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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종을 만나게 하시는 섭리 (삼상 9: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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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요한 목사 (평안의교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렵거나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곤 합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집에 이사가서 사업에 실패하거나 자녀들이 큰 병에 걸리거나 하면 "이 집 터가 쎄서 그런가?"하고, 전에 살던 사람도 여기서 망해서 나갔다고 하면 "조상 묘를 잘못 써서 그런가?"하는 등 길흉에 대한 이유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또 위로 받으려고 애쓰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풍수지리나 도교의 영향이 은연 중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만, 때로는 크리스찬중에도 이런 류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형편을 해석해 보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들을 발견하고는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종이란 헬라어로 둘로스라고 하는데, 노예라는 의미입니다. 노예는 주로 전쟁을 통하여 패배한 국가의 백성들이 지배국에 끌려가 주권없이 살아가는 계층을 말합니다. 그들은 오직 주인의 말만 순종하게 되어있으며 자신의 의사는 나타내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의견이나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자세이기에 포기하거나 감추기 일쑤입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종의 모습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저는 주의 종입니다.’라고 하면 바른 표현이지만 혹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 "주의 종에게 능력을 갑절로 주시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주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 미안한지 ‘주의 종님’이라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만 종에 무슨 님자가 어울리겠습니까? 성도 여러분들이 저를 호칭할 때 목사라고 하던지, 아니면 주의 사자라고 하시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울에게 주의 종을 만나게 하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종이란 사무엘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하심이 주의 섭리요 계획하심이라는 것을 저는 증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인본주의적 사고나 자유주의적 신학논리를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저의 설교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들이 평안의교회를 선택한 뒤 등록을 하는 행위는 곧 담임목사인 저의 신앙고백과 평안의교회 정체성인 복음주의적 신앙에 동의하여 함께 은혜를 나눌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인격적인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한 결단이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이 저와 함께 복음적 설교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며 사시는 줄로 믿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인본주의나 자유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할것입니다. 곧 신앙관을 바꾸던지 아니면 그런 신학적 견해를 가진 교회로 찾아 가야 할 것입니다. 때때로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거나 복음서의 이적을 부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언젠가 에모리대학 캔들러신학교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장께서 자신은 휴거를 믿지않는다고 하여 놀란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철저하게 복음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인정하고 동의하면서 믿음으로 아멘할 수 있는 분들에게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표현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마태복음 10장 29절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거나,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 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 속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에는 원수도 사랑할 만큼 폭이 넓어야 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 뺨도 돌려댈 만큼 우리의 삶 속에서의 사랑과 섬김은 넉넉하고 끝이 없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관은 바울 사도처럼 단호하고 분명할 때는 분명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에 성도 여러분들이 아멘을 할 수 있기에 이 자리에 우리가 한 공동체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하시기 위해 세 가지의 놀라운 준비를 해 두셨습니다. 먼저 9장 3절에서 4절을 보면,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에 아들 사울은 자기 동네와 이웃 동네 까지 찾아다녔지만 허사여서 나중에는 베냐민 지파 지경 끝 숩 땅까지 두루 찾는 헌신적인 순종의 모습으로 책임을 완수하려고 힘을 다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그 다음의 일거리가 연결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왕 하는 길에 이것까지 마무리하고 끝내자" 하고 수고의 땀을 흘리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분에서 딱 끝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누가 더한다고 상주나..."하면서 말입니다. 맡겨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문제는 성실성입니다. 얼마나 잘하느냐하는 기능적인 면이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성실성에서 판가름 나기 마련입니다.

