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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생활은 건강합니까?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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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주철 목사 (영신교회)

요한계시록에 보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듣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가 복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복을 받고 저기서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 뿐만 아니라 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짐승까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또 그렇게 길지 않는 세월동안 목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많은 교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설교 듣는 자세를 보면 저 사람이 어떻게 되겠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말씀을 듣는 자세를 보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듣는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의 문제가 많은 장로님은 말하기를 자기는 설교를 들을 때에 50%밖에 안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50%는 어떤 말씀을 듣습니까?"라고 하니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듣고,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안 듣는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힘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다른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무슨 음식이든지 가리지 않고 아주 맛있게 먹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대체로 비실비실 하는 사람은 입이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같이 음식을 먹어보고 음식을 가리는 사람하고는 놀지 말라고 했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성질도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힘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밥상에 올려놓은 것은 무조건 다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건강도 먹성이 좋아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좋아야 합니다. '커밍 워크' 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책 한 권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으로 성공하는 비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능도 기술도 아니고 삶의 자세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듣는 자세, 예배하는 자세, 기도하는 자세, 말씀 듣는 자세,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하는 자세, 거기에 운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붙잡으십시오. 이 말씀에 의지해서 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면서 한 주간을 사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와 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인생에 닥쳐오는 저항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때는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항이 없으면 비행기가 뜨지 못합니다. 저항이 없으면 비행기가 날지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바람의 저항은 비행기를 날개 하는 축복입니다. 사람은 역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장애물 앞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장애물을 만나지 않고는 위대한 일을 이루기는 절대로 어렵습니다. 역경은 삶의 스승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을 활짝 펴십시오. 그리고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너도 세상을 이길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급한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새 부대를 만드는 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포도주를 준비했느냐, 안 했느냐는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부대에 축복의 포도주를 담아야 할 것인가를 보십니다. 포도주를 준비하는 작업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그 포도주를 담는 부대를 준비하는 작업은 내가 해야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더럽고 지저분한 부대를 가지고 어떻게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짧지 않는 세월을 목회 하면서 축복 받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축복이라는 것이 절대로 하나님이 그냥 주는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변화의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은혜를 따라 제단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를 붙잡습니다. "그래, 이 말씀이 내 말씀이야!" 이 한 말씀을 붙들고 일주일을 사는 그런 변화의 작업이 있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영신교회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변화된 삶 속에서 복을 받은 사람들이 가득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서 하나님 앞에서와 교회 앞에서 내가 말씀을 붙잡고 살았더니 이런 복을 받았노라고 간증할 수 있는 믿음의 식구들이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10년, 20년, 일평생을 다녀도 변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종교놀이만 하고 종교장난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 속에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 어디든지 심판관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변화의 등대가 되십시오. 희망의 등대가 되십시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슨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잠깐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진리를 찾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 길로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잡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래서 내가 나를 감격시키는 그 깊은 좁은 세계에로 들어가십시오. 파고 들어가 보십시오. 세상이 변하고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변화시키는 이 진리의 샘이 있기에 양보할 수 없다는 그런 확신과 감격에 살아보십시오. 요즘 사회가 가정을 변호해 주고, 지켜주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사회 환경의 변화로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 치명적인 손상과 손실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이 역풍을 맞아서 항로를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주소 하나만 열면 마약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어마어마한 일들이 우리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밤을 새면서 마약보다도 더 무서운 것에 지금 심취되고 있습니다. 어느 위대한 부모도, 어느 건축가도, 어느 잘난 부모도, 전파를 막을 수 있는 집을 지어줄 수는 없습니다. 전파를 막을 수 있는 담을 지어 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지혜도 경험도 판단력도 모자라는 어린아이들이 호기심과 무방비로 염병처럼 번져 가는 새로운 사회 환경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깨어지는 가정이 많습니다. 무너지는 가정이 많습니다. 내 아이들의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내 가정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내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제비는 인간이 뽑아도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타락하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 앞에 끊임없는 순종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내 가정을 지켜주옵소서. 