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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가봇과 에벤에셀 (삼상 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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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때로는 이가봇 시대가 있었고, 때로는 에벤에셀 시대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가봇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렸다!" 이러한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버린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의 손에 붙인바 되어서 고통의 멍에를 메어야만 되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에벤에셀 시대는 다릅니다. 에벤에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도우셨다!" 이러한 뜻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시대, 그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승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드시고 지켜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는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가봇에 처해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에벤에셀에 처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스스로 살펴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과연 어떠한 때에 우리를 도우시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매순간마다 승리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때는 엘리가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엘리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제사장의 업무를 맡겼습니다. 엘리는 몸도 늙었지만 마음이 더 늙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도하지 아니하니까 한나가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그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나를 꾸짖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는 기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이 맑지 아니하니까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희귀했습니다. 그곳에 제단은 있었지만 기도가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 제단은 불꺼진 제단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시대에 이가봇 사회를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대단히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할 때 중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빼앗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는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음란한 짓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블레셋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맞아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떠나버렸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은 싸움에서 패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마저도 블레셋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소식이 엘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때 엘리의 나이가 98세였습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가운데 그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때 엘리의 자부, 곧 비느하스의 아내는 임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여러 가지 비극적인 소식이 한꺼번에 전해졌을 때 그는 갑작스럽게 해산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는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렸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가봇 시대, 곧 하나님의 영광이 그 사회를 떠나버릴 때 거기에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만 있었습니다. 불행과 비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가봇 시대를 마감하시고, 에벤에셀 시대를 새롭게 여시기 위해서 신실한 일꾼 한 사람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그는 누구였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사무엘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이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그렇게 해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경건했습니다. 기도 생활에 힘썼습니다. 그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지만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시면서 자신의 뜻을 어린 사무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사무엘이 점점 자라나면서 하나님은 사무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무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엘리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서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제일 먼저 전국적으로 회개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모든 이방신들을 다 제하고, 오직 참되신 하나님 여호와만을 온전히 섬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전역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열기가 무르익어 가게 되었을 때,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족속들로 하여금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운동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명에 따라서 미스바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물을 부었습니다. 물을 쏟아 붓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고 철저하게 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금식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블레셋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군대를 일으켜 미스바로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철병기로 무장한 군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로 모인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회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다 그들은 금식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말발굽소리를 듣게 되자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나아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을 위해서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양을 취해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큰 우뢰가 블레셋 사람들의 진 사이에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뇌성벽력에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뒤를 추격해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승전비를 하나 세웠습니다. 그 승전비의 이름은 "에벤에셀"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이러한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실 때는 큰 승리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에벤에셀의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어떠한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셨는지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그 명에 따라서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미스바에 다 모였습니다. 그러니 그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인 것이 자신의 육신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미스바에 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는데서 역사하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일 때에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숯불이라 할지라도 따로따로 떼어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길이 금방 사그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모아놓을 때는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신앙의 부흥운동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함께 모일 때 일어났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백 이십명의 성도가 함께 모였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할 때 오순절을 기해서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큰 권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모이기에 힘쓰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뭐가 그리 세상일이 바쁜지 요즈음의 교인들은 모이기에 힘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의 말씀입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교회 일에 충성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바쁘셔도 눈과 코는 뜨고 사셔야지요. 죽은 사람은 눈과 코를 뜨지 못합니다. 산 사람은 눈과 코를 뜨고 사는 것입니다. 정말 세상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 하나님이 "이가봇!"해버리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토록 눈과 코를 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주를 위해서 모이기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엘리 시대에는 모임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가봇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때는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다. 에벤에셀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모여야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여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꽉 찼습니다. 월요일은 달월(月)자이기 때문에, 초생달처럼 몸매를 날씬하게 가꾸기 위해서 테니스를 치는 날로 정해놓았다는 것입니다. 화요일은 불화(火)자이니까, 요리강습하는 날이랍니다. 수요일은 물수(水)자이니까 수영하는 날이랍니다. 목요일은 나무목(木)자이니까, 꽃꽂이하는 날로 정했답니다. 금요일은 쇠금(金)자이니까, 매듭화를 만들어 금속에 붙이는 날이랍니다. 토요일은 흙토(土)자이니까 땅바닥에 앉아서 붓글씨 쓰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스케줄이 꽉 찼습니다. 그저 주일날 하루 남았는데 그 날은 밀린 집안 일도 해야되고 친구들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들어가실 틈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가봇!"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테니스 치다가 허리를 삐끗하기라도 하면 병상에 드러누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강압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시기 전에,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보시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여러분이 조심하셔야 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섬기셔야 할 교회는 승동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교회를 섬기시라고 이런저런 직분을 주셨습니다. 집사의 직분도 주시고, 권사의 직분도 주시고, 구역장의 직분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에 충실히 감당하지 못하고, 자꾸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른 곳에 기웃기웃 거리면 되겠습니까? 그것도 총회가 인정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런 모임에 자꾸 가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교회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 앞에 함께 모이기에 힘쓰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함께 모여서 찬송부르고,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봉사하고 교제해야지요. 역마살이 끼어서 자꾸 교회 울타리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옳지 못합니다. 사탄이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욥기서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물으셨습니다.
"사탄아, 너 어디 갔다 왔느냐?"
사탄이 대답했습니다.
"예, 제가 여기저기 두루두루 돌아다녔나이다."
이렇게 교회 울타리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사탄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여러분,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사자가 배가 고픕니다. 아무리 힘이 없고 약한 짐승들이라 할지라도 무리를 지어있으면 사자는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잘난척하면서 무리로부터 이탈해 나와 혼자서 풀 뜯어먹는 짐승은 영락없이 사자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방주 안에 있을 때 안전한 것입니다. 총회에서 인정하지 않은 곳을 기웃거리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구원의 방주, 여러분이 섬기셔야 할 교회는 바로 이 교회입니다.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 앞에 모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무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이 블레셋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을 때,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미스바로 올라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철병기로 무장한 군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싸우기 위해서 미스바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성회를 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무기다운 무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을 향하여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부르짖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9절 말씀을 보십시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조국을 위해서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피를 토하면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큰 우뢰를 발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할 때 때로는 묵상으로 말없이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듯이 사근사근하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때로는 사무엘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야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피땀 흘리시면서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지 않습니까? 심한 통곡과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도 부르짖을 때는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린 아이들이 동구밖에 모여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놀 때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습니다. 무릎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집으로 뛰어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집 문을 열면서 무엇이라고 부르짖습니까? "엄마!"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에게 따로 물어보지 않고도 미리 상황을 짐작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의 상처를 물로 깨끗하게 씻어주고 약도 발라주어서 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 아이가 지금 무릎은 까져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집에 오면서, "내가 어머니 앞에 가서 무엇이라고 말을 할까?"라는 생각에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가 종이에 할 말을 적었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 와서 어머니 앞에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자기가 적은 것을 읽었습니다.

