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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볼로 (행 18: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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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여의도제일교회)

금번 베트남의 사랑제일교회당 헌당식 보고는 선교부장의 별도 보고가 있겠습니다만,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공산국가는 어디든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성직자 양성을 금하였기에 목사임직을 할 수 없었답니다.
그러다가 최근 개방정책에 의하면서 목사 서너 명을 임직하였는데
이들은 신학교에서 정규신학교육을 받은 목사가 아니라 교회에서 실천만 배운 목사랍니다.
자연 이들은 기초가 약해서 이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곤 한답니다.

이쯤 되니 이들을 다시 지도하는 것도 현지 선교사들의 몫이랍니다.

1) 흩어진 나그네

하나님 나라에는 언제든, 어디든지 가서 사는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나그네가 있습니다.

이들은 한 곳에서 정착하며 안주하여 살기 보담은 정든 고향을 떠나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적 나그네입니다.

◦ 베트남에도 그런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성직자의 신분으로는 장기 체류할 수 없기에 어느 회사의 주재원이나 혹은 사업가로 체류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 최근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김선일씨나 그가 속해 있던 가나무역도 그와 같은 디아스포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볼로도 그와 같은 인물입니다.

  행 16: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또한 이러한 아볼로를 잘 가르친 브리스길라와 아볼로 부부도 디아스포라입니다.

이들의 직업은 신분용이고,
이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확장」이었으며,
주 사업은 「제자 훈련」이며,
십자가의 「복음전파」입니다.

감사하게도 마지막 시대의 디아스포라는 우리 신민족인 것 같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잘 적응하며 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 선교사들의 말씀인즉 우리네의 얼굴색이 희지도 검지도 않아서 좋고, 체구역시 크지도 작지도 않아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답니다.

문제는 그들의 경건의 능력입니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자기 충전의 기회가 적기 때문입니다.

2) 아볼로

아볼로의 경우도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하며 열심히 예수의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즉 깊이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깊이가 없으면 부실이 우려되고 효과가 상실되며 존재의 의미조차 무산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재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산업현장은 기술의 재교육을 합니다.
첨단기술을 통해서 생산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군대 역시 여러 모양의 재교육을 합니다.
달라지는 시대와 병기와 전술을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르치지 않으면 생산적일 수 없기에 망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을 복음으로 석권한 것은
그냥 다녀서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는 곳 마다
◦ 하나님 나라를 강론했고(행19:8)
◦ 가는 곳마다 제자를 따로 세웠습니다.

  행 19:10 “이같이 두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서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교회교육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 많이 모이는데 있습니까?
◦ 다분히 종교적인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까?
◦ 열심적인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까?
◦ 학문적인 사람을 만드는데 있습니까?
◦ 아니면 성경에 능한 자를 만드는데 있습니까?

아닙니다.
교회 교육의 첫 번째)는 하나님 사람 되는데 있으며,
두 번째)는 흩어진 나그네 되는데 있으며,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승리에 있습니다.

  행 18: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우리나라가 복음의 역사 120년 만에 복음의 강대국이 된 것은 교회교육의 승리입니다.

이제는 청년들이 복음 안에서 디아스포라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축복해야만 합니다.

베트남으로 출국하는 날
한 무리의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마포 모 교회의 청년부인데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위해서 2주간 봉사차 가는 길 이었습니다.

일종의 디아스포라 훈련이고 또 다른 아볼로 교육인 셈입니다.

3) 전략적 교육

마지막 시대의 교회교육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공룡이 멸종된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시대에 변화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는 학설에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알고 전해야 할 복음은 절대적 진리이기에 변화할 수 없습니다만,
그 복음을 담는 그릇, 즉 방법이나 제도는 변화해야 합니다.

한 여행자가 프랑스의 한 초원을 달리다가 푸른 소떼를 보곤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떼를 20분 정도 보니 곧 싫증이 났습니다.

그때 스스로에게 상상을 유발시켜 보았습니다.
저 소떼가 보라색이었으면 어땠을까?
여행자에게 소떼는 「누런 색」으로 각인 되었다가 이제 보라색 소떼로 새롭게 상상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는 도리」를 식상케 보고 있으며 식상케 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① 「더 자세히 풀어」를 적용하여 시청각 교육이나 미스 미디어를 통한 교육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때 벌써 시청각 교육을 하셨습니다.
◦ 공중 나는 새를 보아라
◦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또한
② 차별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회 교육은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교회의 쇠퇴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은 탓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외면하고 대신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부터 교회는 쇠퇴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어 교회에 오는데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으니
교회 올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도록
하나님은 교회에게 하나님 말씀을 신탁시켰음을 믿어야 합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③ 사실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세상은 과장광고 과대포장도 합니다만
교회는 과대는 고사하고 사실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고 따르고 전하는 이들의 모습에 복 있는 자로써의 모습이 뒷받침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지에 끌려가는 모습이라면...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쩌다 찾아보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생활의 등불삼고 걸음걸음의 빛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고역으로 보이고 있다면....
이토록 잘못된 모습이 불신자와 자녀에게 각인되어 복음이 거부되고 교회생활이 고난하게 인식되고 있으니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일입니다.
보아왔던 목사님 전도사님은 피곤하고 가난하고 약한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그 덕에 목사 되기를 마다했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잘못 본 아이의 탓도 있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한 목사 전도사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와 교회생활은
◦ 고된 삶이 아닙니다.
◦ 천국생활입니다.

아이들에게 햄버거와 피자와 놀이동산보다 낫도록 
어른들에게는 골프장, 야구, 축국관람보다 월등이 낫도록 인식 시켜야 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보이도록 힘써야 됩니다.

아볼로에게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좋은 성품의 아볼로 이었지만, 신앙은 얕았습니다.
결국은 깊은 신앙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교회 교육은 깊습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됩니다.

이러한 교육은 교회만이 아닌 가정에서도 이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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