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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창 3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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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낙심케 만듭니다.
하루는 사탄이 자기의 졸개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타락시켜서 그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올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그 날 회의의 의제였습니다. 사탄의 졸개들은 머리를 맞대고서 이런저런 방안을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예컨대 이러한 의견들입니다.
"사람들은 자고로 돈을 좋아하니까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십시다. 그렇게 해서 흥청망청 쓰는 가운데 죄를 짓게 만드십시다."
또 이런 의견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술에 약하니까 술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만듭시다. 그러면 개나 돼지처럼 행동하면서 타락할 테니까 지옥으로 끌려오는 영혼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 이런 의견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아담 때부터 여자의 유혹에 약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성적으로 타락시킵시다."
그러나 사탄은 그 모든 의견들이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졸개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 것 말고 뭐 다른 참신한 방법이 없는가?"
그 때 졸개 가운데 하나가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법들을 가지고서는 인간의 영혼을 그저 부분적으로만 타락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희망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한 우리가 그들을 온전히 파멸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희망을 빼앗아 버리고, 그 대신에 그들의 마음 속에 깊은 절망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틀림없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탄은 그 소리를 듣더니 무릎을 탁 치면서 "그것 참 기막힌 수법일세!"라고 감탄하며 그 졸개를 칭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누군가가 꾸며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인 줄 압니다. 여러분, 절망은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도 절망이라는 시험에 빠져버리면 의욕을 상실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던 일을 다 놓아버립니다. 목사도 마찬가지고, 장로도 마찬가지고, 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목사도 강단에 설교하러 올라오기에 앞서서 낙심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설교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이렇듯 절망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인 희망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난관을 극복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의 희망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품고,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드십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나오는 요셉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낙심, 근심, 절망의 모든 어두운 그늘들을 다 떨쳐 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새롭게 해서 희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우리의 걸음걸음을 친히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의 삶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꿈을 품고서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떠한 때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이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를 찾아와 주시고, 그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셉은 어린 시절 자기의 어머니 라헬을 잃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요셉의 남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죽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은 요셉의 마음은 너무나 슬펐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은 여러 아들들 가운데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그에게는 채색 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아주 값비싼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요셉은 열 명이나 되는 이복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까닭없이 요셉만 보면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요셉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요셉을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요셉을 찾아오셔서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꿈을 통해서 요셉을 위로해 주시고,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꿈에 보니까 가족들이 추수를 하고 있는데 자신의 단은 중앙에 우뚝 서있고, 형들의 단은 자신의 단 주변에 둘러서서 그 단을 향해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분명합니다. 그 꿈은 곧 요셉이 형제들 가운데 으뜸이 되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치리하게 되리라는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다시 한 번 더 꿈을 주셨습니다. 이번에는 하늘의 해와 달과 열 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요셉은 꿈을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에게는 희망이 있었기에 어떠한 시련도 다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어떠한 역경도 요셉에게서 꿈을 빼앗아 가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 힘들어 할 때, 결코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 두시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찾아와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주신 그 꿈을 언제나 새롭게 해주십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가 많았습니다. 사라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언제나 롯을 자기의 아들처럼 아끼며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종들과 가축들을 다 데리고 삼촌 아브라함의 곁을 미련없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했겠습니까? 텅빈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영락없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내가 너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너와 너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리라!"
한 평의 땅도 없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나안의 모든 지경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희망 가운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후손이 장차 땅의 티끌과 같이 창대하리라. 사람들이 능히 땅의 티끌을 셀 수 있을진대 너의 후손들도 셀 수 있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창대하게 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붙들고 희망 가운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밤하늘을 가리키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장차 네 후손들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되리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꿈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3:16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내가 힘들어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왜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시면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서 멀리 떨어진 어머니의 고향 밧단 아람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황량한 벌판을 혼자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덧 서산에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길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에 아무렇게나 뒹구르고 있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서 그것을 베개로 삼고 누웠습니다. 밤하늘에는 영롱한 별들만 반짝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밤하늘을 이불 삼고, 딱딱한 맨바닥을 요로 삼아서 드러누웠습니다. 너무나도 불편했을 것입니다. 또 부모님이 계신 집이 무척이나 그리웠을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 자기 혼자만 있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외로웠을 것입니다. 또 형 에서가 언제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심정 때문에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야곱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셔서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꿈에 보니까 사닥다리 하나가 높이 서있었습니다.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 위에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나님과 야곱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었습니다. 사닥다리 꼭대기에는 하나님이 서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창28:15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시면서 그를 지켜주시고, 그의 걸음걸음을 인도해 주시며, 그를 장차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해서 야곱은 그 꿈을 붙들고 모든 시련을 다 이겨내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 할 때 결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우리를 찾아와 주시며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꿈을 늘 새롭게 하시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가 누워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물어보셨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여러분, 병든 자가 낫기를 원하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뜻밖에도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38년된 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겠습니까? 아마도 그 병자는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고생했으니까, 마음 속에 희망이 다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낫기를 원하는 마음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병든지 일년 이년이이라야지요, 오년 십년이라야지요? 무려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고생했으니까, 그의 마음 속에는 희망이 다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먼저 낫고자 원하는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어나서 너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의 병이 깨끗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걸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인생은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약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릴 때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뜻에 따라서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늘 우리의 삶을 새롭게 도전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앞서 가시면서 우리의 걸음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친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요셉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대로 다 이루어 졌습니다. 물론 요셉은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결국은 형들의 손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종살이했습니다. 얼마나 큰 시련이었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희망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렇게나 살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가정의 모든 일을 다 맡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요셉이 여주인의 유혹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일 요셉에게 꿈이 없었더라면 여주인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요셉은 그 꿈을 붙들고, 여주인의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여주인의 모함에 따라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당한 그 모든 시련을 전화위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요셉에게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그 배후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전옥이 그를 신임하고, 그에게 옥중의 제반 업무를 맡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애굽 왕 바로의 두 신하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 사람은 술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떡굽는 관원장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두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요셉이 가만히 보니까 그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 얼굴에 수심이 가득차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들이 대답합니다.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해석을 알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꿈의 해석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 꿈을 내게 고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해석해 드리리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기 자기들이 꾼 꿈을 요셉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뒤 그의 해석대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제 삼 일째 되는 날 애굽 왕 바로의 탄신일이었습니다. 요셉이 해석해 준 그대로 술맡은 관원장은 자기의 자리에 복귀를 했습니다. 그러나 떡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려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림을 받은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만 2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똑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모든 술객들과 박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바로는 그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해석하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도 능히 해석하지를 못했습니다. 그제야 술맡은 관원장은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요셉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다 고해 바쳤습니다.
바로는 즉시 사람을 보내서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 왔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해 주었습니다. 바로가 보니까 요셉은 하나님의 신으로 감동해서 지혜와 명철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발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온 땅을 치리하는 사람으로 세움을 입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요셉의 삶을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엄청난 시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종살이도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섭리하셔서 모든 것이 요셉에게 선이 되도록 합력하여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요셉에게 형들의 미움이 있었으니까 그가 애굽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또 애굽으로 가서 그가 종살이를 하다보니까 보디발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이 있었으니까 그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으니까 애굽 왕 바로의 두 신하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가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기 위한 하나하나의 과정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의미 없는 시련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예비하시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오늘이 어렵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십시다. 너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지 마십시다.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내일이 있지 않습니까? 시련 너머에는 우리가 받게될 축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인내하고, 앞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요셉은 꿈을 붙들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요셉은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요셉이 이런 마음을 가졌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에라, 모르겠다! 이제는 내 인생 끝장이다. 되는대로 살자!"
그러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요령이나 피웠더라면 아마도 요셉은 노예로써 자신의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남의 집 종으로 사는 주제에 이것저것 따질 것이 무엇이야? 그저 되는대로 살지!"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요셉은 쉽게 유혹에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에, 요셉은 그 꿈을 붙들고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을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엉망진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왜 그렇습니까? 너무 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데 왜 우리 스스로가 삶을 포기합니까?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의 일화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하루는 파가니니가 많은 관중들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연주를 하는데 갑자기 줄 하나가 툭 끊어져 버렸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내려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은 세 줄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계속해서 연주했습니다. 또 잠시 뒤에 두 번째 줄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계속해서 연주했습니다. 잠시 뒤에는 세 번째 줄마저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마지막 남은 한 줄을 가지고서도 자기의 연주를 성공적으로 잘 끝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 인생의 이런저런 줄들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또 끊어질 줄 알고 사셔야 됩니다. 건강의 줄도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돈줄도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나와 너 사이의 맺은 인정의 줄, 혈연의 줄도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으레 끊어질 날이 있을 줄 알고 사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믿음의 줄, 이 줄 하나만 우리가 든든히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연주하면서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붙들고 희망 속에 살아가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머지 않아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다. 절망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우리의 꿈을 새롭게 해주시고, 우리가 희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잃지 말고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십시다.