나를 지켜 주시고, 내 아이를 지켜주옵소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의 세계를 어떻게 시간마다 바꾸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신뢰를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나를 보아도 대견하고 감격하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조작과 기만과 술수와 위선과 거짓과 가면과 허세와 허풍과 방종과 탐욕으로부터 탈출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로 나아가십시오. 모든 낡고 냄새나는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것을 시작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제발 인생을 헛살지 마십시오. 헛되고 헛된 것에 미쳐 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게서 감동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나 자신에게서 감동을 받으십시오. 자신의 삶에서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감동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나를 바라보는 이 기쁨의 세계를 좀 맛보고 사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자기 자존감을 세워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와 교우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에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전에 이방인으로 있었을 때에 행하던 그 허망한 생활을 이제는 버리라" 그러면서 옛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18절과 1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고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그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의 생활은 불신의 이방인들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실적으로 당시에 에베소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 빠져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이상한 교인 아닌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이상한 교인들이 어디 그 시대에만 있었을까요? 오늘 이 땅의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제직이 되고 중직을 맡은 사람들 중에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온갖 더러운 짓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는 어떤 교회의 어떤 중직자는 가끔씩 주일 아침예배를 마칠 때 쯤이면 술집 아가씨가 술값 받으러 옵니다. 물론 이 땅의 교회 안에는 과거의 죄악된 옛 생활을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걱정과 비난의 소리를 동시에 듣고 있습니다. "저게 무슨 교회라고. 저게 무슨 신자라고" "저래가지고 교회가 되겠나?"

그래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 앞에 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생활은 건강합니까? 오늘 여러분은 진정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도덕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또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도덕적 감각을 잃어버리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그런 생활을 이제는 그만 두셔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모든 생활의 양태들을 깨끗하게 청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될 그런 건강한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믿는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결단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그 해답을 간단하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 17절과 22절의 말씀입니다. 먼저 1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22절을 또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기 시작했으면서도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그들과 같은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던 에베소 교회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말한 이방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가 말하는 이방인,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첫째는 허망한 일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해진 것과 마음이 완악해진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죄의식도 부끄러움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는 그 결과로 온갖 더럽고 끝없는 탐욕과 방탕에 자신을 내맡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것이며 영적으로 죽은 것이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진리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심령이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는 것은 곧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생활을 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교인들을 향해서 외쳤던 이 권면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다 무지와 완악한 마음과 허망함과 더러운 욕심과 방탕 속에서 산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옛 사람을 그대로 입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건강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신다면 허망한 일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여기에서 허망하다는 말은 "쓸데없다" "아무 열매가 없다" "아무 유익이 없다" "목적이 없는 방향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헛된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유다서에서는 이런 삶을 가리켜서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 우리들 주위에 허망한 꿈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요행심리가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도박이나 복권에 빠져듭니다. 사실, 오늘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심각한 병적 현상 가운데 하나가 도박과 복권이라고 단언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보십시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치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자신을 숨기고 기형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형제와 친구간의 관계가 파괴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박은 또 어떻습니까?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가정을 보면 대부분의 그 가족들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박하는 사람들 치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도벽이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면 주변에 도박에 빠진 사람들을 한 번 보십시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사회적인 통계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결국 부모가 허망한 일에 마음을 두면 그 자녀들까지도 자라면서 허망한 일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땀흘려서 정정당당하게 벌지 아니한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이 마음이 바로 허망한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총명이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어두워진다는 말은 마음이 어두워진다, 혹은 장님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허망한 일에 마음을 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려고 합니다. 자기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가족들을 오히려 원망합니다. 그 마음의 판단력이 마치 장님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집니다.

