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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간청합니다 (눅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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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우리가 살면서 남에게 크고 작은 일을 부탁할 때가 많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은 부모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부탁하면서 시작이 된다. 태어나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그 울음은 아마도 나를 부탁한다는 몸부림 일지도 모른다. 배가 고파도 울고, 어디가 조금이라도 불편해도 운다. 그 울음은 곧 부탁하는 표현이다. 청소년기와 어른이 된다고 내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기도 하고, 내가 부탁을 받기도 하면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어느 집에 친구들이 찾아왔다. 밤중에 예고없이 와서 대접할 양식이 없었다. 이 사람은 친구의 집에 찾아가서 음식을 부탁한다. 사정이야기를 한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부탁하기도 하고, 너무 나도 강력하게 부탁하기도 해서 결국은 불편하지만 그 친구에게 떡을 내준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분명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처럼 인생의 밤을 맞이할 때가 있다. 어디에 가서 부탁할 것인가? 누구를 붙잡고 부탁할 것인가? 누구를 붙잡고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하소연 할 것인가?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부탁하고 하소연할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는 줄로 믿는다.

친구들이 찾아온 밤에 대접할 떡이 없었다. 부족함을 느끼는 밤이었다. 대개 인생의 밤이 찾아오면 자신의 부족함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부족함을 느끼지 아니하면 인생의 밤이 온 것도 알지 못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 유학생 대회가 열렸다. 유학 생활이 그렇게 평탄한 것 만은 아니다. 학생들이 얼마나 갈급한 심령으로 말씀을 사모하는지 모른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우리의 마음이 함께 뜨거워진다. 하나님께 자신의 안타까운 현실을 털어 놓는다. 하나님께 부탁한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한다. 괴로워 한다. 부모도 어쩔줄 몰라한다. 이렇게 인생의 밤이 올 때에,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부탁해야 한다.
한 소년이 깊은 산골에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퍼 붇는 바람에 집 앞에 있는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버렸다. 소년은 혼자서 그 나무를 치워보려고 기를 썼지만 소년이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소년이 나무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와서 물었다. "얘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 보았니?" "예,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보았는데도 이 나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아니다, 네가 이직도 하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단다. 그게 무엇인지 알겠니?" "잘 모르겠는데요?" "너는 이 아빠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 당신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습니까?

인생의 밤이 닥쳤을 때에, 부족함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임할 때에 하나님께 부탁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께 부탁할 수 있는가?
여기에 분명한 대답이 있다. 주님은 “할 수 있기때문이다.” 친구의 집에 떡이 있는 줄 알았기에 이 사람은 밤에 친구의 집에 문을 두드렸다. 만약에 친구의 집에 떡이 없음이 분명하면 왜 떡을 달라고 문을 두드리겠는가? 우리가 주님께 부탁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한다.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한다.

세계 기업 중의 1위가 코카콜라이다. 코카콜라의 창업자인 아사 G 캔들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캔들러는 의지력이 나약했다.주위 사람들에게 몇번이나 금주선언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어느날 술에 취해 귀가하던 그는 벼락같은 마음의 음성을 들었다.“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캔들러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아내는 바로 그 시간에 남편의 `금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캔들러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다.그리고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기도의 능력으로 술을 끊은 것이다.캔들러는 그때부터 수입의 10%를 철저히 헌금했다.코카콜라 회사는 창업주의 금주선언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주님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에게 간청할 수 있다. 친구의 집에 떡이 없다면 밤새도록 친구의 집을 두드려도 떡을 구할 수가 없다. 우리가 주님에게 간청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에게 간청할 수 있는 이유가 또 있다.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어느 아들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묻기를 아버지 혹시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아버지의 대답이 그럼 아빠가 아는 사람이 있지. 누구신데요?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조지부시 대통령” 아버지는 잘 알지만 조지부시 대통령은 아버지를 모르잖아요? 부시 대통령은 능력이 있다. 힘이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부시 대통령의 힘이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유학생 집회 중에 마지막 하루는 파리 시내를 관광하는 일정이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서 세느강을 지나게 되었다. 내 옆에 앉은 두 자매가 있었는데 그들은 한달 동안 배낭 여행하는 중이었다.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우리 아버님은 40대에 세계일주를 하면서 빵에 고추장 발라서 드셨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매들도 지금 이렇게 빵 만 먹으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돈도 거의 다 떨어져서 조금만 지내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돈을 꺼내어 손에 쥐어 주었다. 않 받으려고 뿌리친다. 목사님이 주는 돈 받으라고 권고했다. 어느 교회에 계시느냐고? 구로중앙교회 담임목사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난 영화를 보러갔을 때에 애경 CGV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손에 쥐어 주고 돌아왔다.

