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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예수 (1) (창 3: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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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자 : 손상률 목사 (후암교회)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유구한 인간의 역사는 주권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개됩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역사 경영의 목적은 범죄 하므로 마귀에게 얽매인 채 멸망하게 되는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 등 그 모든 과정을 통하여 구속사역을 전개하였으며 거기서 얻게 되는 구원의 열매는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운동을 통하여 거두어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 경영을 우리는 구속사(Redemption History)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 여러 명의 선지자를 동원하시고 그들의 말과 글로써 역사에 공고하게 하였습니다(히 1:1). 우리가 성경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자 할 때 어디까지나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를 조명하여야 되고 또 거기 감추어진 신비한 도리를 풀어가는데는 어디까지나 예수라고 하는 키워드(Key Word)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요 5:39).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들이 계시 문서로 받은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모세의 율법을 파괴한다고 보았습니다(요 9:28-29). 그러나 성경은 모세도 예수님을 소개한 자요 그의 율법이나 행위도 다 예수님을 시중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히브리서 3:5-6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세의 글인 율법서를 통하여 거기 계시된 예수님의 모습을 조명해 보고 기독교 복음의 뿌리와 신앙의 정통성을 찾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은 인류의 시조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께 범죄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심판을 선고받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범죄를 유도한 뱀과 거기 유혹되어 남편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하와 그리고 계약의 당사자인 아담에게 형벌을 내리시면서 그 속에 구원하는 자 예수를 숨겨두고 있습니다. 이를 성경학자들은 원시복음(原始福音)이라고 이름 부른 것입니다.


Ⅰ.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본문 말씀 14-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뱀 곧 사단의 실체

성경에는 뱀을 사단이라고 하거나 사단(마귀)을 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0:1-2에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12:9에도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3:1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뱀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본래 모습은 다 좋은 것입니다. 창세기 1:25에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였습니다. 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저주받기 전에 뱀도 분명히 아름다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것도 마귀의 수중에 들어가면 나쁜 것이 되고 맙니다. 마귀는 뱀의 간교한 성품을 이용해서 여자에게 접근하게 하였고 마침내 범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뱀은 마귀 사단의 도구가 되어 온 천하를 꾀고 타락하게 만들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무저갱에 들어가게 됩니다(계 20:1-3).

(2)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

본문 말씀 15절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등장합니다. 뱀의 후손은 마귀를 뜻하는 것이지만, 여자의 후손은 장차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최초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하여 「원시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이 언약대로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동정녀인 마리아의 몸에 예수를 잉태케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처녀 마리아는 깜짝 놀라며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하고 반문하였습니다(눅 1:34).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도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20-21).

(3) 사단과 예수님의 대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는 그때부터 사실상 마귀와의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15절에 하나님께서는 뱀과 여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사이를 갈라놓았고 서로 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생사를 건 싸움을 하게 되고 발꿈치와 머리를 상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뱀이 사람의 발꿈치를 무는 것처럼 사단은 수없이 예수님을 공격하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헤롯왕은 베들레헴 지경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영아들을 살해하였습니다(마 2:16). 이때 예수님은 그 부모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을 가야했습니다(마 2;14).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무렵 마귀는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세 번이나 시험하였습니다(마 4:1-11). 결국은 유대인들을 충동하여 예수를 넘겨주게 하고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하였습니다(마 27:26). 여기까지만 보면 사단이 예수님에게 이긴 것처럼 생각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는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세상 끝날 에는 사단이 영원한 불 못에 던지워지면서 예수님은 완전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계 20:10).


Ⅱ. 허물을 덮어주는 가죽 옷

본문 말씀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죄에 대하여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또 한편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서 죄와 형벌 아래 있는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여기 벌거벗은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작용하는 행위입니다.

(1)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

사람이 벌거벗었다는 것만으로 불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어머니 배속에서 나올 때는 벗은 몸으로 나오는 법입니다. 아담과 그 아내 하와도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을 때는 벗은 몸이었으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창 2:25). 그러나 그들이 뱀과 결탁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부터는 벗은 몸에 대한 수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7에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로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셨습니다. 이때 아담은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창 3:8-10). 벗은 몸과 수치스러움은 인간의 범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성경은 죄와 허물로 더러워진 인간의 상태를 벌거벗은 알몸뚱이로 표현하였습니다. 계시록 3:18에 보면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권면하기를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2) 무화과 잎으로 만든 치마

사람에게 있어서 옷은 몸을 보호하는 수단 외에도 아름다움과 품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벌거벗은 상태로 자기 몸이 드러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후 눈이 밝아져서 저희의 벗은 모습을 발견하고 손수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창세기 3:7에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치마라고 할 때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생각을 갖게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그들에게는 손쉬운 재료였을지라도 그것이 옷으로서의 가치와 기능은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 자기의 죄와 허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 인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3) 가죽옷의 상징적 의미

이사야 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재물이나 권력 같은 것으로 옷을 만들어 죄와 허물을 덮어 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것은 무화과나무 잎의 옷처럼 허무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지어주시는 은혜의 옷을 입어야 됩니다. 이 옷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죽으로 지어 입히신 옷은 무화과 잎처럼 일회용이 아닌 완전한 옷이지만 가죽을 제공하는 짐승의 피와 생명이 희생되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을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서 9:22에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거룩한 행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타내 보여야 됩니다. 로마서 13:14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Ⅲ.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

범죄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내리게 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도 함께 합니다. 본문 말씀은 죄와 형벌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시는 최초의 복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마 9:12-13).

(1) 잉태하는 고통

본문 16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먹게 한 하와에게 내린 징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징벌 가운데도 여인이 누릴 수 있는 가정의 행복을 겸하게 하였습니다. 곧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다는 것은 부부간의 질서를 말하는 동시에 진정한 사랑과 존경으로 가정의 행복이 보장되는 내용입니다. 더욱이 여인에게 있어서 잉태의 고통은 해산하는 고통과 함께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로 얻는 기쁨은 비길 수 없이 큰 행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6:21).

(2) 땀흘리는 수고와 죽음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린 아담에게 두 가지 징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평생동안 땀을 흘리며 수고를 해야 먹을 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았으므로 뿌린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필경에 흙으로 돌아간다는 죽음의 선고입니다. 그 말씀대로 인간은 평생을 수고와 슬픔의 날로 장식하다가(시 90:10), 결국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스며들어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날 동안 정직하게 땀흘리며 수고를 하게 되면 거기에 합당한 열매가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보람이요 행복이 됩니다. 또 한가지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살전 4:16).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고전 15:20).

(3) 낙원에서 쫓겨난 일

24절에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창 1:26),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였습니다(창 1:28). 또 그들을 위해서 아름다운 낙원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창세기 2:8-9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는 이 아름다운 에덴의 낙원을 잃고 세상을 방황하는 불행의 길로 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낙원을 빼앗긴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지상낙원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이것은 한번도 이루지 못하는 유토피아(Utopia)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범죄함으로 빼앗겼던 낙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4:2-3).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어지고 잃어버린 에덴의 낙원이 회복되는 완성된 천국의 환상을 보았습니다(계 21:1-4).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상의 축복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확실한 소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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