19절에 보니까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감각 없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감각이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을 말합니다. 도무지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합니다. 더러운 것을 더럽게 느끼지 못합니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그것이 부끄러운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방탕에 방임하여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방탕에 방임한다는 말은 "삶에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삶에 뚜렷한 기준이 없으니 욕심대로 육체의 정욕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술집을 기웃거리고, 술에 취하여 길거리를 배회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영적인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허망한 일에서 마음을 멀리하십시오. 방탕한 생활을 거부하십시오.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건강한 생활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감격하고 감동할 수 있는 그런 자신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도 아직도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가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건강한 생활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정말로 회개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삶의 결과는 모두가 허무로 끝을 맺습니다. 방탕하게 사는 삶에는 열매가 없는 허망한 인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감각이 없이 사는 것은 자신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없는 허망한 세월을 살 뿐입니다. 이것을 버리지 않고, 이런 삶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결코 건강한 생활을 보여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술 취하고 방탕한 생활을 내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옛 사람의 모습과 습관은 벗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사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을 보면, 좋은 습관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생활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복을 받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생활이어야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잘 배웠다면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만 산다면 우리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야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은 어떤 상태가 아닙니다. 복은 존재의 인식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과 저주를 함께 주셨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11장 26절에 보면 "복과 저주를 두노니 너희가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선택 뒤에 오는 후속 결과는 부득이 내가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봄이 될 때 내가 씨를 뿌리는 것은 내 마음 대로입니다. 그러나 뿌린 다음에 가을에 거둘 때는 그것은 심판입니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선택한 데 대한 결과로 따라오고 때로는 심판으로 내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말씀합니다. 복된 환경이 있는 게 아니라 복된 사람이 있습니다. 복된 사람이 있고 복된 존재가 있고 복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된 길이 있습니다. 복된 자가 되면 그는 복된 길로 가고, 복된 길로 가는 자에게 복이 따릅니다. 복은 뒤따르는 겁니다.

오헬로라고 하는 사람이 쓴 '소매치기'라고 하는 조그마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소매치기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주머니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를 다 압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주머니에 돈이 두둑하게 들어 있으면 생기가 팔팔 납니다. 그러나 코가 쭉 빠져 있는 사람은 천 원짜리 몇 장만 들어 있습니다. 도둑놈이 그 사실을 먼저 압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얼마나 소매치기를 잘하는지 나중에는 남의 돈을 전부 꺼내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소매치기한 돈을 모아 떼부자가 되었습니다. 떼부자가 되니까 그 주위에 미녀들이 몰려듭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의 숲 속에서 재미있게 살고,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소매치기 버릇은 버리지를 못합니다. 감쪽같이 소매치기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년 부인이 지나가는지라 그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냈습니다. 지갑을 꺼내면서 슬쩍 얼굴을 보니까 어디에서 본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굴까 생각하다가 머리에 떠올라 무릎을 쳤습니다. 그 부인은 다름 아닌 옛날에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항상 자기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단짝이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지내던 단짝이 숙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것을 모르고 꺼냈습니다. 그 때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단짝은 이렇게 훌륭한 숙녀가 되었는데 나는 도둑놈이라니 이 꼴이 무엇인가?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지갑을 돌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해서 그 옛날에 단짝이었던 숙녀의 도움을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나온 날의 온갖 즐거움이 사실은 참 즐거움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공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참 성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다 보니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은혜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가정이 복된 생활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은혜 충만한 삶을 사모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꿈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아서 나와 내 가정이 복된 생활을 누리는 것으로 여러분의 삶의 목표를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건강한 생활을 살아가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 도덕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는 버림받은 자의 생활을 이제는 좀 청산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듣고 배운 그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새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새 사람은 건강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새 사람임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다시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생활은 건강합니까? 여러분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갑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깨끗하고, 더 건강한 생활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교회는 결코 은혜로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지 못하다면 여러분의 가정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만 할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래도 나름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 보여 드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건강한 생활을 하면 여러분 자신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와 가정이 행복할 것입니다. 옛말에 부모는 아이의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올바르고 거룩한 믿음 생활을 해서 건강한 삶을 보여준다면 여러분의 아이들도 자라서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건강하지 못하고, 허망한 것을 쫓아가고, 그래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면 분명한 것은 여러분의 아이들도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이 아이들에게 저주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생활이 아이들에게 기쁨이 되고 복이 되어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생활을 추구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새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정말로 뭔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철인 '피타고라스'는 한 번 주어진 이 엄숙한 인생, 이 존귀한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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