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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 (요일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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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오정호목사 (새로남교회)

본문은 주후 70년에서 100년 사이에 사도요한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처음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수 받은 복음의 1세대들은 복음의 뜨거웠던 기쁨과 감격을 소유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가고 신앙의 형식은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주님과 복음을 향한 열정이 따르지 못하는 또 한세대가 오게 되었을때에 그들을 대상으로 본문이 기록되었다는 배경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사도요한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성도를 성도답게, 교회를 교회답게, 복음을 복음답게 하기 위해 본문을 기록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생의 약속과 확신이 다시 불붙게 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2:25 ; 5:13).

여러분, 왜 성도들이 불신자와 구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희미한 신앙생활을 할까요? 그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 천국의 소망과 영생의 확신이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흔드는 시도들이 지금도 우리를 향해 도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일간지가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신문은 책을 광고하면서 다음과 같은 몰상식한 문구를 사용했습니다. "기독교의 심장부를 겨냥한 비수인가? 예수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가?" 이 시대에는 위로받고 격려받고 마음이 하나되게 해도 부족한데 이런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찬 적그리스도적인 책이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어놓는다면 무슨 생산적인 유익이 있으며 어떻게 이 힘든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요한은 이 세상에는 미혹케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과 사단의 미혹과 도전을 차단하고 우리의 신앙의 길을 늠름하고 자랑스럽게 걷기 위해 요한일서를 기록했다고 말합니다(2:26). 너무나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인지 시험해보라고 말합니다(4:1-3).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세균과 각종 바이러스와 싸워가며 성장해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세상의 유혹과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합니다. 예수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이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인 저항력, 영적인 체력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도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도요한을 통해 복음의 생명력이 시들어가는 성도, 세상의 도전속에 무너지는 교회들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처방을 제시하셨습니다.


1.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1-2절).

하나님의 생명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셨습니다(2절). 곧 예수그리스도가 생명이십니다. 희미한 신앙, 연약한 성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다시금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이 영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영적 생명입니다(롬6:23).

성도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믿음생활의 사막과 깊은 골짜기와 같은 굴곡을 지날 때에 최고의 유일한 처방은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다시 이어받아 활화산 같은 생명이 넘쳐날 때 험한 세상 속에서도 찬송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신비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바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의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영생'이라는 단어가 16번 등장하고, 요한일서에만 6번 등장합니다. 영생에 대한 감격, 축복, 확신만이 희미해진 성도들에게 최선의 처방책임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도 그리스도께만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했습니다(요6:68). 성경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음을 증거합니다(요5:39).

우리의 부모세대는 고단한 삶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받고 영생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안한 가운데 복음을 받았지만 영생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역동적인 삶을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신앙이 희미하다는 것은 곧 예수그리스도와의 관계가 희미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회복될 때에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고,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데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 생명으로 충만합니까?


2.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해야 합니다(3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할 때에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충만하면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 생명으로 충만해지면 생명이 생명을 낳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에 눈이 열리고 내 마음의 중심에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회복될 때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지난주간 11년전에 개구리를 잡겠다고 산으로 올라간 다섯 명의 '개구리소년'들이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부모들은 "내 아이가 금방이라도 돌아올까봐 문도 안잠갔는데..."말하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살던 곳이 아파트단지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혹시 돌아올까 봐 이사도 가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쓰던 물건도 그대로 보관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생명은 또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은혜를 창출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꺼지면 모든 사람들이 슬퍼합니다.

사도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생을 듣고, 눈으로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바 되었다고 강조합니다(3절).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과 인격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신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언제 체험하게 됩니까? 주님앞에 나아가 영광을 찬미할 때, 기도의 깊은 자리에 나아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우리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동적으로 역사합니다.

사도요한은 우리 안에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은 반드시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3,4절). 이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수의 강처럼 흘러갈 때에 생명의 축복과 기쁨을 공유하는 성도의 사귐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3절).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귐의 공동체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의 본질중의 하나입니다. 거룩한 사귐은 충만한 기쁨으로 열매맺습니다(4절). 기쁨은 예수믿는자의 특성입니다.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할 때에 어떤 도전과 역경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당당하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손을 뻗어 나를 사랑하신 십자가의 흔적을 만져보고 주님의 생명력을 내 심령에 다시금 불태웁시다. 복음의 위대성과 영생의 기쁨과 감격을 또 다른 메마른 영혼들에게 전달하여 생명이 생명을 낳는 영적인 당사자로 쓰임받읍시다. 우리 교회가 예수의 생명과 사귐의 기쁨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게 합시다. 2002년 가을을 생명의 잔치로 수 놓읍시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
삭막한 세상, 패역한 도시 가운데
예수 생명이 전해진다
마른뼈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군상들
복음을 듣는다
생명을 듣는다
생명을 찾는다
생명을 누린다

죽음이 죽음을 낳는다
확신 없는 세대, 내일이 없는 도시
죽음의 재가 뿌려진다
겉모습만 붙잡고 인생의 본질을 외면하는 무리들
죽음을 본다
사망을 듣는다
허망함을 좇는다
절망을 껴입는다

생명예수 만나면
예수생명 누리네
예수생명 누리면
예수생명 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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