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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요 12:24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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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봉 목사 (사직동교회)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참 많이 답답하셨지요? 우리 동래구 출신의 서른 세 살 김 선일 청년이 이라크에서 피납 22일만에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속절없이 그냥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대통령도, 장관도, 대사도, 이미 그 곳에서 주둔하고 있는 700여 명의 서희, 제마부대 군 장병들도 무려 22일 동안의 긴 시간이었음에도 손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우리의 한 젊은이를 비참하게 희생시키고 말았습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 영수 여사가 조총련 테러리스트 문 세광에 의해 암살 당했을 때 전 국민이 참으로 충격을 받아 분노하고 슬퍼한 이 후 꼭 30년만에 또 다시 전 국민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런 생각들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성실한 청년이 왜 저토록 비참하게 살해를 당하는가?/ 이슬람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자 그렇게 고생 고생하면서 먼길을 돌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던 크리스천 청년이 왜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살해를 당하는가?/ 그것도 22일 동안이나 감금당한 채 피를 말리는 공포 속에서 ’정말 나는 죽기 싫다. 살고 싶다. 제발 살려다오!‘라고 피를 토하는 절규를 하는데도 왜 우리 하나님께서는 끝내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을까?/ 오히려 일본인들은(얼마 전에) 예상을 깨고 풀려났는데 왜 크리스천 청년 김 선일군은 처참하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는가?’

여러분의 의문은 계속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저토록 사악한 테러범들을 단번에 응징하지 않고 여전히 내 버려 두시는가? 도대체 하나님의 의중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알 수 없는 것,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악한 사람이 잘되고 건재합니까? 왜 선량한 사람이 늘 손해보고 바보 취급을 당합니까? 왜 북한의 공산주의는 (러시아와 유럽은 공산주의가 벌써 망하고 자유 국가로 변신을 마쳤는데...) 여전히 망하지 않습니까? 왜 성실한 신앙인 보다 인간의 꾀를 더 많이 부리는 신앙인 이 잘되고 큰 소리를 칩니까? 이런 의문들 때문에 때로는 밤잠을 못 이루고, 때로는 신앙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자기 시대에 경건한 성도로 인정을 받았던 아삽이라는 성도는 답답한 자기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고 있습니다.(시73:2-3, 12-14)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시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시렵니까?
그럴 수는 없으시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위로를 하십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너희가 지금은 몰라도 이 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요13: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을 원하신다는 것이 성경과 역사의 교훈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2:24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 한 알(a kernel)입니다.

한 사람입니다. 씨앗 하나가 가지 열 개를 퍼뜨리고, 백 개를 퍼뜨립니다. 여기서 새로운 곡식 낱 알 100개, 1,000개가 열립니다. 성냥개비 한 개가 집을 태우고, 산을 불태웁니다. 1억 원도 만 원짜리 한 개로부터 시작됩니다. 한 사람이 500만 원하여 500명이면 25억이라는 결과가 맺힙니다. 한 가정, 한 사람이 1000만원씩 300명이면 30억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집니다. 나 같은 한 사람이 자꾸 모여지면 100이 되고 1,000이 되고, 10,000이 됩니다. 이 숫자 앞에는 항상 하나, 한 개, 한 사람을 뜻하는 1(one)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니 일(1, one)이 없으면 숫자의 의미가 아예 서지를 않습니다.

하나, 한 개, 한 알, 일(1, one)은 작습니다. 적습니다. 작은 것입니다.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개 정도는 시시하게 여깁니다. 보잘 것 없이 여깁니다. 모임 시간에 ‘한 사람’만 먼저 와 있으면 두 번째 들어오는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어, 아무도 없네! There is nobody/ There is no one(person)"
한 사람 와 있는 것은 사람으로 쳐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재주, 내 재능, 내 봉사 가지고 뭣에 쓰겠나?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보탬이 되겠나? 나 같은 사람 하나 빠진다한 들 무슨 지장이 있겠나?’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뱃새다 들판에서 한 작은 소년이 예수님께 바쳐 드린 그 작은 도시락이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았지 않습니까? 바로 한 톨의 작은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 출신의 작고 가냘픈 한 소녀가 열 여섯 날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과 고국을 영영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의 이 작은 몸을 주님께 바칩니다. 평생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면서 살겠습니다.’ 열차 안에서 이 작은 소녀는 몇 번이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서원한대로 이 작은 몸집의 소녀는 주님을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답니다. 그 결과 인도의 가난하고 거대한 도시 캘커타에는 온 세계가 숨을 죽이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답니다. 기억합시다. ‘작은 것’입니다. 한 알의 밀입니다. 한 마디의 말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이혼 케이스 일만 견을 연구한 시카고의 조시프 사베스라는 판사는 대부분의 부부들이 지극히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이혼까지 서슴치 않는 것에 놀랐다면서 만약 여성들이 아침에 남편이 출근할 때 ‘잘 다녀오세요.’라는 정도의 말만해도 미국에서 일어나는 이혼율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2. 죽어야 합니다. 그것도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합니다.

