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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기념] 든든히 서가는 교회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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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트는 자동차 산업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대기업의 총수가 됐습니다. 그는 그의 고향에 작은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아주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기술도 있습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이 집은 회장님이 사시기 에는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이 불편해서 어떻게 합니까?” 주위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포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는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면 그 곳은 위대한 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혼돈입니다. 교회도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교회가 가장 이상적인 교회였습니다. 비록 환란과 핍박 속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당회나 제직회가 있었던 것 아닙니다. 기껏 마가의 2층 다락방에 숨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는 사랑의 용광로 자체였습니다. 사명에 불타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 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현대 교회가 가야할 지침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복음전파, 말씀교육, 봉사,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하나가 모자라도 균형을 잃게 됩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골고루 갖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교회는 대단했습니다.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일에는 흥미가 없고 사교생활에만 흥미를 느껴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도망갔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여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다. 그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로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인류가 그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같은 해 다른 한 아이는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고 자라났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였다. 이 소년은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그가 바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이다. 1944년 6월 6일, 이들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대면하였고 11개월에 걸쳐 싸웠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해 했다.(국민일보 2027호)

우리 교회는 금년이 쉰여섯 해 되는 나이입니다. 정말 든든히 서 가는 교회입니다. 사랑과 화평으로 전진하는 교회입니다. 1948년 7월 17일 대구시 중구 태평로 2가 218번지에 대구 제일교회 설립 50주년(희년)기념 사업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1949년 1월 1일 당시 신명여자 중고등학교 교목이셨던 최정학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겸임시무 하셨습니다. 1950년 1월 15일(주일) 본 교회에서 당회를 모였습니다. 최정학 목사님과 채문희, 우달현 장로님이 당회원이셨습니다. 결의에따라 교회 이름을 문화교회라 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문화동시대, 동인동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문화동시대는 태동기와 수난기라 볼 수 있습니다. 문화동시대는 교회가 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많은 어려움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교회는 자랐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넘어지기도 하고 감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도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교회는 선한 사람만의 집단이 아닙니다. 하나남의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특수단체입니다. 그래서 저는 “든든히 서가는 교회”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는 모름지기 교회다워야 합니다. 사도행전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And all that believed were together, and had all things common, And sold their possessions and goods, and parted them to all men, as every man gad need.)라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교회는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얼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My little children, let we not love in word neither in tongue, but in deed and in truth.)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요일 3:23) 사랑이 교회의 힘입니다.

황수관 박사는 건강 10훈이란 강연에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욕심은 건강을 해칩니다. 베풀게 되면 건강이 크게 좋아진답니다. 그 이유가 있답니다. 베푸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뇌 속에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 베타엔돌핀, 노에피네피린등 10여 가지 이상이 동시에 분비된답니다. 죽을병에 걸린 로걸러가 53세에 절망이었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습니다. 몸은 이미 다 망가졌습니다. 평생 구두쇠 소리를 들었습니다. 허무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 몸에 돈 독이 올라 내가 죽는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그는 건강이 회복되어서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덤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 쓸 것 다 저축해 놓고 여유 돈으로 베풀려고 하면 평생 조막손이 됩니다. 눈치보고 베풀려고 하면 못합니다. 남 하는 것 보고, 나도 저 정도쯤 하겠다고 해도 못합니다. 마음에 감동이 오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랑은 깎는 것이 아닙니다. 에누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흥정하는 것 아닙니다. 제사 지내는 사람은 제사상에 차리는 것은 제일 좋은 것 절대 에누리 하니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과 화평으로 전진합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더 소문이 나야 합니다. 이젠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었습니다. 1988년에 중구 인구가 22만이었습니다. 이제는 8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여자들이 아기를 적어도 둘, 셋을 낳았습니다. 이제는 1.3명밖에 낳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이 절반가까이 줄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20년 전에는 유치부 100명, 유년부 100명, 중등부 100명, 고등부 100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위기입니다. 그러니 사랑이 아니면 전도가 안 됩니다. 그들에게 생명의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세계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문화는 변했습니다. 살 길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 아우성입니다.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무엇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복음밖에 없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이 생명의 소식입니다. 인류의 살 길은 단 하나 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돌 자가 없느니라.”(요 14:6)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모든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교회는 살아 있었습니다. 사랑이 넘쳤습니다. 이 사랑이 순교의 자리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날마다 모였습니다. 찬송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까움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구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회로서는 아주 불리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도심 속에 있는 초가집 같은 교회입니다. 소시 속의 시골 같은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는 한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다운 참 모습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은 교회의 심볼입니다. 사랑은 교회의 심장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은 신앙생활의 힘입니다. 열매이자 뿌리인 것입니다.



