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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역사 바로 세우기 (딤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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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형준 (동안교회)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에 하나를 섬겨왔을 뿐 아니라 미국 내외적으로 리더십과 교회성장에 관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 맥스웰 목사님(John C. Maxwell)이 있습니다. 목사님에게는 사역이 이토록 탁월하고 크게 지속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샌디에고의 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6주정도 지난 후 빌 클라센이란 60세가 조금 넘은 분이 면담을 요청해왔습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 그래도 바쁜 일정에 교회 중직자들과 여러 제도를 익히느라 정신이 없던 목사님에게는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15분 동안만 만나기로 하고 드디어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면담을 요청해 온 성도는 자신은 예전에 한 선교단체에서 제자훈련 간사로 섬겼으며,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한다는 영적인 부담감을 계속 주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받으러 온 평신도는 많았지만 기도해주겠다고 찾아온 평신도는 처음이었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마음에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이니 잠잠히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빌 클라센이란 성도가 하는 대로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형제가 기도하는 중에 마음의 무거운 짐들이 하나씩 벗겨졌고,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던 부분들이 정리되면서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15분이 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존 맥스웰 목사님은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에 앞서, 교회 사역 전반과 자신의 삶과 가정을 위해 성도들의 기도를 받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을 위한 기도 후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교인들은 그저 담임목사님의 요청으로만 알고 31명이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새롭게 예수를 믿겠다고 결신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에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하심을 체험할 때, 단순히 기도로 사역에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도 용사로 서서히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120명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지금은 “INJOY”라는 단체가 되어 중보기도 사역이 얼마나 귀한가를 증거하는 사역으로 다른 단체에 신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할 때 70, 80명 되던 교인이 2, 3년 사이에 200명 남짓 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참 감사했지만 아쉽게도 저는 부흥의 끝을 보지 못하고 중도에서 목회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간 늘 의문스러웠던 것은 왜 목회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두고 와야만 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저와 목회를 위해 헌신하며 기도하는 용사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동안교회에 처음 왔을 때에 중보기도 사역으로 사역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맡은 일에 대해 잘 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혹은 직장일이나 사업,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밖에 없는 인생도 귀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 받은 사명과 삶을 잘 살고 성공시키기 위해서 우선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은 왜 기도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첫째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 중에서도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에 ‘첫째로’라고 번역된 프로톤은 시간적 의미에 있어서 ‘앞선다’는 뜻도 있지만, 비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으뜸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에서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시제인 현재형을 사용해 기도의 중요성과 더불어 기도의 권면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서는 바울이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자기가 경험했던 모든 사역과 목회의 핵심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전해주고 싶은 것,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디모데가 목회를 잘 하기 원했고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사역하기를 누구보다 원했을 바울일 것입니다. 많은 하고 싶은 말 중에 바울은 무엇보다 모든 사역들 중에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것이 기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기도에 대해서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사하지만 각각의 차이점을 보이면서 언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간구’란 특별한 위기나 어려움, 특별한 필요를 느끼게 될 때 탄원하는 의미에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아마 이런 상황과 이유로 하나님 앞에 가장 많이 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절박한 상황들, 즉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때에 간구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기도’란 일상생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원할 때 기도합니다.
‘도고’는 가까운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 할 때를 말합니다. 자녀나 가족, 또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도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경우를 말합니다.

종합해서 쉽게 말씀드리면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든지 가장 우선순위로 해야 할 것은 기도라는 것, 기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앞두고 기도를 하기보다, 보통 잘 하는 일이나 익숙한 일을 먼저 하기가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먼저 할 것을 나중에 하고 나중에 할 것을 먼저 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밤새 수고하고 노력한 파수꾼의 경성함이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으면 허사가 되듯이, 하나님께 먼저 맡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과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먼저 아뢰고 시작하는 것, 기도는 일을 아름답게 맺고 결과를 낳는 요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일의 순서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할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 동안 먼저 기도하신 일입니다. 기도로 공생애를 열어가셨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 하신 일은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택하기 전에도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며 사람을 선택하는 일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도, 십자가를 앞두고도 기도로 사역을 예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뿐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160년 동안 무너져 있던 예루살렘 성을 쌓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지만 성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라는 한 사람은, 자신의 권력과 위치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고 시작했더니 불과 52일 만에 성을 완공하게 됩니다.