‘죽다.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여러분 중 누가 지금 저가 서있는 이 강단으로 올라와서 죽음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정답을 아무도 모릅니다. 왜? 아무도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 한 번 죽어 보았다가 살아서 지금 여기 계시는 분 있으십니까? 계시면 좀 올라오십시오....
아픈 것, 교통사고, 수술, 질병으로 쓰러지는 것에 대하여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왜? 겪은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그럴듯하게 설명하거나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은 연극이나 영화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는 죽음, 죽임 당함 피살(살해), 순교 같은 개념에 대하여 정말 진지하게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라고 하는 이라크의 무장테러단체에 납치되었다가 결국 피살당한 김 선일 형제의 참상을 영상을 통해 여러 차례 접하였습니다. 온 국민, 특히 가족들을 충격과 고통으로 몰아 넣은 것은 피살 직전 공포 속에서 절규하는 장면을 몇 번이고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살벌한 무기를 든 채 복면을 한 얼굴로 선일 형제를 둘러싸고 있는 테러범들에게서 우리는 인간의 사악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그것도 비무장 민간인들 22일간이나 쉴새 없이 극단적으로 죽음에의 공포를 가하다가 끝내 무참하게 살해해 버리는 존재, 이것이 인간입니다. 짐승세계에 이런 참극이 있습니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렘17:9의 말씀을 정말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많은 고뇌와 갈등 가운데서도 우리는 분명한 하나의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역사의 전진을 위해서는 희생의 제물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다음 차례를 이어 받아 역사의 물줄기를 새롭게 바꾸려고 다음 세대(후임자, 후세대)를 향하여 역사의 인물들은 종종 이런 말을 내 뱉았습니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 내 무덤에 침을 뱉아 버려라.’ 역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기 한 사람 기꺼이 희생의 제물로 역사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때로는 억울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역사의 전진을 위하여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희생되어간 인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벨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한적한 들판에서 꿈에도 의심해 본적이 없는 친형제(가인)으로부터 살해를 당하였습니다. 아벨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며, 제물은 어떻게 준비하여 드려야 하는가를 만대에 걸쳐 볼 수 있도록 한 알의 밀 알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서야 얻었던 금지옥엽 귀한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 제단 위에 제물로 올려놓는 희생을 감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한 알의 밀알됨으로 오늘의 전세계(우리) 기독교인을 영적 이스라엘 자손 되게 함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스데반을 보세요. 사도행전 1:8을 성취하고자,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 기독교회의 전진을 위하여 깨끗이 한 알의 밀 알이 되었습니다. 얼굴과 온 몸이 피투성이 되어 돌무더기 속으로 파묻히면서 죽어갔습니다. 스데반의 희생으로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있던 기독교 복음이 사마리아와 안디옥과 소아시아, 그리고 심지어 인도에까지 확산되어 갔습니다.
요12:24말씀은 결국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이 됩니다. 한 알의 밀 알로 오셔서 깨끗이 자기 한 몸을 땅속으로 내 던지셨습니다.(요1:14, 딤전1:15) 그 당시 이스라엘의 대 제사장이던 가야바는 예수님이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희생되실 것을 신기하게도 이렇게 예언하였지요! (요11:49-52)

막14:1-9, 무명의 한 여인이 예수님 계시던 그 집안에서 향유옥합을 아낌없이 바싹 깨어서 쏟아 바쳤습니다. 이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으니 이것은 곧 예수께서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인류의 더러운 죄의 악취를 깨끗하게 씻어 주신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제 25-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알의 밀 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한 알의 밀’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한 알의 밀 알’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놀라운 역사(일)를 진행하십니다.(24절)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리스트는 ‘한 사람이 한 알의 밀 알이 되니 독가스실로 가고 있던 유태인 5천명이 되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우리 모두를 한 알의 밀 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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