자주 모였습니다. 모여서 사랑의 떡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지금 사탄은 우리에게 예배에 자주 빠지라고 합니다. 주일 낮 예배 한번으로 다 된다고 생각하면 위험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으로 목회하면 이런 사람을 일꾼 세워라

① 모든 예배(주일 낮, 주일 오후, 수요 밤)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람

②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사람

③ 교회 봉사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는 사람

④ 남을 칭찬하는 사람, 긍정적인사람

이것은 믿는 사람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그리 쉬운 일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모든 학문이나 운동에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기초가 잘 된 교회입니다. 최경학목사님(1대 1948.12-1950.12.17) 박용욱 목사님(2대 1951.1.14- 1955.11.14)은 한국에서 가장 훌륭하신 부흥사이셨습니다.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하신 목사님이셨습니다. 이광우 목사님(3대 1956.5.5-1962.6.16)은 교리적 기초를 다듬으신 행정가이셨습니다. 교회가 혼란 할 때 어려움을 무릅쓰고 교회가 가야할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이종호 목사님(4대 1962.7.29-1968.6.2)은 신학자이며 부흥사이셨습니다. 조직 신학의 권위자이십니다. 대신대학교 학장으로 역임하셨습니다. 신세원 목사님(5대 1968.6.9-1984.11. 17)은 교수며 행정가로 장기간 교회를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문화동에서 동인동 현 교회로 옮기신 훌륭하신 분이셨습니다. 본 교단 총 회장, 총신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셨고 현재 서울 창신교회를 성공적으로 목회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능력 있고 유능하신 선배목사님들의 닦아 놓은 터 위에 교회는 든든히 서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대지 600평과 본관 3층과 교육관으로 별 불편 없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름지기 주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약 60개 교회와 기관을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 하시는 일입니다. 더 많이 도와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한창 어려운 IMF때 홍수처럼 쏟아지는 때지요. 우리 교회는 그들을 껴안았습니다. 무려 5년 동안 많을 때는 한주에 600명씩 모였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이는 양말, 외투. 목도리, 장갑, 우유를 주셨습니다. 교회에서는 돈 2,000원과 500원 방 1개씩을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예산이 책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자진한 사랑의 돈은 남았습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는 소문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긴 것입니다. 지금은 금년 2월부터는 실시하지 않습니다. 저는 늘 감사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언젠가는 그들의 고향에서, 집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1부예 배에 지금은 70명 내외가 잘 나오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임은 사랑이십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 하며 온 백성에게 찬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70주년 100주년 되는 그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젊은이들, 학생들, 우리 선배들이 지켜온 개혁신앙을 이어 갑시다. 우리의 희망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야 합니다. 안수집사님, 집사님들 지금 역사는 여러분들이 엮어가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를 바쳐서 이 시대의 일꾼이 됩시다. 결코 56년은 짧지 않습니다. 6.25전쟁도 겪었습니다. 4.19혁명, 5.16, 파란만장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잘 지내왔습니다. 신학적으로도, 가장의 분열, 고신과의 결별, 통합측과의 나누임, 다 가슴 아픈 일들입니다. 한국 신학은 너무 독선과 좌경으로 가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맺는 말 :

지금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싫어합니다. 이북에서 간첩으로 온 사람을 영웅시하면 큰일이지요, 지금 우리나라는 실업자문제, 너무 강한 노동조합, 정치적 급진세력, 다 위태위태합니다. 이와 같이 신학이 점점 좌경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위험한 신학의 흐름이 걱정입니다. 이단과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중심, 성경 말씀중심, 교회중심의 개혁신앙을 이어가야 합니다. 주일성수도 온전한 십일조 생활도, 기도도, 봉사도 해야 합니다. 어떤 외부세력이 와도 이 신앙을 지켜가야합니다. 윤리적 타락, 신앙의 타협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순교적 신앙을 지켜야합니다. 사랑은 넓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과 전임 목사님 성도들께 돌립니다. 감사하며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설립 56주년 기념 설교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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