요즘은 "칭찬합시다" 라는 코너에서 좋은 이웃들을 칭찬하는 것이 유행인데, 저는 우리교회 추교철 장로님을 칭찬의 주인공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보일러 판매가 주업이지만, 때때로 설비 시공도 하시는 장로님은 보일러만 설치해주면 그만입니다. 따스한 온돌방 처럼 데워주는 보일러설치는 온수와 냉수가 잘 나오면 그만이예요. 하지만 그 작업을 하다보면 벽도 뚫어야 하고, 스티로폼만 사용하다보면 주변이 어지러워지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갑니다. 보일러 설치를 하러 왔으니까 당연히 설비부분만 완료되면 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만, 우리 추장로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분은 주변을 깨끗이 정리정돈 하여 주인이 손을 댈 필요가 없이 해놓고 가니까 사람들이 감동을 합니다. ‘그 분 뭐하는 사람입니까?’ ‘우리교회 장로님이지요.’ ‘역시 다르네요......’ 주를 닮고자 하는 주의 백성들은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마저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성실함을 통하여 주의 종 사무엘을 만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5절에서 10절입니다. 함께 사환을 동행했는데, 저 숩이라고 하는 베냐민 땅 들녘까지 갔다가 이제는 너무 늦어서 아버지가 걱정하시겠다. 돌아가자 그랬더니 이 함께 했던 사환이 말하기를 주인 아들에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주변에 능력의 종, 존경받는 주의 종이 계시다고 하는데, 한 번 그 분을 만나보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제안을 하니까 사울이 나도 사실은 만나고 싶지. 근데 내가 가진 게 없어. 지금 우리가 준비한 음식 다 떨어지고, 우리가 여유있는 상황이 아닌데, 어떻게 주의 종을 만나나. 그러니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돌아가자. 그 쯤 되면 그러지요, 뭐. 하면서 돌아다닐텐데, 그 사환은 그러한 사울에게 또 한번 제안합니다. 저에게 조금 있습니다. 제게 은 한 세겔에 1/4, 아주 조금은 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가지고 주의 종을 만나면 안 되겠습니까? 이 사환은 어떻게 해서라도 사무엘을 만나게 해 주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목사는 속이 탑니다. 제가 3박4일 부흥회를 해도 입이 부르트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저희 교회에서 제가 입이 부르틉니다. 이번에는 김흥인집사님이 꼭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손순복집사님이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부흥회를 하면 꼭 안 오거든요. 예를 들어 그렇다는 거예요. 진짜 안 오는 사람들이 예를 들면 시험 들거든요. 그러니까 잘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야 돼요.

아, 왜 안 오실까? 전도사님을 통해서, 지역장님을 통해서 연락하시라고 문자를 하루에 2,30통은 보내라고 했는데도, 찬송이 되어지고, 말씀이 되어져도 안 보입니다. 목사는 속이 타는 거지요. 은혜 받을 사람들은 이 은혜의 자리를 베풀었는데, 늘 은혜 받는 사람들만 오고, 받아야 할 사람들은 안 오는 거예요.

자, 여러분 주변에 권면해서 오십시오. 그래서 은혜 충만한 집사님이 이제 찾아갑니다. ‘집사님, 이번에 부흥회 은혜로운 사람들이 오셨는데, 꼭 가십시다.’ ‘아휴, 사실은 나도 꼭 가려고 그랬지. 그런데 시어머니가 오셨어. 친정아버지가 오셨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뭐, 여성의 입장에서는 친정어머니, 아버지, 시어머니가 오셨다면 섬겨야 하니까 자리를 비울 수가 없잖아요. 정말 미안하다는데, 그리고 그 집사님은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분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휴, 다행이다. 부흥회 할 때 친정어머니가 오시고, 시어머니가 오셔서 다행이다. 아유, 그러면 그 집사가 또 올텐데, 내일은 뭐라고 또 변명을 할까?’ 변명거리를 찾습니다. ‘아, 그렇구나.’ 평소에는 학교에서 암만 오라고 해도 안 가던 사람이 아이가 왔는데 내일은 어머니회의가 있다고,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그 사람이 ‘미안해요. 꼭 가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오래요. 1년에 한 번인데, 어떻게 안 가나요?’ 그리고 또 핑계를 대고 갑니다.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이렇게 저렇게 빠져나간 사람들, 은혜의 자리를 피해 가던 사람이 어느 날 은혜 받고, 간증하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핑계 거리가 없어서 고민했다는 거예요.

이제 아무개 집사가, 아무개 지역장이 올텐데, 뭐라고 핑계하나. 그게 고민이었다는 거예요. 아마 이중에도 그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 한 번 두 번 권면해서 포기해서 될 일이 아니지요.

전도라고 하는 것이 띠 띠고 나서 전도지 주면서 ‘예수 믿으세요.’ 하면 ‘아이고, 나 예수 믿으려고 기다렸는데, 감사합니다.’ 그럴 사람이 만명에 한명이 되겠습니까? 얼굴도 모르고, 사연도 모르는 사람이 가서 ‘평안의교회에서 왔습니다.’ 한다고 해서 선물 하나 준다고 교회 나오겠어요? 그래서 전도는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거예요. 그래서 전도수첩을 드리고, 적어도 7번에서 13번, 14번을 만나라는 거 아니예요?