여러분의 삶이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참담하십니까? 요셉도 형들에 의해서 웅덩이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까? 요셉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 라헬을 잃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종살이하는 것처럼 지겹습니까? 요셉도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셔서 속상하십니까? 요셉도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희망 가운데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서 살았습니다. 그리해서 결국은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니까요.

미국의 산림 왕 김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수성가해서 미국의 산림 왕이 되었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고아원에서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삶의 실패자였습니다. 빈털터리가 되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김슨에게 물었습니다.
"나도 자네처럼 부자가 되고 싶은데 비결이 있으면 내게 좀 가르쳐 주게나!"
김슨은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그 비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보게, 내가 일러주는 대로 앞으로 몇 년간만 꾹 참고 해보게. 그러면 자네는 틀림없이 나처럼 부자가 될걸세. 만일 자네가 그렇게 했는데도 부자가 되지 않으면 내 재산의 절반이라도 떼어서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네. 약속하겠나?"

그들은 서로 약속했습니다. 김슨은 그에게 세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잘 섬기게. 앞으로 주일 성수하고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얼마를 주든지 간에 십의 일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바치도록 하게. 둘째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환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일하게. 셋째로, 누구를 만나든지 간에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게. 그러면 자네는 틀림없이 부자가 될걸세.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부자가 되지 않으면 내가 책임지고, 내 재산을 떼어서라도 자네를 부자로 만들어 주겠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부자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그는 김슨에게 단단히 약속을 하고는 밖을 나오는데 어느 공장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직원에 응모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월급을 얼마를 주든지, 근무조건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부자가 된 것은 확실하니까요.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은 그는 아무런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누구를 보든지 간에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또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에 대한 십의 일을 바쳤습니다. 그 뒤 일 년이 지나게 되었을 때, 그 공장에서 이웃 도시에 대리점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일 년 동안 그를 지켜본 결과, 그만큼 성실한 사람은 없다고 여겨져 그를 발탁해서 대리점 사장으로 앉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년이 채 가기도 전에 넉넉한 살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장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차 여행을 하다보면 긴 터널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 터널을 지나간다고 해서 미친 듯이 발광하고, 책을 집어던지고, 기차표를 찢는 등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조금만 참으면 밝은 세상이 나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궁극적인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이 친히 성취해 나가십니다.

오늘 힘들어도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내일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도 요셉처럼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 성공의 사람, 축복의 사람, 영광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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