버림받는 자식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던 배우자에게서 또는 부모에게서나 자식에게서 버림을 받았을 지라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여 온갖 고난 속에서 그를 훈련시키사 애굽의 국무총리로 성공을 시키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버렸던 형님들도 와서 그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버림받는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은 더 가까이 계시고 사람은 버려도 하나님은 챙겨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우리 믿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하고 육신이 연약해서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죄를 지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역시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본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베드로를 보십시오. 혼자 잘 믿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볼 때는 아직도 형편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혼자서 잘 믿는 것 같은데 예수님이 보실 때는 형편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악당들에게 붙잡혀 갈 때 칼을 뽑아 말고 라고 하는 청년의 귀를 쳐서 귀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사실 귀만 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정신 없이 너 죽으라고 쳤는데 귀만 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이 칼을 뽑아 너 죽으라고 쳤으면 할 짓 다했지, 그 이상의 할 짓이 뭐가 더 있습니까? 또 계집종에게 끌려 다니면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욕하고 저주했으면 할 소리 다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할 짓 다 했고, 못 하라 소리를 다 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를 찾아가서 네가 비록 그랬을지라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느냐고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신임하셨고 오히려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범죄한 베드로를 버리셨다면 베드로의 설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하고 오히려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혹시 믿음과 육신이 약하여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단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비록 범죄 했을지라도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는 일에서 돌이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삼상 12:20).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힘있고 바르고 용기 있게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5절을 보면 "대저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을 입지 아니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라가 갈라져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라고 한 것은 12지파 전부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 여호와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했고 어디를 가든지 이스라엘 민족이 지은 죄 뿐이지만 결코 하나님께 버림은 입지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아들 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아들 딸을 버립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고 돌아와서 바로 서 주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한국이 선교를 받은 초창기 때인 1898년에 한국 땅에 선교사로 오신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1898년에 나와서 1939년까지 41년 동안을 황해도 재령 땅에 선교 본부를 정하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황해도 지방에서는 이 분의 선교를 힘입어 교회가 굉장히 부흥했습니다. 이 때 예수 믿는 사람치고 황해도 지방에서 한위렴 선교사, 그러니까 윌리암.B.헌트 선교사의 이름을 모른다면 껄렁껄렁 믿은 사람입니다. 재령을 중심으로 해서 동부교회, 서부교회를 세웠고 명신중학교를 세웠는데 이 명신중학교는 신성중학교, 평양 숭실중학교와 함께 유명한 학교입니다. 이렇게 선교를 하다 가신 분입니다. 그의 아드님이 한부선 선교사인데 부산에 나와서 고려파와 손을 잡고 고려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아주 유명한 집안입니다. 한위렴 선교사께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한국 사람들은 잘 해 주는데도 더 잘 안해 준다고 항상 불평이 많았답니다. 사람은 항상 그렇습니다. 잘 해준다고 해서 고맙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잘 안해 준다고 불평입니다. 이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선교부 돈을 유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참고 용서해 주다가 이래 가지고는 안되겠다 싶어서 한 번은 불러서 따끔하게 혼을 내 주었습니다. 거기에 앙심을 품고 얼마나 욕을 해대고 싸우고 나가는데 기가 막히더랍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이 미워서 그렇게 했겠습니까?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그 분이 떠난 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벌써 10년, 15년 지나고 20년이 가까워 올 때까지 찾아오는 일이 없어서 만날 재간이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만났습니다. 인사도 안하고 가는 것을 좇아가서 먼저 인사하니 마지못해 인사를 받더랍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한 두 마디 하다가 자기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수첩이라는 것을 1년 쓰고 또 옮겨 쓰는 것이 아닙니까?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자기 가족 이름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해마다 수첩에 옮겨 쓴 것이고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20년 가까운 세월이었습니다. 거기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다시 예수를 믿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못되었고, 때로는 하나님을 억울하게 했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1년, 2년, 20년 줄을 끈끈하게 이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택한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열심히 선포합시다.


II.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일(6-9절)

6절에서 9절을 보면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토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한절 넘어가서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보수하시는 이유로 성전을 불태우고 모든 기구를 술잔으로 쓰는 신성 모독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사실을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곧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사랑이란 사랑은 다 받고 혜택이란 혜택은 다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은 없이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리 떠나 제 멋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제대로 될 리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따끔하게 혼을 내 주려고 당시 강국인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여 바로 잡아 주시려는 계획이었으나 바벨론은 이로 인하여 교만해졌습니다. 바벨론은 착각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이나 시키고 말일이지 무엇 때문에 성전에 불을 놓습니까? 그리고 성전에서 사용하던 기구는 모두 가져다가 창고에 쌓아 놓고 왕궁에서 잔치를 베풀 때 전부 술잔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버려 둘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메대 왕을 시켜 바벨론을 쳐서 멸망케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로 훈련시키는 것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로 훈련시키는 것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포로 생활 중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는 것이 아니었구나!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구나!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섰습니다.

