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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예수(2) (히 11: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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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손상률 목사 (후암교회)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옛날부터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특별한 은사를 받았습니다(창 1:26). 성령의 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사리를 분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현재를 살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豫知)를 가진 것입니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많은 인물들은 대부분 멀리 신약시대에 전개될 메시야의 환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그들에게 준 선지자적 은사이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를 「나비」(????)라고 하는데 이는 먼저 보는 자(先見者)라는 뜻입니다(삼상 9:9). 선지자는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통하여 먼저 보고 먼저 아는 자이며 그것을 말과 글과 그의 삶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증거 곧 사명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은 되어진 과거의 사건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미래에 될 일을 미리 보고 먼저 알아서 이것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구약 율법서 가운데 예수님을 나타내 주는 두 번째 내용으로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기 이 세 사람을 우리는 믿음의 삼대 족장(族長)이라고 부릅니다. 「시작의 책」이라고 말하는 창세기에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로 대부분을 할애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처럼 예수 그리스도을 바라보았고 나타날 그리스도의 날을 사모하였습니다.


Ⅰ.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본래 이름은 아브람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다시 고쳐 아브라함이라 부르게 하였습니다. 창세기 17:5에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을 불러내실 때 그를 큰 민족의 조상으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2:2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3:16에는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후손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 민족을 역사의 주역으로 삼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경륜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선택받은 민족 또는 거룩한 백성(聖民)이라 부릅니다.

신명기 7:6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9:6에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2)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

옛날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생각하였습니다(요 8:33). 그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나 경건생활을 하지 못하면서도 입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웠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요 8:39). 아브라함이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영적으로는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됩니다. 창세기 17:5-6에는 내가 너로 열국(列國)의 아비가 된다고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열왕(列王)이 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열국”이란 모든 나라를 말하며 또한 “열왕”이란 이스라엘 역대의 왕들 뿐아니라 세상 나라의 왕들도 포함됩니다.

이 말씀은 장차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사람이 이스라엘 민족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도 요단강 근처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면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마 3:9). 갈라디아서 3:29에는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계 어느 지역이나 어떤 민족이나 구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마태복음의 기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하고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였습니다(마 1: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실 때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창 22:18). 여기서 말하는 “네 씨”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언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씨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11:1). 여기서 말하는 이새의 줄기는 다윗이며 그 싹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조의 뿌리가 되어 그 후손들이 왕으로 이어졌는데 결국 그 족보의 끝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었습니다(계 19:16).
하나님의 언약은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 없이 이루어져서 결국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게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을 미리 보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56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Ⅱ. 웃음의 사람 이삭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 또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7:19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기쁨을 가지고 오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14에 천사 가브리엘이 제사장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이 남을 기뻐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10에 보면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던 천사의 무리들이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기쁨이라는 이름의 이삭은 확실히 예수님의 그림자로서 그의 삶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인식하게 하여 줍니다.

(1) 진정한 웃음을 주는 사람

세상에는 거짓된 웃음도 많이 있습니다. 가령 큰 슬픔을 당했거나 충격적으로 마음이 허탈해졌을 때 사람들은 소리내어 웃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실소(失笑)라고 합니다. 이삭의 출생과 관련하여 아브라함의 집에도 거짓된 웃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마음 속으로 헛웃음을 웃었습니다. 창세기 17:17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하고 가볍게 받아넘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창세기 18:10-12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라 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그때 장막 뒤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하고 실소하였습니다.

물론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자식 두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 기대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오는 실망감과 허탈한 웃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아들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그들 부부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의 참 웃음을 웃었습니다. 창세기 21:6에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자기 능력으로 추구하는 일에는 참 웃음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진정한 웃음을 주실 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됩니다. 그 기쁨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성경에 나타나는 이삭의 성품을 볼 때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것과 또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와 결혼을 하였고 육십 세에 에서와 야곱 두 쌍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는 인내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창 25:21).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흉년을 피하여 그랄 땅에 내려갔다가 거기서 여러 가지 사건에 접하게 됩니다. 먼저 자기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하였다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혼이 난 일이 있었습니다(창 26:7-10). 또 그곳에서 아브라함 때 팠던 옛 우물을 다시 팠는데 그랄 사람들이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자기 우물을 빼앗긴 채 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파기를 거듭하여 많은 우물과 넓은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창 26:22).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마 5:5), 이삭에게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마 11:29).

