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곳이냐, 저곳이냐 (민 13:30; 민 14:6-9)

  • 잡초 잡초
  • 260
  • 0

첨부 1


- 설교 : 안창국 목사 (비전교회)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은 긴 광야의 여행에 벌써부터 지쳤습니다. 아직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은 아직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 채 이제 막 진입하려는 찰나에 있을 따름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쳤던 때는 모세가 죽고 나서 한참 후였던 것을 상기해 본다면 그들의 여정은 아직 중반부를 조금 지나쳐 왔을 뿐임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출애굽의 긴 여정 가운데 놓여져 있었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많이 지쳐있는 상태인데 아직 그들이 목적하고 있는 곳, 가나안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지쳤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눈앞에 가나안 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제 거의 목적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이제 눈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고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생이 끝나고 낙원 같은 곳에서의 안락한 삶이 그들에게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의 내용입니다.

  모세는 정탐꾼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해야 할 가나안 땅의 관문 앞에서 정탐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보고는 매우 절망적이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탄식을 내뱉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 채 그 언저리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망설이는 속성은 그들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을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한참 지난 후, 가나안 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때에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책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 18장 3절에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려느냐.”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장애가 생기면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장애물만 있으면 머뭇거리는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너무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아직 애굽에 있는 사람입니다. 변화를 꿈꾸고 있지만 때때로 괴로워하면서도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애굽의 고된 삶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삶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가나안땅을 향해 출발했지만 그 장애물의 장대함을 보고 그저 겁먹고 그 언저리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사람들 같은 사람들입니다. 조금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주저앉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장애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Vision)과 믿음으로 담대히 극복해 나가서 결국은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도전과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정탐합니다. 사실 어떠한 일에든지 목표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위해 정탐이 필요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도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의 그 대가를 계산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대가가 필요함을 계산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정탐을 마치고 나서 열두 명의 정탐꾼들에 의한 보고가 민수기 13장 26절에서 33절까지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탐꾼들은 두 패거리로 갈라져 보고를 합니다.
  열두 정탐꾼은 정탐한 땅에 대한 사실은 동일하게 보고를 합니다. 26-29절에 보면 가나안 땅의 실과와 그 주민들에 대한 사실적 결과를 동일하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그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열 명은 부정적 보고(32-33절)를 하고 두 명은 긍정적 보고(30-31절)를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사실을 놓고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다. 왜 이러한 두 가지의 상이한 의견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여기서의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묵상하면서 이들이 이 상황에서 그렇게 긍정적이고 담대한 보고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은 목적을 분명히 직시(출 3: 8)

  출애굽기 3장 6절과 8절을 보면 모세에게 보여주신 비전이 등장합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가나안 땅, 주시리라고 약속한 땅. 이것은 비전(Vis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스라엘 백성이 성취해야 할 비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상황만을 보고 그 비전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열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황만 보고 비전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분명히 바라보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상황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먼저 비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2-14절을 보면 바울 사도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우리 교회에게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각자의 삶 가운데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어야 할 비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룩함,”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품어야 할 동일한 비전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보면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네 가지 우리의 비전이 있습니다(꿈이 있는 교회,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 풍성한 사랑이 있는 교회, 땅끝을 향한 교회). 또한 우리 교회는 가족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꿈꿉니다. 가족이 자녀들을 양육하고 서로를 책임지는 공동체로서 사랑을 나누듯이 그러한 공동체가 되기를 꿈꿉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건강한 유익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새비전교회가 대전과 충청지역에서 기독교문화의 중심으로 서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비전기독교문화센터가 만들어지길 원합니다. 할 수 있다면 기독교 정신과 제대로 된 교육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도 만들어지길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 13장 32절에 말하고 있듯이 “가서 취하자”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대한 완전한 응답의 요구(수 14: 12)

  여호수아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진입한 후에 여호수아가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땅에는 거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직 그곳 땅을 완전히 차지한 때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4장 12절에 보면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땅 분배에 대한 요청을 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아직 차지하지 못한,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을 차지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갈렙의 요구는 가능한 데까지만 차지하겠다는 부분적인 요구가 아니라 약속하신 모든 땅을 차지하겠다는 온전한 요구였습니다. 일부가 아닌 전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목표한 것들을 향해 가다가 조금 무리가 생기면, 장애가 생기면, 어려움에 봉착하면 대충 그쯤에서 그만 둘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이 정도면 봉사도 많이 하는거지. 이 정도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편이지’하면서 적당한 때에 멈추어 서고 맙니다. 자기 나름대로 한계를 그어놓고 그 이상은 더 봉사하지도 않고, 더 신앙적으로 성장하려고 하지도 않고, 더 이상 헌신하려고 하지도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정도 성장하고 이 정도 사회에 봉사했으면 됐지. 이 정도면 하나님도 예쁘게 봐 주겠지’에서 멈춰 섭니다. 보두들 ‘이 정도면…’ 하면서 중간에 멈춰 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금이 아닌 전부를 요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약속하신 바라면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그 약속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표하신 곳을 향하여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최선의 가장 큰 적은 차선입니다.


3.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14: 9)

  민수기 14장 9절을 보면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여전히 장벽은 높았습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우리 교회를 향한 비전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루어야 할 비전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비전을 부둥켜안아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자칫 우리가 나름대로 계획하고, 멋대로 목표를 설정해 놓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환경이나 현실보다는 비전에 주목해야 합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때 반드시 어려움이나 장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환경이나 현실보다는 비전을 주목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이 비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확신을 갖는 일과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보잘것없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아마 팔짱끼고 지켜보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는 이 비전을 위하여 우리를 드려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드려졌을 때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역사(役事)가 나타났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순종이 나타났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 던지셨을 때 인류가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물질이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이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은사가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꼭 필요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비전을 위하여 드려지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를 향한 비전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를 향한 이 비전! 이 비전을 확고하게 붙들고 이 비전을 향하여 우리 자신을 드리는 귀한 결단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