믿음을 회복할 때까지 참고 계시다가 이스라엘이 믿음을 회복하므로 바벨론을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도구로 사용한 바벨론을 멸망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저들이 교만해져서 성전까지 훼파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수하셨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회복한 유대인들은 이 때가 도망갈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고토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유를 회복하고 성전을 회복하고 전부 회복하는 축복을 베풀어 주셨다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릴 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고 믿음을 회복하니 잃어버렸던 것을 다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다 잃어버려도 믿음을 잃지 않으면 잃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것을 다 가지고도 믿음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다 잃은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믿음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회복되므로 모든 것이 다 회복되더라는 말입니다. 완전히 믿음과 함께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차를 타고 반시간쯤 시내로 들어가면 큰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부흥회 할 때 교회 건축을 앞두고 헌금을 작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기도원을 짓든 예배당을 짓든 부흥회 때 헌금을 작정한 일은 없잖습니까? 부흥회는 부흥회대로 은혜 받고, 헌금은 헌금대로 작정해야 하는데 이 교회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예배당을 크게 지으려고 하는데 천 여명 모이는 교회에서 당시 20억이면 큰 공사였습니다. 20억을 작정하려고 하는데 강사님이 뭐라고 말하는가하면 여러분이 집에 가서 통장가지고 올 필요가 없습니다. 다이아나 무슨 반지를 꺼내올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들은 주머니에 있는 지갑 속의 것만 내어놓고 가십시오. 만원도 좋고 10만원도 좋습니다. 여자들은 집에 가서 금부치를 가져오지 말고 핸드백 속에 있는 것만 다 내어놓고 가십시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헌금을 거두어 놓고 강사님이 그 가운데서 봉투하나를 뽑았는데 용하게도 어느 장로님의 봉투가 뽑혔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1천만원짜리 수표였습니다. 본 교회 목사님이 강사님에게 "강사님 그것이 가짜수표 아닌가 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장로님은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있는 형편이었는데 이런 형편에 천만원짜리 수표를 바쳤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짜 수표가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강사님이 보니까 보증수표였습니다. 그러면 배서가 있나 보십시오. 그러니까 배서도 있었습니다. 그거 참 이상한데! 그러니 강사는 눈치가 빠르잖아요 그래서 그 장로님을 일으켜 세우고 그 내막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설명을 하시는데 자기가 사업을 크게 하다가 완전히 망했기 때문에 지금 먹을 것이 없지만 건축계통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망해도 그 계통의 일을 소개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에게 큰 부동산 하나를 소개해 줬더니 생각밖에 고맙다고 하면서 소개비에다가 나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천만원짜리 보증수표를 주어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것을 받아 가지고 집에다 두고 왔으면 좋은데 집에 갖다 두고 올 시간이 없어서 주머니에 넣고 왔는데 목사님이 주머니의 것만 다 꺼내서 바치라고 하시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바친 것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장로님은 지금까지 장로이면서도 하나님 것을 많이 떼먹은 사람이고, 껄렁껄렁한 장로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망하는 일을 통해서 장로님은 그것은 장로님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구나! 하고 생각한 교인들이 집을 지을 것이 있으면 장로님께 부탁을 하자 일감이 막 몰려 들어왔습니다. 예배당은 2년 만에 준공을 하였습니다. 그 장로님이 맨손 들고 다시 일을 시작해서 2년 만에 자기가 번 돈을 평가해 보니 8억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장로님이 망한 것은 사업이 망하기 전에 먼저 믿음이 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믿음을 바로 찾으니 하나님께서 다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이 잃었던 신앙 회복이 급선무였고 하나님은 믿음이 바로 선 그들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잃지 마시고, 또 잃었다 하면 믿음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회복시켜 주십니다.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선포합시다.


III.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일(10절)

10절에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의를 하나님이 드러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누구도 모르게 숨겨둔 것을 빨리 청산해 버리면 좋지만 계속 숨겨두면 하나님께서 들추어내십니다. 죄가 우리를 찾아내야 하고 죄는 빨리 청산해야 합니다. 드러난 것은 물론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가하면 억울하게 누명 쓴 일이 한 가지 두 가지 입니까? 그것을 벗어 보려고 해 보아야 벗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때가 되면 다 들춰내어서 무죄함을 드러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고 선한 일을 했는데도 땅에 묻혀 버리고 딴 사람이 그 영광을 받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서운해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그 것도 드러내십니다. 결국 선 악간의 모든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본문에 우리의 의를 드러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의를 드러내셨다고 바벨론 멸망 후에 고토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포로 생활 중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입어 하나님께 의로운 존재로 인정을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즉 본래는 하나님의 의인데 그 의로 구원 얻고 그 의로 의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의는 자기들의 의가 된 것입니다. 동시에 바벨론의 죄를 드러내시기도 하였습니다. 드러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의를 드러내실 뿐 아니라 바벨론의 죄도 드러내시기 때문에 죄 짓고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쾌재를 부를 것은 없습니다.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또 억울하게 누명썼다고 해서 울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제고 벗겨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선행이 땅에 묻히고 다른 사람이 영광 받는다고 해서 서운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것도 다 드러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마시고 힘차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또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열심히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징계는 하실 지라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런가하면 자기 백성의 잃었던 것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드러내십니다. 우리의 의도 드러내시고 죄도 드러내시고 억울함도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을 기쁨으로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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