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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밥이라 (민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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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전주동부교회)

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흥부 놀부 이야기 가운데 나온 밥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버지가 죽고 재산을 차지한 형 놀부는 동생 흥부에게 아무 재산도 안 주어서 흥부는 가난해져서 흥부가 자식들이 너무 배가 고파 달라기에 놀부 집에 가서 사정을 하다가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게 되는데 흥부는 아픈 것은 제쳐 두고 밥주걱에 붙어 있던 밥알이 뺨에 붙은 것을 떼어 먹으며 한번 떠 때려 달라고 하자 이번에는 주걱을 씻어 때린다는 장면을 현대판으로 묘사한 것을 봅니다.

흥부:형님~~ 식량 좀 나누어주시지요.

놀부:행 괴심 한 것 여보 주걱으로 한 대 쳐!(얼굴이 빨개지면서)

놀부아내: 옛썰!

흥부: 형수님 제발 그것만은!(울며울며 사정한다.)

놀부아내: 미안합니다. 퍽!(비웃듯이)

흥부: '어 밥풀이 붙어 있네. 한 대 더 때려 달라고 해야지'

놀부: 야! 흥부 이제 매운 맛을 보았으니 어서 가1

흥부: (들은 체도 안하고)형수님 한 대만 더 때려 주시면...

놀부아내: 그래! 이제는 후라이 팬으로 쳐주마!(옷소매를 거두며)

흥부: 잘못했습니다! 형수님 안녕히 계세요.(허겁지겁 달아나며)

해설 : 흥부는 이렇게 불쌍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아이들은 모두 실망한 눈치였어요.(배를 문지르면서)

흥부 아내 : 요번에도 못 구해 오셨군요




밥상 앞에서 울던 날이란 글을 봅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혼자 힘으로 우리 8남매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우리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러 부엌에 들어간 어머니는 쌀통 앞에서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벌써 일주일 가깝게 물로만 배를 채우며 우리들에게 보리밥을 해주셨는데, 그나마 보리가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저녁을 짓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것입니다. 조금씩 나눠 먹으면 어떻게든 한 끼가 해결되겠지만, 어머니는 유난히 투정이 심한 막내 형이 마음에 걸리셨나 봅니다. 막내 형은 자기 밥그릇에 밥이 가득 담겨 있지 않으면 아예 수저를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찌어찌하여 저녁밥을 지은 뒤, 그릇에 밥을 퍼 담던 어머니는 끝내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얼른 방으로 들어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저녁상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어머니가 들여온 저녁상에는 어찌된 일인지 막내 형 밥그릇에 밥이 수북했습니다. 나는 맛있게 밥을 먹는 막내 형 얼굴과 어머니의 퉁퉁 부은 눈을 번갈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내형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우리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 있다가 형의 밥그릇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새하얀 행주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곧 어머니도 왈칵 울음을 터트리셨습니다. "얘야, 미안하구나. 밥은 모자라는데, 난 네가 아예 밥을 먹지 않을까 봐..." 어머니는 형에게 자꾸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자 막내 형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철없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며 흐느꼈습니다. 옆에 있던 우리 식구는 모두 밥상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밥상 이란 글도 봅니다.

취직도 안 되고 거기다 빚까지 지게 된 나는 달랑 가방 하나만 메고 서울로 왔습니다. 달리 갈 곳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중학교 친구가 자취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역시 대학 친구 5명과 단칸방에서 북적거리며 살고 있던 터라 나의 등장은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며칠 뒤부터 나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에는 광고를 돌렸습니다. 빚진 돈을 갚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 감기에 걸려 가면서까지 고생스럽게 뛰었던 아르바이트를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왜 살려고 발버둥치는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갑자기 맥이 풀리면서 나는 3일 동안 심하게 앓았고 내내 잠만 잤습니다. 친구는 이런 내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사흘 만에 기운을 차린 나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동안 아파서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간신히 일어나 부엌으로 갔는데, 국수와 밥이 나란히 놓인 상이 차려져 있고 쪽지가 하나 놓여져 있었습니다. 많이 힘들지? 아파도 힘들어도 열심히 살려는 네 모습 참 보기 좋았어. 이번 일은 나도 마음이 아파. 그러나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천하의 네가 아니잖아? 힘내라. 얼른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맛있는 거 만들어 주고 싶은데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어서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들었어. 이 성공할 놈아, 크게 될 놈아, 먹고 힘내!

