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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후로는...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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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한용근 목사 (예사랑교회)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 가셨습니다. 그날 그곳에 왜 가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기 위해서 그곳에 가셨습니다. 그곳에 꼭 예수를 믿어야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시몬이라는 불리는 베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형은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그 즉시로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니 너무나도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형제 베드로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가서 "내가 오늘 메시아를 만났다"(요1:41)고 전도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베드로를 안드레는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에 베드로에게 천국 복음에 대해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복음이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기를 바라보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자니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고, 함께 살고 있는 늙고 병든 장모도 있었고, 자기만 바라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린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안드레 역시 형 베드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막중한 가장의 책임과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기쁨이 있었지만 예수님과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심방을 오셨습니다. 장모가 아주 위험한 열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집을 방문하셨고, 장모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눅4:38-39). 장모는 그 두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또다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베드로는 주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오늘 주님은 세 번째로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그가 일하는 직장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지난 밤 생계를 위해 필요한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실패한 하루였습니다. 그는 물고기를 낚는 전문가였지만 어제는 왠지 물고기가 그의 그물을 모두 피해 도망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번의 실패를 만회라도 할 것처럼 내일을 위해 다시 그물을 고치고 그물을 깨끗이 물에 씻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특별히 배를 물위에 띄우고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배를 땅에서 조금 띄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는 이제 세 번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배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그 배를 벗어 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마치자 예수님은 즉시로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을 새운 그의 육신은 몸이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쉬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가 수고하는 인생이요 쉼이 없는 인생이며 무엇인가 채워야할 인생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그 배에 올라타는 순간 그 비어 있는 배를 주님은 보셨고, 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 중의 하나가 빈 인생의 배를 채우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베드로처럼 우리들은 수고하는 인생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내가 부양해야할 가족들과 사회적인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는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베드로처럼 인생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빈 그물을 씻어낼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국민일보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얼마전 70대의 어느 할머니가 자살을 했습니다. 경찰들은 그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살림살이로 볼 때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혹시 건강상의 이유나 불치병 때문일지도 몰라 그가 다녔던 병원의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치의는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보다 더 건강하고 젊게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고민하던 경찰관은 책상을 뒤지는 가운데 할머니의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첩을 펼쳐본 경찰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할머니의 수첩은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365일 동안 언제나 똑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글은 "오늘도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음"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인생의 고독 속에서 인생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 채 빈 그물을 씻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두 번은 인생의 삶에서 아무리 그물을 올려도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하는 인생의 빈배를 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처럼 다시금 빈 그물을 씻어 놓고, 터질 그물의 올들을 수리하면서 확실하지 않은 다음날에 다시금 희망을 싫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베드로의 배가 빈배요 그가 지난 밤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빈 그물을 씻어 내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렇듯 빈 배를 채워야할 베드로에게 주님은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목수가 지금 수 십 년 간 그곳에서 잔뼈가 굵어진 어부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목수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것인가?

  베드로는 순종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는 순종을 결정했고, 깊은 곳으로 빈 배를 끌고가 다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그의 인생은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채워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제 인생도 주님을 만난 뒤로 채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예수님은 공허로 찬 인생을 채우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채우시는 것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물질을 채우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마음의 소원이 어디 물질 만 있겠습니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채우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문제는 그 채우기 위한 전제 조건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처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수가 물고기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도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 대해 무엇을 아시겠느냐? 그러나, 베드로는 저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의 말에 순종하여, 고기를 그의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나도 여러분의 인생의 배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득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베드로가 순종함으로 베드로의 빈 배에 물고기가 가득채워졌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고 있나요?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죄인이며 불순종의 아들이었는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을 들었고, 자신이 주님의 말씀대로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선적으로 먼저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책임져야할 생계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필요한 것을 반드시 채우시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며, 넉넉하게 채우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주님은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을 완전히 의지해서 아직 망한 인생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찰리 송으로 알려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비천한 신분을 딛고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공부 후 귀국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중국에 서 전도를 많이 했는지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큰 부자가 된 후에도 전도하면서 교회를 잘 섬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송전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도를 많이 하고 예수 잘 믿는 사람이었지만 그만 젊은 나이에 3남매를 남겨놓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저렇게 예수를 잘 믿고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왜 빨리 죽을까?"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남겨진 3남매가 누구냐면 첫째 딸의 이름은 송경령이었습니다. 그녀는 중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아들은 송자문입니다. 그는 경제학자로서 중국의 경제장관이 되었고, 이후에 송씨 집안의 중심인물로서 중국 4대 재벌의 한 사람이 되어, 국민당·국민정부의 중심인물로 재정을 후원하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막내딸이었던 송미령은 장개석 총통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송미령을 가리켜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중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로 기록되고 있는 챨리 송의 일가를 '송가왕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순종하고 헌신한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진실로 베드로처럼 여러분들이 조금 더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빈배를 채워 주실 것을 믿고 그분을 강하게 의지하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의지하자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진실로 주님은 방황하는 인생 베드로를 오늘 부르기 위해 갈릴리 호수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제 후로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기를 잡던 인생, 먹고사는 것에 붙들려 살던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그 후로는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예수의 사람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의 사람들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에 있습니다. 믿음의 모든 사람들은 선교사입니다. 복음을 위해 베드로처럼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명예도 물질도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을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사람 낚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을 취하게 되면 그곳에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 것입니다.

  과거 중국은 우리들 보다 먼저 복음이 들어간 나라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게을렀고, 선교하는 것에 게을렀습니다. 그러자, 그곳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공산당을 정권을 잡고 오늘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거 유럽도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선교하지 않았습니다.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전도하지 않고 선교도 하지 않자 전 유럽은 저 무지한 원시인 바이킹들에게 의해 침략과 약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에게 붙들려가 여자들이 그 바이킹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면서 교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에 그 해적 국가들은 오늘날과 같은 기독교 국가를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상낙원이라고 부르면서 한 번쯤은 가고 싶어하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혼구원의 역사가 있는 교회와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선교하는 나라와 교회 그리고 개인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반드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을 얻는 것보다 사람을 얻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명예를 얻는 것보다 한 생명을 얻는 것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컬밋 롱 박사(Dr. Kermit Long)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옛날 우리의 선조들보다 교육도 많이 받고 좋은 건물과 멋진 교회를 가지고도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있고,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수족관을 지키는데 지나지 않고, 남의 수족관에서 서로 고기를 훔치는데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부끄러운 말입니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목사는 "주여, 내게 영혼을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을 가져가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물질을 얻는 것도 중요하고,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고, 인생이 평안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올해 이 교회가 지속적으로 복음으로 생명의 역사가 넘치기를 진실로 축원합니다.

  세계 선교를 꿈꾸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서 믿지 않는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어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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