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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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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9)

이 시간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는 제목입니다. 창세기는 시작의 장입니다. 여러 시작이 있는데 창 12장부터 50장까지는 선민의 시작 즉 히브리민족의 기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본문은 얼른 보면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그가 장차 선민이 될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나아가 만인의 구주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줄기에서 났다는 점에서 이것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속사의 일대 전환을 가르쳐 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더구나 아브람 이야기는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구원의 여정과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경험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깊이 이해해야 할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시간 아브람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1.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그랬습니다.
여기 본토는 아브람이 살던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포함한 메소보다미아 지역을, 친척은 이 지역에 살던 셈의 후손을, 그리고 아비 집은 아브라함의 친 혈육인 부모형제와 일가친척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것을 떠나게 하심은 그를 택하셔서 그로 하여금 민족의 조상을 삼으시고 또 우상 도시의 온갖 죄악된 삶을 완전히 청산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이십니다. 그런데 본토 친척 아비 집이란 떠나고 버리기가 그리 쉬운 대상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메소보타미아를 출발했지만 그만 도중에 하란에서 아비와 함께 머물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진정으로 천국 시민이 되려면 세상 줄을 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해석해서 육신의 부모와 결별하고 사람들과 담 쌓으라는 말로 알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그 말씀을 적용하려면 문자가 아닌 신령한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의 옛날 아비가 누굽니까? 마귀입니다. 그리고 옛날 우리가 살던 곳이 어디입니까? 죄악 세상입니다. 엡2:2-3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떠나라는 것은 죄악을 떠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과 등지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세상에 속해 있다면 떠나라고 하실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죄악에 안주하여 안위와 행복을 얻으려는 마음 있으시다면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 죄악에는 천국도 없고 하나님 나라도 없어요. 요일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듯 죄악을 떠나야 합니다. 천국은 죄 속에는 없어요.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고 은혜만 받으려는 사람들은 사단에게 크게 속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로 오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1절에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신 말씀을 봅시다.
이 구절의 원문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내가 네게 자세히 보여줄 그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 “보여줄”이란 아직 보지 못한 미래의 일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가라고만 말씀하셨지 구체적인 장소나 방향조차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히11:8에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원문에 “그”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서 “그 땅”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이 소유할 땅이 이미 예정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바로 장소와도 방향과도 상관없으면서 하나님 나라 가는 곳이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 길 몰라도 됩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만 잘 믿으면 갑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기 거해서 신앙생활 잘해야 합니다.

창26:2-3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 그 땅이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 오면 복을 얻고 예수 안에 있으면 영생을 얻고 예수 안에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천국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예수님 떠나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 나라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다.

2-3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을 불러내시면서 큰 복을 주십니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복은 아브람과 그 자손인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육신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서 났다는 점에서 세계 만민이 받는 복입니다. 그러니까 2-3절은 결국 예수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귀한 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신다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 은혜와 복을 받고 반면 예수님을 멀리하고 미워하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잘하려고 할 필요고 하나님 아버지께 잘하고 예수님께 잘 하세요. 그래야 복이 옵니다.

우리 기독교의 황금율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7:12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입니다. 율법이요 선지자라는 것은 구약이 율법과 선지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성경 전체를 가리킵니다.

마7:12이 그렇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기독교의 황금율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복 주신 그 말씀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모든 것의 성공의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께 잘해 보세요. 우리의 영혼은 참으로 잘될 수밖에 없습니다(요삼1:2). 하나님께 잘하면 영혼에 하나님 나라의 은총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잘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강퍅해진다고 해도 이 황금율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황금율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하게 됩니다. 아무리 제도가 나빠도 사랑이 있으면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제도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아무리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많아도 이 황금율이 있으면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황금율을 가지고 있으면 선인도 돕고 악인도 돕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이 도우면 아무도 건들지도 못할 만큼 확실하게 돕습니다.

그러므로 마7:12만 가지면 영육간의 만사형통입니다. 얼마나 좋으면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셨을까요? 그러므로 이 말씀 가지고 하나님께 잘하시고 이 말씀 가지고 사회생활하고 이 말씀 가지고 목회하고 이 말씀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풍성한 하나님 나라의 은총으로 내려 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으려면 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7-8절에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보니 그 땅은 이미 가나안 사람들에게 정복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인도 따라 세겜에서 제단을 쌓다가 나아가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가장 문제 시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람에게 가나안 족속이 가장 두려웠듯 우리를 이미 지배하고 있는 우리 속의 죄악의 속성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이 죄악의 속성이 바로 원수 중의 원수예요.

그러나 그것을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듯 하나님께 늘 예배와 기도의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늘 기도하고 예배하세요. 늘 제단 쌓으세요. 그러면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그리고 죄악을 이기는 능력이 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축복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이게 우리의 생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순례자입니다. 아브람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지금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시는 그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세상에 마음 두지 말고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잘 경외하여 하나님 나라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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