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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열쇠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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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용호 목사 (영천교회)

  어느 집에 말을 잘 따라하는 구관조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식구 중에 할머니가 제일 피해를 많이 봅니다. 이 할머니가 혼자 계실 때 며느리한테 불만 섞인 말을 입으로 중얼중얼 하는 것을 구관조가 다 일러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관조도 나이가 들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의 아이들이 새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며느리가 “얘들아, 이 새는 하늘나라에 갔어. 그러니까 지금 천사들과 얘기하면서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슬퍼하지마.” 하고 애들을 달래니까 옆에 할머니가 한 마디 합니다. “그놈의 자식 천국가서는 말조심해야 될 거야.”

  교회를 다시 보자

  한 때 ‘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라는 책이 많이 팔렸습니다. 교회가기 싫은 이유 77가지를 말했는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를 하면, 교회에 가니까 너무 사람을 귀찮게 굴더라는 것입니다. 어디서 왔느냐? 이름이 뭐냐? 직업이 뭐냐? 등록을 하라, 그런데 등록하고 나니까 구역예배 와라, 남전도회에 와라, 여전도회에 와라는 등 너무 귀찮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에 가보니까 교인들이 다 자기 밖에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성경 어디를 읽는다고 하는데 자기들은 찾아서 잘 보는데 나는 도무지 어디 읽는지 뒤적이다가 끝냈다, 좀 찾아주면 좋을텐데 옆에서 못 찾고 있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더라, 교인들이 자기 밖에 모르더라, 너무 배타적이더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제일 강조되는 부분을 소개하자면, 교회와 세상이 별 차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나 세상에서나 별 차이가 없더라, 교회에 가도 잘난 사람 잘 나게 대우하고, 못난 사람 못 나게 대우하더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상대방의 주관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교회가기 싫은 이유가 77가지나 이렇게 책잡혔다는 현실입니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와서 교회가기 싫은 이유가 77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있고 우리 교회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해 봅시다. 교회가 왜 존재하느냐? 또 나는 왜 오늘 교회에 나왔느냐?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우리가 생각을 좀 해 봅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두 가지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라 합니다, 엘리야라 합니다,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이와 같은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서 예수님이 아주 중요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복입니까?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복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하늘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열쇠, 이 천국열쇠가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16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믿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바른 신앙고백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신앙생활을 아주 오래한 사람이 임종예배를 드려 달라고 해서 갔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다짐한다고 목사님이 구원의 다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성도는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참 있다가는 “안 믿어” 그러더랍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그 다음 말이 더 웃깁니다. “내가 언젠가 잠을 자는데 하얀 가마가 나를 데리러 오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의 임종이 이래가지고는 안됩니다. 하얀 가마가 나를 천국에 데리고 간단 말입니까? 여러분,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주는 그리스도”라는 이 열쇠 외에는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없습니다. “천하 인간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예수이름 외에는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이 신앙고백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이 외의 것은 열쇠가 아닙니다.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니면서도 구원의 다짐을 하는데 굳게 결심을 하고는 끝까지 안 믿은 그 사람은 본인이 안 믿은 것이 아니고 안 믿어진 것입니다. 안 믿어지는 사람은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를 바로 믿고 살아야 됩니다. 안 그러면 무슨 저승사자가 온다느니 이런 헛소리를 합니다. 천국은 세우는게 아닙니다. 헛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지상천국 세운다고 온갖 짓을 다했는데 천국은 건설하는게 아닙니다. 천국은 이미 하나님이 세워놓은 나라입니다. 천국은 들어가는 나라이지 세우는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에는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열쇠 때문에 낭패를 당한 경험이 더러 있습니까? 승용차 안에 키를 꽂아 놓고 문을 잠궈 버리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아파트 열쇠 때문에 한번 씩 당황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동차 키는 하나뿐입니다. 다른 키로 열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 집 아파트 키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옆집 키 가지고는 안 열립니다. 우리 집에 맞는 키라야 열립니다. 그와 같이 천국의 열쇠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천국의 키가 여러 개가 있는게 아닙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이 천국열쇠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열쇠에 예수님이 두 가지 의미를 주셨습니다.

