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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 우리 아버지! (마 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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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동광교회)

요셉은 처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에 잠을 이룰 수조차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분기탱천하여 꼭 사고를 칠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오직 이 생각 뿐, 그는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나 깨나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율법대로 하자니, 정혼한 아내 마리아를 죽기까지 돌로 쳐야 하는 현실이 너무 끔찍했고, 그냥 넘어가자니 인간적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주의 천사가 나타나 한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천사가 전하는 말씀을 들어보니,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아!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니, 상식의 잣대만 들이대도, 돌로 쳐 죽여 마땅한 사람을 데려오라니요, 게다가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 놓으셨다니요, 지금 고민하는 나에겐 위로 한 마디 건네지 않으시고, 그저 데려오라고만 하시다니요? 도대체 주님은 지금 제 심정을 알기나 하십니까? 하늘을 향하여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셉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1장 24절에 보니,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고민하던 순간 하나님이 보내 주신 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해서, 요셉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순종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순종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했고, 그의 순종으로 그는 예수님의 아버지, 모든 아버지의 아버지, 요셉 우리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요셉을 다시 만나려고 합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 이 제목은 지난 5월 어버이 주일을 기해서, 오후 찬양예배 시간에 전해 드렸던 말씀의 주제인데, 그 후로 여러분이 주일예배 시간에 다시 들려달라는 요청을 해 오셨습니다. 시쳇말로 앙코르 요청을 받은 것인데요, 늘 가슴에 담고 있다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오늘 다시 같은 주제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주제는 같은데, 5월에 주신 말씀을 이번에 더 심화시켜 주셨습니다. 이미 들으신 분은 물론이요, 오늘 처음 들으시는 모든 성도님들, 특히 아버지 여러분께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해 주셨는데요, 제1장의 소제목은 요셉 우리 아버지의 인격이요, 제2장의 소제목은 요셉 우리 아버지의 믿음입니다. 자, 그러면 먼저 요셉의 인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1장. 요셉의 인격에 대하여!

1) 요셉은 의로운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 1:19 / (읽기)

거기 결정적인 단어가 하나 있군요. 의로운 사람이라! 그렇군요. 거두절미하고 성경이 기록해 준 그의 신앙적 인격, 한 마디로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의로운 사람의 특징이 하나 있으니, 의인은 나 아닌 남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죄인이라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크신 은혜로 의롭다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자기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요셉은 그녀를 정죄하는 대신, 오히려 그 사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낼 수 있을까 고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 우리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아버지 여러분, 사랑하는 어버이 여러분, 먼저 주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아버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정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의로운 분이셨습니다.

2) 요셉은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 1:19 / (읽기)

이 세상에는 단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정말입니다. 인간은 오직 두 종으로 나뉘어 집니다. 좋은 인간, 아니면 나쁜 인간! 그런데 마태복음 1장 19절에 보니, 좋은 사람이란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않는 사람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이란?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요셉 우리 아버지는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해서 정혼한 아내의 허물을 발견하고도, 그녀 마리아를 공개 처형에 내어주는 대신 가만히 끊고자 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통념에 따르면, 정혼한 처녀의 임신은 치명적 허물이었습니다. 재판 없이 돌에 맞아 죽어도 할 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녀에게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인데도 율법 대신 복음의 정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인격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눈에 사랑하는 가족의 허물이 보임은 가만히 덮어주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늘 가족의 허물이 하필 내 눈에 보임은 다른 사람 아니 내가 가서 그 허물을 가만히 덮어주라는 명령입니다. 세상은 자그마한 허물만 보여도 때는 왔다 쾌재를 부르며 침소봉대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가만히 덮어주는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존경하는 아버지 여러분께 고합니다. 나를 아버지로 세우심은 내 자녀들의 허물을 지적하고 윽박지르지 말고, 너른 가슴으로 가만히 덮어주라는 하늘의 명령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아들딸의 허물을 덮어주실 때, 자녀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엄청난 감동과 사랑을 느낍니다. 바로 그 덮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저들은 평생을 잘 살아가게 됩니다.

가만히 덮어주시기 바랍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볼까 어서 덮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허물로 인해 내 자녀의 인생이 무너질까 가만히 덮어 주시기 바랍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덮어주는 사람입니다.