이 자매들이 부족할 때에 아버지가 주는 돈이라면 얼른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이 주니 당황스럽기도 하였을 것이다. 내 주변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도 나와 관계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부탁하는 대상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자식을 보라. 아빠 엄마에게 맡겨 놓은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내노라고 부탁한다.
우리가 부탁하는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시다. 우리를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에게 부탁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보라. 밤에 친구의 집에 찾아가 떡을 달라고 요청한다. 간곡히 요청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한다. 그 친구는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기에 바로 기도의 자세가 담겨져 있다. 주님은 우리의 간청함을 기다리신다.

야곱을 보라. 야곱이 큰 부자가 되어서 고향 땅으로 돌아온다. 형 에서와 화해가 큰 문제이었다. 먼저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여 형과 화해하려 하였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한다. 야곱이 하나님을 향하여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며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만 갖고 갔지만 돌아올 때에는 무려 두 떼를 이루어 돌아오는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에게 간절히 요청한다. “내게 축복하소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신다.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간절하게 기도함을 통하여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하신다.”

한나를 보라. 그는 결혼해서 아이가 없었다. 너무나도 마음이 괴로웠다.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한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으면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다. “언제까지 포도주를 마실 것인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한나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결국 한나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그 아들이 사무엘이다. 한나의 간절한 부탁이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으셨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고 계실 때에 앞을 볼 수 없는 거지 바디매오가 있었다. 그는 소리 질러 예수에게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제자들이 조용히하라고 하자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예수님의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기도가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청의 기도를 원하신다. 그 기도는 곧 끊어지지 않는 기도이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이다. 임어당은 목사인 아버지와 3대째 기독교 집안인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누이는 정말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대학에 가는 임어당에게 40전을 쥐어주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 당부하고 시집을 갔다. 2년 후, 누이는 세상을 떠났다. 이런 부모와 누이를 둔 임어당이 교회를 등진다. 스스로 이교도라고 선언하고 다니면서 '나는 왜 이교도인가?'를 선전하고 다녔다. 한평생이 그렇게 기우는가 싶었는데 그의 생애의 마침표가 찍혀지기 전에 그 무서운 인본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주님 앞에 돌아왔다. 그의 아내의 강청의 기도 덕입니다. 그의 부모와 그의 누이의 강청한 기도가 열매를 맺었다고 믿는다. "30년 동안 나는 마치 고아처럼 살아 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다. 표류해 왔다가 나는 이제 당도하였다. 내가 교회에 다시 나갔던 그 주일 아침은 곧 귀환을 의미한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가 강청하는 기도입니다.

이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에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신다. 능력의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신다. 그러면 이렇게 기도한 결과는 무엇인가? 기도의 결과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길로 응답하신다.

새벽 4시 아직 별들이 반짝이는 시간에 목동은 양들이 풀을 뜯어 먹으면서 계속 걷게 한다. 10시쯤 태양이 뜨거워지고 있을 때 양들은 덥고 피곤하며 목이 마른다. 그렇지만 지혜로운 목동은 양들을 물가로 인도하지 않는다. 소화되지 않은 풀들이 위장에 가득한 양들이 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원하고 부드러운 초장에 양들을 눕게 하여 쉬도록 한다. 양들은 누워서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되새김질만 한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소화시키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떡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직 떡을 소화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황금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건강을 주시지 않고 병약함을 얻게 되었다면, 영혼이 병드는 것보다는 육신이 병드는 것이 났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아는 분은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지킬 준비가 되었을 때,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분명히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인생의 밤이 올 때에, 부족함이 느낄 때에 주님께 간청하자. 간곡한 마음으로 부탁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로 채워 주실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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