또 소아시아 지방에 선교하기 위해서 성령의 지시를 따랐던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했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를 구별하여 세우고 선교 역사의 문을 여는데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왜 이 모든 사람들이 기도로 시작했을까요?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이들은 모든 일의 시작과 마지막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시작도 하나님께 있고 내 인생의 여정과 마지막도 하나님께 있다고 믿습니까? 오늘 겪는 모든 일도 아시며 뿐만 아니라 내 머리카락까지도 세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 앞에 먼저 맡겨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한 가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엇을 합니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면 한 가정이 아름답게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으로 시작했습니까? 기도 없는 결과가 무려 50%나 되는 가정, 즉 두 가정 중에 한 가정이 깨지게 되었다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 인생을 정말 잘 출발하기를 원한다면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의 하루와 직장을 위해서 기도함으로 올려드리십시오.

곧 여름 사역이 시작됩니다. 예산 확보나 계획을 짜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지 마시고, 어떻게 하면 기도로 집중해서 준비를 더욱 잘 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프로그램과 더 많은 예산으로 영혼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 행사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영혼의 변화라면 목적 달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시작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가 해야 할 우선순위의 사역이 아닐까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기도, 영혼의 변화를 하나님께 간구하며 인도하실 주님 앞에 온전히 위탁하는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은 여름 사역에 주인이 되어 주시고 끝까지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직접 보이신 중요한 사역이면서 동시에 우리도 감당하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고유사역입니다.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참된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자시니라”, 주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놀라운 중보 사역에 우리를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그리스도인의 특권을 열거하는 중에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을 향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르십니다. 제사장은 중재자 혹은 중보자,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종합하면 ‘기도함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 즉,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백성들의 기도와 더불어 이 땅을 다스려 가기를 원하십니다.

중동지방의 왕좌는 한 사람만 앉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라고 합니다. 특별한 공로를 세운 자는 의자에 왕과 함께 앉혀서 왕의 영광과 권세를 경험케 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기도를 통해서 왕 되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중요한 키가 바로 기도라는 것은 성경은 물론이요 역사 가운데 수없이 발견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마음을 바꾸시기도 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기도 하십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비전과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던 땅에 비를 내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척 가슴 아프게 생각하십니다. 에스겔 22장 30-31절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죄로 무너져가는 이 세상과 시대, 우리 교회와 자녀들을 보며 ‘하나님, 이 시대가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자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붙들고 기도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찾지 못할 때에 주님은 이 땅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무너져 가는 가정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아이를 등에 업고 뛰어 내리는 엄마, 자녀를 먼저 내 던지고 목숨을 던지는 부모, 불을 질러 놓고 같이 죽는 가족 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빚져본 경험이 있습니까?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절망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저들을 죽음 가운데로 가게 하시면 안 됩니다.’ 울부짖는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죽음의 길인지도 모르고 쾌락을 좇아 걸어가는 자녀를 위해 안타까운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열납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렇게 간구하는 자들을 기다리시고 그 기도를 통해 이 땅을 고치신다 하셨습니다.
 
기도에 관한한 고전처럼 읽혀질 책 중에 25년간 인도선교사를 지냈으며 동양선교회, 즉 OMS 회장을 역임한 웨슬리 듀웰 박사님이 쓴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 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동양선교회에 보고 된 유명한 간증이 있습니다.

1960년 케냐에서 마우마우 폭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에 선교사인 매트 히겐스 부부가 마침 그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마우마우 지역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나이로비로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그만 차가 고장 나 나이로비 외곽 17마일 지점에서 밤을 지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마우마우 지역에서는 케냐인과 선교사들이 살해되어 시체가 토막 나는 사건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으로 밤을 지냈습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고 차를 수리한 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수 주 후 휴가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간 선교사 가족에게 클레이 브랜트라는 친구는 최근에 무슨 위험을 겪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클레이는 3월 23일 밤에 히겐스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말할 수 없는 영적 부담감을 느껴서 자다가 말고 친구들을 불러 16명이 부담감이 없어질 때까지 함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히겐스 선교사님은 휴가를 떠나기 하루 전날 지역교회 목사 한분이 방문해서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마우마우지역의 지금은 회심한 한 형제 하나가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칼을 들고 히겐스 선교사 가족을 죽이기 위해 차에 접근했었으나 16명의 장정이 칼을 들고 지키고 있어서 돌아갔노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선교사님은 목사님께 ‘16명이라고? 우리 식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며 웃고 지나갔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하나님께서 클레이 브랜트와 다른 친구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선교사역에 더욱 최선을 다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 기도를 통해 통치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자녀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까? 아내와 남편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까? 우리 회사와 민족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스릴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기도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기도로 다스려갈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나라를 바로잡고, 민족을 고칠 수 있습니다.

