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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열심을 내라 (계 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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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제1차 세계대전 때 참전하였다가 다리를 다친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수도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늘 수도사에 대한 생각과 꿈에 사로잡혀 있던 그는 온갖 노력 끝에 수도원의 요리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비록 그가 원하던 수도사가 아닌 요리사로서 수도원에 들어 왔지만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도 할 때, 그는 부엌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장 보러 갈 때에는 "주님, 좋은 식품을 값싸게 구입하게 하시어 수도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열심히 봉사했고, 설겆이를 하면서도 “주님, 이 그릇들이 깨끗게 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섬겼습니다. 심지어는 불을 지피면서도 "주님이시여, 이처럼 성령의 불이 내 마음속에 타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했고 또 그의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복종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그는 훗날 수도원 원장까지 될 수 있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열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 동남쪽 약 72km 지점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유명한 의학교가 있는 곳으로 이름이 있었으며, 고대 세계전역을 통해 안질의 치료로 유명했습니다. 또 교통의 요충지로서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였으며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창하는 도시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금융중심지로 부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3개의 극장과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라디오게아 사람들이 세상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곳에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와 교인들 역시 넉넉하여 생활 걱정은 없었으나 주님으로부터 칭찬은 듣지 못하고 책망만 받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 현대 교회의 모습이요, 이 시대에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열심을 내는 데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요소들이 신앙생활을 산만하게 만들어 열심을 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산소용접기를 아실 것입니다. 산소용접기는 쇠를 녹이고 절단하며 쇠와 쇠를 강하게 붙이기도 합니다. 그 산소용접기는 불꽃을 가장 가늘게 모아 집중할수록 높은 열을 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집중이 되지 않고 여기 저기 마음이 산만한 사람에게는 열심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마음을 주님께 모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으로 산만케하는 요소들을 회개하여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열심을 내는 신앙이 되려면,

첫째로 미온적인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라오디게아의 북쪽에 ‘히에라폴리’ 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 섭씨 90도나 되는 ‘파묵칼레’ 라는 뜨거운 온천이 있습니다. 성지 순례시 그곳에 가보니 온천수의 석회분과 칼슘분이 바위를 흘러 덮어 마치 흰눈이 덮인 것 같기도 하고 목화꽃이 만발한 목화밭 같기도 하였습니다. “파묵칼레”의 뜻은 목화성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뜨거운 온천물이 10Km 떨어진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옵니다. 그러면 그 뜨거운 물이 식어 나중에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해진 상태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지근해진 물은 온천수에 들어있는 유황냄새가 더 심하게 나기 때문에 누구나 다 토하여 뱉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황을 이 온천수를 비유로 들며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즉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신앙자세가 아주 미온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영적인 정체를 밝히라고 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교회이긴 교회인데 회개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교양 삼아서 교회에 나오고, 심신을 쉬러 나오고, 위로 받으러 나옵니다. 편하게만 믿으려고 합니다. 선교에 대한 열정도 없고, 울며 기도하는 회개의 모습도 없고, 모이기는 모이는데 마치 극장처럼 의미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미온적인 신앙이 되면 주님께서 역겨워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토하여 내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미온적인 신앙을 버리고 주님을 향한 뜨거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함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뜨거움을 가지고 열심을 내어 주님을 섬겨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스스로 자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신학생이 시험이 다가오자 공부는 하지 않고 기도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보자 아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답안지에다“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큼직하게 써놓고 나와 버렸습니다. 교수가 채점을 하려고 답안지를 보니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교수님은 시험지에,“하나님은 다 아시니 100점, 학생은 다 모르니 0점”이라고 썼답니다. 내가 나를 알고 있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자만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과 전혀 다르게 자신들을 평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부자요,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부족하여 병이 들어 버린 교회였습니다.

자만심은 자기가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자만심에 빠진 사람은 자신은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은 멸시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입니다. 교회가 자만심에 빠져버리면, 교회를 크게 짓는 것이 목적입니다. 교인들의 숫자가 많으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행사와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이 활발하면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교회를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님의 기준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내 기준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어떻게 보시느냐 입니다. 세상에서 선하게 평가를 받고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도, 주님이 아니라 하면 아닌 것입니다. 이시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처럼 착각에 빠져,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나 혼자 됐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데 나 혼자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잘못된 부분들이 영적으로 치료되어 건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교회를 갔습니다. 교회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수님이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의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저 그림은 무슨 내용이예요?" ,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그림이지", "그래요. 그런데 왜 문이 안 열려요?" 아버지는 무심코 대답하기를 "그림이니까 안 열리지". 그런데 아들이 말합니다. "틀렸어요. 아빠, 집안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예수님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어 문을 못 여는 것 이예요". 여러분의 가정이 시끄럽습니까? 그렇다면 은혜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부부간에 시끄럽습니까? 사랑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교회가 시끄럽습니까? 은혜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내 영혼이 시끄럽습니까? 주님의 음성이 들릴 리가 없습니다. 시끄러우면 은혜의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비극은 주인이신 예수님을 쫓아내고 사람들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주인의 자리를 차지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일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여러분의 안에 계십니까? 아니면 밖에 계십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힘으로 살아가십니까? 내 힘으로 살아가십니까? 주님의 힘으로 사십니까?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중심에는 예수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십니까? 여러분을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십니까? 주저하지 말고 주님을 모셔드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알지 못했던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가 시작될 것입니다.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양식을 먹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 주님의 권세를 얻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난로 속의 불' 이란 책이 있습니다. 난로라는 틀은 있는데 그 속에 불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틀만 가지고서는 도무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난로 속에 불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의 심령도 불이 붙은 열심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나에게 12명의 열심있는 신앙인을 달라. 그리고 나를 어느 지역이든지 내려놓아라. 그러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이 일 할 것이다. 마음에 열심이 없는 사람 전체를 나에게 주어본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외쳤습니다. 열심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열심이 있는 사람까지 싸늘하게 만드는 방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을 모두 마치려 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온적인 신앙상태로 깊은 자만에 빠져 주님을 문밖에 세워둔 마음을 닫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미온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자만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삶의 중심을 교회의 중심을 주님께 내어 드리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승리하여 하나님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아 주님과 교제함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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