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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점이 분명한 삶 (눅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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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인천내리교회)

      <초점을 바로 맞추는 교회를 향하여>

      사진을 찍다보면 흐릿하게 나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대개 초점이 안 맞아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단 사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서 초점을 바로 맞추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미국 남가주에 새들백(Saddleback) 교회가 있는데 오늘날 가장 활발하면서도 건강하게 자라나는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이 이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이 분이 쓴 책 두 권이 계속해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입니다.

      이 분이 말씀하고자 하는 요지는 간단합니다. 교회이든지 개인이든지 간에 지향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워주실 때 어떤 목적으로 지어주셨는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내보내실 때 하나님은 거저 아무 목적이나 뜻도 없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위대한 성서 주석가였던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두 가지 위대한 날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태어난 날이며 또 다른 한 날은 우리가 왜 태어났는 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는 날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하필 나를 이 땅위에 태어나게 하셨는지 그 목적을 바로 아는 것은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하여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왜 사는지에 대한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는 것은 의미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려 놓고 하는 일은 많은데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반성 없이 할 때가 많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쳐다 볼 때가 많은 것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그 목적과 초점이 분명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초점이 서로 달랐던 두 자매>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두 사람이 나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마르다가 언니로서 가장인 것 같고 마리아는 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신앙 생활의 초점이 분명치 못했는데 마리아는 그 초점이 분명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실 때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때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님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셔들였습니다. 마르다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여동생인 마리아와 단 둘이 살았다는 사실로 볼 때 이 집안의 가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으니 마르다나 마리아나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에는 한 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해드릴 것인가 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초점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언니이자 이 집안의 가장인 마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 일행을 정성껏 대접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사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손님 환대는 아주 유별났다고 합니다. 유대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내방할 경우 정성을 다해서 최고의 대접을 해드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본문 40절 전반부의 말씀을 보면 바로 이 때문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고 했습니다. 준비하는 일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겼다는 것이지요. 마르다는 먼저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했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전기 밥솥도 없이 밥을 안치는 등 음식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을 것입니다. 밥상을 차리고 수저 놓는 일에 바빴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예수님 접대하는 일에 온 마음이 다 가 있었던 마르다와 달리 마리아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본문 39절 말씀에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언니 마르다가 이런 마리아를 보았을 때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40절 후반부에 보면 예수님께 달려가 신경질을 부립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우리 말 성경은 굉장히 점잖게 표현이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앙칼진 목소리로 예수님께 따졌을 것입니다. 고요했던 가정에 갑자기 평지풍파가 일어났습니다. 왜 자기만 이렇게 예수님 접대하는 일에 힘들게 고생을 해야하느냐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좀 도와주면 훨씬 더 수월할 텐데 왜 이렇게 예수님 발곁에 앉아서 말씀만 듣도록 그냥 내버려두시냐면서 불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마르다의 불평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중요합니다. 우리 41-42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마르다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마음이 들떠 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내적으로 마음이 분산이 되어서 어지러워졌다는 것입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님 대접하기 위하여 이것저것 너무 많은 일에 복잡하게 신경을 쓰다보니 염려하며 근심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마르다의 문제점을 지적하신 예수님은 곧이어 이제 마르다에게 가벼운 충고를 하나 주십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한 가지만 하여도 그것으로 족하다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한 일을 칭찬하고 계십니다. 마르다와 달리 동생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택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 좋은 몫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마르다처럼 부엌으로 돌아가 예수님 접대하는 일에 신경쓰는 일보다 이렇게 예수님의 무릎 옆에 앉아서 말씀듣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지요.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았던 반면에 마르다는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을 첫 번째로 중요한 것으로 혼동했던 것입니다.

      <마르다형의 신앙인과 마리아형 신앙인의 차이점>

      여러분, 지금까지 다 말씀드렸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마르다와 마리아는 무엇이 다릅니까?

