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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신앙 인격 (창 45:1-8,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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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정현 목사 (대선교회)

오늘은 요셉에 대해서 생각하여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요셉을 생각하노라면 꿈이 생각납니다.  요셉의 별명은 꿈꾸는 자입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일평생 남보다 꿈이 많기 때문에 그 형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꿈은 요셉을 요셉으로 만들어 냈으며 비록 고난은 많았으나 영광의 자리에 앉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가 있습니다. 사실 약관 17세 아직도 아버지 어머니 품에서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이국만리로 노예로 팔려 가는 너무도 큰 아픔을 경험합니다. 유년 시절의 이 아픔 상처는 지워지지도 않는 상처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마음의 상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노예생활을 하던 중에 참으로 열심히 충성을 다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겠다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충성을 하는데 그 결과가 감옥 행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씁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할 때에 어떤 행동을 취하셨을 것 같습니까? 더군다나 자기 인생을 이토록 처참하게 만들어버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의 형들이었다고 할 적에 여러분의 기분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십대의 어린 나이에 울부짖으며 애원하며 살려달라는 동생을 은20개에 팔아버린 무자비하고 교활한 형들! 종살이 13년에 온갖 굴욕과 멸시받은 일들! 억울한 감옥에서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 이게 모두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골육 지친 형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에게 얼마나 원한과 분노가 많았겠습니까? 얼마나 삶이 부정적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의 역사를 읽어보면 요셉에게서 그 같은 행동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신뢰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의 유혹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그러면 안되지! 안되지!" 이 같은 요셉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한시도 잊지도 떠나지도 않으시면서 곁에서 도와 주셨습니다. 창39:3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십니다. 온갖 어려운 일들을 만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으로 마음과 몸을 추슬렀던 요셉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를 높여 애굽 왕의 버금가는 총리대신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원수 같은 형들을 어떻게 만나게 하십니까? 그리고 세월이 10여년이 또 흘러갔습니다. 중동 지역에 큰 가뭄과 기근이 들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살고 있는 가나안땅도 흉년으로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에 듣자하니 애굽에는 양식이 많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그때 야곱의 아들들도 양식을 사기 위해서 애굽으로 갑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그 원수 같은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쪽은 굶어죽지 못해 양식을 얻으러온 초라한 사람들! 한쪽은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세를 가진 총리! 그러나 세월이 너무나 많이 지났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도 살아계시니이까?"(창45:3) 그때 형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아마도 그 형들은 "이제는 죽었구나" 싶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요셉은 당장에 명령을 내려서 그들을 데려다 죽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형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어서 부들부들 떱니다. 이때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하면서 용서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의지가 약해서도 아닙니다. 바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인간적인 감정의 차원에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용서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은 묘합니다. 한번 상처받은 심령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부모자식간에 남편과 아내 사이라도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실 무조건 잊고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이기는 합니다. 더욱이 믿거라 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실망감을 받았을 때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더욱 큰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형제가 내게 범죄 하거든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일곱 번만 하오리까?" 이 일곱 번은 인간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이렇게 말씀 한 것은 용서의 극치입니다. 무한대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이십니다. 사실 일흔 번은 그만 두고 어떻게 일곱 번씩이나 용서해 줄 수 가있겠습니까? 어떻게 일곱 번씩 참아 줄 수 있겠습니까? 나의 감정과 고집으로는 한번도 진정한 용서를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처럼 귀하고도 어려운 용서를 어떻게 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신앙인격을 소유하게 되었습니까?

1.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창45: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신앙고백입니다. 너무나 중요합니다. 자기를 노예가 되게 하고 감옥에 들어가게 하고 애굽 땅에 가게 한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실패하여 넘어지고 더 큰 화를 초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곳에 보내주시지 않는 한 이곳에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형님들을 원망할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형님들은 도구노릇만 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고 기도할 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며 기도 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 땅에 미움이 끊어지지 않습니까? 왜 원수 맺는 것을 풀을 줄 모르고 복수심이 또 다른 복수심으로 불러 드립니까? 왜 우리 마음에 상처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결정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시지 않으십니까? 내 인생 드라마의 연출을 맡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는 결코 용서할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확신하였기에 용서할 수 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이것을 모르고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게 됩니다. 늘 한 세상을 원망과 불평과 남만 탓하다가 늙어 죽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핸들을 잡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때로는 나를 연단 하시고 훈련하시며 나를 향하신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자기의 고통을 사람에게서 찾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보았으며 따라서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대선의 성도들이 이 같은 요셉의 신앙 인격!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식을 소유하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더욱 성숙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명안을 얻으시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명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창45: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왜 팔려 가는 신세와 수모를 겪었습니까? 왜 감옥에 들어가는 고통을 경험하였습니까?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꿈 많은 요셉이 어떻게 청소년 시절을 역기능적인 상처를 받으면서도 참을 수 가 있었습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받으면서도 원망, 불평 한마디 없이 감수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변함없는 신앙인격을 간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생명을 살리라고 주신 사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생명을 구원할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나는 그 일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는 낙심하고 절망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까지는 절대로 죽을 수도 망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 모진 역경을 이길 수가 있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45:7,8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으셨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생명을 구원할 사명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비록 노예가 될지라도, 내가 비록 억울한 누명을 썼을 지라도, 내가 비록 자존심이 짓밟힐 지라도 이것 때문에 형제들이 살고, 내 후손이 살고 생명들이 보존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당하리라고 하는 사명의식이 그를 성공자로! 아름다운 신앙 인격자로 만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당하는 고난, 슬픔, 모욕, 수치, 말도 안 되는 모함의 뒤에는 생명을 살리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생명 살리는 일 때문에 당하는 고생과 수모와 괴로움이라면 천만번이라도 감사하며 아멘 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 역사에는 불평과 원망과 절망의 단어들이 기록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역사에도 그런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어려움과 억울함과 고통과 수치를 형들이나 부모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오직 실신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 드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사람이요, 우리가 소유해야 할 신앙 인격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운명과 재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회복할 신앙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그 믿음과 신앙대로 수많은 자기의 혈육을 구원하는 큰 일을 감당하였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할 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것을 생각하면 용서하지 않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해 죽어 주시고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생각해 볼 때에 나도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더욱이나도 남에게 준 상처가 많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너그럽게 가져야 합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남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겠는가를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 시간에 갈보리 산 위에 나를 위해 피 흘리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몰라서 그렇습니다. 알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알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때까지 진노를 멈추어 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고난과 수치와 모욕과 조롱을 당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용서의 화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용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란다 하시면서 본보기로 보여 주셨습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이렇게 살자!"

모쪼록 저와 여러분이 요셉의 이 신앙 인격을 소유하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신앙 때문에 사람의 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시대 나를 통해서 큰 구원을 이루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사명의식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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