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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꾸는 자 (창 3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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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톨러는 "꿈꾸는 힘이 없는 자는 사는 힘도 없다" 실러는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이다 현명하다는 것은 아름답게 꿈꾸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나 역사에서나 위대한 사람은 현실보다도 더 큰 꿈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꿈을 꾸는 자가 역사에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까뮈는 인생에 대해서 이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을 하나의 감옥이라고 전제하고 사람의 삶이 그 감옥에 갇혀 있다는 가정을 해보면 세상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감옥에 갇힌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떠들면서 타인에 의해서 자신이 억울함을 겪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불행하게 된 것은 타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만 없으면 내가 행복할 텐데 자신이 불행한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에 갇혀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행에 갇혀 사는 것은 타인이 감옥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때로는 아내도 감옥이 되고 자식도 감옥이 되고 직장도 감옥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은 자기의 팔자가 사나와서 감옥에 들어온 것이니 이것도 팔자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타인에게 갇힌 것은 아니지만 숙명론에 갇힌 사람입니다. 세상이라는 감옥에는 이외로 이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길들여진 채 철저하게 체념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되면 대개는 체념의 감옥에 갇히기 때문에 발전이 없습니다.

셋째 사람은 자기가 감방에 갇힌 사실을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젠가 자신이 이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몸은 갇혀 살아도 그 마음은 갇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은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에게 불평하지도 않고 자기의 운명에 길들여지지도 않고 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을 이 상황에 적용시켜 본다면 인생에게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별명이 바로 꿈꾸는 자입니다. 이것은 요셉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꿈이 없으면 그 때부터 세상에 갇힌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실제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만 2년 동안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타인의 감옥에 갇힌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감옥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억울함과 분노에 갇혀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 같았으면 그는 2년의 시간을 애굽의 감옥보다 더 무서운 미움의 감옥에 갇혀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형님에게도 보디발의 아내에게도 미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체념의 감옥에 갇힌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체념할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형님들에게 팔려서 타국에 왔습니다.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동생을 노예로 판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는 마지막 남은 작은 희망마저도 체념으로 바뀌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가슴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에 체념의 감옥에 갇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은 몸은 감옥에 갇혔지만 그의 꿈은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은 감옥에 있지만 그의 믿음만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요셉은 타인에 대해서 불평하면서 살지 않았고 자기의 운명에 길들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삶을 위대한 삶으로 만든 것입니다. 위대한 삶은 삶의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어떤 꿈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그 집을 본 주위의 사람들이 집이 너무 초라하다고 했습니다. 호와롭지는 않아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포드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크고 가구가 많다고 큰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이 가진 꿈이 큰 가정이 큰 가정입니다. 나는 작은 집에서 큰 꿈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의 사람으로 살았던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헨리는 자기의 가정을 돈을 채우는 가정이 아닌 꿈을 채우고 기도를 채우는 가정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것은 요셉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꿈이 있는 사람은 향락에 빠지지 않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은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꿈이 그에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일에는 많은 방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향락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성경이 요셉의 유혹을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그 유혹은 요셉의 꿈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요셉은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만약 요셉에게 꿈이 없었다면 향락을 오히려 찾아다녔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 때문에 그 향락에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다니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을 향한 꿈을 가슴에 품고 한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니엘도 꿈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향락에 물들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향락에 빠지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꿈이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향락은 자신의 미래를 파는 행위와 같습니다. 때문에 꿈이 있는 사람은 향락에 빠져서 살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안식은 가장 거룩한 행위가 됩니다. 하나님은 삶의 거룩을 안식을 통해서 지키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쉼의 계절에 쉼이 향락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꿈이 있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요셉에게 꿈이 없었다면 그는 여러 번 실망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망은 하나님을 보아야 할 사람이 환경이나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환경을 보면 분명히 실망할 일들만 그의 삶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고 살았기 때문에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원망하고 실망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상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홍해를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주신 꿈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홍해는 그 꿈을 막는 환경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실망하면 환경은 꿈을 빼앗아 가지마는 꿈을 붙잡는 사람은 환경이 꿈을 성취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3. 꿈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꿈이 없으면 사람을 붙잡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인해서 내 꿈이 깨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 때문에 꿈이 깨어지고 형제로 인해서 꿈이 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꿈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고 살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거나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다 꿈을 이루는 도우미들입니다. 요셉에게 형님들이나 보디발의 아내나 옥사장은 요셉의 꿈을 파괴하는 자들이 아니라 요셉의 꿈을 이루는 도우미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내게 아픔을 주는 사람들은 내 꿈을 깨는 사람이 아니라 내 꿈을 이루는 도우미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꿈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꿈을 주시지마는 최선을 다할 때에 그 최선을 통해서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이 아무리 꿈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꿈은 하나의 꿈일 뿐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꿈을 꾸는 사람은 많아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요셉은 종으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디발이 그에게 가정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감옥에 억울하게 들어갔음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옥사장이 그를 신임하여 감옥의 일을 맡긴 것입니다.

겨자씨 글에 이런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세계적인 골퍼인 아놀드 파머는 열살 때 아스팔트 길 위에서 넘어져 팔꿈치를 크게 다쳤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사고로 수술을 받았으나 왼쪽 팔이 20㎝나 짧은 기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커가면서 훌륭한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피나는 훈련과 연습을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런 팔을 갖고 어떻게 선수가 되겠느냐 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놀드 파머는 내가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실 것이다 고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고 골프 역사에 위대한 선수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룻기가 있습니다. 그는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룻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최선을 그에게 복이 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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