처음 찾아가면 ‘아이고, 예수 믿는 것들 지겨워 죽겠는데 계속 찾아오네.’ 그러면 쓰는 거지요. 예수 믿는 것들 지겨워 죽겠네- 201호. 그 다음 주에 또 가는 거지요. ‘아이고, 왜 또 왔어요?’ 그러면 또 왔어요 쓰는 것입니다. 그 다음주에 선물 하나 들고 가서 가면 사람은 싫어해도, 고급 화장지는 좋아하거든요. ‘그거 놓고 얼른 가세요.’ 그렇게 7번 찾아가면 7주 두 달이 되잖아요. 그 동안에 벌써 얼굴이 사겨집니다. ‘아이고, 맨날 우리집 오는 아줌마네.’ 벌써 이야기가 됩니다.

그 때까지는 절대로 복음은 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무슨 사람이 처음 만나가지고, 예수에 대해서 아십니까? 사영리에 대해서 아십니까? 이 딴 소리 해 가지고 됩니까? 제일 짜증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이것은 정말 저도 화가 나는 이야기 예요. 관계가 되어지지 않았는데, 무슨 이야기가 되어진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전도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달, 두 달, 석 달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그 다음에는 더 가면 ‘물이라도 한 잔 먹고 가세요. 나한테 예수 믿으라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그러면서 그를 알아가고 만나면서 결국은 점점 삶에서 관계가 가까워 지면 그 다음에는 복음이 제시되도 거부감이 들지 않고, 주보 주면서 ‘우리 교회 주보인데, 한번 읽어 보세요.’ ‘알았어요. 쇼파에 놓고 가세요.’ ‘우리 특수선교회 전도진데, 한 번 보세요.’ ‘놓고 가세요. 있다가 한 번 볼께요.’ 그런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교회의 그 사각 휴지에 쓰여진 그 문구를 만드느라고 제가 얼마나 고통을 받고, 얼마나 기도한 줄 아십니까? 그것을 기도하고, 한 자, 또 한 자 고쳐가면서 그렇게 해서 그것을 나눠줬을 때 그 문구를 보고 그 문구 속에서 감동받고 교회 등록한 성도도 있어요. 하나 하나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피눈물나는 헌신과 수고가 없으면 새가족은 되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새가족 오셨습니다. 우리 박수 한번 합시다 하는데 성의 없이 박수가 됩니까? 정말 맑은 정신으로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전도 해 본 사람이면, 25층 아파트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녀본 사람이라면 기립해서 박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요. 저 사람 인도하는 대로 얼마나 수고 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 가졌을까? 얼마나 눈물 흘렸을까? 이해가 되고, 감동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사울은 그 쯤에서 돌아서려고 그랬어요. ‘한 번 만나고 가시지요.’ ‘나 가진 거 없는데....’ ‘제가 가진 거라도 드리지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의 주인집 아들 사울을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해 주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결국 사무엘상 9장 10절에 보면 사울이 사환에게 이르되 ‘내 말이 옳다. 가자.’ 결국은 동의 하게 됩니다. 결국은 이 지혜로운 사환의 인도에 따라가게 됩니다. 입장이 사환이고, 주인이고를 떠나서 얼마나 진심으로 그를 도우려고 하느냐 하는 그 끈질긴 사환의 열정에 사울은 감동을 받은 거지요.

세 번째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11절에서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주의 종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길에 언덕길에서 물 긷는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이 소녀들에게 이 성에 주의 종을 만나러 가는데 좀 알려줄 수 있니? 라고 물었을 때, ‘저기 저 성에 들어가면 있어요. 가 봐요.’ 그래도 될 것을, 지금 본문 말씀 12절에서 13절을 보면 그들이 대답하되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들이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그 분이 오늘 예배를 드리려고, 제사를 집행하려고 왔는데, 조금 늦으면 그 분을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셔서 금시로 만나리이다.’

오히려 그 소녀들이 급해가지고 정확한 정보를, 빠른 정보를 지금 사울과 사환에게 알려주느라고 열정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암나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사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름 없는 물 긷는 소녀들을 통해서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인도하시고 섭리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연이겠지요? 노래 중에 재미있는 노래가 있지요.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저와 여러분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사회 생활 하다보면 노래할 일이 있는데, 노래할 일이 있으면 교회에서도 찬송가는 빼고, 뭐, 복음성가는 빼고 부르라는 얄미운 여자들이 있지요. 그러면 만남 정도 부르면 괜찮습니다. 수준도 있고, 또 분위기에 적당히 맞출 수도 있고 괜찮은 노래예요. 김경선 권사님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노래할 일이 많은데, 옛날 예수 믿기 전에 한가닥 한다고 그러지요. 그런 것들이 다 이제 없어집니다. 기억력도 상실되고, 떨어지는데 꼭 어디 가면 찬송가는 빼고 부르라는 사람이 있어요. 난 그 사람들이 제일 얄미워요.

