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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보면 보인다.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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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안창국 목사 (새비전교회)

  1903년 미국의 어떤 형제는 하늘을 날아다니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기계를 타고 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친구들과 동네사람들은 이 형제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한낱 망상이고 만화적인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형제는 기계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형제들은 그 꿈을, 그 믿음을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하늘을 날게 된 것입니다. 그 형제의 이름은 그 유명한 라이트 형제입니다. 오늘날에는 기계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계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들은 각자가 매우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우리는 종종 "믿습니다"라는 말을 하나님 앞에 하곤 합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하며 기도할 때도 종종 이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묵상하지 못하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언어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사용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이지요. “은혜,” “사랑,” “평안” 등의 단어들이 그러한 수모를 많이 당하는 단어들이지요. 그런데 이 “믿음”이란 단어도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액세서리로만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흔히들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믿음"을 설명하면 잘 이해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있었던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은 참으로 쉽지않은 말씀입니다. 예전에 저는 ‘도대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얼까’하며 매우 난해한 구절처럼 여기던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은 어려운 만큼 상당히 심오한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해하고 나니까 정말 이 말씀은 심오한 말씀이더군요. 저는 앞으로 히브리서 11장을 몇 주 동안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시작하면서 먼저 “그럼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럼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기초가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狀)이요"라는 말씀에서 실상이란 헬라어로 휘포스타시스(ὗπὸστασις)란 단어가 쓰였는데 이는 "아래에 위치함"이란 뜻으로 '기초' 또는 '본질'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기초 위에 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꿈이니, 비전(Vision)이니, 야망(ambition)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단어는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그 의미가 다릅니다. 보통 꿈과 비전은 같은 말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비전의 의미로 사용되는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망상(妄想) 또는 몽상(夢想)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꿈은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망상, 몽상은 허무합니다. 왜냐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꿈은 망상이 됩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바라기만 하는 것은 허황됨입니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바라는 것들의 기초가 단지 소망이고 꿈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이나 꿈 자체가 그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망은 자기의 욕심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망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야망을 갖습니다. 물질적 야망을 갖습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어 보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에, 어떤 사람은 학문에, 어떤 사람은 물질에 야망을 품습니다.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겨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욕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이기적인 기초 위에 서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야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다른 교회와 쓸 데 없는 경쟁을 하게 됩니다. 인간적 욕심으로 교회 성장을 이루려고 하고, 교회의 목표를 이루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거룩성을 상실해 버리고 세속적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초 위에서 바라는 사람은, 믿음의 기초 위에서 꿈을 꾸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 믿음의 기초 위에 꿈을 갖는 것이 비전입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공동체와 비전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함께 이루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기초 위에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한 남자와 자기 자신의 자녀와 동네 놀이터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놀이터가 너무 다듬어지지 않았고 누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놀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좀더 근사한 놀이터가 왜 없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마음속에 꿈을 꿉니다. 과학과 자연이 어우러지고 새로운 꿈이 펼쳐질 수 있는 그러한 공원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믿음으로 일구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러한 공원이 로스엔젤레스 교외에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디즈니랜드(Disneyland)입니다. 이 꿈을 꾸었던 사람이 월트 디즈니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다른 꿈을 꿉니다. 온 세계 어린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원을 만들자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디즈니월드(Disneyworld)를 구상합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실천에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올랜도라는 곳에 디즈니월드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월드가 완성되기 전에 죽고 맙니다.

드디어 디즈니월드가 완공되고 이제 오픈을 합니다. 그리고 각계인사가 와서 축하 의식(ceremony)를 갖습니다. 그때 한 인사가 나와 축사를 하면서 월트 디즈니가 이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월트 디즈니의 미망인인 디즈니 여사가 단 위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회중들을 향해 미야기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까 하신 분의 말씀을 정정해야 하겠습니다. 제 남편은 이미 월트 디즈니를 보았습니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디즈니월드가 있었고 그 디즈니월드를 보며 살았습니다.”
  비전(Vision)이란 먼저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보는 망상이나 몽상이 아니라, 자기의 욕심에 기초를 두는 야망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누구를 향한 것입니까? 믿음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에 "믿습니다"라고 말할 때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최면을 거는 것처럼 "믿습니다"를 반복합니다. 그것도 잘 안되니까 "믿쓥니다"라며 강조하여 말합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자기가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것인데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만물을 조성하시고 일을 지어 성취시키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삼라만상을 조성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물질을 믿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남편을, 아내를 믿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을 믿습니다.
  안정적인 나의 사업체나 직업을 믿습니다.
  주변의 환경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곧 변할 것들입니다. 물질이 있다가도 없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먼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유망하던 내 사업체가 어느 날 연쇄부도로 망할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잘 될 것 같던 농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환경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의지하면, 믿으면 그것이 바뀌었을 때 모든 소망이 일시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선진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변의 환경이나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만을 믿으니, 하나님만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깨달아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행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3. 결국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말씀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믿는다고 하면 그 말은 곧 대통령을 믿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은 헛된 믿음입니다. 아무리 "믿쓥니다"해도 하나님은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은 미신이고 맹신입니다. 자기 최면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받은 것도 아니면서 자기 욕심과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 믿쓥니다"하며 부르짖는 것을 봅니다. 백날 부르짖어 보십시오.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부르짖음과 간구도 하나님의 말씀의 확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확실한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은 보지 못할 것들을 보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은 내가 현재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주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볼 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근거를 삼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결과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그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가 노예로 팔려갔을 때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절을 받게 될 위치에 서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거의 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가능성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눈으로 하늘의 별들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면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에게 무슨 꿈을 주셨습니까? 무슨 믿음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꿈의 근거가 되는, 그 믿음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의 눈을 떠서 그 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오늘 2절에 보면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벨도, 에녹도,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모두 이 믿음이 견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믿음이 성취되는 역사를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부여잡고 주변의 환경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말씀을 의지하여 꿈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뜨여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간구하고 부르짖으십시오.
  믿음이 여러분을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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