(3)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2:1-14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린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하나님의 분부를 시행하여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이나 걸어서 모리아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따라 온 종들은 산밑에서 기다리게 하고 이삭에게 나무 단을 지워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정된 곳에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이삭을 결박하여 올려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하던 찰라 하나님께서는 급한 소리로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창 22;12). 이 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증명이 되었지만 이삭은 자기를 향해 칼을 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반항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것입니다(마 27:46).


Ⅲ. 승리자 이스라엘

야곱의 이름은 훗날 이스라엘로 개명되었습니다. 야곱이란 「붙잡는 자」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이스라엘 곧 「승리자」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창 32:28). 그는 험악한 세월에 파란 만장한 생애를 살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승리자의 타이틀을 주셨습니다. 이는 세상을 사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1) 집념의 사람

야곱은 그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집념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마음먹고 한번 붙잡은 것은 결코 놓치지 아니하며 어떻게든지 그것을 성취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미 뱃속에서는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고, 자라면서는 장자권의 축복을 붙잡았습니다(창 25:26). 야곱이 형 에서에게 선두다툼에서 밀린 다음 장자의 지위는 확보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쟁취하는데는 그만의 집념과 투지의 결과였습니다. 허기가 진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면서 장자의 명분을 인수하고 그로 맹세케 한 장면이나(창 25:31-34), 눈이 어두운 이삭에게 에서로 가장하여 아비를 속인 다음 별미를 먹여 놓고 축복을 가로챈 것은 매우 교활하고 패륜한 것 같으나 축복에 대한 그의 집념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셨습니다(마 11:12). 그렇지만 야곱의 말년에는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그의 집념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인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본문 말씀 21절에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47:31에는 “야곱이 또 가로되 내게 맹세하라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평생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사람의 마지막 모습으로 승리적인 장면입니다.

(2) 환상의 사람

야곱에게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멀리 외가가 있는 밧단 아람으로 망명길에 올랐을 때 벧엘 광야에서 꿈에 본 환상입니다. 창세기 28:12-13에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감격하여 그곳 이름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불렀습니다.

물론 이것은 꿈에 본 환상입니다. 그러나 거기 세워진 사닥다리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가교(架橋)로써 이는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기도 합니다(요 1:14). 야곱에게 있어서 이 벧엘의 환상은 그의 일생을 지탱하는 구심점이었고 삶의 목표였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던지 벧엘의 하나님을 찾았고(창 35:3), 그가 어떤 위기에 처할 때면 그때 제게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부르며 그 언약을 상기하게 하였습니다(창 32:9-10). 결국 그는 애굽에서 14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자식들을 향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는 가나안 땅에다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창 39:29-33).

(3) 승리자의 삶

하나님께서는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는 야곱에게 야곱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창세기 32:23-30에 보면 야곱이 가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던 중 얍복 여울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가족과 짐승을 앞서 보내고 그만 홀로 남았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야곱과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전에 그의 형 에서가 사백 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그리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답답해진 야곱이 하나님께 매달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창 32:1-1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를 보내 야곱과 씨름하게 하였고 그때 야곱의 환도 뼈가 부러졌습니다(창 32:25). 뼈가 부러지고 신체가 기능을 잃게 되었는데도 야곱은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축복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도 야곱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며 새 이름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본문 말씀 21절에는 그가 지팡이를 의지하고 일어서서 하나님께 경배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승리적 신앙가 야곱다운 최후였으며 모든 성도들의 귀감이 되는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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