3) 요셉은 생각하는 우리 아버지였습니다. / 1:20a . (읽기)

거기 보니, 요셉이 이 일을 놓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요셉은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황당하고 다급한 상황에서도 생각을 먼저 하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던 인물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적당히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주의 사자가 현몽할 때까지, 꿈에 천사를 만날 때까지, 진지하고도 철저하게 생각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버럭 화부터 내시거나, 충동적으로 사고부터 치지 마시고, 먼저 주 안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화부터 내는 어머니, 주먹부터 내미는 아버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기성세대, 오히려 자손들에게 화근일 뿐입니다. 아니오, 먼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되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하늘의 뜻을 알려 주실 때까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일이 다급하면 다급할수록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안이 중대하면 중대할수록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생각할 줄 아는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합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의로운 아버지요,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덮어주는 아버지요,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먼저 기도하는 아버지였습니다. 한 마디로 참으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요셉 우리 아버지의 믿음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제2장. 요셉의 믿음에 대하여!

요셉 우리 아버지의 인격과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사람,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믿음과 순종이 같이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 믿음 없이는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아니면 순종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주의 천사를 통해 들려주시는 음성이 나의 상식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식선에선 당신의 명령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음은 내가 당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당신을 향한 내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상식이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는 상식선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세계입니다. 만약 요셉이 상식과 통념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천사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식과 통념은, 마리아를 정죄하고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 우리 아버지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믿음, 통념을 깨부수는 믿음, 한 마디로 하늘을 품을 수 있을 정도의 통 큰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인간의 상식 대신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위대한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 말씀드리고 갑니다. 부디 상식이란 좁은 공간에 갇혀 살지 마시고, 믿음의 세계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부디 통념이란 유리벽ㄹ에 갇혀 답답한 인생을 살지 마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안내하시는 저 넓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상식과 통념의 벽이 무너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믿음의 세계는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직 상식 안에 갇혀 계신 아버지를 모신 가정, 정말 답답합니다. 오직 통념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는 어머니를 모신 가정, 숨이 막힙니다. 모든 일이 상식선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통념의 잣대로만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정, 생동감이 없습니다. 1년을 살아도 밋밋합니다. 밋밋하니 사는 맛이 잘 안 납니다. 통념 이상의 세계를 내다볼 줄 모르는 가정,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통념의 유리벽에 갇혀 있으니 기적 같은 일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아니오, 상식을 넘어서는 믿음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통념의 벽을 뛰어넘는 믿음의 어머니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여 주신 가정, 천국으로 만들어 주시고, 하여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자녀들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사랑의 등불로 남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해 드립니다.

자, 그렇다면 요셉 우리 아버지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 그는 무엇을 믿었기에, 역사에 기리 남을 위대한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될 수 있었을까? 여기서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자면, 요셉은 주의 사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더 줄이면 그는 상식과 통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 기도하다 보면, 나의 상식과 통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응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네 남성들이 그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식과 통념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 속의 나는 이렇게 말하는데, 주의 천사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상황 말입니다. 바라기는 그 때, 천사의 말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내 속의 내가 주장하는 인간적인 주장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권면하시는 말씀이 충돌할 땐,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복 받는 길이요, 그것이 주님의 편에 서는 길이요, 그것이 요셉 우리 아버지들이 선택해야 하는 길입니다.

여기까지 오니까, 자연스레 요셉 우리 아버지에게 주님의 천사가 전해준 말씀의 내용이 궁금해지는군요. 요셉 우리 아버지가 청종했던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이었나? 중요한 질문인데요, 해서 마지막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받으려고 합니다.


1) 천사의 음성 하나 :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 1:20b / (읽기)

주의 사자가 요셉 우리 아버지에게 전해주신 첫 번째 말씀은 무서워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워 말라! 무슨 뜻입니까? 지금 요셉 우리 아버지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해서 주의 천사가 전하시는 말씀, 무서워 말라는 겁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이 연상되는군요. 너는 내 것이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무서워 말라, 내가 너를 싫어 버리지 아니하겠노라! 아멘!

그런데요, 세상을 살다 보면 무서움을 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산길을 가다 호랑이를 만난 듯, 어렸을 적 잠을 자다 무서운 꿈에 가위 눌린 듯, 겁과 두려움에 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살다보면 정말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무서운 상대가 바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천사 같던 사람이 악마처럼 변할 때,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할 때, 내가 저를 해코지 한 일이 전혀 없건만 나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을 볼 때, 정말 사람이 무서워집니다. 일단 사람에게 무서움을 타게 되면 그는 자기 안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여 다시는 자기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외로운 인생이 되어, 자기라는 우리 속에 갇히고 맙니다.

한 순간 요셉 우리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저 푸른 언덕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임과 함께, 마리아 찬가를 부르며 행복하게 살날만을 고대하던 요셉, 그러나 이젠 마리아 그녀를 생각만 하면 무서울 따름입니다. 이러저러한 상상에 공상을 더하니, 이젠 정혼한 나의 아내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녀로만 보입니다.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어쩌다 저런 여인을 만나 내 인생 완전히 망가지누나!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고쳐 생각해 보아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 끔찍하고 무섭기만 합니다.