  복이 있도다

  첫째는 복되다 라고 했습니다. 천국열쇠를 가진 네가 복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복 이상의 복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적어도 천국열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이 복된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초라하고 부족해도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일찍부터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긍지를 가지고 공부하고 자라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이 천국열쇠는 하나님의 교회와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8절에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네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천국열쇠를 주시는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천국열쇠로 세웁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이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을 가진 자끼리 모인 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열쇠라고 하는 이 개념을 다른 표현으로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한 사람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손님을 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고 거절했습니다. 나는 장사하러 간다, 농사지으러 간다며 바쁘다고 못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에 가서 누구든 데리고 오라 해서 혼인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객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예복을 입지 않은 그 사람을 지목 했습니다. “친구여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 그리고 하인들을 시켜서 이 사람을 밖으로 좇아내라고 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 혼인잔치에서 좇겨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예복이 바로 베드로가 받은 천국열쇠와 같은 개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어서 여덟 식구가 방주 안에 들어갔습니다. 성경에서 “방주 안에 들어간 자는 구원을 받으니” 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갔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천국열쇠의 역할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방주 안에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들어간 것입니다. 이 천국열쇠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이시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열쇠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이 열쇠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거뜬히 천국에 들어가고도 남게 하는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관에서 보면 성경전체가 천국열쇠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천국열쇠는 복된 것이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그 사명과 관계되는 열쇠입니다. 이 열쇠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 소속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되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잘 자라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두 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이는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목사님, 장로님도 계시고, 당회나 제직회, 남여전도회, 중고등부 등 이것이 전부 보이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교회를 잘 이해하고 보이는 교회에 잘 적응을 해야 됩니다. 또 하나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우주적인 교회라고 봅니다. 안 보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서울영천교회라 하면 오늘 여기 오면 서울영천교회를 봅니다. 교인들이 모여 있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드리는 장소가 있는 이것이 보이는 서울영천교회입니다. 그러나 내일 와 보면 교인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도 없을 것이고 장로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 서울영천교회가 없어졌네?’ 이게 아닙니다. 여기 모이지는 않아도 서울영천교회는 안 보이는 교회로서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조직도 없습니다. 흩어져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요 신앙고백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모든 교회가, 서울시내에 있는 교회,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 세계교회가 안 보이는 교회로서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안 보이는 교회생활을 바로 해야 되고 보이는 교회생활을 바로 해야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다 중요합니다. 보이는 교회생활은 형식입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생활은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서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나쁜 짓하고 죄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안 보이는 교회로 흩어져 살 때 엿새 동안에 우리는 실수도 하고 넘어지고 범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교회생활도 바로 해야 되지만 안 보이는 교회생활도 바로 해야 됩니다. 그 두 가지가 다 균형이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보인다는 것은 형식입니다. 안 보이는 것은 내용인데 이 형식과 내용은 다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에게 위험하게 다가오는 시대정신 가운데 하나가 포스트모더니즘(다원주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다원주의가 우리에게 폐해를 일으키는게 무엇이냐 하면 형식파괴입니다. 진리에 대한 절대성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형식이라는 것은 절대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열린예배 라는 예배분위기를 자주 접하게 되고 그런 말도 많이 듣습니다. 또 이제는 가스펠송이라는 말보다도 CCM(Contempray Christian Music)이라고 해서 비 예전음악으로 등장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노래말 가사나 멜로디를 우리가 형식적으로 많이 검토를 해야 됩니다. 음악이 변하고 예배가 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절대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교회음악은 교회사에 보면 계속 변해 왔습니다. 세속노래도 그대로 있지 않고 계속 변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영국으로 건너가서 다시 비틀즈의 노래로 미국을 정복하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비틀즈가 전자악기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네 친구가 그 요란한 전자악기를 가지고 대중음악 세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보통 컴보밴드라 하면 20-30명이 하는 것인데 그 네 친구가 그렇게 폭발적인 혁명을 일으켰던 음악의 변화라는 것은 저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위험한 게 무엇이냐 하면 형식파괴라고 하는 여기서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형식과 내용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안 보이는 교회, 이 두 가지 면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형식이 있습니다. 예배순서도 형식입니다. 이 형식을 귀찮아하면 안됩니다. 기본형식은 소중한 것입니다. 결혼식도 중요합니다. ‘결혼식이 뭐 필요하냐? 서로 마음이 맞고 사실혼이면 되는 것이지, 실제 같이 살고 아이 낳고 행복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결혼식이 필요하냐?’가 아닙니다. 결혼식이라는 형식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그 형식 안에 본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나 사이버 문화에서 지금 기존형식을 파괴하고 나오는 여기에 대해서 우리 아이들이 지금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교회교육도 잘 가르쳐야 됩니다. 지금 미국이 저렇게 자유분방하고 민주주의의 극을 이루고 있는 나라이지만 미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청교도정신, 청교도교육은 아직도 엄격합니다. 제가 잠시 있다 온 펜실베니아주 몽고메리카운티 라는 그 동네가 제법 보수적인 동네인데 그 동네는 아이들이 바깥에 외출할 때마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나갑니다. 돌아와서 부모한테 보고합니다. 그렇게 엄격하게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간섭이라며 그것을 탈피하는게 현대화된 줄로 착각을 합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생활에 얽매이는 것 같은 속박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 속박을 벗어나는게 은혜가 아닙니다. 교사의 가르침, 교회에서의 가르침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형식 속에 본질이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이 사상, 현대정신은 종교나 문화나 모든 면에 지금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도 마구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계도, 경제계도 이 사상이 직간접으로 다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4·15총선을 앞두고 물갈이론이다, 구세대 신세대가 자꾸 충돌하고 있는데 제가 가만히 보니까 앞으로 몇 고비를 더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몇 고비를 더 넘기고 몇 고비 더 시행착오가 있어야 뭔가 좀 정비되겠다 싶습니다.

  맺는 말

  우리들에게 있어서 지금 다원화주의 사상이 신앙생활에까지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집스럽지만 천국열쇠는 하나뿐이라는 것을 양보하면 안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신앙고백만이 구원의 열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지 않는 천국열쇠는 없습니다. 그건 전부 모조품입니다. 현관에 가서 안 열릴 것입니다. 천국현관에 가서 안 열리면 그 때는 낭패입니다. 우리가 땅위에서 땅위의 것을 못 가졌다 해서 아쉬움도 있고 불편함도 있지만 천국열쇠를 가진 하나님 백성의 이 긍지와 보람과 사명 앞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열쇠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인식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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