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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아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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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시작되었던 2004년의 전반기를 마무리 하고 후반기를 힘차게 출발하는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 모두 받은 것들로 감사하며 경배 드리는 날입니다. 옆에 사람에게 축복하십시다. 우리 모두 많은 것들로 감사하며 경배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그 삶을 감사로 엮어가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성공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성공기를 쓰기 까지는 생각을 바꾸게 된 엄청난 계기가 있었다 합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초등학생 때 졸지에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혼자 살 수 없는 그는 삼촌 집에 맡겨졌고 어릴 적부터 삼촌의 농장 일을 도우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답니다.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 갔습니다. 동갑나기인 삼촌의 아들은 매일 놀고 자신은 힘겹게 일하며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불만 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나는 떠날꺼야...삼촌 집은 쳐다보지도 않을거야 했습니다. 시간은 지나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는 친구에게 자신이 살아왔던 얘기들을 하며 삼촌에 대한 불만을 쏟아 놓았습니다.
자신은 너무 힘들게 공부했노라고 그리고 일을 했노라고 “나는 삼촌 집의 개만큼도 대접을 못 받았다고” 그 불만을 다 들어 주던 친구가 정색을 하며 한마디 합니다.
“너는 삼촌에게 개만큼도 대접을 못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개만큼도 감사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충고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날부터 생각이나 삶이 바뀌게 되었고 모든 사건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고 감사를 말하고 감사를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는 그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감사합시다. 그대가 내 옆에 계셔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후반기를 출발하며 감사라는 열차를 타고 출발 합시다. 감사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말입니다. 오늘 예배 중에 후반기를 사는 삶의 자세가 발견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죽고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영도자의 삶을 맡긴 것입니다.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모세의 존재로 봐서는 큰 충격이었고 여호수아에게는 큰 두려움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요단을 건너야 하는데 여리고도 정복해야 하는데 모세가 죽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길들여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사람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는 누구입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금은보화를 돌덩이처럼 내 던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기원전 1446년, 애굽 제국의 바로의 억압 속에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200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팡이 하나들고 출애굽  킨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40년의 광야생활의 여정을 함께 했던 지도자였고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절대자였습니다. 초기 광야 생활 중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저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저들에게는 모세 없는 이스라엘을 생각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도 한정된 생명을 가진 인생일 뿐입니다.

진시황은 영원히 살기 위해 불로장생하는 약을 찾아 한국에게까지 사람을 보내었다 합니다. 엘리자베스여왕은 병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켜 주는 사람에게 대영제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흐느꼈지만 결국은 모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영원히 살수 없고 반드시 그 인생의 끝이 오는 것입니다. 무대에 올라갈 때에는 언제인가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이는 모든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도 가진 것 앞에서도 나는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위치에서든지 추해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 여야 합니다. 사람에게 메이는 신앙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이단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신앙의 중심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메이는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를 넘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께 속해야 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대가를 지불합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여야지 가지에 붙어있는 가지이면은 아니됩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죽었다 해서 가나안 정복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산빛나교회의 사역은 유재명 목사의 사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루시던 일들을 여호수아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대단해 보였지만 모세도 가야 했습니다.

엘리야도 자기 사명을 다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타락 앞에 당당히 하나님을 말하던 사역자였지만 몰려오는 문제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말하기를 나마져 죽으면 이스라엘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을 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 죽어도 7천인을 이스라엘을 위해 두었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 속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해 가십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역의 중심에 저와 여러분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사역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악착같이 매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을 쓰십니다.

여호수아는 40년이나 모세의 가장 가까이에서 섬겼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를 소개할 때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세의 시종이라고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이나 십계명을 받을 때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눈과 귀로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전쟁 때에도 모세는 기도의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전쟁터에 앞장서서 모세의 사역에 시종으로 섬겨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12명의 정탐꾼으로 다녀올 때도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으로 모세를 기쁘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보았고 믿음으로 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모세의 시종으로 살아왔던 여호수아를 하나님은 모세 다음에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삼고 그 사역을 이루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먼저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이기를 원하십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 정복의 사명을 안고 있는 여호수아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몇 명의 대학생들이 깊은 바다로 항해하는 배를 탓다고 합니다. 선장은 아주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어두운 구름이 밀려오며 바람이 거세지자 얼굴에 근심이 빛이 가득했습니다. 대학생들은 그런 선장의 얼굴을 보며 웃으며 이야기 합니다.
선장님! 뭘 그렇게 겁을 내고 그러십니까? 우린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때 선장이 대답하기를 그래 그럴거야... 자네들은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알기에는 너무 어리고 모르잖아?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에 보면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라고 말입니다.
7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9절에도 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후반기를 출발하는 우리에게 마귀는 세상으로부터 두려움의 소리를 들리게 합니다.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평안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말하기를 “요즘 경기가 어려워” “앞으로 힘들거야” “어떻게 살지?” 뉴스나 온갖 신문을 보아도 정말 힘든 소식만 들려옵니다.

