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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의 행복을 위한 교회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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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오정호목사 (새로남교회)

교회는 하나님 안에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그 꿈은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교회는 비전선언문을 통해 분명한 꿈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천국의 확신(영생의 선물)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병(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복음의 증인)으로 세운다." 우리 교회의 비전선언문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 하나는 "이웃의 행복"입니다.

꿈은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이며 현재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게 하는 힘입니다. 따라서 환경지수보다 더 탁월해야 하는 것이 비전지수이며, 학력지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꿈의 지수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꿈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자아정체감이 분명해야 합니다(13,14절).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와 성도가 어떤 존재인가를 자각해야 합니다. 자아정체감이 분명하지 못하면 세상의 유혹과 도전에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사명을 분명히 확정하지 못한다면 복음의 길을 묵묵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원래 소금과 빛의 자격과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 안에는 "내가 너희를 소금과 빛이 되게 하겠다"는 강한 주님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시작도 하기 전에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그것은 주님과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와 성도를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 "소금된 존재", "빛된 존재"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순간부터 소금과 빛으로 부름받고 임명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교회와 성도가 가져야 할 자아정체감입니다. 이 자아정체감이 교회를 교회답고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 뿐 아니라, 소금과 빛의 사명과 꿈을 이루어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2. 존재는 반드시 사명을 동반합니다

어떤 존재이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도 사명적 존재에 대한 자각이 부국복민의 기초가 됩니다. 국회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입법을 해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행정부는 전천후 봉사를 통하여 국민을 섬기는 사명이 있고, 사법부는 사회정의와 법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은 실현되어져야 합니다. 사명이 실천될 때 존재는 비로소 가치를 발휘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카드 빚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20대와 30대의 수많은 청년과 젊은이들이 카드빚을 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출발하여 채 아름답게 꽃피워보기도 전에 빚에 붙잡혀 산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카드 빚 때문에 신용이 파산하고 가정이 파탄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교회는 무슨 바람을 불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죄인이 주님 앞에 돌아와 의인이 됩니다. 생명이 살아납니다. 복된 은혜의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성령의 바람은 복음바람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소금의 존재는 맛을 내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은 비추임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는 것과 빛이 비추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가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고, 성도가 성도의 본질에 충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황금찬 기독시인의 '촛불'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촛불을 켜면 그 촛불 한자리 만한 어둠은 물러가고 그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는 광명이 찬다. 그 음성이 내 마음에 오면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것은 촛불이 아니다. 그것은 조용한 음성이다. 어둠이 물러간 자리에 광명이 오듯 그렇게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다. 어두운 세상에 내 마음을 밝혀주는 것은 오직 그의 음성뿐이다. 그의 음성으로 내 마음의 촛불을 켜고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든다."

교회의 사명은 어두워진 마음, 어두워진 영혼을 주의 복음으로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침묵한다면 누가 빛을 따라 올 수 있습니까? 빛된 교회는 비추어져야 합니다. 소금된 교회는 맛을 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생각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15절).

소금은 소금통을 뛰어넘어 그 밖에서 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모이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모이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은혜를 받고 자아정체감을 확립한 후에는 사명을 받고 세상에 흩어져야 합니다.

사람은 등불을 켜서 말(큰 통, bushel, peck-measure)아래 두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큰 통을 뒤엎은 그릇에 두지를 않습니다. 등경(=lampstand) 위에 두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춥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안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패한 곳, 참된 생명의 맛을 잃은 곳에 가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릅니다. 촛불이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내가 받은 복이 가정과 직장에까지 확산되고 공유되어야 합니다. 내 것을 남에게 나눈다는 것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며 때로는 손해가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손해보지 않고서는 섬길 수 없습니다. 통속적으로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우등생은 사회에서도 우등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인 대전에 자랑거리와 긍지가 되어야 합니다. 소금과 빛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 복음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개악을 멈추게 한 후 개선을 도모해야 합니다.

둘째, 행동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16절).

빛은 사람 앞에 비추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안에서만 안주하지 않고 세상의 어두움 속으로 뛰어드는 행동으로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神前意識/Before God)과 사람 앞에서의 의식(人前意識/Before Men)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마음으로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주님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11:28) 정죄하지 않고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요한복음8:11) 위로하시고 새출발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새출발 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동시에 새출발 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삶의 목적을 제시하고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며 예수님을 만나는 현장으로 만들어줌으로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삶의 탁월성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앞에 나아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여러분, 우리 새로남교회는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문턱이 없는 교회, 상처가 치유 받고 새출발하는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쓰임 받는 아름다운 현장이 되게 합시다.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주님!

방랑자가 변하여
순례자로 쓰임 받는 교회 되게 하소서

이기주의자가 변하여
이타주의자로 세워지는 교회 되게 하소서

땅만 바라보며 사는 자가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비밀을 깨닫는 곳 되게 하소서

끌어 모으는 행복보다
함께 나누며 사는 행복을
실천하는 현장 되게 하소서

이 땅의 육체적 생명과 함께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누리는 은총의 현장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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