친구는 나를 위해 집에 남아 있던 마지막 쌀과 반찬으로 상을 차린 것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눈물을 흘리며 친구의 사랑으로 꽉 찬 밥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밥은 '먹이'로 신앙적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사람은 늘 된다고 생각하고 되려고 노력하는 대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선발된 열두 명의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0∼33)

이스라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보니까 그 땅에 살고 있는 아낙 자손들은 다 거인들이요,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의 밥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밥이란 말은 이길 수 있고 정복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메뚜기 사고방식을 벗어나라고 합니다.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Winning in the land of Giants-번역본-메뚜기 사고방식 벗어나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종류의 거인들이 있는데, 이 거인들을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메뚜기 사고방식' 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메뚜기 사고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장점은 보지 않고 약점에 초점을 두는 사람이라든지,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열등감을 많이 가지는 사람, 어떤 일에 쉽게 좌절하고 패배주의적인 태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메뚜기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거나, 아니면 못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메뚜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불 신앙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이 메뚜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무능하다', '내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안된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문제거리를 미리 상상해 내고, 그리고 스스로 장애물을 그려놓고, 또 실패를 미리 예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의심과 공포심의 포로가 되어 비관주의와 허탈의 정신적인 풍토를 조성할 뿐 아니라, 자신과 이웃을 질식시켜버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불가능은 없다』라는 책에서 '할수 없다' 고 하는 부정적인 믿음은 가장 악질적인 정신질환이라고 까지 하며 적극적인 사고로 할 수 있다고 하라고 한다합니다. 

  실제로 어떤 통계에 의하면 심리학자들의 말에, 사람들의 마음에 매일 담고 있는 말 가운데 80% 정도는 실패의 메시지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돼!"  "그렇게 할 수 없어" "그게 아니야" 라는 이런 실패의 메시지를 듣고, 그리고 스스로 마음속에서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패의 메시지 때문에 언제나 패배감에 사로잡혀 병적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메뚜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메뚜기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믿음으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알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는 사람이 거인(巨人)의 나라에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아이고 죽겠다. 다 틀렸다. 나는 죽었다.'식의 부정적 사고 방식과 언어 습성부터 고쳐야  우리민족의 의식 혁명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눈이 하얗게 내린 것을 보고 '아, 너무 아름답다. 내 마음도 이렇게 좀 아름다워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고, 오늘도 길이 빙판이 되어 다 틀렸다, 참 날씨가 더럽네.'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비가 오면 '자, 시원하다. 통쾌하게 비가 오는구나'하고 빗줄기를 거닐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은 '참 더럽게도 비가 쏟아지고 있네'하면서 먼저 나쁜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즈음 처럼 무더운 날씨에도 겨울에 추울 것 생각해서 견디자 하는가 하면 왜 이렇게 덥느냐고 짜증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두 다리를 잃은 청년이 미국의 50개 주의 높은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하여 훈련을 쌓던 중 1994.6.1일 드디어 알래스카주 매킨리 봉에서부터 정복하기 시작하여 무수한 고통과 죽음의 고비를 넘겨가며 도전한 결과 드디어 66일만인 8월 7일 오전 11:57분에 50번째주 50번째 산인 하와이 마흐나키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정상 높은 곳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라는 찬양을 드릴 때 T.V를 통해 미국 전 지역에 방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기도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의 모든 장애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했다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희망보다는 절망스러울 때가 더 많은 것 같고, 잘될 것 같은 일이 이상하게 안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힘들어하고 불안해하고 염려 걱정을 하게 됩니다




12정탐 가운데 10명은 자신들은 가나안 족속의 눈에 메뚜기로 보이고 자신들 눈에도 자신들이 거인들 앞의 메뚜기처럼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불신앙적 사고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신앙적 사고를 했습니다.

우리의 밥이라는 말은 손쉽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가나안이 이스라엘의 필요를 넉넉히 채우는 보물 창고임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수1:5,6). 그러므로 실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굳센 믿음을 가질 때 인간이 지닌 제 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롬 8:31-39).


이스라엘군은 블레셋의 골리앗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떨었으나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그의 밥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서게 되고 결국은 이깁니다.

