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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좋은 친구 ( 요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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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찬 목사 (전주동부교회)

한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하 독방에 갇혔습니다. 그는 고독과 절망에 몸을 떨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을 쏟았던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는 독방 벽에 글을 적어놓고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신은 없다.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감방의 갈라진 틈새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새싹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향해 강인한 생명력을 보였습니다. 그는 간수가 주는 물을 아껴 매일 새싹에 물을 주었습니다. 며칠 후 새싹이 자라나 꽃망울을 맺더니 아름답고 파란 꽃을 피웠습니다. 억울한 죄수는 생명의 신비에 감동해 무릎을 꿇고 벽면에 적어놓은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하늘이 준 생명의 신비여, 이제 나는 외롭지 않다" 인생은 고독한 여행입니다. 그러나 여행의 동반자를 만나면 행복합니다.

  이러한 인생이기에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두 명의 가까운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는 누구입니까

어느 남자 아이는 친구에 대하여 정의하기를 "나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친구란 이 세상의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헨리 더번빌은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나를 버릴 때 제일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잠언 17:17에서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해서도 곁에 신실하게 있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입니다. 삶의 무거운 짐들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 때에 우리에게는 가까운 친구들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지지와 격려가 절실히 필요하게 됩니다.

친구를 얻고 싶으면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1993년 8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제임스 피셔 2세의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라는 짧은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기업 심리학자이기 때문에 직장생활 속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고 있었습니다."친구를 얻고 싶거든 자신이 먼저 친구가 되라"는 규칙으로 시작되는 그의 인간관계 성공비결은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황금률로 끝을 맺고 있다 합니다.(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

지혜자는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잠언 18:24)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으로 그것은 참된 친구를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친구를 얻으려면 그 자신이 먼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함을 교훈 하며 형제 보다 친밀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친구는 자신이 먼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려면 우리가 먼저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줍시다. 친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어머니가 혹독한 사춘기를 맞은 딸로 인해 엄청난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딸은 술 마시고 담배피우며 놀기 좋아하는 세 명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어머니의 품에서 멀어졌습니다. 어머니가 충고를 할 때마다 딸은 장담을 했습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물들지 않아요" 그러나 딸은 점점 친구들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은쟁반에 썩은 사과 하나와 싱싱한 사과 세 개를 담아 가져왔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썩은 사과 하나가 다른 사과를 모두 썩게 할텐데요?" 어머니의 대답."무슨 소리냐. 싱싱한 사과 세 개가 썩은 사과 하나를 오히려 싱싱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일주일 후 어머니가 은쟁반의 사과를 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과는 모두 썩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사랑하는 딸아, 친구도 이 사과와 같단다." 그제서야 딸은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어머니의 교훈)

그러므로 친구를 잘 사귐이 필요 합니다.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귀를 사려고 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를 골라 자기 집에 있는 나귀 무리 속에 넣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귀는 가장 심술궂고 욕심장이인 한 나귀와 같이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나귀를 끌어내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단 한 가지 시험만으로 저놈의 됨됨이를 알아냈어. 저 나귀가 모든 나귀를 제쳐놓고 하필 그 고약한 나귀를 친구로 삼을 정도니 알만하지 않아?”(나귀를 사는 사람)

유유상종 끼리끼리 라는 말처럼 사귀는 친구를 보아서 사람 됨됨을 알 수 있으니 좋은 친구를 사귀도록 해야 합니다.

  친구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양지기가 몰고 가는 염소 떼 틈에 산양들이 끼어들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동굴 속에서 묵게 될 때에도 산양들은 가지 않고 염소와 어울려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은 큰 폭풍우가 몰려와서 모두들 그 동굴 속에 그대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므로 양지기는 먹이를 나눠주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양지기는 자기 염소들에게는 겨우 굶어죽지 않을 만큼 조금씩만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데서 온 산양들에게는 충분히 먹고 남을 정도로 많이 주었습니다. 그 산양들은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폭풍우가 그치고 그들이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을 때 산양들은 모두 산 쪽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양지기는 화가 나서 산양들에게 소리쳤습니다. “너희들은 은혜를 모르는 구나. 어젯밤 내내 지켜주고 지금까지 실컷 먹여주었는데!” 그러자 산양들이 되돌아보면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어제 온 우리들에게 당신은 오랫동안 같이 살던 염소들보다 더 잘해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당신은 우리 뒤에 또 누가 온다면 그들을 우리보다 더 잘 대해줄 것이 분명하거든요”(양지기와 산양)

사람들의 관계를 꼬집는 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관계는 늘 변합니다. 그러나 참 친구의 관계는 변함이 없습니다.

  친구는 서로에 대하여 잘 알고 자랑 합니다.