어머님 전상서

때는 바야흐로 6월 초순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점점 무더워져 가는 가운데
기체후일량 만강하옵십니까?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오라 황송하옵지만 불초 소자가 그만 실수하여
무릎을 까져서 다쳤나이다. 통촉하시고 어머님의 사랑의 손길로 치유하여
주시면 백골이 난망하겠나이다.

이것을 들은 어머니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놈아, 너 미쳤냐? 내가 네 계모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렇게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앞에서 기도하는데 무슨 체면을 차릴 것이 있겠습니까? 시50:15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는 부르짖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십니까? 혼자서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뢰를 발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그냥 부르짖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이가봇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에벤에셀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도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를 때도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도 내 마음을 다해서 최상의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6:24의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봅니다. 여기에 양손이 있습니다. 오른손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라고 하면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또 왼손으로 네모 반듯하게 정사각형을 그리라고 하면 그것도 쉽게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빨리 그리라고 하면 아무리 재주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마음으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전심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무엇을 보시든지 늘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를 보시면서도 예수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저 하찮은 새도 다 먹여 주시는구나!"
예수님은 들에 있는 들풀을 보시면서도 그냥 무심히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지어질 저 들풀도 내 아버지께서 잊지 않고 저렇게 입히시는구나!"
예수님은 아름다운 꽃을 보시면서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저렇게 아름답게 입히셨구나!"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무엇을 보든지 간에 늘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다윗은 자신을 향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62:5의 말씀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저녁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형통할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권고할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쁠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슬플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탈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모이기를 힘쓰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에벤에셀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셨을 때 이스라엘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세 가지가 나타났습니다.
첫째로, 블레셋이 굴복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둘째로, 잃었던 땅을 회복했습니다. 14절 상반부 말씀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셋째로,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14절 끝 부분 말씀입니다.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고, 또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 온전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도우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잃었던 것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잃었던 땅도 회복시켜 주시고, 잃었던 건강도 회복시켜 주시고, 잃었던 기쁨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화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슬픔이 바뀌어서 기쁨이 되고, 불평이 바뀌어서 감사가 될 것입니다. 곤고한 삶이 바뀌어서 감동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에벤에셀의 도우심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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