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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뿌리가 간지러운 나무 (마 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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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황금성목사 (멋진교회) 

대학교 입시철이 되었습니다. 합격을 비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품들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합격사과입니다. 지난여름에 태풍 루사가 육지 한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많은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과수원의 피해가 컸습니다. 그런데 태풍 가운데서도 어떤 사과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떨어지지 않은 사과가 합격사과라는 이름으로 수험생들에게 팔렸습니다.

충청북도 영동 농협에서는 이 지역 12 농가에서 태풍을 견딘 사과를 가지에 매단 채로 수확했습니다. 나무뿌리가 뽑히는 태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입니다. 모진 역경과 물난리를 이겨낸 이 사과는 용기와 의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과를 수험생들이 먹으면 합격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미신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모진 태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결실했다고 하니 그 사과가 대견스럽게 보입니다.


인생에도 열매가 있습니다. 인생에도 모진 비바람과 태풍이 지나갑니다. 어떤 이는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 열매를 잃어버립니다. 인생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인생의 열매를 맺었습니까? 지금 인생을 마감한다면 우리는 어떤 열매를 들고 주님 앞에 서게 될까요?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추수 풍경이 나옵니다. 두 가지 풍경입니다. 보통 추수 풍경은 기쁨과 흥이 넘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추수 풍경은 그 반대로 살벌합니다. 추수의 기쁨보다는 흉작의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장면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솎아내고 있습니다.
10 절 말씀을 보니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주인은 좋지 않은 나무를 뿌리 채 뽑아 버리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 나무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뽑혀 불에 던져집니다.
농부가 나무를 뿌리 채 뽑을 때는 큰 결심을 한 것입니다. 어린 묘목을 심고 열매를 거둘 때까지는 오랜 세월을 기다립니다. 첫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몇 년 동안은 결실이 없어도 봐줍니다. 아직 어린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다리는 기간은 투자하는 것입니다. 거름을 주면서 가지를 치면서 정성껏 돌봅니다.

제가 제주도에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도지사가 직접 귤나무를 자르러 다녔습니다. 품질이 나빠지고 귤 값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귤나무를 자르는 일을 반대했습니다. 귤나무 하나를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도지사는 간벌정책을 해야 제주도 귤이 살아남는다고 보았습니다. 시고 맛없는 귤나무를 잘라냈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 귤은 시고 맛없는 귤이 많이 났습니다. 일본 귤을 먹어보면 껍질도 얇고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귤은 경쟁력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지사는 과감하게 귤나무들을 뽑으러 다녔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농부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여지가 없습니다. 도끼를 나무뿌리에 대고 찍어 버립니다.

두 번째 광경은 12 절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타작마당이 나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고 있습니다. 알곡은 곡간에 들입니다. 쭉정이는 골라서 불에 태워 버립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한 나무에서 나옵니다. 똑 같은 나무에서 똑 같이 햇빛과 물을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껍데기뿐입니다.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있는 것을 쭉정이라고 합니다.
같은 가지에서 알곡이 있고, 쭉정이가 나왔습니다.

타작은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도리깨를 가지고 곡식을 터는 일입니다. 그러면 껍질과 곡식이 분리됩니다. 그 다음은 키를 가지고 바람에 쭉정이를 날립니다. 무거운 곡식은 아래로 떨어지고, 쭉정이는 바람에 멀리 날아갑니다. 그러면 이 쭉정이를 골라 불에 살라 태워 버립니다.

열매 없는 나무를 뽑는 모습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장면은 모두 심판을 상징합니다. 도끼로 찍은 나무와 쭉정이를 모두 불에 던진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시어 열매 없는 삶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은 구원받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한편 타작마당은 쭉정이 입장에서 무서운 불의 심판을 받는 장소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한 가지입니다.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열매를 말할 때. 그 열매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열매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8 절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고 할 때 생각할 점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열매는 어떤 열매인가 하는 점입니다. 회개를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 단계를 말하는 것인지? 회개한 후에 변화된 삶을 말하는 것인지? 회개 자체를 말하는 것인지?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뭔지를 푸는 열쇠는 다음 구절들에 있습니다.

9 절에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9 절 말씀에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하려고 해도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혈통이 회개를 방해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신분이 회개를 방해합니다. 유대인이 회개를 어떻게 하는가 생각합니다. 특권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의인입니다. 그 후손도 역시 의인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 후손은 잘못을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화려한 과거를 추억하면서 현재의 불의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체면과 위신 때문에 회개를 못합니다. 회개하려면 명예와 지위와 체면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타작마당에 서게 된 것입니다.