사람들은 마귀가 심어준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가질 만큼 가졌는데도 이룰 만큼 이루었는데도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요즘 인사가 이렇습니다. 힘들지...? 어렵지...? 고기 먹으면서도 힘들지...? 어렵지...? 요즘 먹고 살기 힘들어... 놀러 가면서도 “ 요새 김 사장 힘들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후반기를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동행 해 주신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5절을 읽을까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보증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어디라도 가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무엇이라도 감당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모세가 행한 모든 기적들은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야 두려워 말라 라는 것입니다. 너도 내가 함께 하리니 무엇이라도 감당 할 수 있고  가나안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이것을 놓쳐버린 대표적인물입니다. 자신의 힘이 언젠가부터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머리카락이 잘린 처지가 되어 비참하게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크리스챤의 삶은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의 삶과 매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면 꼭 삼손과 같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늘 동행하신다 라고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갑니다. 무엇을 하든 공부, 직장, 사업들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더 나은 삶입니다. 세상의 종교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추구하는 것들이 바로 더 나은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입니다. 무엇을 하던, 사업을 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장사들 하던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공부를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합니다.
돈 좀있다고...출세 좀 했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에덴은 에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니 승리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은 승리를 확신하며 삶을 엮어 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라고 5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승리를 선포하며 후반기를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4절을 읽어봅시다.
주었노니...너희 지경이 되리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를 따 먹는 것입니다.
나의 앞으로의 삶을 축복하셨다고 믿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결과에 참예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구원받으려고요...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왜 다닙니까? 천국 갈려고... 우리는 이미 천국백성입니다. 기도는 왜 하십니까? 주님은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승리를 확신하고 더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 열심히 봉사하는 것입니다.
더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힘들 것이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대강 살겠습니까? 아니면 더 열심히 살겠습니까? 기도를 확신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삽니다. 하나님의 동행함을 믿는 사람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의 사람의 삶의 자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여호수아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축복을 이미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승리자로서의 삶의 자세와 축복을 받을 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후반기에 승리해야 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8절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보다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그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자 되는 것입니다. 입에서 부정 된 소리나 저주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서 그 입에는 하나님의 소리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리를 말입니다.
내 속에 어떤 감정으로 있든지 입에서 하나님의 원하는 소리로 열매를 맺고 받는 것입니다.
성숙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예배할 때는 거룩한 체 하지만 기도할 때와 회의 할 때 다른 입을 보여 주는 자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예배할 때나 회의 할 때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똑 같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8절에 또 말씀하기를 주야로 묵상하라고 말씀합니다.
시1:2절에도 복 있는 사람은 그 율법을(말씀)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야로 묵상하라는 말은 인생의 밤을 맞았을 때에도 인생의 낮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의 원하심에 반응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사람들이 됩니다.
시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 하시는도다 말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핍박에도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했고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사는 모습을 통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참된 모습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은 내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에 던져지라는 말입니다. 가능성이 아니라 계산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나버릴 세상 속에 던져지기보다는 말씀이 원하는 데로 던져지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믿고 풀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사자 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같은 공통점은 자신을 던질 때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업장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주여 후반기에는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여 던져진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하셨습니다. 좌우로 치우친다 라는 말은 목표에서 벗어나다라는 말이고 방향을 돌이키라 라는 말입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몇 번 안 되었다고 주저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람 분다고 비가 온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승리를 확신하지만 비어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강성한 성을 의지한 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이 원하면 아멘하여 던져지고
포기하지 않는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되어질 때 가나안의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정복보다 하나님을 더 신경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경 쓰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보는 것, 우리들이 여전히 고백하는 것이 후반기에도 하나님이 우리들의 모든 삶을 인도하시고 승리로 이끌어 가실 것을 확신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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