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밀알의 영광 (요 12:20-26)

  • 잡초 잡초
  • 229
  • 0

첨부 1


- 노강국 목사 (신시내티교회)

제가 성경 말씀을 처음 대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인가였습니다. 그 당시,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한 어린아이가 자기 호주머니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살피는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과자 부스러기, 조그만 장난감, 딱지, 구슬 등등 어린아이들이 즐기는 것들이 호주머니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꽃씨도 들어있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꽃씨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그 꽃씨를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야, 네가 내 주머니 속에 있으면 그냥 꽃씨 몇 알로 남겠지만, 저 흙 속으로 들어가면 많은 꽃을 피울 수 있을 게야." 이러한 내용의 글을 선생님이 설명해 주면서 "이 소년이 말한 이 이야기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보는 성경책에 있는 내용이란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있는 내용이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미션 스쿨(Mission School)에 다니는 누이가 보는 성경책을 찾아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니 바로 그 내용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꽃씨"가 아닌 "밀알"로 나와 있는 것이 다를 뿐 내용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아주 당연한 말씀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인생의 삶에 견주어서 말씀하시기를 잘 하시는 예수님의 독특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진리의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한 줄 압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배경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소문이 멀리 퍼지게 됨에 따라,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만나고 싶다고 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상당히 흥분하게 만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렇지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하고, 나를 만나고 싶어하여 예약을 신청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신나는 일입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나서 그렇게 된다면 정말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칭찬 듣고 싶어하고, 알려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노력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소문이 난다는 것은 신나는 것 뿐 아니라, 참으로 중요하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소문이 난다면, 그래서 교회 웹사이트에도 많이 들어오고, 뿐만 아니라 직접 와 보고 배우고자 한다면 참으로 교회 다닐 맛이 저절로 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가대는 이런 면에서 약간 소문이 난 듯 싶습니다. 제게 어떤 분이 이런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신시내티 교회 성가곡, 기대가 됩니다. 교회 홈피에 있는 성가곡을 모두 들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특히 특주곡이-, 중간중간 칭얼거리는 아기 목소리까지도 아름답게 들리던걸요. 제가 좋아하는 '주기도문' 곡은 가끔, 때로는 자주 듣는답니다. 바이얼린 소리가 그렇게도 아름답다니요. 이년 전엔가 이태리의 밀라노 한인교회 찬양 팀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었는데 그때 찬양 곡을 듣는 순간 뭐랄까요... 찬양 곡이 설교를 초월한 그런 느낌을 받았었어요. 그 감동 그대로 예배를 마쳤으면 싶었던 ......죄송합니다. 설교를 무시한 건 아니고 느낌이 그랬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기쁘고 힘이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문나기를 바라고 또 좋아하는 듯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뵙기를 청한다는 전갈을 받고 기뻐하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을 전하는 안드레와 빌립의 표정을 우리가 보지 않아도 무척 들뜬 기분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갈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시면서 감개무량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동안의 모든 사역에 대한 보람을 느끼시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람을 느끼시는 예수님에게서 발견해야 할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는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여기서 예수님은 "이제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이 스스로를 "나는..." 이라는 표현하는 모습이 마태나 마가나 누가복음에 비해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든지,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라든지 "나는 위에서 났고, 너희는 아래에서 났느니라" 등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는.."이라고 시작되는 예수님의 자기표현 기법이 많은 요한복음에서 오늘 23절의 말씀에서는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라고 하지 않고 "이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하는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 받는 그 일의 기준과 입장을 하나님에게 둔다는 것입니다. "인자"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야의 의미의 표현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영광 받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종의 의미인 "인자"에게 둠으로써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에 기뻐하는 예수님의 겸손한 고백이며 표현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이 이제 유대인을 넘어서서 이방인에게까지 퍼지게 된 사실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구원의 길이 그들, 이방인에게까지 흘러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를 기뻐하시는 예수님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영광된 모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게 되었구나 하고 스스로 기뻐하는 자기 자신만을 염두에 둔 모습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까지 퍼지게 된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우리 스스로나 우리 교회가 남들에게 칭찬 받으며, 자랑거리가 되는 그 자체로 기뻐하거나 좋아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이 더욱 확대되어 이루어지는 사실을 발견함으로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나의 기쁨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 우리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난 28년 동안의 여러 가지 굴곡의 역사에서 벗어나 이제 새로이 당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우리 신시내티 한인 장로교회는 이곳 신시내티 뿐 아니라, 미국 이민 사회에서도 칭찬 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더 확대되고 이루어짐을 기뻐하며 거기에 만족코자 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즉, 기뻐하고 칭찬을 받되, 나로 인해서 보다도 하나님을 인해서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 있는 그러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이 가능해 질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이러한 일이 가능해지는 방법이 무엇인 줄 알고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일반 사람들과 예수님의 다른 점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 그 때부터 올라가는 것을 염두에 둡니다. 이른바, "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뜨기 시작하면 계속 떠 있기 위해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는 시점에서 자기를 철저히 낮추십니다. 이를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죽지 않고 한 알 그대로 있는 것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빌 2장에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빌 2:8). 이점이 예수님의 다른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방법이 바로 사는 길이요,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는 길인 것입니다. 25절에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하는 말씀과 26절에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말씀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영생의 삶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모습을 두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자기를 부인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자세를 통해서 우리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모습을 삼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26절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바짝 따르고자 하는 자세가 바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을 진실되게 따를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The best follower is the best leader).

오늘 새로운 당회 구성을 위해서 장로님들을 선출합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개인적으로 기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하나의 표시인 동시에 교회의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영광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섬김의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장로에 대한 선출권을 목사에게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로의 선출은 모든 성도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성도님들은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사람",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섬기고자 하는 사람"을 리더로서 선출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열매를 맺고자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간직함으로 우리 신시내티 한인 장로교회가 거두어들일 귀한 열매들을 염두에 둘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우리 신시내티 한인 장로교회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되, 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릴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