타작마당은 심판입니다. 심판을 면하려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열매가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회개의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용서가 안 됩니다.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 벌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지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회개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힙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봄에 꽃이 필 때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정이 이루어지면 열매는 저절로 맺힙니다. 나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용서를 얻습니다. 이 용서는 곧 구원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천국 백성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회개하면 좋은 것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줄 빤히 알면서 계속 잘못된 길을 갑니다. 돌이키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느 기독교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아버지와 딸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글입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나는 내가 당연히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마약은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란다. 이 마약마저 없다면 내 인생에는 아무런 위로가 없구나.’ 딸은 다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아빠는 무책임 하십니다. 아빠는 자신을 포기하고 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빠는 자신만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딸인 저의 인생도 간접적으로 파괴하고 계십니다. 아빠는 아빠의 눈앞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 파괴를 보지 못하고 계실 따름입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자기만 파괴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대의 많은 가정이 한 가족의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아도 이들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는 회개의 기회가 다시없습니다. 회개의 열매가 없어 당장 뿌리가 뽑힙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3 장에 나오는 말씀에는 이와 약간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눅 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 말씀 속에는 과원지기가 등장합니다. 주인은 열매 없는 나무를 찍어 버릴 마음을 먹습니다. 주인은 삼 년이나 참았습니다. 포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원지기는 한 해 동안 다시 거름을 주며 공을 들일 터이니 기회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과원지기의 중보로 무화과나무는 생명이 연장됩니다.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왜 열매를 맺지 못했을까요?

우선 이 나무는 포도원에 있는 무화과나무입니다. 아주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주인이 이 과수원 땅에서 기대하는 것은 포도입니다. 주인은 포도를 수확하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포도원에서 무화과 열매는 관심 밖입니다. 주인은 무화과나무에 열매 없어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에서 무화과 열매를 얻는 것은 별미입니다. 어느 날 주인의 눈에 무화과나무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이 나무에서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각 무화과나무는 열매 없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포도원의 무화과나무는 장식용이 아닙니다. 포도나무가 포도를 내야 하듯이 무화과나무도 오직 그 열매로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는 자기의 책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을 잊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태도 잊고 삽니다. 왜 사는지 사는 목적을 잃고 있습니다.

포도가 가려진 인생입니다. 포도 때문에 열매 없어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해도 먹고 삽니다. 남들이 다 먹을 것, 입을 것을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편한 것이 습관이 되면 자신의 열매가 없는 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남편의 그늘에 가려서 인생의 열매를 못 맺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내 인생의 열매를 가리는 포도가 무엇인지 각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주인이 잘라 버립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오랫동안 자신의 상태를 잊고 살았습니다. 땅만 버리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열매 없는 나무의 특징은 무기력입니다. 무기력하게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그냥 있습니다.

열매 없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공부 안하는 것입니다. 공부 안 하고 놀면 무엇이 남습니까? 초라한 성적이 남습니다.
돈 안 벌고 노는 것입니다. 돈 안 벌고 놀면 무엇이 남습니까? 가난이 남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해서 먹습니다. 그렇게 먹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몸만 뚱뚱해지고 각종 성인병에 시달립니다.
교회 안다닙니다. 교회 안 다니면 무엇이 남습니까? 죽으면 지옥입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 먹지 말아야 할 것,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 이 선을 지키지 못하면 무엇이 남습니까? 처절하게 실패한 인생이 남습니다.
오늘 열매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회개할 일 없이 착하게만 살아온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적극적으로 죄를 지으러 다니지 않아도 죄인이 됩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죄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혹시 열매 없는 나무일지 모릅니다. 알곡이 들지 않은 쭉정이일지 모릅니다. 주님 앞에 인생의 무엇을 자랑하시겠습니까? 내 인생이 빈껍데기만 남은 인생이 될지 모른다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일단 가던 길을 멈추는 것입니다. 브레이크를 잡습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된 길임을 알아채야 합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길을 잘못들 때가 있습니다.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쉽게 브레이크를 잡지 않습니다. 차를 돌리거나 후진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가고 있는 잘못된 길이 맞는 길이 되기를 바라면서 계속 전진합니다.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멈추는 것도 용기입니다. 돌이키는 것은 더 큰 용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일에 인색합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그 때부터 모든 것이 풀립니다. 회개와 용서는 참으로 간단한 것입니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한 사람들의 7 가지 습관'이란 책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성경 다음으로 잘 팔리는 책입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중에 첫째가 프로액티비티(Proactivity)라고 말합니다. ‘주도성’입니다. 즉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다.”합니다.
주도성이 모자란 사람은 “나는 하고 싶지 않은데, 저 사람이 하라고 해서 했습니다.”하고 변명합니다. 그러면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러면 성공 못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질 줄 아는 것이 주도적 인격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열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뿌리가 간지러운 나무입니다. 오늘 본문에 도끼를 나무뿌리에 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끼를 한 번만 꽝 내리치면 나무는 그걸로 끝입니다. 도끼가 뿌리에 닿은 부분이 얼마나 조마조마 할까요.
게임을 하다가 벌칙을 받습니다. 손가락 튀어 이마 때리기. 눈 감고 어딘가 한 대 맞을라치면 그 순간이 아찔합니다. 마음이 좋아 한 번 봐주면 어떨까요.

주인이 도끼를 뿌리에 대고 찍으려고 하면, 우리가 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세요. 내년 1 월 1 일 부터는 잘할게요. 1월 1일 결심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깨달았으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12 월입니다. 올해를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2002 년 한 해 동안 뭐하고 살았나? 6 월에 월드컵 4 강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긴 뛰었는데, 내 인생에 남은 것은 무엇입니다.
열매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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