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일곱교회시리즈⑦ : 열심을 내라 - 라오디게아교회 (계 3:14-22)

  • 잡초 잡초
  • 300
  • 0

첨부 1


-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암은 무서운 질병이다. 암이 무서운 이유 중에 하나는 암이 걸려도 그렇게 심각한 병이 걸린 줄 모르고 있다가, 어떤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면 이미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진전된 상태이다. 그러기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라고 권유한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에 걸려있는 줄 모르고 지내고 있으면서 나의 영적인 생활이 점점 죽어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몇 주전에 주전자 속에 든 개구리의 이야기를 전했다. 팔팔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즉시 튀어 나오지만 적적한 온도에 개구리가 놀고 있는데 서서히 열을 가하면 자기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면서 죽어간다.
이렇게 심각한 영적인 질병에 든 교회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이었다.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하여 몹시 책망하셨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갖은 영적인 질병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상태이었다. 다른 교회들을 보라. 버가모 교회같은 경우에는 니골라당을 섬기는 잘못된 신앙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워낙 분별력이 있고, 지식이 있어서 그런지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미지근함을 더욱 혹독하게 책망하신 것을 보게 된다.

이같이 라오디게아는 지식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영적인 분별력이 있다. 이세벨의 교훈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킨다. 발람의 교훈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킨다. 바로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서 다른 종교로부터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잘 지킨다. 잘못된 가르침, 이단 종파의 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해도 우리 자신을 잘 지킨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열정이 사라진 믿음이었다. 뜨거운 마음이 사라진 미지근한 마음이었다.
또한 라오디게아 도시는 무척이나 부자 도시이었다. 은행이 많이 있었고, 고리대금업이 성행하였고, 목화도시로 유명하여 지금도 라오디게아 지방에 가면 그곳 목화로 만든 면 종류의 옷을 판매하고 있다. 의학이 발달한 도시이다. 특히 안약이 발달하여 여러 곳으로 수출이 되기도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그들의 믿음 생활은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책망하였다.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나는 말씀을 많이 들어서 영적인 분별력이 있다. 누가 우리를 유혹하는 이야기를 해도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서 편안하게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미지근해 질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이러한 영적인 상태가 바로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라오디게아는 파묵칼레라는 온천지에서 약 9킬로 정도 떨어진 도시이다. 9킬로정도를 흘러오는 동안 뜨거운 물이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다. “이 물은 사람을 치료해 줄 만큼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갈을 해소시켜줄 만큼 차갑지도 않다. 게다가 물 속에는 이물질의 혼합이 많아서 이 물을 마시게 되면 구역질이 나고 이따금 구토까지 일으킬 정도의 물이 되어 버린다.” 온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렇게 미지근한 물이 된 것처럼,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이렇게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한다. 이러한 교인들을 향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책망하셨다.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나는 어느 정도 분별력도 있고,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미지근한 사람은 아닌가?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풍성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자기만족이 있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자기만족으로 가득찼다. 나름 데로 지적인 훈련도 많이 받아서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였다. 지적인 자기만족도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라.” 뜨거운 마음은 곧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온 마음을 바쳐서 주께 헌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 미지근하게 신앙생활하면 주님께서 “내 입에서 너를 통하여 버리리라.” 얼마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인가?

전심으로 헌신하지 않으면 많이 가졌으나 벌거벗은 자이다. 눈먼 거지와 같은 모습이다.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믿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믿으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드리라. 찬송을 부르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부르고, 헌금을 바치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바치고, 봉사하더라도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교회는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였다. 1866년에 소속 성도가 4천3백66명으로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져 있었다.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 두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천3백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웨슬리의 전도집회나 예배설교는 인기가 있어서 많은 군중이 모였다. 웨슬리 집회에 가는 것을 "불쬐러 간다"는 표현을 농담할 정도로 열심과 열정으로 가득하였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있어야 교회가 부흥된다. 사회가 변화된다. 나라가 바로 선다. 내가 지금 편하게 살고 있다고 하여 우리의 마음이 미지근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미지근한 마음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본문의 말씀을 보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즉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다는 말씀이다. 지적으로 자기 만족이 있고, 물질적인 것에도 부족함이 없으면 자연히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미지근해지기 쉽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뜨거워질 수 있는 기회이다.

성도들 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뜨겁게 해 주는 기회인 줄로 믿는다. 욥기 모진 고통을 당한다. 그 고통의 과정 중에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나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된다는 말씀이다.

어느 교회가 근 30년을 사용하던 건물이 있었다. 그 옆에 예배당을 새로 짓는데 성도들이 열심을 내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 예배드리는 곳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예배당을 짓는데 마음이 뜨겁지 않았다. 그래서 예배당을 짓는 일이 계속해서 지연된다. 그러던 어느날 30년 이상된 예배당에 불이 났다. 함께 예배를 드리던 곳에 불이 나서 목사님의 책도 타고, 교회의 의자도 불이 붙어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당장 예배를 드릴 곳이 없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성도들의 마음이 모아졌다. 속도가 붙었다. 예배당을 잘 지어 봉헌하였다.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왕이면 고난의 과정을 겪기 전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학교에서 당번을 서던 학생들이 제기차기 하고서 놀다가 학생과 선생님에게 걸렸다. 두 명이 걸려서 교무실에 끌려갔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너 몇 대 맞고서 정신차릴래?” 저는 세대 맞고서 정신차리겠습니다. 세대를 무섭게 맞았다. 이 모습을 본 다음 학생에게 “너는 몇 대 맞고서 정신차릴래?” “선생님 저는 한 대도 않맞고 정신차리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냥 가.

우리는 몇 대맞고서 정신을 차려야할까? 고통을 당하는 자가 있는가? 미지근한 마음에서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 별 고통없이 만족스럽게 살아가는가? 내 믿음이 미지근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라. 마음을 다하여 주께 충성하라. 마음을 다하여 주께 헌신하라.

다음의 말씀에 미지근한 신앙이 뜨거워지려면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흰 옷을 사서 입으라는 말씀은 내가 지금 용서받은 하나님의 은총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는 마음이 식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미지근해진다. 용서받은 은혜가 내 마음에서 멀어질 때에 우리의 속사람은 미지근하게 되어 있다.

신앙생활하는 과정 중에 눈물 흘려 기도하고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에 반드시 우리의 마음에 드는 생각은 “나 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셨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살려 주셨다”는 확신이 든다. 용서의 은총에 감격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용서받은 감격이 약해지면 우리의 믿음 생활도 미지근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영적인 분별력이다. 안약을 눈에 바르지 않으면 내가 많이 배웠다고 해서 자기만족으로 살아간다. 많이 가졌다고 해서 자기만족으로 살아간다. 수 십년간 교회에 나왔다고 자기만족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안약을 바르면 새롭게 보인다. “주님께 전심으로 의지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내 자신의 수치를 발견하게 된다.” “주님께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교회에서 바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반드시 영적인 체험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려야 한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한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많은 사람들을 박해해서 유명해 지고, 출세해 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덮혀서 사흘동안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이렇게 전한다.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셔서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다시 보게된 바울은 새로운 눈이 열렸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졌다.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되었다.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는 자로 변화되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내가 지금 평안하다고 해서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미지근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미지근한 자를 내 입에서 토해 내신다고 말씀하셨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께 헌신하자.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충성하자. 이러한 자들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열정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께 이러한 상급받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