바로 그 때, 주의 천사가 나타나 하시는 말씀, 무서워 말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가 무서움을 타게 될 때, 부디 주의 천사를 만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전하시는 말씀, 무서워 말라는 그 부드러운 음성 꼭 듣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랬습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주의 천사와 동행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그 음성 속에서 담대한 믿음을 회복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거기 20절 말씀에서 주목하고 싶은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하신 대목인데요,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데려오라는 겁니다. 그녀를 맞아들이라는 겁니다. 내게 주신 사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더욱 은혜가 되는 말씀은 20절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다시 말해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람이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만나게 된 당신이라, 우리의 만남은 성령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서 데려올 것이며, 마음 열고 맞아들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주신 당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당신입니다. 특히 나에게 허락하신 내 가족은 가장 귀한 성령의 선물입니다. 그런데도 혹시 내 가족 중, 마음으로 멀리 떠나보낸 분이 계십니까? 몸은 여기 같이 있지만, 마음은 천리만리 멀어져 버린 가족이 있습니까? 아니오,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마시고, 어서 가서 그 분의 마음을 데려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 열고 주의 사랑으로 그를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가족 사이에 마음이 닫힌 가정, 이미 지옥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영접하는 가정, 이미 천국 가정입니다. 하여 우리 주님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를 영접하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어서 가서 데려오시기 바랍니다. 어서 마음 열고 서로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서 서로를 영접하여 항상 천국 가정 이루시기 바랍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는 음성에 청종하는 아버지였습니다.

2) 천사의 음성 둘 : 예수는 구원자이심이라! / 1:21 / (읽기)

정말 놀라운 선언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임신한 아내 마리아로 인하여 분노와 공포에 떨어야 했던 요셉으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말씀이었습니다. 정혼한 약혼녀의 태중에 있는 생명이 구세주가 되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세상은 죽이라고 하는 그 생명이 오히려 모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가 되신다니, 참으로 믿기 힘들었습니다. 만약 그 때 요셉 우리 아버지의 믿음이 조금만 약했어도 그는 천사의 두 번째 말씀만큼은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셉은 그 아이가 바로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까지 이미 정해 놓으셨다는 천사의 말씀을 믿고 말았습니다.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일단 믿기로 한 것입니다. 해서 그는 구세주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는 오직 믿음으로 가장 위대한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여러분, 아니 존경하는 어버이 여러분, 예수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아들과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믿음을 먹고 자랍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잘 믿어 위대한 자녀의 어버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 우리 아버지는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신다는 말씀을 믿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믿음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여러분과 함께 부르고 싶은 찬송이 한 곡 있습니다. 찬송 101장인데요, 그 가사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요, 특히 1절과 4절이 가슴에 와 닿는데요, 오늘의 말씀, 이 찬송으로 마감하고자 합니다.

<찬송 101장 1절과 4절>


1)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4)주 예수께서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그 이름으로 우리게 참 복을 내리신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오늘 주신 말씀 가슴에 새기며 잠시 명상 기도드립니다.

기도 / 하늘에 계시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요셉 우리 아버지를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또한 요셉 우리 아버지의 인격과 믿음을 통하여 구세주 예수를 보내주심에 감사합니다. 간구하기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 우리 동광의 모든 아버지들, 요셉 우리 아버지 같은 믿음의 아버지로 세워 주시옵소서. 아니, 우리 먼저 난 부모 세대가 요셉과 같은 인격과 믿음의 어버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젠 우리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생각하겠습니다. 우리 먼저 난 자들이 앞장서서, 그 누구의 어떤 허물도 가만히 덮어 드리겠습니다. 충동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며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오직 주님의 말씀에 청종하며,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영접하고, 서로를 믿으며, 주신 삶의 자리, 천국을 바꾸어 살아가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사랑하는 심영자 장로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육신의 아버지, 고 심상우 권사님을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 드리고, 지금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 장로님과 그 유족들에게 위로의 영을 보내 주시옵소서.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발견하게 하시고, 혹 그 문중에 아직 주를 모르는 권속이 있거든, 이번 기회에 주님을 만나는 아름다운 역사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간구하기는, 우리 아버지, 고 심상우 권사님, 하늘나라 가시는 길에 좋은 일기도 허락하여 주시고, 장례 절차 모두를 주 성령께서 친히 주장하시어, 사탄 마귀 일절 틈타지 못하도록 천군천사로 안위하여 주시며, 저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으로만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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