  1920년대 후반 세계  정상급의 테니스 선수였던 르네  라코스트는 선수 생활 동안 윔블던과 전 미국 오픈 시합과 프랑스 오픈 시합 등에서 여러 번의 우승을 포함해 주요 단식경기에서 일곱 차례의 우승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그를 '악어'라고 불렀는데 이는 코트에서의 그의 집요한 경기 태도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라코스트는 이 별명을 받아들였고 그의 테니스 복 상의에 작은 악어를 수놓아 입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셔츠 상품에 악어를 붙이자 이  무늬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악어 셔츠'를  입었지만 이 상징은 그 유래와 뜻을 알고 있던 라코스트의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코스트의 친구가 누군가의 셔츠에 붙은 작은 악어를 보면서 '난 저 무늬의 내막을 알고 있지. 라코스트는 내 친구거든'이라고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둘로스자료- 친구들은 알아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십자가를 변함 없이 사랑하고 자랑하는 친구가 되는 줄 믿습니다.


  좋은 친구가 필요 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 입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레나의 얼굴이 시무룩했습니다. 무언가 일이 있는 듯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이었던 것일까. 엄마는 조심스럽게 레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레나야! 표정이 좋지 않구나." "엄마! 난 왜 친구가 없는 거죠?" 엄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친구가 없다니…."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니 친구가 없는 게 아니고 친한 친구가 없다구요.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친구 말예요."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녀는 레나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히고는 꼭 안아 주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없긴…. 레나에게는 레나를 지켜주는 친구가 있는 걸." "누구요?" 그녀는 레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셔. 늘 레나와 함께 계시고 레나를 지켜주시는 분. 우리 주님이 친구들 맘속에 들어가면 모두가 너를 지키는 사람이 될거야." 레나는 무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까 레나 눈에는 안 보여도 늘 예수님이 레나를 도와주신다는 거죠?" "어머, 우리 레나가 금방 알아듣네." "알았어요. 그럼 레나는 외롭지 않아요." "외롭지 않구 말구. 사람들은 몰라줘도 예수님은 항상 함께 계신단다." "이제 레나가 친구들을 도와줄래요. 레나는 예수님이 도와 주시니까요."(가장 친한 친구-두 팔 없이 태어난 그녀의 이름은 레나 마리아)

  오늘 성경은 나사로의 불행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통해 성도를 대하시는 섭리를 교훈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우리 친구 나사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한갓 촌부를 그것도 살아 있는 자도 아니고 죽은 자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어떻게 부르시며 신도의 죽음을 어떻게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신자를 친구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는 우정의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계약을 충실히 지키시사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와 교제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인정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의인과 함께 사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그의 친구들로 여기시는 사람들을 그의 제자들 또한 자기들의 친구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친구"라고 나사로를 일컬었는데 이는 그가 그들 모두의 친구임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도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맺어진 우정을 깨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나사로는 죽었으나 그럼에도 주님은 그를 가리켜 우리 친구라고 하십니다.  변치 않는 친구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친구 되신 예수님은 변치 않는 친구이십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살의가 극에 달한 때에 나사로 때문에 가야만 한다는 주님의 의지를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나사로에게 향하신 깊은 우정은 바로 우리 성도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유대로 가자고 하시는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또 그곳으로 가려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 11:8) 라고 합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6)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시간'과 '빛'의 비유를 들어 '우정의 정신'에 관해 교훈을 하셨습니다.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낮에 다니면…실족'(9절)지 않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밤이 두려운 것이지 낮은 괜찮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일 사멍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결코 난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희생을 감내 하는 친구의 모습입니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삼상 20:17)고 합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한지라 요나단이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 이 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삼상20:30-33)고 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삼상 20:42)고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한 친구요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 하신 친구 이신 줄 믿습니다.

가장 좋은 친구 되신 예수님은 희생을 감내 하는 친구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11절)고 합니다. 잠든 나사로 곧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나사로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친구이심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벗이라 부르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려 하시며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17-25)

이일 후에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문제를 해결 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벗이었습니다.

나사로의 문제를 해결 하시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명하여 살리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인간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십자가를 지시므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다시 사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친구 되신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친구이십니다.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는 예수님입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되 변치 않는 사랑으로 함께 히신 친구이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저주에서 구하시려 십자가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희생을 감내 하는 친구이십니다.

심판 받아 지옥 갈 백성들의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시고 천국 백성 삼아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문제를 해결 하시는 친구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라'(요15:15)고  말씀합니다.

가장 좋은 친구라는 주제로 여름 어린이 성경 학교 중고 수련회가 열립니다. 가장 좋은 친구이신 예수님과의 사귐이 우리와 우리 자녀 모두에게 아름답게 이뤄지도록 기도하고 협력하며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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