어느 목사님이 고백을 하는데, 지방 여선교회 임원들이 여행을 가는데, 목사님이 인솔을 하고 가면서, 기도회 하고, 말씀 듣고, 좋았어요. 한 30분 지나고 고속도로로 차가 달리고 나니까 한 여성이 딱 마이크를 잡더니 ‘지금부터 열린 노래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노래가 시작됐는데, 너무너무 잘 하더라는 거예요.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찬송가는 빼고 그러더래요. 그러다가 목사님도 한 곡 하시라고 그러는데 찬송가는 빼라고 그러더래요. 이 분도 옛날에 그런 것을 잘 했던 분인가봐요.

찬송가를 빼라니까 빼고, 찬송가 빼면 내가 못 할 줄 아느냐 그러고 메들리로 몇 곡을 불렀는데, 늴리리야를 불렀대요. 뭐, 이것 저것 몇 곡을 불렀다는데, 그 자리에서 앵콜을 받고, 몇 곳을 더 불렀답니다. ‘목사님 짱이야. 너무 멋있어’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 날 행사는 아주 목사님이 최고로 떴다고 그래요.

그러다 얼마 후에 어느 지방회 모임에 갔는데, 그 여선교회 회원들이 자리에 그렇게 있다가 그 목사님이 떡 나타나니까 ‘저기 늴리리야 목사님 오신다.’ 그 분이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 분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답니다. ‘하나님 내가 오늘 이후로는 절대로 세상 노래는 안 하겠습니다.’ 그냥 서원을 해 버렸답니다. 너무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성도들 머리 속에 그 목사님 이미지가 기도하는 목사님, 은혜로운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님이 아니라 늴리리야 목사님, 메들리로 나가는 목사님, 목사가 노래 좀 못 하면 어떻습니까? 유행가 좀 못하면 어때요? 그것은 목사의 사역에 마이너스 되는 거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곳곳에 이동안내소를 준비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정확하게 인도하신 줄 믿습니다. 우연이지요. 주의 일들이 놀랍게 역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할려고 그래요.

15절을 보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섭리이신지, 두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사울이 오기 전 날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셨다.’ 지금 사울과 사환 일행이 사무엘을 만나러 오는 날 물 길러 온 소녀들을 만나기도 전에, 사환과 함께 지금 주의 종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 그런 것 고민하기 이 전에, 미리 주님께서는 사무엘 주의 종에게 내일 이맘 때 베냐민 지파 사람 하나가 찾아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사역을 위해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16절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보내리니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우리는 가기도 전입니다. 사울은 물 긷는 소녀 만나기도 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사울을, 이스라엘을 위한 지도자로 선택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섭리하셔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만나게 하시는 이유가, 목적이 무엇일까? 한가지입니다.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기름부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게 하셨고,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사명을 주기 위해서, 혹은 사명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만난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게 하시려고 나를 평안의교회로 보내셨구나. 나에게 이 일을 깨닫게 하시려고 저 황요한 목사를 만나게 하셨구나. 아직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만나게 한 뜻을 모르시겠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선택에 대한 오늘 본문은 교과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섬세하신 손길로 초대왕 사울의 길을 인도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섭리의 수단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거창한 것을 좋아합니다. 아주 요란한 것을 좋아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면 큰 사건을 통해서 아주 멋진 드라마와 같은 그런 사건을 통해서 나를 감동시키고 나를 사용하시겠지.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뢰와 같은 광풍 속에서도 말씀하시잖아요. 잔잔한 가운데,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아주 사소한 일을 통해서 일상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대단치 않아 보이는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은 위대한 일을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난 것처럼 기드온이 피난해서 산골짜기에서 포도즙 틀에서 밀을 타작하다가 천사의 방문을 받고 민족을 구원하는 사명자로 부름을 받은 것처럼 오늘 사울은 잃은 나귀를 찾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초대왕에 왕관을 발견한 것처럼, 때때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주의 종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고집이 강하여 하나님의 뜻을 어긋나게 하고,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깨닫게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주의 종을 만나게 하시는 섭리를 기억하며 성실하게 주의 뜻에 응답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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