셋째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축복이 기도사역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인간은 누구나 복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영적인 복도 원합니다.

기도할 이유에 대해서 강조하는 고요함과 평안함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십시오. 고요함이란 환경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질서나 환경이 고요하고 어려움이 없어야 삶이 복되다고 말합니다. 집안에 우환이 많고 사업에 실패하고 아이가 아프거나 괴로운 일을 자꾸 겪는 사람을 보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외부 환경이 아무리 풍요하고 고요하다고 해도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 환경과 내부가 모두 평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과 단정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십시오. 경건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긋났을 때, 부부관계가 깨지고, 자연과의 관계가 깨지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환경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질 때 일어난 결과입니다.

단정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를 잘 맺고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옵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 혹시 부부싸움 하고 오셨다면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관계가 불편하면 우리 속에 기쁨이 없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행복, 관계의 축복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내외적으로 고요함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와 같이 개인의 삶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야와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우리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김선일 형제의 죽음으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습니까? 파병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우리 마음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고, 행복을 깨뜨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대통령을 위해 기도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 메시지를 공급하므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담임목사를 위해 우선적으로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미국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미국에는 사탄종교가 있습니다. 가장 왕성한 곳이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이곳에 있다가 빠져나온 한 사람의 양심선언을 보면, 사탄 숭배자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목사들의 사진을 걸어놓고 집중적으로 저주하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타락하고 낙심하여 더 이상 복음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피터 와그너 목사님의 책에 이런 사건이 나옵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여행을 하는데 옆에 앉은 분이 기도를 열심히 하더랍니다. 크리스천인줄 알고 어느 교파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사탄교라고 하더랍니다. 자기가 사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다섯 교회를 놓고 집중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교회의 목사 가정이 무너지기를 기도하고 있는데 지금 두 교회가 기도대로 무너졌고 아직 세 가정이 남아있다고 하더랍니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복음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도록 효율적으로 기도하는 방법은 주의 종, 영적인 지도자들의 가정과 삶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을 공격한다면 여러분 속에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성에 약합니까? 물질에 약합니까? 자존심에 약합니까? 가장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을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 또한 집중적으로 붙들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기도 속에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신앙 역사는 경험과 연륜 그리고 역사와 전통으로 써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써가는 것이 맞습니다. 사도행전은 인간 지식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통의 역사나 직분의 역사도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기도의 역사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제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는 다시 기도하는 자리로 가서 모든 일을 풀어 가십시오. 

저는 오늘 선다싱의 이야기를 드림으로 메시지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인도에 선다싱이란 선교사가 있습니다. 선다싱 선교사가 어느 불교 수도승과 함께 추운 겨울 히말라야 산을 걷고 있었습니다. 동행인인 불교승이 선다싱에게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얼어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가는데 계곡에서 사람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한 사람이 계곡에 굴러 떨어져 크게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동행인은 선다싱에게 말합니다. ‘구해주지 마시오. 그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정해놓았으니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오. 자칫하다 우리도 죽겠소. 빨리 갑시다.’ 선다싱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는 저 사람 때문이 아니겠소? 나는 그를 버려둘 수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불교 수도승인 동행인은 혼자 갈 길을 재촉하여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선다싱은 계곡에 내려가서 다리가 부러진 나그네를 업고 올라옵니다. 무거운 나그네를 업고 겨우 목적지인 수도원 가까이 이르렀는데 무엇엔가 묵직한 것에 걸려 넘어질 뻔 했습니다. 바로 혼자서 수도원으로 먼저 길을 떠난 불교 수도승이었는데 죽어있었습니다.

수년 후 선다싱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선다싱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무엇이 인생에 가장 어려운 것입니까?’ 선다싱은 조용히 묵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짐이 없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아무 짐이 없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짐 없이 갔던 불교 수도승은 결국 죽고 말았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갔던 선다싱은 죽을 줄 알았지만 짐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은 짐을 받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님의 짐을 우리에게 맡기기 원하십니다. 기도의 짐이 사실은 복된 길이라도 여러분 회피하시겠습니까? 우리 행복을 위한 것이라도 거절하시겠습니까?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저와 여러분의 미래, 우리 자녀들의 미래, 이 민족의 미래를 기도로 열어가는 새로운 기도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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