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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떠나지 아니 하겠나이다 (왕하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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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영태 목사 (청북교회)

역사는 누가 이끌어 갑니까? 소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한사람이 소명이 없는 사람 100사람을 끌어가기도 하고 천 사람을 끌어가기도 합니다. 군부독재에서 6, 29선언을 이끌어 낸 것은 국민 전체가 다 군부를 물리치기 위한 노력이나 운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무관심이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소명감을 가지고 자신이 손해 보는 것도 모르고 힘써 일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역사가 다 그렇습니다.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합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제자가 많았지만 소명을 가진 제자들만이 일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세웠지만 소명을 가진 사람들만이 일을 했습니다. 스데반 빌립 집사 외에는 흔적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명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였습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30세 때 "이제 나는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였던 30살이다. 더 이상은 어린애같은 짓과 헛된 일을 하지 말자. 주여, 오직 당신의 뜻만을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일기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녀 인생의 종반에 이르렀을 때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한 마디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군요. 그것은 , 나 자신이 하나님께 숨겨 두고 내놓지 않은 부분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계적인 외과 의사이자 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A. 켈리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날 밤, "나는 나 자신과 시간과 재능과 야망,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복되신 주님, 주께서 쓰시도록 나를 성켤케 하소서. 주님께로 나를 가까이 이끌지 못할 것이라면, 세상적인 어떤 성공도 내게 허락하지 마옵소서."라고 일기에 기록하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연세대 설립자의 손자인 언더우드 3세(원일한)에게 기자가 당신은 왜 낯선 한국 땅에 와서 대를 이어 일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소명 때문]이라고 간단히 답했습니다.

헬렌 켈러는 선생님 셜리반 없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셜리반은 헬렌 켈러를 48년간 개인 지도한 가정교사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기 때 어머니가 죽고,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하나뿐인 동생도 병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녀 역시 안질이 악화하여 실명하였습니다. 두번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구명되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바아바라 신부였습니다. 신부는 절망적인 소녀에게 십자가를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과거에는 종지부가 찍히고 사랑과 소망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전개되는 구원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보스톤 파킨스 맹아학교에 들어가 6년간의 분투 끝에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이 성공하였습니다. 맹 농 아 3중고의 짐승 같은 소녀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하였습니다. 무녀 48년을 그를 돌보았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소명의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고통받는 인류에게 소망의 등불이 된 위인 헬렌 켈러를 길러냈습니다. 필라델피아 템풀 대학이 헬렌 켈러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할 때 셜리반에게도 박사학위를 수여했습니다. 소명의식이 분명히 있는 사람들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시대를 변화 시킵니다

오늘 성경에는 엘리사라는 소명을 받은 선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입니다. 사람들은 신분이 낮아서 일을 못한다. 직업이 그래서 또는 배운 것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을 하는데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명감입니다. 엘리사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레위지파도 아닙니다. 농사짓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소명감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지 살펴보고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1, 그는 엘리야를 떠나지 아니 하였습니다.
한번 먹은 맘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봅니다. 이유가 많습니다. 이래서 떠나고 저래서 떠납니다. 눈꼽만큼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손해를 보아도 나는 여기 남겠습니다. 하는 사람 별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어떻습니까? 1절에서부터 보면 세 번이나 권함을 받았음에도 그는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6절에도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엘리사는 사생결단으로 끈질기게 계속하여 엘리사와 함께 동행 하였습니다. 그 길이 평안한 길입니까? 고생길입니다. 위험한 길입니다. 아무 보장도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떠나지 않습니다. 이일이 그에게 축복이 된 것입니다.

룻기에 보면 끝까지 떠나지 아니함으로 축복을 받은 여인이 소개 됩니다. 누구입니까? 룻입니다.
룻 1: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여 룻은 끝까지 어머니를 봉양하였더니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기에 끝까지 소명을 지키는 자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 주님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끝까지 견디는 것, 끝까지 따라가는 것. 끝까지 떠나지 않는 것. 이런 소명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입니다.

2,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2:9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 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갑절의 영감.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스승 엘리야 선지자를 도왔듯이 자기 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절의영감입니다.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하나를 도와 주셨다면 자기는 둘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무엇이 필요 합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소명을 받고도 전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사실은 실패가 많습니다. 무슨 힘으로 합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노래하면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했습니다. 갑절의영감이 있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입니다.
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하나님이 엘리야의 하나님에서 엘리사의 하나님으로 임재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엘리사는 하나님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요 자신의 하나님이란 실감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나의하나님으로 부르지 못하고 엘리야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목사의 하나님, 장로의 하나님, 또는 어느 권사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시기 바랍니다. 누구누구의 하나님으로는 안 됩니다. 나의하나님이 아니고 누구, 누구의 하나님이 되기에 약해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될 때 힘이 생깁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반석이시며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하나님 그는 나의여호와 나의 구세주♫

능력이 생겼습니다. 힘이 생겼습니다. 갑절의영감이 생겼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시 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6: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소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도움을 구하며 하나님을 나의하나님으로 모실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될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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