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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할 때가 강할 때입니다 (고후 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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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현 목사 (대선교회)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바울을 제외하고는 기독교를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위대한 제자요, 위대한 선생이요, 교사요, 목사요, 성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순교자 스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울의 옛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었을 때 그의 하는 일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고 핍박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일 때 사울은 사람들의 옷을 챙겨 보관해 주는 일을 하면서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의 얼굴은 빛났고, 자기를 그렇게 죽이는 원수들을 향하여 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버지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죽는 스데반을 보면서 그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을 열지를 못합니다. 분한 마음에 증오가 불일 듯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십배, 혹 백배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들을 가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평안합니다. 그 얼굴은 은혜로 충만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울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말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과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30세에 죽었지만 그는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바울이라고 하는 위대한 인물을 만들고 복된 죽음을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헛된 죽음이나 말장난이나, 무가치한 논쟁의 중심에 서서는 안됩니다. 비록 길지 않은 생애를 살지라도 스데반과 같이 생산적이고 가치 있고, 사람을 살리고 일군을 배출하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자랑치 않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사실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주시는지 많은 환상과 계시를 받고 더 놀라운 것은 삼층천의 경험을 받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천국에 갔다 왔다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와 같은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할 말이 많겠으며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오죽하면 "말 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까지 말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자랑하지 아니했습니다. 왜 자랑하지 않았습니까? 6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왜 하지 않았습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까봐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들까봐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생각하기 앞서서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으냐를 따지기 전에 우리가 좋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 기분을 내 세우기 전에!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십은 {"나를 위해, 우리를,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희생되어도, 우리를 살리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이 점을 우리가 꼭 기억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였습니까? 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9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무엇을 자랑합니까?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성도가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강함을 자랑하다 보면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자기를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trouble maker가 됩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 될뿐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곳에는 위로와 격려와 은혜가 임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면 바울 자신은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 이였다고 고백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약하다"는 말이 5번이나 반복되어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으시겠지만 바울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육체의 가시를 그는 나아가서 "사단의 사자"라고 말합니다. 이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카톨릭에서는 바울의 육체적 욕구라고 했고, 어떤 이는 간질, 안질, 말더듬는 것(고후10:10,고후11:6) 등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 육체의 가시는 그에게 있어서 보통 괴롭고 아픈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너무나 힘들어서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를 세 번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문자 적인 세 번 이래기보다는 여러 번,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도바울이 그렇게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거절하셨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9절) 사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바울에게 주시는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각종 어려움을 당할 때에 바울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어떤 모습으로 응답되든지 하나님의 응답인 줄 알고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네 가지로 나타납니다. "알았다! 안 돼! 기다려라! 더 좋은 것을 줄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처절한 기도도 거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실 때에 반드시, 꼭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과 협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겸손히 맡기고 어떤 결과를 주시든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린 우리의 기도가 거절될 때에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기도를 거절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큰 은혜로 인하여 교만하고 남보다 잘난 줄 알다가 자빠지고 은혜의 자리에서 넘어질까 봐 기도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기도가 아직도 응답이 없다면! 아니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의 다른 섭리가 있는 줄 믿고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더욱 주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신 줄 믿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2. 항상 족한 심령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고후12:9절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록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괴로움을 당하는 생활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탁월한 성품 중에 하나는 자족하는 심령입니다. 바울도 우리에게 권하기를 지족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즉 매사에 불만과 원망의 삶이 아니라 만족해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귀가 멀고 마음이 둔해서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우리가 늘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부족함과 없는 것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찾아서 감사하고 만족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지금 나에게 없는 것 남에게 있는 것만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아쉬워하고 원망하고 합니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장군은 1648년 의회군을 이끌고 왕당파를 물리친 후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였으며 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경건한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려고 노력하던 청교도였습니다. 그는 식사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식욕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식욕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는 이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과 식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늘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아는 신앙이 나를 행복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지금의 나의 환경과 일이 나에게 가장 적당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 믿고 자족하시기 바랍니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3. 오히려 여러분의 약함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의 좋은 것! 강한 것! 남보다 뛰어난 것! 잘한 것! 공로! 성공담 등을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좀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합니까? 그는 말씀하시기를 9절에 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약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욱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실수를 잘 합니까? 자만하는 사람입니다. 늘 부족한 줄 아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연약한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를 더 합니다. 더 조심합니다.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이 같은 신앙의 자세로 살게 되니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주심으로 약함이 주님의 강함으로 변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약함으로 인하여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열등의식에 빠지거나 절망과 좌절의 삶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약함을 오히려 축복의 기회로 삼고, 더욱더 신앙적 성숙을 위한 기회로 삼고, 도전하고 남보다 애쓰면서 노력하여 더욱 더 강하고 훌륭하고 축복을 받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약함은 곧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갔던 윌리엄 캐리는 제화공이었습니다. 그가 그의 구둣방에서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외국어를 공부하며 쿡 선장의 여행기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취급을 하였습니다. 비현실적인 망상가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목사가 됐습니다. 케리는 그가 목사 회의에서 "오늘날 모든 백성에게 가서 복음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 아닌가?"라고 제안하자, 연로한 목사는 그에게 "이 젊은이, 앉게,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회개시키는 것을 기뻐하실진대 자네나 나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걸세"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령한 진리를 가지고 먼 인도로 가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4대 언어로 성경 전체를 번역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을 아시아 32개국 말로 번역하도록 이끌었고 126개 기독교 학교와 한 개의 기독교 대학을 설립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그의 임종의 병상에서 속삭이기를 "참으로 하나님은 엄청난 일을 하셨구나"라고 하고는 눈을 감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구두 수선공이 세계를 품고 기도한다고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하였으나 검은 대륙 인도를 살리는 일을 약하디 약한 케리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약할 때가 곧 강한 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 약점, 실수, 허물, 심지어 육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부족들! 즉 육체의 가시들 때문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적인 도전으로 약함을 도리어 주님의 강함으로 바꾸어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육체의 질병일수도 있으며, 가난일수도 있으며, 배우지 못한 짧은 학벌일수도 있으며, 신체적인 장애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모르는 약점이나 과거, 혹은 성격장애나 좋지 못한 환경과 조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더 훌륭하고, 더욱 큰 축복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디 약하기 때문에! 부족하기 때문에! 성격문제, 환경과 생활의 열악함 때문에 도리어 더욱 강해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약한 때문에 주님의 강함을 덧입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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