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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관심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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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대식 목사 (구미등대교회)

하나님의 관심 

☞본문: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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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 앗수르 나라에 수도 니느웨시가 심히 악독하고, 타락에 빠지게 되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의 요나라는 사람을 시켜 니느웨시에 가서 “너희들이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다 멸망하리라”고 전하라 하였습니다. 이때 앗수르나라는 이스라엘보다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였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나라를 괴롭히는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기보다, 잘못되어 자기나라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할 수만 있다면 그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수도가 망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망하지 못하게 막는 일을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하라니 누가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 요나에게 그들에게 가서 멸망에 대한 경고를 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여 멸망을 면하게 하라고 하시니, 사람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는 명령이 아닐  수없습니다. 당연히 요나는 청개구리가 되어 하나님께서 가라는 니느웨시의 반대되는 다시스라는 곳으로 가는 배를 탑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런 무리하고 상식수준을 넘는 명령을 하였을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사람과 같은 수준의 하나님, 사람의 상식수준에 머물러 계시는 하나님이라면 결코 그 하나님은 참神일수 없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일 수 없으며,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을 뛰어넘고,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분이어야 하고, 실제로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상식수준에서 하나님을 평가한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고, 그런 사고방식으로 신앙생활 한다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는 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엉뚱하고, 뚱딴지같은 것이 아니라, 거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고, 하나님의 신비로운 뜻이 담겨져 있고, 믿고 행하면 상상치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반대의 길을 가는 요나를 그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기어코 그를 니느웨에 보내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반대로 가는 요나가 탄 배에 큰 풍랑을 일으키시어 그를 바다에 빠트려,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지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좀 고약하신 성미를 가지신 분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할 수없이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너희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멸망시키신다”고 외쳤고, 그 소리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재를 뒤집어쓰고, 죄를 회개하기에 이릅니다.

요나는 화가 납니다. 망하기를 바랬던 니느웨가 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자기가 나서서 구원을 받게 되니 그런 일을 시키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자기가 그런 일에 쓰여졌다.는 것이 마치 매국노가 된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항의를 합니다. “하나님 보세요. 제가 처음부터 그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시기 때문에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크시기 때문에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보십시오 그대로 되었네요! 나는 나의 원수, 조국의 원수의 나라가 멸망되지 않고 용서를 받아 잘 살아가는 것 눈뜨고 보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요나의 심정이 이해되시죠.

이러 요나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해를 시키시기 위해서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는 요나의 밟고 있는 땅에서 갑자기 박넝쿨을 자라게 하시고, 그 박넝쿨로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가로막아 시원한 그늘로 만들어 주십니다. 요나는 기뻤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심정을 조금이나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그만 벌레 하나가 나오더니 박넝쿨을 갉아먹기 시작하는데, 그만 박넝쿨이 시들어 버리고, 그늘이 사라짐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일으켜 요나쪽으로 불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거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죽여주십시오.”하며 성을 내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깊은 뜻을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요나야 네가 박넝쿨 하나 때문에 그렇게 성내는 것이 옳으냐?” “옳지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내가 이것 때문에 성내어 죽어도 이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한,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이 그리 아까우냐? 그것이 죽어 그리 아쉬우냐! 네가 이런 하찮은 박넝쿨도 아꼈거든 하물면 이 큰 성읍에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12만 명과, 가축들이 살고 있는데, 내가 그들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깊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비록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배반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곁을 떠났지만, “나는 한 사람이라도 멸망받기를 원치 않는단다. 한 영혼이 내게는 소중하단다. 회개할 기회를 주어 살리는 것이 나의 뜻이란다.”

이들이 멸망을 받는 것은 네가 박넝쿨이 말라 죽는 것을 아까워하고, 아쉬워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애정이 결국은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고, 피 흘리게 하심으로 대속제물을 삼으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워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게 하시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지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얻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단순하지만, 이것을 이루신 하나님에게는 사랑을 위하여 너무나 큰 아픔을 감수하는 큰 결단이 있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셨는데 “주셨으니”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십자가에 내어 죽였으니”라는 말입니다.

로마서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고, 사랑한다는 증거였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합니다. 저런 나쁜 놈들을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저의를 알지 못하겠다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저런 놈들을 살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 없으니 저런 놈들이 멀쩡하게 살아가지! 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의 뜻과 다릅니다. 에스겔3:9“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에스겔33:11“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께서 악한자라도 그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비버하시고, 그런 것들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벧후3: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왜 예수님 빨리 오셔서 세상에 악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시마고 가신 예수님께서 2000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입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들에 자라나는 들풀까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고, 곧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참아주셨습니다.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더욱 열심히 이 복음을 전합시다. 복음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합시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재능이든, 아까워하지 말고 사용합시다. 남의생명 살리는 일에 인색한자가 어찌 내 생명 온전하기를 기대하겠습니까? 나의 생명 소중히 여기는 만큼 남의 생명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예수 믿어 복을 받고, 믿는 자는 복음 전하여 더 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니느웨가 회개하면 니느웨도 살지만 이스라엘도 자유를 얻습니다. 그들이 우방이 되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땅이 복음화 되면 모든 사람이 내 편이 되어 삶이 더욱 안전하고 풍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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