      첫째로, 두 사람의 기질이 서로 달랐습니다.
      전통적으로 성서 주석가들은 본문 말씀을 실천과 명상의 대립관계로 풀었습니다. 마르다 유형의 사람들은 언제나 적극적이며 실천적인 타입의 사람들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마리아 유형의 신앙인들은 언제나 소극적이며 명상적인 사람들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똑같이 만들지 않으시고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르다와 같이 활동적이고 실천적인 사람들로 만드셨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와 같이 차분하고 명상적인 사람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명상이나 기도가 실천이나 사업에 앞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영성 운동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68)은 평생 동안 두 가지 주제를 놓고 씨름했습니다. 'CONTEMPLATION,' 즉 '명상'과 'REVOLUTION,' 즉 '혁명'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머튼은 관상(觀想)이나 독거(獨居)와 같은 영성 훈련과 불의한 사회를 개혁하는 실천, 두 가지에 초점을 모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머튼은 진정한 사회 개혁운동은 반드시 개인의 영성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우리 안에 다툴 때 항상 마리아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듣지 않고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은 초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 어떤 사업을 추진하든지 간에 이 모든 실천 행위가 우리의 믿음과 기도와 영성에 기초한 것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다운 인격과 영성으로부터 실천의 열매들이 흘러나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BEING)가 '행위'(ACTION)에 앞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두 사람은 어디에 더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 하는 초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접대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셨던 것은 많은 것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이것저것 분주하게 왔다갔다는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예수님의 귀한 말씀듣는 것을 더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드실 음식보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관심의 초점이 음식이 아니라 예수님 한 분의 인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말이나 소를 수레 뒤에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이나 소가 수레 앞에서 끌어야지 정상인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보면 예수님이 초점이 되지 않고 여러 가지 다른 행사나 사업이 초점이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이 성전이나 예배의 주인공이 되지 않고 성전이나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여러 가지 집기들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신앙의 우선순위를 언제나 예수님께 둘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신앙의 첫째가는 초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왜 영화학원을 붙들고 학원선교를 합니까? 우리가 왜 내리 요양원을 세워서 운영합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고 2차적이고 3차적인 사업에만 몰두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내리교회가 늘 긴장하면서 바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우리 교회 전체에서 무슨 일을 추진하든, 아니면 남선교회나 여선교회, 아니면 아펜젤러 선교회가 무슨 일을 주관하든지 간에 우리의 초점은 신앙적이고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잔치는 벌려 놨는데 주인공은 온데 간데 없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할 준비가 다 되어서 식장도 잡아놓고 주례할 분도 모셔놓고 피로연에 차릴 음식도 다 준비되어 있는데 정작 결혼할 상대가 없다면 이것은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내리 교회는 이 교회의 주인공이 언제나 예수님이 되어야 하며 언제나 신앙적이며 영적인 것이 프로그램이나 건물이나 사업보다 우선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두 사람은 무엇이 주님을 더 기쁘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 달랐습니다.
      마리아는 그 당시 유대적인 관습을 따라 예수님을 잘 대접해드리는 것이 곧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외적인 대접을 받기보다는 조용히 쉬고 싶어하셨습니다. 이제 넉 달 정도가 지나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야 할 터인데 제자들이 당신이 지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잘 이해하는 것을 더 바라셨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자기 딴에는 주님을 극진하게 대접하기 위하여 부엌에서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마음이 복잡하고 분주했던 마르다보다는 단순한 마음을 갖고 오직 하나 예수님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을 택했다면서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님이 더 기뻐하시고 더 원하시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주님이 더 기뻐하시고 더 원하시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예민한 양심과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마르다와 같이 우리 딴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막상 주님 자신은 별로 기뻐하시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사업을 벌려놓고 주님이 기뻐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주님은 더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을 더 기뻐하실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늘 분별해서 그것부터 해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르다도 필요하고 마리아도 필요하다>

      이렇게 마르다와 마리아가 서로 다른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일치점이 있었습니다. 둘 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리아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도 사랑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들인 사람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부엌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애쓰는 마르다의 마음을 아시고 마르다를 깊이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조용히 말씀듣는 마리아가 이것저것 복잡하게 마음이 분산되어 있는 마르다보다 더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마르다를 미워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떤 형제가 유명한 수도원 원장을 만나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이 그 곳 수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형제들을 보았을 때 원장으로 보이는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마세요.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 들음으로서 부엌에서 일하는 마르다보다 더 좋은 몫을 택하지 않았습니까?"

      노인이 이 나그네의 말을 듣고서는 제자 한 사람에 명령했습니다. "아무개야, 이 손님한테 성경책 한 권을 주어서 독방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말고 오로지 성경만 읽게 하려무나." 그래서 이 남자는 하루 종일 빈방에 들어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성경만 읽었습니다. 드디어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 이 사람은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방에 찾아와서 저녁 먹으러 오라는 소식만 눈이 빠지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남자는 수도원 원장 방에 직접 찾아가서 따졌습니다. "아니, 이렇게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저에게 저녁 먹으러 오라는 말을 하지 않으니 어떻게 된 겁니까?" 원장은 자기와 제자들이 이미 저녁 식사를 다 끝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식사할 때 손님인 저는 부르지 않았습니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자네가 워낙 영적인 사람인지라 세상의 썩어질 양식같은 것은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네. 우리는 육적인 사람이라서 이렇게 썩어질 양식을 위해서 일했고 우리가 일해서 얻은 양식을 가지고 오늘 저녁을 해서 먹었다네. 그러나 자네는 마리아와 같이 더 좋은 몫을 선택해서 하루 종일 성경책만 읽고 있었으니 자네는 우리처럼 썩어질 양식을 먹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말을 들은 남자는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서는 제발 자기가 했던 말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마리아형의 사람들이 많아야 하지만 마르다형의 사람들도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말씀듣고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만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야 합니다. 우리 인격 안에 마리아적인 성향과 마르다적인 성향을 반반씩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되 마리아적인 것이 우선이 되도록 하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못하더라도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르다형의 사람들은 마리아형의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귀담아 듣고 열심히 기도하는 이들이 있기에 교회는 신앙 공동체요 영성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르다와 같이 열심히 봉사하는, 사업가적인 추진력을 가진 분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또한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우리의 초점은 예수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제일가는 관심은 예수님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리 교회의 영원한 초점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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