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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과 봉사 (눅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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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해원 목사 (대광교회)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창조는 천지창조의 마지막에 한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세상에 없는 재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단단하기로 말하면 다이아몬드보다 적당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변하지 않을 것으로 하면 금보다 귀한 재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독 흙을 사용하여 인간을 만드셨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흙의 특성을 안다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흙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흙의 대표적인 특징은 봉사를 위한 도구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세계에 흙이 없으면 그 어떤 생명체도 유지하지 못합니다. 인간세계에 흙은 사람이 사는데 가장 필요한 도구입니다. 흙은 봉사를 위해 만든 재료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며 봉사해야 함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먹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돈을 벌고, 집을 짓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봉사를 위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봉사를 위해 사람은 존재합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그 가운데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불살라 봉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평생 섬기시다가 죽으셨습니다. 그 분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제부터 섬기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봉사해야 할까요? 오늘은 본문을 통해 그것을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을 마음에 담으려고 합니다.

  첫째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가운데 특히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사건입니다. 보통 손님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에 가장 귀한 손님이 오신 것을 알고 마르다와 마리아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이들이 움직인 모습이 바로 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준비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얼핏 생각할 때 ‘말씀을 듣는 것이 무슨 봉사냐’ 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봉사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주일예배를 ‘worship service’라고 부릅니다. 예배가 곧 그리스도인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봉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사람이 손님이신 주님을 맞이하면서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피를 나눈 자매이면서도 두 사람의 판이하게 다른 봉사의 모습 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받은 은사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봉사하는 내용도 다릅니다. 이 다양한 봉사를 주님은 이미 인정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봉사를 같이 인정하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마르다를 보시면서 4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구나”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 말은 열심히 수고하는 것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한가지도 힘든데 많은 것을 맡아 힘쓰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르다의 장점입니다. 또한 이것이 마르다의 봉사에서 귀하게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는 일하기를 좋아했고, 맡겨지면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봉사의 자세를 알려 줍니다. 어떻게 봉사해야 하겠습니까?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녀가 이렇게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일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이 철철 넘쳤습니다. 그래서 열심을 냈던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겁게 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열정을 가지고 봉사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섬김과 봉사에 있어서 지녀야 할 우선적인 자세입니다. 봉사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열심을 품어야 합니다.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합니다. 땀을 흘리고,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자기에게, 또한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 가장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억지로 하는 것과 자원하여 하는 일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근본부터 다릅니다. 즐겁게 하는 것과 마지못해 하는 일은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다릅니다.

  봉사자로 부름 받은 나는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겠습니까? 열심을 내다가도 식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을 돌아보시고 이제 지금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의 인정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없이’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마르다의 장점이 ‘열정’이라면, 마리아의 장점은 ‘침묵’에 있습니다. 본문에서 마리아가 말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마르다가 그렇게 책망하는데도 마리아는 변명하지 않습니다. 왜 할말이 없겠습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그때나 지금이나 상대방의 말이 다 맞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더 말이 많아질 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세계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마리아인데도 그녀는 말없이 주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입은 닫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장점입니다. 그녀는 말없이 충성하고, 묵묵히 섬기고 봉사하는 자의 귀한 모델입니다.

  마리아가 묵묵히 봉사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자기가 하는 일이 소중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대접하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 듣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너무도 소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일을 위해 그녀는 비난과 책망을 들으면서도 자기의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 증거입니다.
둘째 이유는 남의 일도 귀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일도 중요하고, 마르다의 일도 역시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하는 것처럼, 남도 존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봉사해야 하겠습니까? 열정도 중요하지만, 말없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일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일은 더럽고, 다른 사람의 일은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셨나 하고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몸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보십시오. 이것이 서로를 위해 봉사하면서 몸을 온전히 세워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 몸에 붙어 있는 맹장은 아무 역할도 없고 쓸모도 없이 소장과 대장의 이물질을 담는 쓰레기통 구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따라서 공연히 염증이나 일으키고 맹장이 터지면 복막염을 일으키니 어릴 때 잘라내는 것이 건강 유지상 매우 유익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 의하면, 맹장은 인체 면역시스템 유지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간은 서서 다니는 관계로 밑을 향해 있는 소장에서 위로 향해 있는 대장으로 음식물이 순조롭게 이행되기 위해서는 인체물리 역학상 반드시 맹장의 구조적인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맹장이 없으면 장의 물리적 작용에 결함이 생겨 장내 균형이 잘 깨지고 장의 역동작용에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장내 표면에 붙어있는 찌꺼기가 잘 배설되지 않고 장운동의 리듬이 혼란해져 장내 체적률이 상당히 높아져서 각종 장 질환은 물론 영양흡수에 중대한 결손을 초래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나도 중요하고, 남의 일도 중요합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하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봉사의 일은 협력해서 세우는 것이지, 허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것이 봉사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제 말없이 충성하십시오. 묵묵히 섬기고 봉사하십시오. 그렇게 주님의 손과 발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님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마르다도 마리아도 그들이 지금 무엇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섬기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주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마르다는 열정을 내어 즐거움으로, 힘있게 봉사한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귀하기에 마리아는 말없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었고, 주님을 위하여 봉사했던 것입니다. 이 중요한 목적이 빠진다면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하여, 바로 그것 때문에 열정이 필요하고, 침묵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봉사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과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과 남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과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도 열정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합니다. 그렇게 해서 재산도 늘이고, 삶도 안정되고,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들은 결코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남을 도와주거나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도와주어도 생색만 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만 위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끝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이 왜 흙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다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 가운데에서도 역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과 주님이 아닌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남을 위하여 살되,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닌 것에 자신의 생명을 거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알라를 부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살지 않고, 모하메드를 위하여 봉사합니다. 그들의 어리석은 열정이 지금 얼마나 큰 비극으로 남아 있는지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새 천년이 시작된 이후 세계를 흔들어놓은 최대의 사건은 2001년 9월11일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사건입니다.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자 경제대국인 미국의 허를 찌른 이 테러사건은 미국으로 하여금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케 했고,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느새 테러가 난지 3주년이 다가옵니다. 그날의 그 충격을 세계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끔찍한 사건으로 온 세계는 테러의 공포에 떨며 지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무모한 행동이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일을 서슴없이 감행할 수 있습니까? 남도 죽이고, 자신도 죽이는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결코 자기를 위하여 산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알라를 위하여, 자기들이 믿는 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은 자기 몸을 불태워 자기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게 했던 것입니다.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김선일 씨의 사건이 점점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가 왜 죽었습니까? 그를 죽인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믿는 신을 위해 세상의 모든 사람과 국가와 단체를 피로 물들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분명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리석음으로 온 세계와 한국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많은 인질을 죽일 때에, 그리고 김선일 씨를 죽일 때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알라를 위하여’

  열정적인 봉사가 필요하고, 말없는 충성도 요구되지만,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이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는 너무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나는 자신을 위하여만 열정을 품고 살지 않습니까? 나는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하여 내 몸을 불태우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기를 결심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위하여 투자한 것, 주님을 위해 봉사한 것, 그 어느 하나라도 후회가 없이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섬기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사람은 봉사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위해 존재합니다. 열심히, 말없이, 그리고 주님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처럼,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라고 날마다 다짐해야 합니다. 이제 이 신앙, 이 마음, 이 자세로 일어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일터로, 농촌으로 힘있게 떠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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