신앙적 시야, 신앙적 사고의 습성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교육을 함에도 신앙적 사고를 키워 주는 교육이 필요 합니다.

신앙적 사고를 키워 주는 교육은 유대적 교육이라 합니다.




글라스고우 대학의 위대한 신약학자 월리암 버클레이(William Barclay)교수는 "고대 세계에 나타난 교육적 이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고대 세계에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교육이 있었다는 지적을 한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스파르타식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식 교육이라 합니다. 스파르타는 펠레폰네소스 반도 남부에 위치한 도시 국가의 이름입니다. 이 나라는 헬로트 라는 농노를 다스리기 위해 여성의 지위를 인정해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남자들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강한 체력훈련을 위주로 군사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까다롭고, 엄격한 교육을 지금도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남자가 출생하면 신체검사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허약한 아이는 길거리에서 죽게 하고 건강한 아이만 가정에서 받아 들여 키웠다고 합니다. 남자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아버지의 재산에서부터 나라의 재산으로 바꾸어집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음식과, 강인한 체력 훈련, 복종과 책임으로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열두 살이 되면 무서운 군사훈련이 시작되는데 밤이면 길거리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농노인 헬로트를 살해하는 것으로 군사 훈련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이 헬로트를 진압하고 살아야 하는 스파르타의 생존을 위한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인 교육방법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약 100여 년 전에 실시되었던 남자아이의 입학식은 이렇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나이는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새벽 미명에 어린 아이는 잠을 깨고 목욕을 합니다. 그리고 금술이 붙은 예복을 입는다. 반드시 아버지의 손에,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는 친척 중 지혜가 있는 사람의 손에 이끌리어 회당으로 갑니다. 회당 앞에 놓인 두루마리 앞에 아버지와 아들은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 26절을 반복해서 외웁니다. 출애굽기 20장 2절부터 26절까지의 내용은 십계명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하잔이라는 교사의 집으로 인도됩니다. 하잔이라고 부르는 교사는 문간에서 어린아이를 포옹하며 키스를 합니다. 방안으로 인도된 어린이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신명기 33장 4절에 쓰여진 돌판이 놓입니다. 그리고 교사를 따라 성경 말씀을 암송합니다. 그리고 신명이 33장이 쓰여진 돌판 위에 꿀을 바르고 그 꿀을 핥아 먹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임종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한 말씀입니다. 또 이 행동은 에스겔의 신앙 경험을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에스겔서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에 나오는 말씀을 상징화해서 교육 합니다. 그 다음엔. 성경 말씀이 새겨진 케이크를 먹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마음을 열고, 좋은 기억력을 달라고..

스파르타 교육! 그것은 강력한 육체와 군사훈련을 익혀 갔던 스파르타인들이 주전 400년경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강적 아테네를 물리치고, 불과 몇만 명으로 수십만의 농노인 헬로트를 장악하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들까지도 헤로트를 장악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여권 신장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스파르타 인들은 역사 속에 영원히 존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전 371년 데베우라는 소도시의 군대 앞에 스파르타는 무참히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유대인들의 교육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침공을 당하고,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페르시아와 로마의 압정에 시달리고, 그리고 주후 70년 유대인 대 학살 이후, 전 세계로 흩어졌으며 더욱이 세계 대전 동안 600만 명이 나치에 의해 학살되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이스라엘은 지금도 역사 속에 뿌리내린 민족으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유대민족을 통해 강한 자가 먼저 망하고, 약한듯한 자가 끈질지게 역사의 맥을 이어 살아간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는 교육의 차이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교육의 차이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스파르타 교육은 행하지 않고 오직 '힘'을 사용하는 자가 역사를 주관한다는 교육을 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대인의 교육은 나약한 교육 같았지만 거기에는 이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안에 있다는 역사관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밥은 인간이 살아 가운데 필요한 기본 요소입니다.

밥은 먹이의 뜻도 있어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생활 하게 교훈 합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생활하게 하는 교육은 유대적 교육입니다.

  오대양 육대주는 나의 밥이다 라는 주제로 중등부 수련회가 열립니다.

중등부 학생들이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생활하는 방법을 체험 하도록 기도하며 협력 하며 우리 또한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생활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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